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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ㅣ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의 하루키와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의 하루키의 낙차는 시간 차만큼이나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의 하루키는 아직 젊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화자는 영원한 청년 같은 느낌도 이기고야 마는 노년에 이미 접어들었다.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성실한 작가로서의 고백은 그의 대담한 서사와 대조를 이룰 정도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기발함, 유머, 엉뚱함, 도발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좀더 시간을 돌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군데군데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긴 얘기가 많다. 자신을 인간 관계에 서툴고 재미 없는 사람인 것처럼 자주 폄하하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반증처럼 보일 정도로 하루키의 에세이에서의 그의 모습은 재미있다. 그건 그를 둘러싼 현상 그 자체보다 그 현상을 묘파하는 하루키만의 하루키스러운 능력에 빚진 바가 클 것이다. 그렇다고 내도록 가벼운 얘기는 아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쉽다는 건 젊은이에게 흔히 보이는 경향인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가 아닐까 하고.
물론 나이들어서도 상처받을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그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두고두고 곱씹는 건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설령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도 꿀꺽 삼켜버리고 오이처럼 서늘한 얼굴을 하려 애썼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훈련을 거듭하는 사이 점점 정말로 상처를 받지 않게 되었다.
-p.125
아, 대체 오이처럼 서늘한 얼굴은 어떤 것일까? 하루키도 젊은 시절 사람들에게 종종 상처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다는 고백은 신선했다. 그리고 점차 정말 그의 말대로 훈련의 덕이든, 연륜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처에 강력한 면역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그것과도 겹치는 대목이 있어 반가웠다. 정말이지 그랬다. 아마 이십 대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누구의 빈정거리는 말 한 마디로 한 달을 망칠 수도 있었다. 무심코 던진 나에 관련한 평가에도 극도로 민감했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서늘한 오이 같은 담담함 대신 토마토처럼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흥분했던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 안에 잊힌 채 고여있다 하루키의 지명으로 벌떡 일어선 것이다. 그래서 좋으냐, 이제 괜찮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다른 얘기다. 편안해지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
이야기를 쓰는 일,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차피 비정한 세계다. 모두에게 웃어주기는 불가능하고,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한다. 그 책임은 내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p.136
하루키다운 이야기다. 그가 만드는 평행 우주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의 왕국의 뒤안길은 이러했다. 비정하다,는 말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싶다.
여행에 항시 가져갔다는 <체호프 전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여행에 대한 좋은 참조가 된다. 나에게도 이러한 '여행의 벗'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판형인지 궁금하다. 주오코론샤에서 나온 전집이라는 데 이북과 볼 거리가 난무하는 요즘에 오히려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이다. 지금도 하루키가 전집 중 한 권(전집 전체를 설마 가지고 비행기를 타지는 않겠지.)을 가지고 여행하는지 궁금하다. 이미 대작가가 된 과거의 하루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십 년을 넘게 장수한 하루키 고양의 뮤즈의 이야기는 왠지 스포일이 될 것 같아 삼가는 게 좋을 듯하다. 하루키의 아내가 만화 <유리의 성>에 빠져 등장인물 이름에서 따 온 이름이 '뮤즈'라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하루키도 이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었단다.
여하튼 생각보다 괴팍하고 엉뚱하고 소심하지만 자기가 믿는 가치에 대해서는 한치 양보가 없는 그의 중년의 어조를 듣는 일은 유쾌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책이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듣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