너는 특별하지 않아 - 어느 교사의 맵고 따뜻한 한마디
데이비드 매컬로 지음, 박중서 옮김 / 민음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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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보스턴 교외의 웰즐리의 한 공립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졸업식 축하 연설은 특별했다. 연설자인 데이비드 매컬로는 이 학교에서 실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고 졸업생들과 비슷한 연령의 청소년을 포함한 아이 넷의 아버지였다. 이제 더욱 커다란 성취, 좌절의 장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흔히 장밋빛 전망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며 더 많이 욕망하고 성취하라고 독려하는 여느 졸업 연설들과는 달리 데이비드의 연설은 각자가 지나치게 특별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위대한 업적이나 성과 위주의 사회적 평가 체계에 함몰되지 않기를, 단 진짜 삶을 살게 되기를 기원했다. 이러한 그의 연설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이 책을 집필하게 된다.

 

이 책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유한한 삶을 다시 한번 제대로 고쳐 사는 것이 되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부모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아이들의 좌절 경험까지 통제하려는 것이 얼마나 그 아이들의 삶에 무익하고 심지어 위해를 가하게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아이들에게 했던 졸업 연설은 기실 그 아이들을 통해 성취의 트로피를 착복하려 했던 수많은 부모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오직 대학에 가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서 학교 수업을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선문답을 하는 식으로 학문의 정수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깨워주는 정경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매혹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진지할 것 같지 않은 장난꾸러기들은 하나씩 호기심을 가지고 졸던 고개를 들어 데이비드 매컬로 선생을 쳐다보며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도 중간인 아이도 느린 아이도 모두 그에게는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아이들이었다. 교육계에 점차적으로 만연하는 그 수많은 불평등을 출발선부터 배치하는 입시 제도에 대한 일갈은 우리나라에도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그의 명연설의 늘어지는 버전으로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기본은 그것에서 출발하지만 이미 고등학교 교실을 떠난지 한참 되어 이제 우리의 녀석들을 거기에 들여놓아야 되는 나이의 사람들까지도 이 노교사의 위트 있는 수업 광경에 대한 묘사와 삶, 성장, 교육에 대한 직설적인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학적 진격 명령으로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환한 것은 이 이야기의 마무리로 맞춤하다.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곧 기대로부터, 금지로부터, 부러움으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 끝이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나이듦이 성숙이 아니라 아집과 독선과 망령과 뒤섞이기 쉽다. 실제 작금 벌어지는 상황들도 그렇지 않은가. 기대와 금지와 부러움과 두려움에 꽁꽁 묶여 학교 교실에서 영희와 영수로부터 출발했던 그 단순하고 쉬웠던 기본적인 도덕률마저 망각하고 벌이는 작태들이 역겹다.

 

사는 것은 준엄하고 어렵다. 항상 이런 교사의 조언과 질책을 둘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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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1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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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과연 공부를 다 마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죽음을 더 안다고 해서 죽음이 덜 두려워지거나 삶이 더 의미 있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동갑인 이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도 결국 삶의 일부이고 내 안에 쌓여 가고 있고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건 그 종결의 무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들, 담대하고 따뜻하고 고귀한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 그 만큼이나 성숙하고 진중한 아내의 후기까지 아련한 여운이 오래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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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8-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분과 동갑이라 더 읽고싶었는데 blanca님도 닭띠?^^리뷰 감사합니다

blanca 2016-08-29 10:32   좋아요 0 | URL
아...clavis님 제가 지금 서른여섯이라면 흠, 너무 좋겠지만 이 책 출간 당시의 나이인 듯해요. --;; 과거형이랍니다. 나이가 들통나네요. ㅋ

cyrus 2016-08-29 13:46   좋아요 0 | URL
글을 쓸 때 나이와 관련된 간접적인 언급을 해도 쉽게 들통나는군요.. ^^;;

수연 2016-08-28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막 펼쳐요_

blanca 2016-08-29 10:34   좋아요 0 | URL
아, 야나님도 이 책 보고 계세요? 솔직히 너무 다운되는 책은 읽지 않으려 하는데 결국 이 책 읽고 어젯밤에 눈물을 줄줄...요새는 생로병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막막해져요. 어른들이 죽고 나면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게 좋은 거라는 불교적 윤회관도 이제는 수긍이 갑니다. 삶에는 반드시 소멸과 종결이 있으니까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야나문에 가보고 싶게 만드네요...언젠가 용기내어 꼭 가보고 싶어요.

