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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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녁 무렵 노랗게 물든 서점을 그려봐야겠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어둠속 영롱한 빛 같은 풍경을.
-빈센트 반 고흐 

 

그래서 고흐는 결국 그렸을까? 노랗게 물든 서점을? 

시험이 끝나면 시내 대형서점에 가서 이만 원 정도의 예산에 맞춰 책을 네 권 정도 골라 품에 안고 한창 머리가 빠지고 있는 아빠와 소박한 외식을 하고 귀가하곤 했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모조리 다 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언젠가 우연히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의 꿈이 ㄱ문고 사장 아들과 결혼하는 거였다는 고백과 맞물려 다시 떠올랐다.  

사실 행복하지 않아서 책에 흠뻑 빠졌고 그랬기에 후의 삶은 조금 더 평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년시절 정말 행복했다면, 충만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여기에 와서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울고 싶을 때마다 엄마 젖대신 책을 찾았다. 그러니 서점은 수유의 공간과도 같을 수밖에. 

이 책의 저자는 물론 당연히 탐서가이고 지극히 평범하고 그럼에도 자기 이름으로 낸 책이 몇 권 있고 서점에서도, 출판사 외판원으로도 일한 경력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책사랑에 대한 얘기가 책과 서점의 역사와 아름답게 교차하는 구성이 참 싱그럽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거나 은밀하지도 않고 '척'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얘기와 대상의 얘기를 풀어내는 입담에 절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서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여직원과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통화하며 "당신, 그 책 읽었어?"라고 호들갑 어린 목소리를 듣는다는 고백과 파리 센 강 좌안 고색창연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의 역사를 함께 듣는 일은 드물고 근사한 경험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이 서점의 젊은 여주인 실비아 비치 덕분에 외설 시비에 휘말린 <율리시즈>를 출판 배본할 수 있었다는 얘기와 22년 넘게 수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던 그곳이 독일군들의 파리 점령으로 폐점하게 되는 사연. 저자가 열다섯 살에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를 만나 6개월 안에 전작주의를 실현하게 된 열정적인 독서 편력 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노란 불빛의 서점 안에 들어서 맘씨 좋은 서점 주인의 배려하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진다. 행복한 나른함. 참 오랜만이다.

집에서 가져온 재즈 음반들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책 주문서를 작성하고 서점 문을 닫고는 닐 영, 스탄 게츠의 음반을 틀어놓고 악을 쓰며 청소를 하고 30년 후에도 변함없이 감동을 줄 책들을 권해받는 풍경은 눈물나도롭 부럽고 행복해 보인다. 과거로 정지해 버린 기억의 영상들을 다시 이어 재생하며 사람들이 서점과 종이 책을 지금보다 조금더 존중했던, 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느 정도는 초라한 책을 둘러싼 풍경은 한없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책을 돌려 읽었고 저마다 가슴에 품은 대목들을 서로 교환했다. 초록색 교복에 검정색 스타킹을 신고 근처 남고생들한테 똥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우리는 이제 다시 만나 책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우리였던 나이의 지금 아이들은 책상 위에 돌려 읽는 책대신 스마트 폰을 올려 놓고 끊임없이 짦은 단문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거리들을 터치한다. 무언가 얘기하고 싶은데 얘기할 거리가 없어도 단문 메시지는 부끄러움을 숨기고 '나'와 '너'와 '그것'이 만났다는 환각의 지점에 도착한다.  

노란 불빛의 서점이 셔터를 내리는 날. 종이책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날. 그건 삶의 종언보다 더 가혹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언어로 그려지는 '너'의 얘기들을 이제 더이상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일과도 같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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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이 책 봤는데, 망설이다가 안 샀는데, 살걸....... 흑.

울고 싶을 때마다 책을 찾았다고 하니 생각나는데,
제가 요즘 <브레인맨 천국을 찾다> 라고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글을 읽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좀 그런가봐요. ㅠㅠ. 블랑카님두? 큭큭.

blanca 2011-03-18 21:45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는 반값세일에서^^;; 그런데 지금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책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그럴 지도 몰라요 ㅋㅋㅋ

비로그인 2011-03-1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예전에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던 때가 떠오르네요. 찾는 책이 없으면 서점 주인에게 따로 구입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죠.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이삼일 뒤 산책한다는 핑계로 저녁 밥 먹고 터덜터덜 걸어나오면 주인이 따로 챙겨놓은 책을 무슨 비결서인 양 꺼내주곤 했었는데요 ㅋㅋ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아마 그렇게 샀죠^^

blanca 2011-03-18 21:47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제임스 미치너 <소설> 제가 기억하고 있는(읽어야 겠다고) 책인데 이 댓글로 다시 장바구니로 넣어 둡니다.^^ 말씀 들으니 레코드점도 그렇고 서점도 그렇고 그렇게 주인들이랑 친분을 쌓아 두었던 과거가 참 그리워지네요.

cyrus 2011-03-1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동네 서점이나 ㄱ문고에 안 가본지 꽤 오래 됐네요. 알라딘을 자주 애용하다보니
정작 오프라인 서점을 자주 갈 일이 없는거 같아요.

blanca 2011-03-18 21:49   좋아요 0 | URL
cyrus님 여기는 대학가인데도 대부분의 작은 서점이 폐업했어요. 이젠 대형서점들만 살아남는 추세인데 그마저도 가보면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느낍니다. 지하철을 타도 다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책을 좋아했던 친구들도 요새는 책을 읽지 않더라구요. 괜시리 참 서글퍼져요. 저도 알라딘에서 살게 된 이후로 오프에서는 구경만 자꾸 하게 되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1-03-19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ㅠ.ㅠ
그러고보니 저도 시내 대형서점 안 나간지가 꽤 됐네요.
동네 서점은 아직도 가끔 들리지만요.
예전엔 동네서점에 가면 철지난 잡지부록도 챙겨놨나 주시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새로운 음반이 나오면 전화해 주던 음반 가게도 이젠 온라인쇼핑몰로 돌려버렸더라구요.

