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윈 쇼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들을 다시 읽는 중...그 중 <비잔티움의 밤>을 오랜만에 읽는데, 주인공은 영화판에서 잊혀지다가 재기를 꿈꾸는 초로의 사나이.그가 프랑스 휴양지 리비에라 해안에 묵고 있는데 대학 다니는 딸에게 편지가 옵니다. 답장을 하면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스코트 피츠제랄드가 편지를 보내면 그의 딸은 편지에 수표가 함께 왔나 흔들어 보다가 수표가 떨어지면 그것만 갖고 편지는 읽어보지도 않았다는데..."

 

 이상하게 이 대목이 기억에 남아요.어윈 쇼는 이 일화를 어떻게 알았지? 유명한 일화인가? 그리고 드는 궁금증. 그 일화가 사실이라면 피츠제랄드의 그 딸은 나중에 부모가 되어 자식들을 어떻게 대했을까..."부모가 너희들 뒷바라지만 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줄 아니?" 하고  야단칠 때도 있었겠지...마치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비잔티움의 밤>번역본은 정말 희귀본이에요.어윈 쇼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영화계 이야기를 작품화한 게 몇 개 있는데 이 소설이 그 중 하나입니다.어윈 쇼 소설은 지금은 절판된 게 많은데 입수할 수 있는 것으로 <나이트 워크>(범우사)가 영화계를 소재로 하고 있으니 이거라도 읽으시길...아무래도 제대로 어윈 쇼의 참맛을 맛보려면 <젊은 사자들>이나 <야망의 계절> 같은 두툼한 소설이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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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2-11-1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망의 계절은 TV시리즈 드라마로 기억합니다. 마지막 동생의 복수를 하며 최후를 맞이하는 형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그 배우가 피터 스트라우스라고 야망의 계절 말고도 장미의 형제인가도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킬러로 키워진 형제 이야기인데 코드명이 로믈로스, 로므스 였고 동생을 죽인 아버지에 대해 복수를 하는 내용인데 재미있었죠.)

노이에자이트 2012-11-19 18:45   좋아요 0 | URL
예.조다쉬 형제로 피터 스트라우스,닉 놀테가 나왔죠.소설은 오랜동안 절판이었는데 몇 년 전 재간되었어요.
장미의 형제를 검색해보니 로버트 미첨과 공연했군요.

루쉰P 2012-11-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전히 노자님은 엄청난 소설들을 읽고 계시는군요. 이 부분은 저도 젬병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ㅋ
노자님 저 다시 살아 돌아 왔습니다. ㅋ 1년 만이네요. ㅋ 그리고 노자님은 여전하시구요. ㅋ

노이에자이트 2012-11-21 08: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하하하...엄청난 소설은 아니죠...
자주자주 만납시다.
 

  가지야마 도시유키(1930~1975)는 일제시대 때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랬는지 몰라도 작품 속에 한국 이야기를 꼭 언급하더군요. 이런 습관은 초창기 작품 뿐아니라 나중에 대중소설을 집필하던 시절에도 이어집니다.

 

  <불타는 야망>이라는 야한 소설이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 아낙네들 빨래하는 모습은 일본과 다르다면서 "빨래를 방망이로 두들긴다"고 소개합니다.이렇게 빨래하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모양인 것 같습니다.하긴 헬렌 스노우도 한국 여인들이 하얀 옷을 몇 번이고 물에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빨래하는 모습을 쓴 글이 있었으니 외국인에겐 신기했나 보죠.

 

  그런데 <불타는 야망> 첫부분에는 일본 요정이 나오는데 진상 손님을 내보낸 뒤  문지기가 소금을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이 장면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우리나라에서도 소금 뿌리는 관행이 있는데...그렇다면 재수없는 인간이 지나간 후에 소금 뿌리는 풍습은 일본 풍습인가? 아니면 동양에 널리 퍼전 풍습인가? 궁금궁금...

 

 아무래도 오래된 풍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옛날에는 소금이 귀했으니 그 귀한 소금을 좍좍 버렸을 리가 없죠.여하튼 소설 속 짧은 문장 하나도 이렇게 파고 들다 보면 여러가지 탐구해 보고 싶은 문제가 많더라고요.

