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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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희곡을 읽었다. 희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이 책은 나에게 희곡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책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만족스러웠다. 물론, 프랑스어로 된 운문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기는 하다.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여 각주를 읽어야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렇지만, 시라노의 재치 있는 시구들은 그런 불편을 감내하게 만든다.

시라노는 감성을 자극하는 시구를 잘 지을 뿐만 아니라 100명을 혼자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도 갖고 있는 남자이다.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시라노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자신의 기형적인 코다. 시라노가 추남(?)이라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의 코를 비웃고 싶지만 시라노의 힘 앞에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외모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그럴까? 외모는 사람을 판단하는 1차적인 정보이다. 그래서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의 주관대로 소신대로 행동하는 시라노지만 사랑하는 여자 록산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다.

시라노가 어떻게 그녀와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보통 못생긴 외모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혹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바로 자신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있기 마련이다. 시라노가 자신의 진심을 록산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지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시라노는 록산이 사랑에 빠진 크리스티앙을 도와 결혼에 이르기까지 도와준다. 전투에 나가서는 죽음의 경계를 넘으면서까지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가장한 자신의 편지를 록산에게 전달하는 열정을 보인다. 결국은 록산이 크리스티앙의 외모가 아닌 영혼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 영혼은 누구인가? 크리스티앙이 아닌 바로 시라노인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시라노의 열정적인 사랑 외에 크리스티앙이나 드 기슈의 사랑도 읽을 수 있다. 시라노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그들의 사랑도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의 편지와 시와 글을 빌려 록산과의 사랑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녀가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청년이며 드 기슈도 한편으로는 악당처럼 보이지만 그의 본모습 역시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를 갈망하는 인물이다. 시라노가 자신의 추한 외모 때문에 숨어서 사랑을 하는 남자라면, 크리스티앙과 드 기슈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록산을 바라보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 시라노의 삶이 때로는 안타까웠고 때로는 화가 났다. 그래도 한평생 그런 사랑을 받은 록산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랑을 받는 여자들은 한결같이 다들 바보같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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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우리 동네가 좋아 I LOVE 그림책
리처드 스캐리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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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가 요즘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동차와 더불어 각종 직업과 관련있는 것들이다. "북적북적 우리 동네가 좋아"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인데, 리처드 스캐리의 책에 대한 찬사가 많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기대보다는 조금 못한 편이었다.

먼저 장점을 들자면, 사람들이 일을 하는 장소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직업과 관련하여서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동물들이 각자가 맡은 장소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책을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각각의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알 수 있다. 또 마을 청소와 관련있는 페이지에는 재활용과 쓰레기 매립장을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그렇지만 한국적 상황과는 맞지 않는 그림이 많아 아이에게 보여주면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농부들이 거둬들이는 것은 쌀이 아니라 밀이고, 나무를 베고 목수의 하루를 보여주는 페이지는 의외로 4페이지나 차지하고 있다. 굴뚝청소부 같은 찾아보기 힘든 직업이 보이는가 하면, 파란 색 옷을 입은 소방관은 낯설기만 하다. 집안일에서도 흙을 옮기고 풀을 긁어모으거나 잔디를 깎고 괭이질을 하는 등의 모습도 어색하기만 하다.

이 책이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림이 주는 정보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많이 아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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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남자 2008-08-1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가 좀 성의 없게 만들었군요. 이런 리뷰 보고 더욱 신경 썼으면 좋으련만...

하양물감 2008-08-18 09:10   좋아요 0 | URL
사실, 외국작품일 경우 이런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의 형식은 좋았는데..어쨌든 한국작가들의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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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폴리스는, 어나더 힐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어나더 힐은 어떤 곳인가? 죽은 자들이 돌아와 산 자와 만나는 공간이다. 이번에 처음 이곳에 가게 된 ‘준’은 여기저기서 궁금증을 느끼지만(이것은 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므로 왜냐고 묻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긴다. 어나더 힐은 의심이라는 것이 파고 들 여지가 없는 곳, 오로지 그곳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나더 힐은 그곳에 대한 광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보다 오히려 ‘준’에게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마치 ‘준, 이렇게 보이는데도 믿지 못하겠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수많은 등장인물 들 중에서 왜 그렇게 ‘준’에게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준’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듯하다. 독자들이여, 믿어라.

어나더 힐에 ‘나쁜 바람’이 불고 있다. 즉,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게다가 어나더 힐의 입구 경계선에서부터 시체가 나타남으로써 뭔가가 어긋나고 있음을 암시받는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책에서처럼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사건의 전모를 파헤칠 수 있는 증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어나더 힐의 ‘히간’은 ‘죽음’에 의해 미완으로 끝나버린 삶을 완성시키는 행사로 봐도 될 듯하다. 그렇기에 축제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번 ‘히간’에서는 뭔가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

‘히간’에서 일어난 상스럽지 못한 일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일본’이라는 나라를 자꾸 떠올린 것은 영국과 일본이 혼재되어 있는 나라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요 모티브들이 일본의 것을 뒤집거나 변형시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극적 긴장감을 올려주는 ‘갓치’나 ‘헌드레드 테일스’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누가 범인인지는 이야기의 중반쯤에서 눈치를 챌 수 있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책의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결국은 누가 그렇게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온다 리쿠 식의 재미를 백분 느낄 수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결말이 조금 허무하다. 특히 라인맨과 준, 켄트 아저씨가 힐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기도의 성으로 돌아오는 장면, 그리고 그 이후의 설명은 기껏 고조되었던 긴장감을 툭! 떨어뜨려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그러나 이러한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온다 리쿠의 능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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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엄마 이야기 사계절 그림책
신혜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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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는 그림책을 볼 때, 보통 첫 페이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 보통 내가 그림책을 볼 때 책장을 쭉쭉 넘겨 글이 나오는 부분부터 읽는 것과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한솔이에게는 글자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내가 놓친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 책도 첫 장을 넘기자 마자, 아파트로 가득한 거리에서 쭉쭉 뻗어나온 도로를 따라 트럭 한대가 달려간다. 2424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걸로 보아 당연히 이사트럭이다. 한솔이가 제일 좋아하는 차는 경찰차지만 (^^) 트럭을 보고 [트럭, 트럭~!!]이러면서 좋아한다. 한솔이에게 2424 숫자를 읽어주며 이사트럭이라고 말해주었다.