책과 스마트폰이 혼재하는 시대,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있겠죠.
그 아이들을 종이책으로 인도하는 것, 그 아이들이 종이책을 선택하는 것...우리의 전철을 따르겠죠~^^

blanca 2011-03-19 20:39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저는 요새 아이들이 너무 어렸을 때부터 영상물와 각종 전자기기에 노출되어 활자 텍스트를 거부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제대로 뇌발달은 이루어지나, 이런 의문이 들어요. 실제 걸음마도 못하는 아가들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는 풍경이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종이책이 다시 각광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비로그인 2011-03-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가 여섯 개나 빠졌다는, 스스로 주어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채워 글을 만들어 보라는 혹독한 주문의 어떤 작가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가끔 서점에 가면 요즘 시대와 점점 닮아 번쩍이고, 화사하기만 한 책들이 점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저런 노력과 주문이 담긴 책들은 점점 구석으로 몰려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밤입니다.

blanca 2011-03-20 23:03   좋아요 0 | URL
우아, 바람결님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요새 왜이리 뜸하신 거예요? 저는 서점을 너무 좋아해서 그냥 대형서점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스르르 다 풀려 버려요. 아아. 그 이가 빠졌다는 작가는 아마 김훈이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요즘은 참 이래저래 슬픈 시대인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초록빛 나는 똥파리 말이군요.음...귀여운 디자인이었을 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21 21:06   좋아요 0 | URL
노자님 초록색 치마에 검은색 타이즈 신고 다니니 남고생들이 계속 놀려댔었죠 ㅋㅋ 교복 이쁘다고 소문이 많이 난 학교였기는 했어요. 교복만 이뻤죠--;;

2011-03-22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1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1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3-22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너무 좋아해서, 도서관과 서점에 있는 것만으로 정말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동네서점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시집을 뒤적거리거나,
몇 시간씩 서서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몇 편을 다 읽어버리기도 했죠.
이 글 읽으니, 꼭 그 작은 동네서점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요!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1-03-22 21:3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정말 서점에서 책 읽는 재미도 참 쏠쏠했지요. 저는 너무 오랫동안 책을 골라 뒤통수가 좀 따가웠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대형문고는 저한테는 정말 마법의 공간 같은 곳이었어요. 아무리 오랫동안 영양가 없이 서성거려도 뭐라 그러는 이도 없고. 감은빛님 댓글을 읽다 보니 갑자기 서점으로 막 뛰어가고 싶어지는 걸요.

2011-03-29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30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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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별거 아닌 일도 밤에 혼자서 이것저것 주워섬기다 보면 절로 우울해진다. 어느 해. 그날 저녁 나는 또 기다리는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에 무척 실망하고 최악의 상황도 상상해 보고 그랬더랬다. 그리고 매일 다니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빈속에 믹스커피를 마시고 직원들을 기다렸다. 하나 둘, 출근하는 직원들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척 괜히 오버해 가며 잉크토너도 갈고 서고에서 서류철도 하나씩 꺼내고 슬쩍슬쩍 인터넷 검색도 하며 전화에 대고는 최고로 아름다운 척, 친절한 척 하는 목소리 연기도 열심히 하며, 여느 날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 속에 퐁당 빠졌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제의 그 고민이 태양이 풀잎 위의 이슬을 삼키듯 저절로 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시간은 멈추고 눈앞의 기한이 더 크게 느껴지고 매일매일 똑같은 농담과 한탄을 나누는 직원들은 언제까지나 내 옆에서 그대로 그 나이로 정지해 줄 것만 같았다. 내가 내 삶에서 한번씩 거창한 것들을 추구하고 기다리는 일들이 마치 전생의 꿈만 같게 느껴졌다. 일이 있어 다행이다, 라는 아주 드문 안도감을 느꼈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가 이런저런 사건들과 난잡하게 뒤섞이도록 해주는 것에, 파리로 엔진오일을 팔러 가는 동안 우리 자신의 죽음과 우리의 사업의 몰락을 아름다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그것을 단순한 지적 명제로 여기게 해주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 있다.

