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의 배경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이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기 전에 먼저 아일랜드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아일랜드는 원래 하나의 국가였다. 영국이 침략해 세력을 넓히면서 반영국 성향의 구교도들과 친영국 성향의 신교도들 간의 갈등이 커졌다. 그러자 영국은 신교도들을 아일랜드 북부로 이주시켰고, 구교도들은 1949년 '아일랜드'라는 국명으로 독립국 수립을 선포했다. 이로써 아일랜드는 독립국인 아일랜드와 영연방인 북아일랜드로 나뉘었고, 현재까지도 분쟁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주인공 '나'는 십남매 중 가운데 아이로, 걸어 다닐 때조차 책을 읽는 열여덟 살 여성이다.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길을 걸으며 책을 읽다가 한 남자와 말을 섞게 된다. 사람들이 '밀크맨(우유배달부)'라고 부르는 이 남자는 마흔한 살 유부남이자 저항 조직의 고위급 인사로 알려져 있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나'의 일상은 크게 바뀐다. 둘의 모습을 목격한 동네 사람들은 둘이 불륜 관계라고, 심지어 '나'가 밀크맨을 유혹했다고 수군댄다. '나' 또한 평소처럼 공원에서 런닝을 할 때에도 불안감을 느끼고,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러 갈 때에도 왠지 모를 공포감에 휩싸인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묻는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걸어가며 책을 읽는 게 문제라고. 그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한 게 잘못이라고.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밀크맨이 잘못된 행동을 할 리가 없으며, 혹시라도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정작 밀크맨과 '나'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밀크맨이 사실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만약에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 사람 전부가 정상이 아니라면, 집단의식에서는 그 한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니?” “응.” 친구가 말했다. (285쪽)
소설을 읽으면서 1970년대 북아일랜드와 2020년 대한민국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공동체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여겨져왔던 사람이 실은 뒤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른 가해자를 비난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악행을 고발한 피해자를 비난한다. (따지고 보면 남일뿐인)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멀고, 자기 자신이 입게 될 물질적, 정신적 손해는 가깝게 느끼는 까닭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특히 여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