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평점 :
베스트셀러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의 신간이다. 전작이 저자 자신의 삶과 자연의 관계를 유려하게 엮어낸 일종의 자전적 에세이였다면, 이번 신작은 저자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지구 환경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작만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잠깐 멈추게 되는 대목마다 그 의미를 곱씹으며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앞으로의 변화를 계획하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는 2009년 저자가 당시 재직하던 대학의 학장으로부터 기후변화에 관한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요청을 받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자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기후 위기나 자연 파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데이터를 수집해보고 나서야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오늘날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먹어 소비하는 동안 또 다른 10억 톤의 곡물이 동물의 먹이로 소비되고 있으며, 그렇게 먹여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라든가. 1킬로그램의 연어를 얻으려면 3킬로그램의 먹이가 필요하고, 3킬로그램의 먹이를 얻으려면 15킬로그램의 물고기를 갈아야 한다든가.
인류가 열심히 생산한 식량의 40퍼센트가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매일 거의 10억 명이 배를 곯는 동안 또 다른 10억 명은 음식을 버린다. 음식이 낭비되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쓰레기로 버려질 음식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동과 에너지가 허비되는 것도 문제다. 음식만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다 같이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자원을 생산하고 있지만, 지구상의 어떤 지역에는 넘치게 분배되고 어떤 지역에는 부족하게 분배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자원의 생산이 아니라 자원의 분배이며,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인데,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풍요롭게 살아서 남들이 어떻게 살든 지구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고,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고 해수면이 상승해서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힘이 없다.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유명 햄버거 체인점 매장을 가진 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몸을 고치는 의사가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판매하는 매장을 소유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매일 하는 일의 가치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대상에 투자하는 그의 삶은 만족스럽고 행복할까. 이처럼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자기 자신이 잡히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 혹은 어떤 기업에 투자할 때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는 삶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삶보다 번거롭고 불편하겠지만, 훨씬 더 많은 생명체들에게 이로울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