 
   

 

이거였구나! 싶은 통찰들. 현대에서 '일'은 마치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처럼 아주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떠받들여 진다. 소개팅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그'나 '그녀'를 소개하는 문구는 직업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직업에 맞추어 보지도 않은 그들의 인상, 성격, 기호를 상상한다. 그 사람이 수행하는 '일'안에서의 작업과 보수는 그 사람 자체로 환원되어 버린다. 일에 매달려서 새털같은 날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고 일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판단하는 일은 안 그러는 것보다 쉽고 덜 불안하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회의실에 저소득층 어머니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심리적 갈망을 새로운 제품의 조직원리로 통합하겠다고 덤비는 비스킷 공장의 디자인 책임자, 위성발사를 위해 일하는 우주센터 직원들, 5년 전 여자친구의 죽음 후 종일토록 떡갈나무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그리는 화가, 송전선을 따라 여행하는 송전엔지니어, 감사 업무에 불멸을 위한 기회는 없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회계사들, 상업화의 가능성은 요원한데도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어마어마한 환상과 꿈을 둘러친 빈곤한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일'이 그 자체로 심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존재를 유지해 나가는 동력과 삶의 기만들을 망각할 수 있다는 그 수단적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냉소 같기도 하고 비아냥거림 같기도 한 내용이 알랭 드 보통의 목소리를 빌려오면 섬세하고 진지한 고백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이대로도 좋다는 것. 무언가 더한 의미와 가치 추구를 위한 명분을 구태여 찾아 헤맬 필요가 있을까? 라고 진지하게 회의감을 드러내는 저자의 모습은 안도감을 준다. 코 앞의 일들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은 삶에 있어 아주 유용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다 비워내 버리고 진지하게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쏘아 대기 시작하면 자멸이다. 존재의 동력은 그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가끔씩 빵빵하게 채워져 있을 때 터지지 않게 바람을 빼주는 역할 정도가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하여 던지는 '왜'라는 질문일까. 이 책은 그러니까 다양한 직업의 초상화라기 보다는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선을 멀리 떨구지 않고 바로 코 앞에 던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의 그 편협한 구획 나누기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그 미덕의 한계를 지적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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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4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같은 글귀인데, 저랑 정반대로 읽으셨네요.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들 중에 '불안'과도 좀 비슷해요.

blanca 2011-03-04 23:2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리뷰를 쓰면서도. '불안'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고 읽는 중간의 감상과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차이가 나서 저도 놀랐어요. 제가 사실 제대로 보통의 저의를 이해했는지는 확신이 없답니다.

하이드 2011-03-10 09:10   좋아요 0 | URL
보통의 저의도 있지만, 독자의 저의도 있는거니깐요. 그건 독서하는 각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독서하는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것. 정답이야 보통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래서 책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게 재미나요.

마녀고양이 2011-03-0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처음 다섯줄을 읽으며 내가 쓴 줄 알았잖아요(물론 문체야 블랑카님이 훨 멋지지지만)...
나랑 왜 그리 똑같아! 자기랑 나랑 진짜 유사한 점들이 있어서 한번씩 깜짝 놀란다니까요. ^^

그러게요, 쓸데없는 일인 듯 싶어도 코 앞에 할 일들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거 같아요.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실존적 고민 뿐이라 하면, 그걸 내내 생각하다가 어찌 살겠어요.
그래도 나 이번 학기에 <실존과 심리 치료> 듣는데.. 으아, 이거 흥미로와요.
대학원도 그래서 원래 목표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틀어뜸, 올 연말에 합격해야 갈 수나 있지만 말이죠. ㅎㅎ

blanca 2011-03-04 23:2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원래 목표와 다른 곳이라니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상담 분야인 것은 맞는지도 궁금하구요. 대학원 가시기로 하셨군요. 합격이야 당근 따논 당상일 것 같은데요. 시간이 흘러서 자꾸 자꾸 앞으로 전진하시는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2011-03-0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3-0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모된다는 기분을 느낄 때 마다 자주 펼쳐드는 책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오전 **시 미팅' 이런 메모를 하면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잊으니까요. 찰나의 가장 유한한 고민을 통해 무한성을 잠시 잊습니다. 이런 말이 괴이하게 들릴 정도로 내가 소모되는 일들을 통해서, 계속 살아있습니다.꼭 성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굳이 자아실현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했더랬습니다.

blanca 2011-03-04 23:30   좋아요 0 | URL
쥬드님, 맞아요. 성찰하고 자아실현 찾다 보면 항상 현실은 모자라요. 그래서 자꾸 내일을 기약하다 보면 사정없이 늙어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코를 박는 것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 같아요.
 
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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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낳는다는 것보다 더 지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변화를 동반한다. 이제 '나'는 더이상 온전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없음을 뜻한다. 타인에게 폐가 되는 행동들이 정작 '내'가 아닌 '나의 아이'에게서 나올 때조차도 나의 배꼽은 아이의 배꼽과 탯줄로 이어져 찌릿한다. 아이는 나의 부속품이 아니지만 아이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부메랑처럼 나를 때로 조준한다. 모든 계획과 모든 변화에 아이는 우선순위로 감안되어야 하고 때로 제약이 된다.  

