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내에서 최대 규모의 서점으로 무서운 성장세를 자랑했던 반스앤노블(Barns&Noble)사가 최근들어 부진으로 영업점 폐쇄 등 규모 축소세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접했다. 대항마로 떠오른 세력은 역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출발 자체가 사실 서점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통합 온라인 시장에서 꾸준히 책 부문을 자체 개발한 킨들과 전자책으로 특화시켜 확대, 심화시킨 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마존이 최근들어 오프라인으로도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좀 놀랍다. 비교적 좁은 장소에 책 재고도 기존 서점들처럼 많지 않은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반스앤노블은 주말에도 흥성거리는 느낌이 없고 아마존 서점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지난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반스앤노블'에 갔다. 공간도 넓고 책 배열도 분야별로 특화시켜 잘 해 놓은 게 애쓴 흔적이 역력했지만 일요일 오후, 서점 안에서 책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예전에 책을 계산하려면 줄을 서야 했던 풍경은 선사 시대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어 편하고 여유로운 게 아니라 어쩐지 좀 김이 샜다. 예전의 서점에서 용돈을 아끼고 모아 실물의 책을 사며 설레어 하는 아이들의 풍경은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회자되고 말 것 같은 예감은 쓸쓸했다. 한때 동네 서점을 밀어내는 대규모 체인 서점의 독식 횡포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큰 서점조차 그 존재의 근거였던 '책' 자체의 생존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가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 같은 느낌. 하기사 책을 사겠다고 서점에 간 내 아이들조차 책보다는 그 주변의 장난감과 각종 문구에 더 관심을 나타내니 누굴 탓하겠는가 싶다. 이미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제 더 나아가 이미지 그 자체를 창조하겠다고 너도나도 나서는 이 시대에서 활자의 힘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사는 일은 이야기를 소비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같은데 그것의 구성요소인 언어를 하나 하나 엮어낸 책이 죽는다면 그 다음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진한 회의감이 든다.
해리포터 5권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열광하는 것에는 왠지 삐딱한 마음이 드는데 해리포터의 서사의 장악력에는 넙죽 엎드리지 않을 수 없다. 4권 이후부터는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단순히 어린이들의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인간 자체와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실감 있는 통찰로까지 확장된다.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이러한 추상을 어떻게 이야기의 틀 안에서 역동감 있고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느냐의 뛰어난 예시 같다. 사랑하는 친구의 성공에 대한 질투, 존경하고 사랑했던 부모의 권위의 실추에 대한 감정적 이해, 때로 아이 앞에서 노출하는 어른들의 언행의 불일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내면의 악한 본능을 발견할 때의 당혹감, 이 모든 것이 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다 녹아 있다니...<해리포터>를 읽을 때에는 책은 이야기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서점에 들어갈 때에 확 끼쳐오는 책 냄새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그 냄새는 시원적이고 본능적이고 언제나 그 모든 것을 이기고야 만다. 그 어딘가에 다시 나를 데려가 놓는 그 지점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입구가 봉쇄된다면, 정말 그 생각만으로도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그런 일은... 절대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