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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1973년 철거되기 전까지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실제로 존재했던 '벽수산장'이라는 건물이 소재인 소설이다. 도대체 어떤 건물이길래 '아방궁'이라는 별명이 붙었나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과연 아방궁이라고 불릴 만하다. 면적이 무려 200평에 달하고 정원에 연못도 있었다고. (참고 : '큰거문고' 님 블로그 "벽수산장을 아시나요" https://blog.naver.com/graz2000/222599526739)
이야기는 1966년 이해동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하는 윤원섭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언커크(UNCURK, UN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호주 대표 애커넌의 개인 비서인 해동은 현재 언커크 건물로 쓰이고 있는 벽수산장의 옛 주인이자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의 막내딸 원섭을 애커넌에게 데려간다. 비록 천애고아로 고모 손에 컸지만,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게 나름의 자랑이었던 해동은 친일파의 딸인 데다가 사기죄로 복역까지 한 원섭이 애커넌의 마음에 들어 자신의 윗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후에도 원섭이 계속 눈엣가시 같은 행동을 하지만, 해동은 좀처럼 벽수산장을 떠날 마음을 먹지 못한다. 지방 출신에 무학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받아주고 과분한 월급까지 주는(그것도 달러로!) 직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아름답다"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건물 자체가 매혹적이고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좋은 것만이 전부일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해동은 자신이 벽수산장에 매혹된 '진짜 이유'는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건물이 상징하는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에는 두 가지 유산이 나온다. 하나는 벽수산장을 비롯한 '물질적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나 애국심 같은 '정신적 유산'이다. 벽수산장은 결국 전소되고 철거되었고, 해동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고모네 식구들은 고모의 죽음을 계기로 해동과 등졌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 정신만큼은 계속해서 이어질 줄 알았지만, 이마저도 1965년 한일수교 이래 빛바랜 가치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 <영원한 유산>이 뜻하는 '영원한' 유산은 무엇일까. 어떤 유산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제목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환난과 고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해동과 그의 새로운 가족들을 보면서, 결국 사람이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있을까. 벽수산장처럼 종국에는 파괴되어 잊힐 것들만 만들어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