커가는 아이는 시간의 현현이다. 살면서 시간의 그 위업을 이다지도 절절하게 체감할 기회가 또 있을까? 배냇 웃음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던 아기는 어느새 굽있는 구두를 사달라고 조르고 자신의 행동에 변명을 붙일 줄도 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는 나를 떠날 것임을 알고 때로 가슴이 저릿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좋은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기 보다 더 나약하고 더 나쁜 나를 때때로 발견하고 재조정하는 성장의 단계다. 미혼일 때는 애교로 봐 줄수도 있었을 온갖 약점들이 줄줄이 극대화되어 튀어 나오고 생활인으로서 무능력하거나 약한 그 작은 틈새가 밑창이 벌어진 신발처럼 흉하게 드러난다. 누군가가 아이를 키우는 나를 관찰한다면 '허걱'할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싱글파더처럼 되어 버린 작가가 아이를 키우는 스스로를 객관화화하는 그 지점에 살짝 발을 올려 놓고 시작했다. 페터 한트케의 아이는 내 아이와 많이 닮아 있었다. 예민하고 소심한 그 성정이 또래집단의 아이들에게서 상처받는 풍경들에 아프게 젖어 들어갔다. 고작 네 살인 아이들 집단에서 발현되는 그 이기심과 폭력성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아이들의 본성이 아니다. 천진난만함과 순진무구함은 때로 잔인한 이기심의 원형의 거친 칼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장난감 하나를 두고 거칠게 싸우다 서로 따귀를 올려 붙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는 아이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하는 모습들은 그 결고운 볼에 어린 홍조에는 예고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다. 가해자의 부모도 피해자의 부모도 견디기 힘든 풍경이 주변에서 펼쳐진다.  

그게 아니면 <아이들>이란 우선 또래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이 옳고, 그래야만 고통과 부당함을 겪으면서 자의식을 갖게 되고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종족이었던가?
                                                                                                                                                 p.126

하루키식의 표현 때로라면 전력 투구하여 근육을 연마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소설 창작 과정의 그 온전한 시간과 에너지를 페터 한트케는 아이 때문에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사랑이 이미 식어버린 사람과의 사이에서 부산물처럼 떨어져 나온 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삶 속에 스며들어와 그를 제한하고 좌지우지하는 생활을 객관화여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를 '그'로 칭하고 객관화하는 모습은 어떤 안간힘을 연상해 내는 풍경이어서 편안하지 않았다.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나'에게서 분리해 내어 내 눈 앞에 갖다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서 출발하여 불가능에서 끝나는 일임을 알기에 그 부자연스러움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를 떠올릴 수가 없다. 작가로서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조차 글들의 소재로 객관화시켜 버리려는 그의 노력은 때로 삶에 대한 냉소처럼 느껴져 자꾸 뒷걸음질을 치게 했다. 그래서 전반부에 실린 어머니의 자살을 다룬 '소망 없는 불행'에 대한 리뷰를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너무 슬픈데 아니 이제 더이상 슬프지 않을 만큼 소진되어 버린 그 버석거림이 연기된 것인지 사실인 것인지를 나는 분간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가장 객관적으로 반응하기 힘든 혈연의 관계망에서 그것을 시도하고 있고 그것은 어떤 낯선 이질감으로 독자를 매혹하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는 것같다.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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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2-0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객관화도 도피나 회피의 심리를 무의식 중에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블랑카님, 커가는 아이는 시간의 현현이다,라는 리뷰문장에 공감되어요.
나의 부정적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섬뜩하지만 그걸 또 끌어 안아줘야겠어요.^^
어떨 땐 아이가 나의 분신이라기보다 내가 아이의 몸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은 때가 있어요.

blanca 2010-12-06 21:12   좋아요 0 | URL
맞아요...프레이야님 지적에 동감합니다...엄마는 아이를 떠나서 무언가를 그리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놀랍고 신기해요...아이가 내 품을 떠나면 그 때는 어떻게 홀로 설까요...

2010-12-07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7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의 무도 - 왜 우리는 호러 문화에 열광하는가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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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제니퍼..."
초등학교 저학년 때 TV에서 방영된 한 편의 공포 영화로 나는 몇 날 며칠을 앓아야 했다.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외출했던 길 두 동생이 장난으로 잠든 언니의 운동화 끈을 서로 묶어 둔 것이 차량 사고로 인해 차체에서 불이 나고  혼자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게 되는 사고로 이어진다. 그 후 그녀의 유령이 집안에서 출몰하는 괴괴한 영화였는데 침대 밑에서 동생 이름을 부르는 그 오싹한 목소리와 사악한 웃음이 내내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나의 눈과 귀에 달라 붙었다. 한 마디로 죽을 노릇이었다. 잠자리에서 몸을 뒤챌 때 내가 내는 소리마저 외부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사각거림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나는 공포 영화를 더욱 찾아 보며 의도적으로 그 음습한 두려움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져 버렸다. 무서운데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러한 경향은 계속되었다. 전문적으로 공포,환상 영화, 소설의 계보를 꿸 정도로 제대로 된 장르팬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극렬한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영화를 찾아 헤매는 한 마디로 속수무책의 괴이한 관람자였다. 그러던 것이 공포 영화를 단칼에 끊게 된 계기가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였다.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그 영화는 공포를 일으키는 실체를 슬쩍 숨기고 병사들의 공포감 자체를 영상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관객의 심리적 급소를 누르고 있었다. 사라지는 병사들. 남은 병사들이 느끼는 공포와 고립감 등이 절정에 치닫다 모호하고 열린 결말을 남긴 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던 그 스크린에서는 금방이라도 그 두려움의 실체들이 뛰어나와 내 몸에 엉길 것 같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후 일주일을 나는 엄마와 함께 잤다.

