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부쩍 말 안 듣는 딸내미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내 옆에 남편이 왔다.

늘상 하던 일, 저녁 준비하는 내 옆에서 얼쩡거리면서 이리저리 간섭하는... 을 하는데 나는 계속 폭발 직전의 얼굴을 하고 남편에게 툴툴거렸다.  결국 남편,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고마 해라~ 좀 심해.

라고 한마디 하고, 나는... 그래, 누군가 건드려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게 너였니? 하는 투로 째려본 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갑만 챙겨 나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극장이다.

무조건 제일 먼저 시작하는 영화를 끊었는데... 그래도 할인받느라 이동통신사 제휴카드를 사용했고, 사용내역이 집에 있는 핸드폰에 삐리리 문자로 떴다.

마누라 행방을 알게 된 남편...

집에서 입는 고무줄 반바지 차림에, 거기에 신발은 또 구두 차림으로... 극장으로 찾아왔다. 극장사람들에게 영화 끝나고 나오는 곳이 어디냐고 물은 후에 그곳에서 팔짱끼고 지키고 섰다. 극장 직원들, 비상 걸려서 계속 감시한다.

두시간 내내 낄낄대고 영화보고 나오다가... 그런 모습의 남편을 봤다. 가출한 딸 잡으러 급히 뛰어온 아버지 모습!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풀렸고, 남편은 지뢰 밟은 셈이다.

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낄낄대고 웃고 집에 오다가... 남편이 그런다.

야, 나는 이러는 거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중에 우리 아들이 이러면 어쩌냐? 저놈도 나 닮아서 마누라 화나면 벌벌 떨면서 머슴 되는 거 아니냐?

남편이 머슴인 건 가끔 괜찮은데, 아들이 나중에 며느리 머슴노릇하면 ... 좀 그렇긴 하겠다. 뭐, 안보고 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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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1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서 시어머니 마음이군요^^

hnine 2006-05-15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호랑녀님, 괜찮은 방법이네요. 폭발 직전에 그 자리에서 일단 나와주는 방법.
남편의 애정도 확인해주고.
좋은 남편이세요.

울보 2006-05-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마음이지요 후후

반딧불,, 2006-05-1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그래도 찾으러 가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뭐 저는 그렇게 살아라고 맨날맨날 아들한테 사주하는데요ㅡ.ㅡ;;

세실 2006-05-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남편분이 많이 사랑하시나부다~~~
울 신랑은 그러고 나가도 별반 찾는 노력 안하거든요. 흑...

아영엄마 2006-05-1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찾으러 나와주시기까지 하시는 거 보니 많이 아껴주시는군요. ^^

가을산 2006-05-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반바지에 구두 신는 사람이 우리 남편 말고도 또 있군요!

마태우스 2006-05-1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났을 때 영화보는 건 좋은 취미 같습니다....

호랑녀 2006-05-1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남편은 아마 멋모르고 당했을 거에요. 이젠 다시는 안 그럴 거에요...
아니, 반바지에 구두 패션이 우리남편 말고 또 계셨단 말임까? 그것도 한 동네에? ^^
(정말 솔직한 말로... 아는 척 해? 말아? 고민했다니까요)
울 아들도 이렇게 하라고 키워야겠습니다. 화났을 때 영화보면 일단 시간이 잘 가서 좋더군요. 화내고 나왔는데, 바로 들어가긴 좀 그렇잖아요...ㅜㅜ

날개 2006-05-1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써먹어봐야겠군요..흐흐~

진/우맘 2006-05-1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남편.....^^

sooninara 2006-05-1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이제야 이 페이퍼를 보다니..아영엄마가 갈쳐줘서 들어왔어요.
저도 집나가면 영화 보러가는데..ㅋㅋ 찌찌뽕.
저희남편은 부인이 집에 올지알고 안찾아요.ㅠ.ㅠ
반바지에 구두 패션이 대전에서 유행이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