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 1919, 1949, 1989
백영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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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 나라 하면 주로 일본을 떠올리지만 중국도 못지않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한국은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지만, 동서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이나 일본 같은 우방 국가들에 비해 거리가 멀어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택한 이후로는 경제적으로 많은 교류가 생겼고,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한한령으로 인해 주춤한 감이 없지 않지만) 문화적으로도 전보다 훨씬 거리가 가까워졌다. ​ ​ 


연세대 사학과 백영서 명예교수가 쓴 이 책은 중국 현대사의 핵심적인 세 가지 사건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중국 현대사를 수놓은 다양한 사건 중에 저자가 중요한 기점으로 택한 것은 1919년 5.4운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989년 톈안먼사건이다. ​ ​ 


5.4운동은 베르사유 강화회의의 결과로 독일의 조차지였던 산둥의 이권이 중국에 반환되지 않고 일본에 넘어가게 된 것을 규탄하기 위해 베이징 내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톈안먼 앞에 모여 규탄 대회를 연 일을 일컫는다. ​ 저자가 이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청년, 학생층 중심의 항일 운동이 전국 규모의 '신문화 운동'으로 확산된 것이고, 둘째는 이 과정에서 정치 운동이 조직화되고 이념 노선이 갈라진 것이고, 셋째는 구국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중/국가의 구분이 사라지고 민중이 곧 국가가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변혁적 자아'가 형성된 것은 이후에 발생한 혁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 ​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은 이제까지 국공내전의 결과 국민당이 패퇴하고 공산당이 승리한 것을 선언한 사건으로 평가받아 왔다. 저자는 이러한 평가를 단순한 시각으로 일축하고 보다 복합적인 역사 해석을 제시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라는 사건을 해석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열세였던 공산당이 승리한 원인이다. ​ 혹자는 미국의 중국정책 실패를 들고, 혹자는 소련의 만주 점령을 들지만, 저자는 그보다 내부적인 요인, 구체적으로는 '토지개혁'이 주요했다고 본다. 즉 공산당은 민중의 다수를 점하는 농민 계층이 만족할 만한 토지개혁안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농민 계층을 혁명세력으로 변혁시킴으로써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 ​ 


톈안먼사건은 지금도 중국 내부에서는 금기시되어 논의되지 않고 있는 사건이다. 톈안먼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평가는 당시 시위를 주도한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파는 이 사건을 일당 독재 체제를 타파하고 민중 참여를 늘리기 위한 자유민주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좌파는 당시 중국정부가 추진하던 개혁개방 노선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고 본래의 노동계급 중심의 사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운동으로 본다. ​ 저자는 논의의 끝에 -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할 - "중국공산당은 계속 집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덧붙인다. 논문 형식의 책이라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찬찬히 읽으면 중국의 과거와 현재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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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문장 시리즈
류승연 지음 / 유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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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아들과 비장애인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자의 다음 책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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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문장 시리즈
류승연 지음 / 유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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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나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쓴 책. '00의 말들' 시리즈를 좋아한다. <배려의 말들>을 쓴 류승연은 (전직)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이자(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발달장애인 아들과 비장애인 딸을 키우는 쌍둥이 엄마다. 책에는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느낀 점들이 주로 나온다. 


저자는 소위 말하는 '주류'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했고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그런데 아이 중 하나가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그때부터 저자는 자신이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을 받았다. 사회적 약자로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인권을 침해당하는 게 어떤 것인지, 여자일 때보다 장애인 부모일 때 더욱 처절하게 느꼈다. 