이 책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나의 과거를 다른 전문가로부터 해명받기를 원하는 마음 반, 스티븐 킹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범퍼가 없을 것 같은 기발한 재치, 익살의 직설화법에 대한 기대 반으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 그런 공포 영화들을 불편한 감정임에도 끊임없이 찾아 헤매었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장르에 열광하고 있나,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조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미 맛보았던 그의 명쾌하고 유머러스한 화법은 은근 중독성이 있다. 게다가 그가 그런 가벼운 입담에만 의지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여러 작품으로 증빙된 바 있지 않은가. <스탠 바이 미> 같은 자전적 유년 회고담 같은 소설은 그가 책을 너무 많이 팔아서 되레 적절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작이다. 사고로 죽은 아이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소년들의 좀 영악해 봬기도 하는 탐험기는 묘하게 이 책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죽음의 무도>는 공포스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우리들의 그 심리적 유인을 탐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공포 장르의 계보를 스티븐 킹의 안내로 따라가 보는 여정에 더 가깝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공포 장르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다면(사실 있어도 제대로 계보를 꿰고 있기는 해야 한다) 그 수많은 공포 환상 소설 작가군들과 그들의 생소한 작품들, 미국 TV 시리즈물, 영화들의 고유 명사에 질식해 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다분히 전문적이고 장르적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가야 갑자기 중반부에서 미로에서 길을 잃고 만 것 같은 망연함에 맞닦뜨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길을 잃었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럼에도 스티븐 킹의 간명한 직설화법과 독설은 길 잃은 양을 채근질해 목적지로 데려다 놓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것이었다. 덧붙여 스티븐 킹은 결국 이 책에서 공포 장르에 시시때때로 쏟아지는 도덕성 논란에 대한 해명과 공포 장르가 가지는 독자적 가치에 대한 강변에 목소리를 돋우고 있다.  

   
  우리가 괴물스러움이라는 개념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열망하는 질서의 재확인인기 때문이다......  
   

공포 영화를 보고 공포 장르 책을 읽는 것은 그 가상의 체험을 통해 우리의 디오니소스적 면면에 대한 해방과 괴이한 상처를 절개함으로써 일상에서 더욱더 건강해지는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할 수는 없지만 무서운 이야기에 열광하는 우리들의 심리에 일견 변명거리를 안겨다 주는 면도 있다. 그러나 군데 군데 드러나는 그의 보수적인 정치 논객으로서의 면면과(베트남전을 선한 의도에서 나온 전쟁이라고 언급, 이란 지도자를 줄곧 조롱하는 대목 등) 팍스 아메리카나의 우월감을 묘하게 흘려놓는 모습은 거부감이 일었다. 게다가 코드가 맞지 않거나 스스로의 기준에 함량 미달이라고 생각되는 다른 작가군들을 신랄하게 욕하고 비평가들에게 악담을 반복하여 퍼붓는 모습은  불편하기조차 했다. 호불호가 확 갈리는 성향인 듯 <화성연대기>의 레이 브레드버리는 신이 그를 창조하고 거푸집을 부서뜨려 버렸다고 극찬하고, 시드니 셀던 같은 작가는 똥멸치 피자와 균형 잡힌 피자의 차이점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린다. (더한 얘기도 많다)

공포 이야기의 최대 관객은 어린이라는 그의 얘기는 그 두렵고 무서운 것들에 이끌려 상상과 실재를 뒤섞어 버리는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로 이어진다. 이 책은 공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내면의 어린 아이가 주도했던 그 환상의 세계에 대한 복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어우러짐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스탠 바이 미>의 소년들은 이 책에서도 뛰놀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의 근육이 나날이 굳어가는 어른인 우리는 스티븐 킹한테 끝장이라는 독설을 들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펀치를 한 대 얻어 맞아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저력이기도 하다.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모습 처럼. 

   
 

 맞다. 내가 작별 키스 대신 당신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 바로 그 단어인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우러러 보는 그 단어. 어른이 된 우리들이 이야기 속에서만...... 그리고 꿈속에서만 참된 의미를 재발견하는 그 단어.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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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뭐 공포이야기에도 저런 멋진 교훈을 심어주냐구여, 글쎄~~~~~
울 블랑카님은 천상 글쟁이야!
난 겁이 좀 심하게 없어서 10살때는 혼자서 불꺼놓고 '전설의 고향'을 시청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애 셋이 모두 나를 안닮고 겁많은 아빠를 닮았어요~푸히히~
뭐냐, 이 엉뚱한 댓글은?

blanca 2010-11-18 22:49   좋아요 0 | URL
전설의 고향, 하시니 갑자기 또 내 다리 내놔~가 생각나요--;; 저는 맨날 잠 못자면서 계속 보곤 했거든요. 마기님 대단하세요. 불까지 꺼놓고.. 애들 셋이 다 아빠를 닮은 거예요? 제 딸도 완전 겁 많은데. 제가 원래 겁 되게 많거든요. 롤러코스터 한 번 타고 펑펑 울었던 게 대학교 때였다는 거 아니에요 ㅋㅋㅋ

