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옹졸해졌다. 무언가 나만의 세계관의 잣대로 자꾸 내 주변의 사람과, 현상을 판단하려는 버릇이 튀어나오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쉽게 다 믿어버리거나 덮어놓고 흥분하거나 잔걱정 없이 흠뻑 몰입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한 마디로 말해 나는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쁘기만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이 든다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던 바로 그 모습이 묘하게 변주되어 나에게 나타나는 일이기도 하니 만큼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필연적인 귀결, '늙어가는 일'이다. 


나이듦에 대한 낙인은 일찍 죽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유일한 '혐오 낙인'이다. 

-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법철학자이자 여성학자이고 솔 레브모어는 법학자이자 저술가로서 둘은 '나이듦'이라는 주제를 둘러 싼 각각의 여덟 개의 소주제에 대하여 기탄없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이야기한다. 책의 형식은 키케로의 <나이듦에 관하여>를 참조한 만큼 대화 형식이지만 본격적인 끝장 토론이라기보다는 각자의 관점과 경험, 학문적 성과에서 저마다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대와 다른 부분은 또 그대로 유연하게 인정하고 망설임 없이 반대 의견도 제시하는 등, 자유롭고 정력적인 대화가 실제 노년기에 접어든 저자들 자신들의 경험과 아우러져 흥미롭다. 노년기의 우정, 몸, 성형 수술, 유산 분배, 상속, 은퇴, 사랑, 빈곤, 기부 등 쉽게 수면 위에 올려놓고 얘기하기 쉽지 않은 화제를 진지하게 공론화하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삶과 죽음을 지르는 그 확실하게 존재하지만 주목 받지 못했던 불편한 지대의 의미가 재조명되는 느낌이다. 


물론 삶 속에 산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그러하듯 명쾌한 해답이나 확실한 전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인들의 퇴직 연령에 대한 상반된 둘의 의견은 합치되는 부분도 어긋나는 부분도 왠지 좀 편향적인 부분이 있어 아쉽다. 퇴직 연령을 앞당기는 것도 한정없이 늘이는 것도 결국 당사자의 자발적인 의견, 의지를 속박하는 지점이 있고 그것은 또다른 노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하지만 이런 문장은 기억해 두고 싶다.


우리의 삶은 사후세계가 아니고, 현재는 과거가 아니다. 

이것은 비단 노년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삶 그 자체에 대한 통찰 어린 조언이다. 과거에 대한 회한, 원망으로 현실을 소진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삶 그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낭비하는 일일 것이다. 시간의 경과만으로 지혜로운 나이듦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혜안이 잘 숙성된 포도주 같은 연륜을 자아내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살아온 시간의 잣대로 재단하기 이전에 자신이 걸어온 시간과 걸어갈 나날들을 견주며 보낼 오늘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열심히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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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브랑카님은 아직 젊으십니다.
인생 100을 놓으면 옛날에 중년은 지금은 청년입니다.
엊그제 뉴스에 조사를 했다잖아요.
몇 세부터를 노년으로 보느냐 했더니 70부터라고.
그러니 그런 위축된 생각은 아예 마시고 젊게 사십시오.^^

blanca 2019-01-17 04:22   좋아요 0 | URL
어머, 기분 좋은 얘기네요. ^^ 네, 스텔라님 말씀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