 

  <불타는 야망>은 정말 우스꽝스런 장면도 많고 정말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역시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대중소설은 많이 팔릴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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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11-19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하네요. 알게 되면 꼭 널리 퍼뜨려주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2-11-19 17:26   좋아요 0 | URL
제가 몰라서 쓴 글이랍니다...

아무개 2012-11-19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생각해보니 분명 예전엔 소금이 귀했을텐데 정말 언제부터 또 왜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11-19 17:26   좋아요 0 | URL
알고 싶어요...
 

   몇 년간 책을 사지 않고 아파트 폐지수거일에 나오는 책만 가져왔습니다.돈도 아끼고 또 있는 책이나 더 열심히 읽자는 생각이었죠.또 신문 정독에 매진한 이유도 있고요.그러다 9월부터 네 번 헌책방을 갔는데 계속 사고 싶은 책이 늘었습니다.9월 초 학술서적 산 것 빼고는 주로 대중소설을 구입했는데 집이 좁으니 책만 쌓아놓을 수도 없습니다.어쩌겠습니까...기존의 책들 중 골라 처분해야죠.

 

  그런데 처분할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습니다.이 놈을 버리기도 아깝고 저 놈을 버리기도 아깝고...또 예전에 버려놓고 후회한 적도 있어서 더 망서려지게 됩니다.얼마전 나치잔당들의 음모를 다룬 스릴러물을 읽고 논평 비슷한 것을 써봐야겠다고 책들을 뒤졌는데...아차! A 마이켈 <악마의 유언>을 없애버렸구나...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이게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첩보전에 나치잔당까지 얽혀 싸우는 내용이거든요.우리나라야 독일이 과거사 반성하는 나라라고 칭찬을 많이 합니다만, 정작 나치독일과 맞서 싸운 서구나라들은 나치부활에 대한 공포가 많아서인지 그런 분야의 스릴러물이 지금도 많이 나옵니다.마이켈의 위의 책은 스릴러물 좋아하는 이라면 기억날 출판사 <대작사>에서 나왔지요.

 

  이런 일이 가끔 벌어지니 책 버리기가 쉽지가 않습니다.또 버려두려고 책을 쌓아놨다가 엉뚱하게 다른 책까지 함께 자루에 넣은 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제임스 클라벨 <노블 하우스> 상권도 그런 식으로 없어져 버린 경우입니다.요즘 이 책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하지만 헌책방에서 희귀한 책을 발견하면 그런 아쉬움이 없어집니다.나치잔당의 음모를 그린 알란 폴섬 <모레>전 3권이 요즘 광주 헌책방에 나오고 있으니 싸게 구입할 수 있겠죠.문제는 윌리엄 골드만 <마라톤맨>입니다.더스틴 호프만과 로렌스 올리비에가 명연기를 펼치는 영화로도 유명한데 역시 30여년 전 베스트셀러라 구하기가 힘들군요.올리비에가 나치잔당부활을 꿈꾸는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죠.소설도 영화도 스릴러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뒤져 처분할 책을 구석에 쌓아놨습니다.쌓아둔 책들 사이로 걸어가는 것도 고역이니까요.다음주 월요일이면 이 책들은 안녕입니다.역시 책들이 가득 꽂힌 서가는 어느 정도 집이 커야 해요.책들아! 집이 좁아서 이별해야 한단다.돌아서는 내 옷자락 잡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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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11-1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질게 마음 먹고 스무 박스 넘게 버린 적이 있는데(정확하게는 헌책방 아줌마에게 무상으로 기증) 아주 가끔 님 같은 경우처럼 아쉬울 때도 있지만, 막상 그 책들 없어도 워낙 새책들이 쏟아지니 참을만 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2-11-13 23:17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처럼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기 위해 찾다가 안 나오면 정말 아쉬워요.글을 써야 하는데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까요.

뷰리풀말미잘 2012-11-1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몇권이나 소장하고 계세요? 정확한 숫자는 세기 어려우시죠?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2-11-16 20:11   좋아요 0 | URL
당연하죠.집이 좁아서 수시로 버리기 때문에 책 권 수가 왔다갔다 하죠.

