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지식이 과거에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이나 관념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를테면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처음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라든가, 진화론을 처음 주장한 다윈이라든가, 흑인 노예 해방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등에 앞장섰던 운동가들이라든가.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은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상식을 바꾸고 지식의 발전과 기술의 발달에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의 생애를 소개하고, 이들이 어떤 식으로 다른 이들과 영향을 주로 받으며 인류 역사를 견인했는지를 꼼꼼하게 조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시작은 요하네스 케플러다. 천동설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여겨지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 케플러는 이로 인해 어머니가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질 뻔한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천문학은 지금은 한낱 미신으로 여겨지는 점성술의 아류로 여겨졌는데, 케플러는 자신과 어머니가 같은 별자리 아래 태어났지만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산 이유를 '성별'에서 찾았다. "천공을 아무리 뒤진다 해도 점성술사는 성별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 (48쪽) 같은 별자리라도 자신과 달리 어머니가 불학무식한 것은 어머니의 본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별, 정확히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자리에 위치하게 한 사회구조 때문임을 간파한 케플러. 17세기에 - 현대의 남성들도 좀처럼 다다르지 못하는 식견을 지닌 - 이런 남성이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발견'이다. 


케플러의 어머니가 '여성'이라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인물이 마리아 미첼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최초의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여성 회원, 미국 정부에 "전문 기술직"으로 고용된 최초의 여성 등등의 타이틀을 지닌 마리아 미첼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퀘이커교 신자인 아버지의 보호 아래 어려서부터 독학으로 라틴어와 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미첼은 영국 왕립천문학회에서 금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캐럴라인 허셜을 동경했고, 마거릿 풀러가 주최하는 사교 모임에서 아이더 러셀을 만나 사랑을 나눴다. 마거릿 풀러는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문학 평론가로,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에밀리 디킨슨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인연의 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철 카슨에게로 이어진다. 책에는 카슨의 초기작 <바닷바람을 맞으며>와 출세작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출간 비화가 자세히 나온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동물학 석사학위를 받고 정부에서 일하는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합당한 인정과 주목을 받지 못했던 카슨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카슨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과학을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으며, 이를 바꾸기 위해 과학 연구에 더욱 매진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영광보다는 고통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발견과 연구는 세상 사람들이 알기에는 너무나 앞선 것이었고, 그들의 우정과 사랑 역시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 것.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17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한줄 한줄 씹어가며 다시 읽고싶은데 페이지의 압박이.... ㅎㅎ 제가 재밌게 읽은 책을 또 다른 분들도 재밌게 읽고 남겨주시는 리뷰들을 보니 좋네요. ^^

키치 2021-03-17 13:27   좋아요 1 | URL
이 책 정말 그래요. 저도 하루에 한 챕터씩 읽기로 정해놓고 어젯밤에 겨우 완독했습니다. 여러 번 더 읽으며 음미하고 싶은 책이에요.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