자목련 2016-08-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쯤 도착할 것 같아요. 펼치기가 두렵기도 하고, 그 아름다운 문장에 궁금하기고 하고...

blanca 2016-08-29 10:59   좋아요 0 | URL
저자가 학부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어요. 문학적 소양이나 삶에 대한 통찰이 정말 놀라워요. 너무 아까운 사람이지만 또 어쩌면 그렇게 불꽃처럼 자신의 재능을 순간에 발산하고 간 것 같기도 해요. `죽음`에 대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렇게 사려 깊고 예리하게 응시하며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 싶어요. 자목련님의 리뷰 기다릴게요...

stella.K 2016-08-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읽고 싶은 책은 쌓여만가고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ㅠ

blanca 2016-08-30 12:42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아요. 스텔라님도 좋아하실 듯해요.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힘든 일 중 하나가 `책참기` 아닐까요?^^;;

Jeanne_Hebuterne 2016-09-04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어느 정신분석의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묻더라고요. 죽는 게 두렵냐고.
전 단박에 아니요, 전 지금 죽어도 좋아요. 했더니 그가 다시 묻지 뭡니까.
그럼, 오랫동안 안죽고 많이 아픈건요? 가령 치매, 반신불수, 그런 걸로 늙어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죽는 건요?
말문이 막히고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의 핵심이 너무나도 단호하고 간결해서요.

blanca 2016-09-05 11: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저는 죽음의 주체로 저를 상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랬더라도 그건 지극히 추상적이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아프고 죽기도 하고 이런 구체적인 죽음을 목도하게 되니까 이제 자꾸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또 `죽음`은 결국 `죽기까지의 그 지난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나오는 결론이라는 것에 이르니 너무 두렵고 이 생의 모든 일들이 좀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쟌느님이 얘기하신 그 의사의 핵심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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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적 자아와 에세이에서의 자아의 낙차가 흥미롭다. 하루키의 '나'는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으로는 비교적 자유롭고 내면의 심연을 응시하는 지점에 가 있곤 하는 하는 젊은 남자다. 수많은 관계가 있고 때로 일탈이 있다. 하지만 실제의 하루키는 벌써 육십 대 중반에 하루에 한 시간을 삼십 년이 넘에 달려 온, 자신이 쓴 원고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청취하는 대학 시절 만난 아내가 곁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다. 소설에서는 때로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이지만 자기 고백적인 하루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평범한 나도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그에게는 삶에 대한 어떤 예우가 느껴져 터덜터덜 걷다 갑자기 무릎을 굽혀 운동화 끈을 다시 매게 하는 견인을 얻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때로 마음이 휑해지기도 하지만 그의 고백을 듣고 나면 산다는 일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게 된다.

 

이번 책에서는 그가 언제나 그러했듯 사생활에 대한 내밀한 고백 대신 그가 쓰기 시작한 일, 쓰게 된 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느낀 생각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어디에선가 반복된 이야기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것들을 묶어 내는 리듬은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청량한 것들이다. 번역자는 하루키의 그 문장의 리듬을 간파하고 살리려 노력한다. 시종일관 어떤 하루키적 경쾌함이 '하루키'라는 숲을 기분좋게 순례하게 하는 기분이다. 그냥 읽기만 해도 하루키적이 되는 느낌은 원래의 하루키의 그 단순 명쾌하면서도 '아님 말고' 식의 쿨한 목소리와 또 그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 낸 번역자의 협업이 비교적 성공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가 스물 아홉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 유명한 진구 야구장에서의 돌연한 순간에 대한 고백은 또 다른 형태로 재생된다. 그런데 또 들어도 시원하고 부럽다.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하루키는 그렇게 작가가 된다. 쓸 것이 없었던 그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과 주변 환경에서 불필요한 수식을 제거한 리드미컬한 자기만의 문체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뭔가를 써 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은 오만이 아니다. 그 자신만의 고유한 비전과 그것을 향한 프로세스에 대한 확신은 시간의 퇴적을 이겨 내고 그에게 남은 자부심이었다.

 

만일 당신의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p.110

그가 소설 창작의 비법을 으시대며 전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주변의 사람과 사물과 일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머릿속의 서랍에 넣어놓은 다음 그것을 다시 열어 쓰고 묵혀두었다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으로 공력을 들이고 또 그러한 노력은 시간을 통해 진가를 발휘한다는 자신감에 대한 고백은 기억해 둘 만하다.

