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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평점 :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미국의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대표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쓰기 훨씬 전인 1997년에 발표한 책이다. 이때만 해도 젊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고, 작가로서의 경력도 일천했던 저자는, 외삼촌으로부터 아일랜드 국적이 생길 거라는 말을 듣는다. 어머니가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 출신이라서 아일랜드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건 알았지만, 저자는 스스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얼마 후 아일랜드 여권이 나왔을 때도 내 것 같지 않은 어색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여러 번에 걸쳐 아일랜드 더블린과 서해안 지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담고 있다. 아일랜드의 역사와 정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일랜드가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고 현재도 영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자동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떠올리게 될 때가 많았다. 영국의 식민 지배가 아니었다면 아일랜드의 근대화, 산업화 속도가 지금보다 더뎠을 거라고 주장하는 영국의 모습에서, 현재 일본의 우익과 한국의 보수 진영을 보는 것은 나뿐일까.
아일랜드의 독립 영웅 로저 케이스먼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인물인데, 검색을 해보니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에도 등장할 만큼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아일랜드로 돌아가 목회자로 살면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걸리버 여행기>에 담았다고 하니, 조만간 <걸리버 여행기>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