감은빛 2010-11-1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이 리뷰가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웬만큼 무서운 영화를 봐도 별로 감흥이 없어요.
언급하신 '알포인트' 역시 그닥 무섭지 않았습니다.
다만 훌륭한 '반전영화'로서 그리고 존재론적 화두를 던져주는 영화로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이 책을 보고 조금은 관심을 갖긴 했는데,
블랑카님 리뷰를 읽고나니 제 취향은 아니군요.
관심을 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blanca 2010-11-18 22:51   좋아요 0 | URL
알포인트 안무섭다고 하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제가 좀 겁이 많아서 더 무섭게 봤나 봐요^^ 그죠, 알포인트는 공포 그 자체보다 공포심에 초점을 맞춰서 그간 본 공포영화와는 좀 색다른 감흥을 주었던 것 같아요...저는 유달리 알포인트 보고 가위에 눌려서 주변 사람들도 다 놀리고 그랬답니다. 지금도 공수창 감독 영화 케이블에서 해 준 것 눈 감고 반도 못보고(무서워서) 궁금해서 죽으려고 하고 그렇답니다.--;; 저는 그 감독한테 약한 가 봐요. 이 책은 이 장르에 큰 관심이 있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0-11-18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으론 아무리 호러스러운 거라도 잘 읽어요.
스티븐 킹은 예전처럼 호러스럽다기 보다는 고딕스러워지는 것 같지만~
이 책 망설였었는데 말이죠,읽고싶어지는 걸요~^^

근데,영상으로 펼쳐지는 것엔 약해서...
오늘 초능력자를 보고 와서,못자고 이러고 있습니다여~ㅠ.ㅠ

blanca 2010-11-18 22:53   좋아요 0 | URL
초능력자! 안그래도 제가 가는 다른 온라인 까페에도 그 얘기가 있던데 무서운가 봐요. 고딕스럽다. 양철나무꾼님 안그래도 고딕소설에 상당히 많은 장을 할애했더라구요. 그죠, 저도 책은 그렇게 안 무섭게 느껴지는데 공포 영화는 얼마나 절절대며 본다구요. 일본판 링 보고 의자에서 미끄러졌답니다. ㅋㅋㅋ 그 화면에서 귀신 기어나오는 장면 보고...

2010-11-1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8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1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서재에 한 번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호러 문학의 역사를 알 수 있군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다른 작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좀 그렇네요. 스티븐 킹이 비판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지만
레이 드레드버리와 시드니 셀던을 심하게 까대다니,,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이런 스티븐 킹의 서술에 익숙치 않을거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11-18 22:57   좋아요 0 | URL
cyrus님 스티븐 킹이 미국 작가들의 화법이 대개 그러한 건지(에세이류에서) 굉장히 직설적이더라구요. 현존 작가나 영문학 교수들 중 몇을 아주 심하게 욕을 해서...저는 이게 영어라는 언어와 관련된 문제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식의 욕이 흔치 않으니까요. 문화적 언어적 차이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아주 진지하고 좋은 책인 것은 맞는 것 같아요..특히 장르팬들한테는요...

비로그인 2010-11-2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러는 제가 거의 보질 않는 장르이지만 스티븐 킹의 "It" 은 정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기준에는 마지막에 좀 요상하게 끝나는게 아쉬웠지만 이건 뭐 누가 뭐라할 수 없는 그의 스타일이겠지요.

책에 관해 올리신 글을 읽으니 묘하게 중첩이 이뤄지는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20대 초반에 보고 아직도 끊임 없이 찾게 되는 몇몇 영화들. 저는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너무 잔인한 영화보다는 있을법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광기, 묘한 초자연적(초자연적이라 믿는 현실)인 소재를 다룬 것들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더라고요.

제가 본 가장 무서운 장면을 좀 떠올려보면.. 트윈 픽스에서 카일 멕라클란이 마지막에 거울을 보던 장면, 샤이닝에서 똑같은 글자를 끊임없이 쓰던 장면, 엑소시스트에서 젊은 신부가 그 악마와 대면하던 장면들이네요..

으..오늘은 문 꼭 닫고 자야겠습니다. ^^


blanca 2010-11-22 20:5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문 닫고 주무셨어요? 갑자기 학교 졸업반때 평상에서 무서운 얘기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다 커서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던지 누가 혼자 화장실 가서 남자임에도 찬송가를 크게 불렀다던 얘기하면서 막 웃고 그랬는데...

트윈픽스, 샤이닝, 엑소시스트 다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설명만으로도 괜히 오싹해지는걸요. 그리고 샤이닝에서 똑같은 글자를 끊임없이 쓰던 장면. 아 이 얘기만으로도 갑자기 그 고등학교 때 했던 귀신 부르던 장난 생각나고--;; 바람결님이 갑자기 저를 더 무섭게 하고 가시네요--;;

프레이야 2010-12-1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달의 2관왕 축하드려요^^
저도 공포영화 중 가장 무서웠던 게 '알포인트'에요.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너무 무서웠어요.
공포감 그 자체에 대한 공포랄까, 섬뜩하니 소름이 확 끼치는 경험이었어요.

blanca 2010-12-13 21:3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감사드려요^^괜히 연말에 이사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져서 댓글도 늦어졌네요. 혹한에 이사 날짜가 잡혀 심란하기도 하지만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하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프레이야님 감기조심하시고 올 한 해 마무리도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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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교수형> 중-