뒷장을 넘겨 길을 따라 가다 다리를 건너고 벚꽃이 핀 도로를 지나 아파트로 가득한 앞 장과는 전혀 달라진 마을로 들어선다. 한솔이와 외할머니 집 가는 길을 이야기하며 시골마을로 함께 들어갔다.

사실, 이야기는 거기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들어가보면, 빼꼼 얼굴을 내민 강아지도 보이고, 구경나온 동네사람들도 보인다. 넓은 밭을 바라보고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앞으로의 일이 기대가 된다.

아주 단순하게 인절미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서 콩을 심기로 결심하는 엄마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밭일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면(작은 텃밭이라도 가꿔본 사람은) 알것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라는 걸. 한솔이 외가도 도시에 살다 시골로 이사를 간 경우라 이 그림책 속 엄마의 모습은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감상은 그렇다치고, 한솔이는 어땟을까? 여기저기 그림 속을 헤집고 다니며 자기가 관심있는 것을 찾아낸다. 숟가락으로 땅을 파고 콩을 심는 엄마를 바라보는 동네사람들의 깜짝 놀란 눈은, 한솔이가 흉내를 낸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가리키기도 하고, 나무 뒤에 숨은 고양이를 찾아내기도 한다. 빨래를 널고 있는 아빠, 돌을 나르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짐가방을 들고 쫓아오는 할아버지,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물을 들고 오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도 한솔이다.

이 그림책은 철저하게 세 엄마의 노동을 보여준다. 배경 속에서나 잠깐씩 보이는 남자들은 추수를 하기 전까지는 소일거리에 치중한다. 아마도 논일은 남자, 밭일은 여자라는 생각이 스며들어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엄마들의 밭일을 하는 모습은 고되고 힘든 노동이라기 보다는 즐겁고 신나게 보인다. 어려움이 있을 때 모든 걸 제쳐두고 달려와주는 엄마의 모습, 그리고 뭐든 척척 알아서 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익숙하기도 하려니와 그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다.

그림책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계절이 흘러간다. 한솔이와 이야기할 내용이 너무 많은 그림책이어서 나도 행복했다. 외가집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밭에 올라가 옥수수를 따서 온 날, 이 그림책을 다시 읽어주었다. 콩 한알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책을 보는 동안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림책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책이다. 글자를 읽지 않아도 그림만 보면 내용이 충분히 상상이 되는 그림책이다. 밤새 눈을 똥그랗게 뜨고 걱정을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것이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일 것이다.

밭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걷어들이고, 메주를 만들어 달아놓는다. 땅에 떨어진 콩 한알도 소중하게 주워서 챙겨놓는 엄마의 마음을 이 그림책을 보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한솔이가 먹기는 싫어하는 콩이지만, 그 콩 한알의 의미를 알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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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에밀리오 살가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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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얇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시각적 정보에 약하다고 해야할까? 나는, 이 책을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으려고 찾아보다가 같이 읽어보라는 광고에 혹해 구입했다. 하하하...이런이런...게다가, [로아나~!]는 아직 읽지 않았고, [로아나~]를 재미있게 읽기 위한 세권의 책 중 첫 번째라는 광고띠지대로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아, 정말이지...이 책 나하고는 코드가 영 안 맞다. 몸프라쳄의 호랑이 산도칸, 부하인 해적들이 목숨 걸고 따르는 산도칸,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바다의 무법자 산도칸이 라부안의 진주 마리안나 때문에 모든 걸 걸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사랑 앞에서 약해지는 남자의 순정을 그렸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지만, 내가 산도칸의 수하에 있는 부하였다면 쿠데타라도 일으켰을 법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로지 산도칸의 명령대로 움직였고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산도칸은 그냥 해적이 아니다. 왕족의 후예이며, 스무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가 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암살자의 칼날 아래에서 죽어간 가족들의 복수를 하는 해적이다.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기 위해 자기 원수들을 약탈하는 복수자’(p.299)인 것이다. 대의명분이 있는 해적이기에 그의 약탈행위는 정당성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마리안느를 얻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렸다. 다른 문학을 통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주인공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산도칸에게 애정을 줄 수 없었다. 적어도 그가 그런 대의명분이 없었더라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테마로 보자면 낭만적인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게 그렇게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험이라는 테마로 보자면, 해적과 순시선과의 싸움 장면은 액션영화를 보는 듯하다. 배를 계속 잃으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도전하는 그의 저돌적인 공격성은 힘이 넘친다. 결국 무엇을 위한 공격이냐 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그 감흥은 줄어들고 만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가. 산도칸의 마리안느의 영웅일지는 몰라도 만인의 영웅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삶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의 해적활동은 의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지만, 그가 사랑 앞에서 무모하게 돌진하는 모습까지 칭송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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