 

무엇보다 그가 그러한 창조력과 순발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삶에 들이는 그 사려 깊은 자세는 닮고 싶다. 하루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그 성실함이 결국은 그가 삶을 대하는 하루 하루의 무게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고 쓰는 일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나이듦은 몸의 무게를 실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몸의 무게는 엄청나다. 삶을 이야기할 때 몸에 대한 화제는 어쩐지 지나치게 비속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우리가 삶을 사는 일은 몸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움직이게 하는 일에 편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러한 몸을 제대로 대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삶에 대한 기본 자세 같은 것이 아닐런지. 그에게 있어 '강함'은 이러한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부의 심연으로 들어가 그 온갖 깊은 좌절과 악과 욕망의 잔재를 들쑤시며 언어로 형상화하는 일에는 엄청난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사실 강하고 건강한 몸에 기반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고작 마흔 언저리에서 어떤 결론과 체념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나에게 아버지 연배의 하루키의 이야기들은 가장 뻔한 것 같으면서도 필요한 이야기들을 리드미컬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어떤 사안에 대한 유예적이고 자기 변명적인 대목들이 불거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하루키다운 모습이다.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간 작가의 그 지극히 개인적인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가 응시하고 마침내 이야기하는 것들에 위로와 힘을 받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러한 조응이 결국 하루키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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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0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어요. 그동안 하루키 연구서도 많이 나왔고, 여기저기 겹칠 것 같아서 뭐 새로울 게 있을까 싶어요. 누구는 예전에 나온 책 제목만 바꿔서 나왔다고도 하던데...

blanca 2016-05-02 19:40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키는 에세이 위주로 읽어왔는데 복간된 것도 있고 겹치는 부분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은 최근의 하루키가 집필한 내용이라 저는 처음 보는 글들이었어요. 마지막 고인이 된 심리학자 부분만 제외하고요. 여하튼 저는 흥미롭게 읽었어요. 물론 하루키적인 한계나 변명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그게 또 하루키니까요. ^^;;

alummii 2016-05-0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blanca 2016-05-02 19:41   좋아요 0 | URL
읽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단발머리 2016-05-0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어요.
역시 하루키,하고 있지요^^

blanca 2016-05-02 20:45   좋아요 0 | URL
아흑, 빗소리와 너무 잘 어울리죠.

기억의집 2016-05-0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단발머리님처럼 역시 하루키! 이러면서 읽고 있어요. 하루키 글은 사물을 보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세계관이 본인이 의도한대로 쓰는 것 같아요. 어제 하루키 읽으면서 문득 나보코프도 문장이 어려웠는데..그도 하루키처럼 곱씹은 사유의 결과물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루키,,참 설명하기 힘든 멋진 작가에요.

blanca 2016-05-03 11:51   좋아요 0 | URL
하루키,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은 정말 특별하구나,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사물을 보는 눈, 그리고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에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어요. 육십 대 중반 넘어서도 건강한 몸도 부러워요.--;; 몸에 대한 이야기도 참 배울 게 많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6-05-1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되었을 때는 조급함으로 구입해놓고는,
손도 못 대고 있는 책이네요. ㅠㅠ. 하루키의 강박적일 정도로 느껴지는 성실한 실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소설의 틀이 모호한 자유로움, 방황이 늘 매력적입니다. 삶의 치열함에 대한 극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블랑카님의 글에서 ˝청량함˝이라는 단어, 꼭 맞게 느껴지네요.

blanca 2016-05-16 14:45   좋아요 0 | URL
하루키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나이듦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 있더라고요. 나이들면서 사람이 유연함과 개방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육십 중반이 되어서도 청년 같은 면면이 죽지 않는 걸 보면 이래서 하루키구나, 싶어요. 저도 하루키 책은 나오면 막 초조해요. 빨리 사서 읽어줘야 될 것 같은 ㅋㅋ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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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첫 문장이다. 한때는 내 삶에 굴곡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이 그다지 유별나게 굴곡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다 그렇더라. 크고 작은 파문 가운데에 놓여 있다. 많은 서사를 품고 있는 삶은 이제 읽고 듣는 것으로 족하다는 조금은 안일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변화가 삶의 본질인데 나는 그 변화에 적응이 느리고 겁이 많다.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떄가 있다.