조지 오웰이 서 있는 지점이다. 꼬챙이처럼 마른 힌두인 죄수가 교수대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웅덩이를 피하려고 몸을 피하는 장면에서 그는 문득 깨닫는다.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식민제국주의 통치의 일원으로 복무하던 관료가 불현듯 피통치자의 생명의 무게를, 그 나름의 존귀함을, 하필 그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찰나에 저릿하게 깨닫게 되는 이 지점에서 조웰은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고통스럽게 서성거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그의 사서 했던 방황과 가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의 글을 끊임없이 읽게 된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을 소원했던 그의 에세이들은 그의 소망 만큼 대부분 정치적 비판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고 재치있고 직설적인 문체들로 독자들을 흡입하고 있다. 식민지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 동안 겪은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회고와 참회, 이후 이어진 자발적 노숙자 체험의 절절한 르포식 보고,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참전한 스페인 내전에서의 교묘한 혁명세력의 탄압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 맹목적 민족주의에 대한 예리한 해부 같은 정치적이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필요없이 아이들을 들처업고 따라가 마당에서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물속의 달''이라는 상상 속의 펍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오웰은 그러한 펍이 실재한다고 한껏 착각하게 만든 다음 독자에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여 김빠지게 만드는 익살도 부린다. 오웰의 이 기발한 상상의 펍은 후에 동명의 비슷한 분위기의 대규모의 펍체인 사업을 낳게 했다고 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가도 한 <나는 왜 쓰는가>와 위선과 가식으로 현실의 정치의 은유처럼 오염된 글쓰기를 비판한 <정치와 영어>가 사실상 이 에세이 선집의 하이라이트로 보여진다.  

   
 

명료한 언어의 대적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대듯 말이다.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서평과 문학적 평론에 대한 그의 시니컬한 의견도 인상깊다. 그는 생업으로서의 서평쓰기에 꽤나 곤역을 치른 모양이다. 모든 문학적 판단은 본능적인 선호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그의 지적은 결국 내가 어떤 책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를 읽는 이에게 교묘하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자책을 끌어 내었다. 어떤 책에 대한 진정한 반응은 주로 '나는 이 책이 좋다'거나 '나는 이 책이 싫다'는 것이란다. 그 뒤에 따라붙는 것은 합리화라고 못박는다. 어느 정도 근저에 있는 그 불편한 진실을 저며내어 보여 준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서운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간디에 대한 소견>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인본주의, 즉 인간을 택하지 않은 내세적 이상주의자로 조심스럽게 비판한 대목은 갑자기 정수리에 찬물을 맞은 기분이었다. 오웰은 내세적 이상과 인본주의의 이상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하느님 아니면 인간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혁명은 인간을 택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나 결국 이 생에서의 인간들의 삶이 개개로서 존귀함을 인정하자는 그 단순한 정의가 종교의 내세관에서 어떻게 비틀어지고 묵과되는 지에 대한 예리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종교 그 자체를 싸잡아 비판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현실에서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숙명적인 것으로 감내하도록 조장하는 비열한 책동과 인간중심 혁명을 대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그의 시선은 언어의 외피를 뚫고 진동하는 인간의 그 허약한 위선, 어리석음을 걸러내고 만다. 마치 내가 들킨 기분이다. 결국 언어와 그 사람의 내면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글이 나와야 한다. 자신의 사상과 괴리되어 저만치 현학적이고 위선적인 어휘들로 대충 감침질한 어휘들의 향연을 자신의 글로 내세우는 것은 비열하고 패악적인 정치인의 자기 과시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오웰은 더 나아가 이러한 언어의 타락이 정치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연쇄 반응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언어의 체에 그것들을 통과시키게 된다. 전체주의 세력들이 끝까지 언론 장악을 포기하지 못하는 대목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언어의 부정적인 영향력에 대한 직시는 그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경고지점이 된다. 오웰은 언제나 자신의 글이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그 자신이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라고 고백한다. 사회적 비판의식이 결여되고 현실과 괴리된 글쓰기가 가지는 생래적 한계는 결국 그것이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인 존재이며 정치와 떨어져 일상을 영위하는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시장에 가서 오천 원이 넘는 대파 한 단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아줌마는 '정치'를 떠올린다. 오웰이 비단 정치적인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부책감을 토로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시대가 정치적이지 않다고 항변할 도리가 없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시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가 보다. 그러니 모든 글쓰기 또한 정치적인 인식이나 비판,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다. 잊어 버리고 묻어 버리고 싶은 것들을 자꾸 끄집어 내어 시선을 돌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자꾸 찾게 되는 이상한 마력을 갖춘 사람은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매력은 깐깐하고 남에게 교묘하게 세력을 행사하려 조언을 남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주저없이 먼저 끄집어 불쑥 보여주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충고는 값지다. 자신을 먼저 무장해제하고 악수를 권하는 상대에게 우리는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다. 조지 오웰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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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10-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관심 갖고 있는 책이에요.^^

blanca 2010-10-05 21:2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대박 감기 앓으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아주 몰입하지는 못했습니다. 분량이 많고 아무래도 정치적인 글들이 주라 책장이 팍팍 넘어가지는 않더라구요.

순오기 2010-10-0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조지 오웰에 대한 명쾌한 소감이 멋지네요.
나는 제목만 보곤 '글쓰기 안내서' 같은 책인줄 알았어요.ㅋㅋ
조지 오웰의 매력을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추천 꾸욱~~

blanca 2010-10-05 21: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조지 오웰에 왜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토록 열광하는 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0-0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조지오웰은 쉽지 않아요.
님의 리뷰도 쉽진 않아요.