그때부터 저자는 '구조'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백인이라면 인종이, 시스 남성이라면 젠더가, 이성애자라면 성이, 비장애인이라면 장애가, 당신이 벽들을 쉽게 통과하게 할 수 있다. 어떤 몸은 벽에 막혀 더 이상 갈 수가 없고, 멈춤 없이 무사통과하는 당신은 벽을 만날 일이 없다. 누군가에게 가장 뚫기 힘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 아메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저자는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장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공부도 시작했다. (사회가 규정한) 약자로 태어났어도, 약하게 살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개인의 장애는 인생의 장애가 아니다. 장애는 개인에게 있는 하나의 요소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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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용기 - 거침없이 살기 위한 아들러의 인생수업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유진상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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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란 무엇일까.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벌거벗었다!"라고 외친 소년처럼 거짓을 보고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 거짓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용기 있다"라고 하지 않나.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하는 용기는 보다 내면적인 차원의 것이다. 누구에게나 불편함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겪는 고난에만 천착해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보다 남을 더 챙기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들러는 후자야말로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용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세상과 맞설 용기를 지닌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책에는 아들러의 관점으로 분석한 삶과 경험의 의미,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 열등감, 불완전한 기억의 의미, 꿈, 부모의 인성교육, 학교 교육의 필요성, 사춘기의 시련과 도전, 범죄에 대한 접근성, 협력과 사회적 공헌, 관심에 의해 진보하는 인류, 편견을 배제한 사랑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이다. 아들러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으며, 몸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몸은 마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마음은 몸을 보호할 목적으로 선택을 하고 환경을 다스린다.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다면, 이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신체적 상태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용기는 육체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의 몸은 그 사람이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주는 증표다. 자세가 대표적이다. 자세가 바르고 당당한 사람은 삶의 태도 역시 바르고 당당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자세가 구부정하고 불안정한 사람은 삶의 태도 역시 그렇다. 이는 키나 몸무게 같은 신체적 조건과 무관하며, 병이나 장애와도 관련이 없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지다. 이 밖에도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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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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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지식이 과거에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이나 관념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를테면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처음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라든가, 진화론을 처음 주장한 다윈이라든가, 흑인 노예 해방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등에 앞장섰던 운동가들이라든가.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은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상식을 바꾸고 지식의 발전과 기술의 발달에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의 생애를 소개하고, 이들이 어떤 식으로 다른 이들과 영향을 주로 받으며 인류 역사를 견인했는지를 꼼꼼하게 조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시작은 요하네스 케플러다. 천동설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여겨지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 케플러는 이로 인해 어머니가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질 뻔한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천문학은 지금은 한낱 미신으로 여겨지는 점성술의 아류로 여겨졌는데, 케플러는 자신과 어머니가 같은 별자리 아래 태어났지만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산 이유를 '성별'에서 찾았다. "천공을 아무리 뒤진다 해도 점성술사는 성별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 (48쪽) 같은 별자리라도 자신과 달리 어머니가 불학무식한 것은 어머니의 본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별, 정확히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자리에 위치하게 한 사회구조 때문임을 간파한 케플러. 17세기에 - 현대의 남성들도 좀처럼 다다르지 못하는 식견을 지닌 - 이런 남성이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발견'이다. 


케플러의 어머니가 '여성'이라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인물이 마리아 미첼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최초의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여성 회원, 미국 정부에 "전문 기술직"으로 고용된 최초의 여성 등등의 타이틀을 지닌 마리아 미첼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퀘이커교 신자인 아버지의 보호 아래 어려서부터 독학으로 라틴어와 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미첼은 영국 왕립천문학회에서 금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캐럴라인 허셜을 동경했고, 마거릿 풀러가 주최하는 사교 모임에서 아이더 러셀을 만나 사랑을 나눴다. 마거릿 풀러는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문학 평론가로,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에밀리 디킨슨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인연의 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철 카슨에게로 이어진다. 책에는 카슨의 초기작 <바닷바람을 맞으며>와 출세작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출간 비화가 자세히 나온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동물학 석사학위를 받고 정부에서 일하는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합당한 인정과 주목을 받지 못했던 카슨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카슨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과학을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으며, 이를 바꾸기 위해 과학 연구에 더욱 매진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영광보다는 고통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발견과 연구는 세상 사람들이 알기에는 너무나 앞선 것이었고, 그들의 우정과 사랑 역시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 것.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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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17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한줄 한줄 씹어가며 다시 읽고싶은데 페이지의 압박이.... ㅎㅎ 제가 재밌게 읽은 책을 또 다른 분들도 재밌게 읽고 남겨주시는 리뷰들을 보니 좋네요. ^^

키치 2021-03-17 13:27   좋아요 1 | URL
이 책 정말 그래요. 저도 하루에 한 챕터씩 읽기로 정해놓고 어젯밤에 겨우 완독했습니다. 여러 번 더 읽으며 음미하고 싶은 책이에요.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