-p.223

 

저자 리베카 솔닛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녀 관계는 어머니가 딸에 가지는 묘한 경쟁심으로 인해 따뜻하거나 교감을 나눈 기억이 없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일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러한 범위로 한정되지 않는다. 생로병사, 사회적 가치, 연대, 공감, 사랑으로 확장해 나간다. 겁이 많은 나에게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는 그녀의 결심과 가족과 지인들의 투병, 죽음 앞에서 자꾸만 닥치지도 않은 온갖 상황들에 매몰되는 나에게 삶에 닥치는 그러한 고통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너무 시의적절했다. 마치 리베카 솔닛은 나를 지금의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격려하고 세심하게 조언한다.

 

에세이의 한계는 자기 경험의 범위다. 그것을 넘어서기가 어려워지면 신변잡기로 오그라든다.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에는 분명 이 경계를 지워버리고 확장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이 돋보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의 혁명 전후의 삶, 프시케의 신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등의 이야기와 그녀의 목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우리 모두가 삶에서 만나는 암초와 그 암초를 넘어서 꿈꾸는 것들과 시간 앞에서 소멸로 가는 길들에 대해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을 벼린다. 강요도 단정도 과장도 미화도 생략도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수술, 친구의 죽음 같은 그녀 삶의 이야기는 도드라지지 않으며 묘하게 어우러져 그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읽는 이들도 그 이야기로 연결되는 패턴을 따라 함께 섞이고 확장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읽고 뛰던 가슴이 좀 가라앉았다. 다들 그렇듯이 삶의 풍경은 다르지만 생로병사와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 소멸의 노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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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4-1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 글도 참 좋네요...
저는 레베카를 저만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어요. 다시 한 번 읽고 싶어 원서도 구입했구요.
그녀의 이야기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죠. 그래서 위로가 되요^^

blanca 2016-04-13 13:38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까지 읽은 여느 에세이와 참 다르더라고요. 그 깊이와 넓이가 참 경이롭기도 하고...원서는 어떤 다른 감상이 느껴질 지 기대가 되네요.

짜라투스트라 2016-04-1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이죠. 그리고 이 글도 너무 좋네요. ^^

blanca 2016-04-13 13:38   좋아요 0 | URL
아, 벌써 다들 읽으셨군요!

무해한모리군 2016-04-1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지는 리뷰네요.

blanca 2016-04-13 13:39   좋아요 0 | URL
그저좋은모리군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가볍지 않은데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한 편의 긴 서사시처럼 아름답기도 하고요.

안한샘 2016-04-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일리지 어떻게 받나요
 
Patrimony : A True Story (Paperback)
Roth, Philip / Vintage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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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에서 필립 로스가 "노년은 대학살"이라 했던 연원은 그 자신이 여든 일곱 살에 죽어가는 아버지의 여정에 통절하게 동참했던 체험에 있었다. 삼백 페이지가 안 되는 이 이야기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기억의 복기가 일상에  괴팍하고 독선적이면서도 열 살도 더 차이 나는 이웃의 할머니와 연애를 하는 정력적인 그의 아버지의 그 대학살의 전장에서의 투쟁, 그리고 그것에 함께 동참하여 그 지난하고 참혹한 노쇠와 소멸의 과정을 절절하게 체험하며 삶에 내재되어 있는 그 근원적 비극성을 생생하게 하나 하나 형상화하는 작가 자신의 고백이다.

 

여기에서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유일하게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 결정판을 출간하게 되는 작가적 성과는 그의 본질이 아니다. 뇌 속에 종양을 가지고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아버지는 유대인으로서 미국에 자리잡기 위해 평생을 분투했던 기억을 무한히 반복 재생한다. 그의 삶은 차라리 기억 그 자체였다. 성장기에 필립 로스는 이러한 아버지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종양 생검을 앞두고 탄 택시에서 만난 기사가 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을 때 필립 로스 또한 그를 전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찬찬히 그 감정의 뿌리를 탐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독선적이었고 그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타인의 실수에 때로 가혹해서 필립을 숨막히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면면의 반대편에는 또 여느 서구적인 자식과 부모와의 다소 건조한 관계와는 다른 끈끈함이 있었다. 아버지의 투병은 필립 로스가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할 만큼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는 저편에서 커져가는 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두고 홀로 여기에 있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의 아버지가 생의 투지를 불태웠던 만큼 급격히 소멸로 가는 과정의 가혹함은 그를 어리둥절케 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허덕이다 그와 통화한 여자 친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로 그를 위로한다. "나는 모든 걸 이해할 필요는 없어."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비로소 그는 잠을 청할 수 있게 된다.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질서나 명확한 인과 관계를 요구하는 일은 그것을 이겨내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 "왜?"가 시작되고 나면 모든 것은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해 보이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견뎌나갈 도리가 없게 되기도 한다.