하지만,먼저 자신의 손을 내미는 사람에 대응할 수 있는 건 두가지죠.
그 손을 맞잡거나 거부하는 것.
그게 조지오웰이고,blanca님이라면 거부할 수 없겠는 걸요~^^

blanca 2010-10-05 21:2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제 리뷰가 쉬워졌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나봐요. 조지오웰은 쉽지가 않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10-0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 안 그래도 만지작대고 있었는데,
읽어야겠는걸요..... 아아, 이 책에 대한 단상 정말 맘에 쏙 든다...
거기다 조지 오웰의 의견 자체가, 너무나 공감되네요.

어릴 때 조지 오웰에 미쳐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든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blanca 2010-10-05 21:2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구입하셨어요? 조지 오웰에 미쳐있던 시절이라, 너무 멋있잖아요. 저는 이십 대 때 책을 너무 안 읽었어요. 참 후회됩니다.

poptrash 2010-10-0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버튼을 클릭하고 싶어하는 손가락을 외면하고 있는데 이런 글을 올리시면 orz...

blanca 2010-10-05 21:23   좋아요 0 | URL
poptrash님, 기똥차게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승주나무 2010-10-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출판사에서 조지 오웰 에세이가 출간되었네요. 최근 가장 애정을 갖고 탐독한 작가가 조지 오웰입니다. <1984>, <카탈로니아 찬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챙겨 읽었죠. 조지 오웰로 인해서 나의 언어가 더욱 정직해졌다는 점에서 저는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 사서 봐야겠어요~ 블랑카 님께 땡스투를 바칩니다^^

blanca 2010-10-06 21:5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반갑습니다.^^ 저는 정작 조지 오웰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오웰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도 감히 비판할 깜냥도 못됩니다. 승주나무님의 땡스투라니, 감격스럽니다.^^;;

like 2010-10-0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다보면 조지 오웰이 시대를 뛰어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고리오 영감에 이어서 좋은 책들을 멋있게 소개해 주시니 좋네요~

blanca 2010-10-06 21:57   좋아요 0 | URL
like님, 저도 그 책 읽고 정말 뭔가 한데 툭 맞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내가 누리는 무언가가 빚지고 있는 부분을 그렇게나 적나라하게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절함을 덧대어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like님이 좋다 하시니 저도 좋습니다.^^

기억의집 2010-10-0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잠깐만요
제가 이따가 들어올께요^^ 지금 지인하고 약속을 해서 ......

blanca 2010-10-07 21:2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기다려지는데요^^;;

기억의집 2010-10-07 23:40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코끼리와 파리와 런던이었는데...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웰은 자신이 생각했던 혹은 의도했던 것들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었어요. 것도 폭발적인 감정이나 값싼 감정이 아닌 체 말이에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에세이스트가 몇 명이나 될까 싶더라구요. 미국이나 영국의 전통상 에세이에 자기 신념이나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데, 저는우리식의 값싼 감정의 토로가 아닌, 유안진같은 여성수필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우리 수필하고 달라서 충격이 굉장했지요.

간디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다른 글을 보면서 유추하건데 그는 절대로 감정의 눈으로 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님이 말한대로 타인이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자신의 주장을 썼겠죠. 우리 문학이 배워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기억의집 2010-10-07 23:41   좋아요 0 | URL
여하튼 사고 싶어요. 사실 책 주문하면서 이 책 할까 하다가 마일리지로 보태서 주문하려고 안 했어요. 으이구, 저 왜 이렇게 사나 몰라요^^

穀雨(곡우) 2010-10-0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조지오웰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담았네요. 불편한 양반, 조지오웰.
그래도 블랑카님 글 읽으니 읽고픈데요. 어렵다는 것은 때론 지극히 간단한 이치를
애둘러 말하는 것인지 모르잖아요. 아님 확신이 없다거나 애매모호한 경계에 설 때,
말이 바빠지고 글이 늘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블랑카님의 글이 오히려, 나는 왜 쓰는가에 적합한 거 같아요.
리뷰에 강추....^^ 책은 읽은 후에....ㅋㅋㅋ

blanca 2010-10-07 21:32   좋아요 0 | URL
곡우님, 찬찬히 읽어 보시면 이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무언가 내용이 없어지면 각종 말도 안되는 숙어, 현란한 어구들을 끌어와 쓰곤 했었는데 오웰이 완전 따악 짚어냈더라구요. 언어라는 게 결국 그 사람의 사고, 감정, 가치관의 체로 작용하는 지점을 정말 예리하게 지적한답니다. 학창시절 얘기도 재미나구요. 추천드립니다.

herenow 2010-11-1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신간서평단 도서로 선정되어 읽고 있는데, 다시 한번 책을 들쳐보게 하네요.
솔직히 조지 오웰에 별 관심이 없어서 '왜 이걸 읽어야 하나?' 내심 고민하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책 읽는 맛이 새록새록 느껴져 자꾸 손에 들게 되더라구요.
이렇게 맛깔스런 서평이 있기에 잠시후 올려야 할 제 서평은 무척 부끄럽게 되겠지만
새로운 이해, 새로운 감상의 폭을 넓혀주셔서 감사합니다. ^ ^

blanca 2010-11-17 20:13   좋아요 0 | URL
herenow님, 반갑습니다. 좋은 서평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아요^^;; 책장이 술렁술렁 넘어가는 맛은 없지만 한 번쯤 두고 천천히 읽을 만한 책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부끄러우시다니요...저보다 더 좋고 나은 평이 나올 텐데요..읽어 주셔서 도리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