페크pek0501 2012-11-1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뿐만 아니라 옷도 그런 것 같아요. 얼마 전, 필요한 옷을 찾았는데, 그게 없는 거예요.
아차! 내가 버렸지, 하면서 후회를 한 적이 있어요.
버릴 당시엔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또 어떤 때엔 그걸 찾게 되니
옷이나 책이나 버릴 때엔 세 번 이상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마도 옷보다 책이 더 아쉬움을 느끼게 되겠죠?

노이에자이트 2012-11-16 20:15   좋아요 0 | URL
그래도 버려야 해요.근사한 서재도 어느 정도 면적이 필요하죠.작은 집에서 살려면 가끔 책을 버려야 해요.우선 사람이 살아야죠.
글쎄요. 옷을 버리고 다시 찾아본 적은 없어서...

transient-guest 2012-11-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어떻게 버려요...-_-: 나중에 후회할 것이 분명한데요...
다른 것들은 몰라도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나중에...

노이에자이트 2012-11-28 20:57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다 품고 있다간 그렇잖아도 좁은 집에 사람들 다닐 통로도 없어질 것 같아서요...어쩔 수 없어요.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청소년들을 사로잡은 그 전설의 근친상간 소설, 앤드류스의 다락방 시리즈. 어찌 보면 미성년자 불가 같기도 한데 이런 식의 대중소설을 처음 접한 당시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화제의 대상이 되어, 지금도 인터넷에는 그 당시 읽었던 감상을 적은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다락방 시리즈라 하면, 제1권<다락방의 꽃들>, 제2권 <바람에 날리는 꽃들> 제3권 <가시가 있다면> 제4권 <어제 뿌린 씨앗들> 제 5권 <그늘진 화원>입니다.어떤 이는 <오도리나>가 이 시리즈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독립된 작품입니다.

 

  앤드류스는 어릴 때 겪은 사고로 평생을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지만 소설을 써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린 기적의 여인입니다.하지만 1986년에 타계했으니 우리나라에서 번역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었죠.그리고 역자해설을 보면 알겠지만 이 시리즈는 우리정서에 맞지 않은 지나친 장면을 삭제했다고 했습니다.물론 근친상간 장면이 노골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의 정서를 그런 식으로 염려해주는 것도 번역자의 월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5권 <그늘진 화원>은 작가 사후에 발견된 원고를 바탕으로 했다고 광고했는데 사실은 다른 작가가 앤드류스 소설을 모방해서 쓴 것이라고 합니다.어쨌든 그 작가는 앤드류스 소설을 많이 연구해서인지 앤드류스 소설로 착각될 만큼 잘된 유사품(?)이란 평을 받았으니 그럭저럭 받아들일 만합니다.앤드류스는 이 외에도 새벽 시리즈, 헤븐 시리즈 등 많은 소설을 집필했습니다.엄청난 분량이지요.하지만 역시 헤븐 시리즈 중에서도 첫 두 권만 앤드류스 작품이고 나머지 세 권은 다른 사람 작품이라고 합니다.원저자가 워낙 유명하고 인기가 있으니 그녀 사후에도 그 인기에 편승한 결과 이런 일이 생긴 것이죠.

 