 

너무 늙어버린 아버지를 그대로 두어도 공격적인 치료를 해도 그 어느 지점에서도 갈등하고 회한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식의 번민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러한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버석거렸다. 그는 몇 번에 걸친 의사들과의 상담으로 아버지에게 장시간의 무리가 가는 뇌수술을 권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과 처분에 경과를 맡기게 되는 선택 아닌 선택을  하게 된다. 뇌의 종양 조직 검사에서도 제대로 회복되지 못해 힘들어하던 아버지가 참던 대변을 아들의 잘 꾸며진 집에서 실수하게 되는 장면에서 그는 삶의 정면을 맞닥뜨린다. 그게 바로 삶의 실재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 준 유산은 돈도 아니고 소중히 여기던 유물들도 아니다. 아들은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눈과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수습해 보려던 아버지의 똥을 대신 닦고 청소하며 이게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의 유대의 정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별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아들을 들어올리고 평생 강건할 것처럼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와 몸은 졸아들고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던 그 자신이 이제는 자신의 용변마저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져서 아들 앞에 서는 순간 비로소 아들은 생이 가지는 그 처절한 비극성과 부자의 긴밀한 유대를 응시하게 된다. 어쩌지 못하는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면 그냥 무릎을 굽히는 것도 때로 답이 되기도 한다.

 

필립 로스는 대단히 솔직하다. 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했던 데에 대한 회한, 연명장치 중단 서류를 은근히 아버지엑 종용하는 모습의 고백 등은 그가 언어 뒤에 실체를 숨기려는 본능을 이겨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이야기가 언어의 장막을 뚫고 호흡하는 지점에는 이러한 솔직한 과단, 진정성이 있다. 한편 때때로 계속되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천착은 좀 아쉽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이러한 정체성이 가지는 무게를 감히 쉽게 이해하거나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그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를 가두는 데에도 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그 일을 지키며 필립은 아버지가 죽어도 영원히 자신의 내부에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로맹 가리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우리의 내면의 증인이 된다. 어떤 판단, 느낌의 준거점으로 기억의 거점으로 눈물로 남는 것이다.

 

표지 안쪽에는 세 부자가 수영복을 입고 일렬로 서 있는 아름다운 사진이 실려 있다. 서른 여섯의 젊은 아버지, 아홉 살의 필립, 네 살의 남동생의 아름다운 찰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빛난다. 아, 사는 일은 어찌 이다지도 대조적이고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일까. 그런데도 또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한 생을 꾸려가는 일은 어찌 이다지도 끝나지 않는 것인지... 이 모든 이상스럽고 신비한 것들의 원리를 모두 알고 이해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을 계속 꾸려가고 계속 읽고 쓰고 사랑하고 표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게 삶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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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12-1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서 다시 아기로 돌아가니,
아기가 된 어버이(아버지 어머니)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선 내 모습도
앞으로 내가 아이들과 나아갈 모습도
함께 되새길 수 있을 테지요.
아기가 된 어버이를 마주하고 껴안으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구나 싶어요

blanca 2015-12-14 14:44   좋아요 0 | URL
어른이 되는 길은 아마 죽을 때까지 또 배우고 돌아보는 과정인 듯해요. 거진 다 배웠다고 생각해도 또 튀어나오고 또 나오고 그러네요.

2015-12-14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5-12-1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 작가는 굉장히 솔직하구나하고 깜짝 놀라곤 했는데 역시@_@; 읽고싶은데 번역되어있지 않은가봐요. 블랑카님 존경합니다♡

blanca 2015-12-14 14:47   좋아요 0 | URL
아, 필립 로스의 솔직함이라니, 정말 놀라고 또 놀라요. 어느 인터뷰를 보니 `~척` 안 하고 산다고 얘기한 게 빈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또 일견 자신감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