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강의 시간 3
요시다 아키미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를 오랫동안 쭉 따라오면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최근 연재작인 <우타강의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전에 없었던 기발한 발상도 없고 눈길을 끄는 화려한 요소도 전무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시골 마을에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이야기일 뿐인데, 나는 이런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이런 만화가 더 많았으면 좋겠고 이 만화가 오래 오래 연재 되었으면 좋겠는데, 작가님 연세가 올해로 69세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위기감을 느꼈다. 작가님 부디 건강하시길...!


2권에서 가즈키는 마을사무소 관광과에서 일하는 소꿉친구 루이가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상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당황한다. 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지낸 단짝 친구의 비밀을 이제야 알게 되어 당혹스럽기도 했고, 루이의 사랑이 여간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이런 가즈키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루이는 직접 기획한 마을 광고가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모으며 마을사무소의 스타로 떠오른다. 이런 와중에 루이의 가족 문제를 언급하는 익명의 투서가 마을사무소 관광과로 날아들어 루이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이 만화는 온천 관광 사업으로 먹고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이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세 청년(가즈키, 다에, 루이)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온천 여관 아즈마야의 온천수 관리자 견습생으로 일 배우기에 급급했던 가즈키는 신규 등산 패키지 사업 기획을 위해 마을을 찾아 온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작은 마을에서만 살아온 자신의 시야가 너무 좁고, 세상엔 배울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루이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진정한 어른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는 믿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다에의 사연도 애틋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정과 고양이 - B愛259
조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직 형사인 카와사키는 혼자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결혼 사기 조사, 외도 조사, 길 잃은 고양이 찾기, 행방불명자 수색 같은 일들을 의뢰 받아 해결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카와사키의 곁에 한 청년이 머문다. 여장이 잘 어울려도 너무 잘 어울리는 이 청년의 이름은 오카치마치. 조수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조수를 자처하며 탐정 사무소로 출근하는 오카치마치에게 카와사키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부러 그를 내쫓지는 않는다. 오카치마치는 자신을 내치지 않는 카와사키에게 더 다가가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해 점점 더 애절한 마음이 된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조제의 만화 <탐정과 고양이>를 구입한 건 작화와 장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BL 장면을 제외하면 남성 탐정과 남성 조수가 의뢰 받은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버디물로도 볼 수 있는 만화라서 해당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물론 BL 만화로 분류되는 작품답게 로맨스 요소도 낭낭하다. 외모도 성격도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오카치마치가 카와사키에게 먼저 반하고, 서로의 마음이 연결될 듯 말 듯한 과정이 설렘 가득한 느낌으로 잘 그려져 있다. 단권이라서 가볍게 읽고 산뜻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점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 우리가 시를 읽으며 나누는 마흔아홉 번의 대화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 연재된 총 백 편의 콘텐츠 중에서 마흔아홉 편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먼저 읽고 뒤늦게 오디오클립의 존재를 알게 되어 부랴부랴 앱을 다운로드하고 클립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새로운 콘텐츠가 업데이트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동안 쌓인 백 편의 콘텐츠를 귀로 즐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책으로 먼저 만난 마흔아홉 편의 시와 글 이외에 다른 시와 글을 오십일 편이나 더 만날 생각을 하니 흥분마저 된다.


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모르는 시와 시인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는 시와 시인이 많아서 놀랐다. 이육사, 김소월, 한용운, 김영랑, 백석, 정지용, 윤동주, 김기림, 이상 같은 시인들은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김민정, 유희경, 서효인, 김소연, 이성복, 유병록 같은 시인들은 시도 유명하지만 산문집도 유명하다. 진은영, 정끝별의 시도 반갑고, 윌리엄 B.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외국 시인의 시도 새롭다. 에드거 앨런 포는 공포 소설 작가로만 알았는데, 정식으로 출판된 첫 책이 시집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책에는 시와 함께 각각의 시에 대한 작가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박상순 시인의 <너 혼자>를 처음 읽었을 때 저자는 시 속의 '너'가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 속의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시는 같은데 시를 읽은 내가 변화하거나 성숙해서 시에 대한 인상이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시의 매력이자 장점이 아닌가 하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 감상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좋은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도 종교도, 문학도 과학도, 예술도 스포츠도, 본질적으로는 이야기이거나 이야기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인간들은 어떤 이야기를 선호할까. 궁금하다면 독일의 저널리스트 자미라 엘 우아실과 프리데만 카릭이 공저한 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힘을 가진다. 하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거나 세상을 움직이는 동인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불안 또는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힘은 방향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의 문장들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치유와 평화의 메시지로 읽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동물과 자원의 착취를 합리화하는 파괴의 메시지로 읽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선동'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의 '동인'이 누군가에게는 '조장'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의 힘을 이해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아마도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일 것이다. 조지프 캠벨은 1945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전 세계 신화와 전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을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를 다시 6가지로 정리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쟁, 탐색, 변신, 복수, 약자, 러브스토리 등의 코드가 들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유난히 인기 있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코드가 하나도 빠짐 없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대표적인 예 :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인간이 존재의 우연성을 견디느니 차라리 잘못된 설명을 믿는 편을 택한다는 것이다. 만사를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은 그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노리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운명의 플레이어라고 '믿고' 믿음을 통해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한다. 대표적인 예가 종교인데, 나는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건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사건이자 일종의 오해 또는 착각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운명이니 인연이니 같은 말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아닐까.