   다락방 시리즈는 한마음사에서 번역되었습니다.이 시리즈만으로 출판사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데 출판사는 물론 그 역자인 이영미 씨 요즘 안부가 궁금합니다.20여년 전 이 소설을 읽었던 이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 이사가고 하는 바람에 몇 권씩 잃어버린 경우가 많죠.인터넷을 뒤지고 헌책방을 뒤져 찾는데...하지만 이 책 찾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다섯권 모두를 다시 구입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소문입니다.저도 광주 헌책방에서 딱 한 군데에 다섯권 한질이 남아있어 최근에 구했습니다.만약 무삭제 완역본이 나온다면 얼마나 팔릴까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출판계에서 가장 우울한 화제는 고려원의 몰락이었습니다.고려원은 학술서적은 물론 대중소설, 정치인 회고록까지 온갖 분야 책을 다 내는 출판사였죠.특히 드릴러물이나 추리물도 많이 내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그 중 토마스 해리스와 톰 클랜시 책이 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최근 도서관에서 이들의 초기 인기작들이 많이 사라졌더군요.벌써 이십년이 지난 책들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예를 들어 해리스의 출세작인 <양들의 침묵>,<레드 드래건>도 시중의 도서관에 없더군요.살인마 이야기라서 많은 독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읽은 명작이지요.요즘 해리스 작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팩션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고려원에서는 톰 클랜시 작품도 많이 냈습니다.클랜시는 노골적인 미국우월주의 색채가 짙지만 전투장면이라든가 국제정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서 그의 작가적 역량에 대해 뭐라 시비 거는 이는 없는 편입니다.그래서 분량이 꽤 많은 편인데도 금방 읽어치울 수 있죠.초창기 걸작인 <붉은 10월호>는 꽤 오래전부터 희귀본이 되었고, 고려원이 망하면서 <베카의 전사들>(공포의 총합과 동일작품),<적과 동지>,<패트리어트 게임>도 헌책방으로 넘어갔습니다.클랜시 작품들은 그 성격상 여성독자는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그러고 보니 고려원에서 많이 낸 로렌스 샌더즈 작품도 요즘엔 절판상태더군요.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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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팟캐스트로 옛날(90년대 초)에 녹음된 정은임씨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듣다보면 고려원 책 광고가 자주 나오거든요. 말씀하신 <양들의 침묵> 광고도 있구요. (요즘에 라디오를 많이 듣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그 당시에는 라디오 책광고의 시대더군요.) 저도 청소년기에 고려원에서 나온 몇 개의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웅문>도 그렇고 상당히 잘 나가던 출판사였던 걸로 아는데, 어쩌다가 그리 되었는지...

노이에자이트 2012-11-11 14: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고려원이 한때 잘 나갔죠.특히 라디오 광고도 많았고요.영웅문도 고려원 번역본으로 읽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2012-11-11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1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11-1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급 정보의 글이네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페이처처럼 책을 넣어서 써 보시는 건 어때요? 그럼 저 같은 사람들한테 도움이 많이 될 텐데요. ^^

2012-11-12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1-12 17:37   좋아요 0 | URL
헤헤헤...이 달의 당선작이 되느냐 하는 것보다 제게 댓들 달아주는 분들이 더 소중해요.

cyrus 2012-11-1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들리는 온라인 독서 카페에 가입한 여성 회원분들 중에서는 V.C. 앤드류스의 소설 시리즈를 한 번쯤 읽어본 경험이 있었어요. 가끔 헌책방 가면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죠. ^^

노이에자이트 2012-11-12 17:32   좋아요 0 | URL
아마 삼십대 중후반 여자들이 많이 읽었을 거에요.몰래몰래 소곤소곤 하면서...
 

  이문구 씨가 동료 소설가 김주영 씨를 회고하는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영남대 정치학과 교수 이수인, 소설가 이문구, 김주영이 한 자리에 모여 회식하는 자리입니다.이수인 씨가 김주영 씨에게 "저는 직업상 매일 신문을 읽습니다.화장실에서 읽으니 전화가 없어서 조용하고 좋더군요.하지만 김주영 선생의 연재소설 <객주>는 화장실에서 읽지 않습니다.그런 역작을 어떻게 화장실에서 읽습니까" 하고 말했다는군요.면전에서 하는 간지러운 아부가 아니었습니다.<객주>는 작가의 엄청난 사전취재와 공부가 바탕이 된 작품이니까요.

 

  김주영 씨는 <객주>를 쓰기 위해 전국의 시장을 다 돌아다녔습니다.녹음기와 두툼한 공책 그리고 필기도구...그런데 그가 간 곳 중에 인천 영종도 젓갈 시장이 있군요.아...그 비행장 있는 영종도! 예전엔 그런 시장이 있었구나...지금 그 곳은 무슨 장소가 되어있을지...시골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5일장만 있는 줄 아는데 장 서는 날도 조금씩 다릅니다.이곳 광주 부근에는 화순장 이양장 날짜가 다릅니다.예전엔 남광주 역에서 시골장에 장사 나가는 아낙들이 완행열차를 기다렸지요.이제 남광주 역이 없어졌으니 기차를 기다리던 아낙들도 없습니다.

