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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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처음 읽었을 때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때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가난한 여자아이의 고향 탈출기' 정도로 감상을 요약하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고 감명을 받아 원작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국내 출간작을 모두 구입해 읽게 되었다. 이제야 알게 된 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주로 연작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것. 한 작품이 다른 작품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한 작품을 읽으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른 작품을 연결해 읽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그의 작품 세계를 파악해 가는 중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후속편 격인 작품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주인공 루시 바턴이 대학 입학을 계기로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작가로 성공한 이후의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다. 마을 사람들은 루시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루시 바턴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안의 존재감 없는 막내딸이었기 때문이다. 루시가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에게 루시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을까. 루시는 마을 사람들 중 (아마도) 최초로 고향을 떠나 성공했으니 그 자체로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보면 되는 걸까. 현실의 도처에 존재하지만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거나 부러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하는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해 과감하게 써 내려간 작가의 시선이 놀랍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루시의 사촌인 에이블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루시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에이블은 이후 부유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장인으로부터 사업체를 물려받아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에이블은 어느 날 문득 어린 시절 루시네 남매들과 함께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던 일화를 아내에게 들려준다. 그러자 아내는 그런 끔찍한 이야기는 다시 하지 말라며 등을 돌리고, 이제까지 그때의 일화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했던 에이블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때의 자신은 분명 (먹을 것이 생겨서) 기쁘고 행복했는데, 지금의 자신은 왜 그때의 일을 부끄럽게 여기며 숨겨야 하는 걸까. 


에이블에게 삶이 수수께끼인 부분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에도 그것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 환각지 같은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솔직히 그때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느낀 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겉만 깨끗이 긁어내면 되는 커다란 스테이크 조각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아마도 기쁨이었을 것이다. (335쪽) 


이 밖에도 좋은 이야기, 좋은 문장들이 많지만, 가장 좋았던 문장은 이것이다.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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