이야기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인 문학의 힘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프랑스에서 문학이 발전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인권 선언이 발표되고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한 때와 일치한다. 저자들은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열심히 읽으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발달하고 인권 의식이 향상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문학의 위기와 독서 인구의 감소는 곧 인권의 위기, 민주주의의 후퇴로 연결되는 걸까. 마음이 무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사랑과 혁명 1~3 세트 - 전3권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탁환 작가의 '백탑파' 시리즈를 좋아한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대소설의 시대> 이후 신작 소식이 없어서 작가님 근황이 궁금했는데, 2023년 9월에 신작 장편 소설 <사랑과 혁명>이 나온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구입해 읽었다.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인 <사랑과 혁명>은 19세기 초 전라도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옥사인 정해박해를 배경으로 한다. '백탑파' 시리즈와는 공간적 배경도 다르고 등장 인물도 다르지만, 시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 조선 후기의 사상적 변화와 새로운 조류를 그린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느꼈다.


소설은 전라도 곡성 장선마을에 사는 젊은 농사꾼 들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관기였던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열 살 때부터 농사를 지은 들녘은 밤낮으로 농사 생각뿐인 천생 농사꾼이다. 그런 들녘이 마름의 횡포로 큰 빚을 지게 되고, 빚을 독촉하는 마름을 두들겨 팬 죄로 마을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도망자 신세가 된 들녘은 산에 사는 나무꾼 곡곰 밑에서 나무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 과정에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소녀 아가다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들녘은 아가다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아가다의 흔적을 좇다가, 옹기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옹기촌인 줄로만 알았던 덕실마을이 실은 관에서 금지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숨어 사는 교우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과 혁명> 1권은 정해박해가 일어나기 전 들녘과 아가다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2권은 정해박해 당시 곡성 교우촌 교인들이 당한 박해의 내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권은 농사 밖에 모르는 소년이었던 들녘이 사랑을 알게 되고 신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일종의 성장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져서 비교적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에 반해 2권은 투옥된 교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자세히, 지겨울 정도로 나와서 읽기가 힘든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당시 교인들이 실제로 당한 고문의 정도와 박해의 수위는 소설에 묘사된 것 이상이었을 테고, 작가는 그러한 역사의 폭력과 폐해를 현대의 독자들에게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신체적인 고통까지 당하면서도 신을 믿고 종교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정해박해 이후를 그린 3권을 읽으면서 약간의 답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당시 조선 사회에서 피지배 계층으로 산다는 건 목숨이 지배 계층에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짐승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만인이 평등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를 접한다면, 그러한 종교를 따르며 선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혹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2권에 묘사된 것처럼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 금세라도 배교할 것 같은데, 3권을 보니 이들에게 중요한 건 현생의 안락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현생 이후의 명예 또는 영생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영생은 물리적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한다. 소설에서 교인들은 숨어 지내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야기를 짓거나 노래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시대에 가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핍박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선에 사는 이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결국 성경과 찬송의 형태로 전해진 이야기의 힘 덕분임을 이들이 알기 때문이다.


3권에서 교인들은 정해박해로 인해 교인들의 수가 크게 줄고 교세가 많이 꺾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신부를 모셔 오려고 노력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2024년 현재 이들이 믿었던 종교(천주교)는 대한민국에서 공인된 종교로서 다수의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이들을 박해한 조선 정부는 망해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앞으로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보다 종교의 힘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야기의 힘이 더 강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역사 소설인 줄 알았고 중간에는 종교 소설로도 읽혔지만, 결국 현재 어떤 이야기를 믿고 따르는 지가 미래를 만든다는 교훈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