 

  김주영 씨는 서른이 넘어 등단했습니다.작가로서는 늦게 출발한 셈이지요.결혼도 일찍 한 데다가 10년 가까이 안동에서 엽연초생산조합에서 근무한 까닭입니다(경북 북부는 예로부터 담배재배가 유명합니다).이 엽연초생산조합에서 근무한 경험담을 재밌게 쓴 중편이 '칼과 뿌리'입니다.담배수납을 나온 공무원과 농민들 간에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한 줄다리기가 실감나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농촌에 대해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주의 소설 한 편을 읽는 것이 좋은 약이 될 듯합니다.

 

  소설가들이 묘사하는 기자는 대체로 악질이 많습니다.되어먹지도 않는 주제에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사기치는 존재로 묘사되지요.국내외를 막론하고 소설에는 이런 추한 기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발자크 <환멸>, 모파상 <벨아미>, 뵐 <카타리나 불름의 잃어버린 명예>등 등...위에 언급한 '칼과 뿌리'에도 농촌을 돌아다니는 지방지의 사이비 기자가 등장합니다.그 기자가 어찌나 밉살스럽게 묘사되어 있던지 옆에 있다면 콱 쥐어박아주고 싶을 정도입니다.이런 작품을 읽으면 '소설에 나타난 기자 이미지'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70년대에 젊은 작가였던 김주영 씨도 이젠 7순입니다.윗 글에 나오는 이수인, 이문구 씨는 이제 고인이 되었고...황석영 조선작 김주영 조해일 등 세칭 70년대 작가들의 젊은 시절 중단편은 벌써 옛날 같은 느낌이 듭니다.얼마전 어느 대학생이 이야기하기를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스치듯 배운 작가들의 70년대 작품을 대학생이 되어 제대로 읽어보려고 하는데 시대적 배경이 너무 옛날 느낌이 나서 잘 와닿지 못했답니다.솔직한 이야기지요.대학생까지 갈 것 없이 30대 초반들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읽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벌써 90년대를 추억상품으로 팔아먹는 시대인 걸요.이제는 일제시대나 70년대나 다 옛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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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10-2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7080 심지어 일제 강점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시대 소설들을 잘 읽지 않는 것이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이질감 때문인 건 사실이죠.

노이에자이트 2012-10-30 00:21   좋아요 0 | URL
예. 그래서 과거는 낯선 나라라고 하죠.자기 나라 이야기도 그렇죠.

야클 2012-10-2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주영 선생의 <아라리 난장>이란 책을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좀전에 검색해봐도 하도 안뜨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계속 <아리랑 난장>으로 기억하고 있었네요. 또 다시 확인하게 되는 기억력의 불완전함이랄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10-30 00:22   좋아요 0 | URL
예. 시골을 배경으로 한 중단편이 재밌었죠.'외촌장 기행'도 그렇고요.

페크pek0501 2012-10-2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작품은 '아, 옛날엔 그랬구나'하는 재미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티브이를 통해 사극을 보면서 '아, 옛날엔 저랬구나, 궁궐에선 저랬구나'하면서
보듯이 말이죠.

"<객주>는 작가의 엄청난 사전취재와 공부가 바탕이 된 작품이니까요."
- 대작가도 노력 없이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음을 확인하네요.

90년대가 이젠 추억상품이군요. ㅋ

노이에자이트 2012-10-30 00:24   좋아요 0 | URL
그럼요.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모르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없죠.

아무래도 백지상태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는 없죠.

얼마전까지만 해도 70~80하더니 어느새 80~90하더라고요.

순오기 2012-10-30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지난주말에 푸른길 걷기 행사에 참여하느라 광복광장부터 산수동까지 답사하고 열공했습니다. 덕분에 남광주시장 이야기도 알아듣습니다~ ^^
무등산을 비롯한 광주권역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비로소 광주사람이 되는 느낌입니다.
객주를 못 읽었는데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1-01 08:33   좋아요 0 | URL
저야 잘 지내죠 늘...
남광주 시장...유명했죠.
자기가 사는 곳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알고 보면 얘깃거리가 많은데 말이죠.
우선 김주영 씨 단편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페크pek0501 2012-11-1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것이 정녕 <이달의 당선작>이란 말이오?
축하드립니다, 라는 정 한 줄 드리옵니다.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11-12 17:38   좋아요 0 | URL
오...그대는 내게 정을 주는 여자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