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엄마 이야기 사계절 그림책
신혜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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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는 그림책을 볼 때, 보통 첫 페이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 보통 내가 그림책을 볼 때 책장을 쭉쭉 넘겨 글이 나오는 부분부터 읽는 것과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한솔이에게는 글자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내가 놓친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 책도 첫 장을 넘기자 마자, 아파트로 가득한 거리에서 쭉쭉 뻗어나온 도로를 따라 트럭 한대가 달려간다. 2424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걸로 보아 당연히 이사트럭이다. 한솔이가 제일 좋아하는 차는 경찰차지만 (^^) 트럭을 보고 [트럭, 트럭~!!]이러면서 좋아한다. 한솔이에게 2424 숫자를 읽어주며 이사트럭이라고 말해주었다.

뒷장을 넘겨 길을 따라 가다 다리를 건너고 벚꽃이 핀 도로를 지나 아파트로 가득한 앞 장과는 전혀 달라진 마을로 들어선다. 한솔이와 외할머니 집 가는 길을 이야기하며 시골마을로 함께 들어갔다.

사실, 이야기는 거기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들어가보면, 빼꼼 얼굴을 내민 강아지도 보이고, 구경나온 동네사람들도 보인다. 넓은 밭을 바라보고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앞으로의 일이 기대가 된다.

아주 단순하게 인절미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서 콩을 심기로 결심하는 엄마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밭일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면(작은 텃밭이라도 가꿔본 사람은) 알것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라는 걸. 한솔이 외가도 도시에 살다 시골로 이사를 간 경우라 이 그림책 속 엄마의 모습은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감상은 그렇다치고, 한솔이는 어땟을까? 여기저기 그림 속을 헤집고 다니며 자기가 관심있는 것을 찾아낸다. 숟가락으로 땅을 파고 콩을 심는 엄마를 바라보는 동네사람들의 깜짝 놀란 눈은, 한솔이가 흉내를 낸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가리키기도 하고, 나무 뒤에 숨은 고양이를 찾아내기도 한다. 빨래를 널고 있는 아빠, 돌을 나르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짐가방을 들고 쫓아오는 할아버지,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물을 들고 오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도 한솔이다.

이 그림책은 철저하게 세 엄마의 노동을 보여준다. 배경 속에서나 잠깐씩 보이는 남자들은 추수를 하기 전까지는 소일거리에 치중한다. 아마도 논일은 남자, 밭일은 여자라는 생각이 스며들어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엄마들의 밭일을 하는 모습은 고되고 힘든 노동이라기 보다는 즐겁고 신나게 보인다. 어려움이 있을 때 모든 걸 제쳐두고 달려와주는 엄마의 모습, 그리고 뭐든 척척 알아서 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익숙하기도 하려니와 그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다.

그림책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계절이 흘러간다. 한솔이와 이야기할 내용이 너무 많은 그림책이어서 나도 행복했다. 외가집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밭에 올라가 옥수수를 따서 온 날, 이 그림책을 다시 읽어주었다. 콩 한알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책을 보는 동안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림책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책이다. 글자를 읽지 않아도 그림만 보면 내용이 충분히 상상이 되는 그림책이다. 밤새 눈을 똥그랗게 뜨고 걱정을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것이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일 것이다.

밭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걷어들이고, 메주를 만들어 달아놓는다. 땅에 떨어진 콩 한알도 소중하게 주워서 챙겨놓는 엄마의 마음을 이 그림책을 보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한솔이가 먹기는 싫어하는 콩이지만, 그 콩 한알의 의미를 알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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