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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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니 가르침을 구할 스승이나 선배, 배움을 공유할 친구를 찾기 어렵다. 대학 시절 가장 존경했던 교수님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셨고, 알고 지냈던 선후배나 동기들은 각자 살기 바빠 만나지 못한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돕기보다 끌어내리기 일쑤다. 어쩌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도 직장이 바뀌거나 사는 곳이 달라지면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 


스승이 그립고 사람이 아쉬울 때 나는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읽는다. 학교도 전공도 다르고 직접 뵌 적도 없지만,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읽으면 앞으로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공부할지 사사하는 기분이 든다. 남들 다 꺼리는 책 읽고 글쓰는 삶을 택한 죄로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 잘 알고 있다고 위로받는 듯하다. 힘든 길인 건 맞지만 틀린 길은 아니라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격려받는 듯하다. 


인문학 공부의 무서운 맨얼굴은 파고들수록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라는 것을 기쁘게 깨닫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지함을 깨달을수록 신이 났습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진짜 배움이 시작되었습니다. (p.345) 


<공부할 권리>를 읽으면서는 더 많이 더 치열하게 공부하라는 자극을 받았다. 저자는 오랫동안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무지하고 아는 척 하는 게 많은지 깨달았다. 덕분에 시간 강사라는 불안정한 밥벌이를 가지고도 버틸 수 있었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돌아오거나 원래의 기획 의도와 다른 책으로 만들어져도, 독자로부터 인문학 공부를 왜 하냐는 당돌한 질문을 받아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밑바닥을 보았기 때문에 힘든 순간이 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무지한 자의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었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인간답지 못하고 정의롭지 않은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일이 많은 지도 깨달았다. 고병권의 <철학자의 하녀>를 읽으며 '남들의 탐욕을 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탐욕의 습관을 절제하자'는 깨달음을 얻었고, 알프레드 아들러의 책을 읽으며 '진짜 내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은 결코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욕망을 줄일 수 없으면 '다른 삶을 욕망하'고, '진짜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꿈을 찾아 사는 사람들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걸까요. 책임을 다하며 사는 사람들은 꿈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쓸데없는 일과 쓸모 있는 일을 나누고, 꿈을 찾는 삶과 책임을 다하는 삶을 나누고, 나만 잘 사는 것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삶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더욱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p.203) 


과 책임이 별개가 아니라는 조언도 얻었다. 저자는 이십대 후반부터 읽고 쓰고 공부하는 삶을 꿈꿨고 현재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저자와 같은 삶을 꿈꾸지만 쉬이 이루지 못하는 건 꿈과 책임을 별개로 보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을 외따로 여기고 일과 취미를 나누어 생각하니, 꿈은 이루기 어렵고 현실은 팍팍하고 일은 지루하고 취미는 허무하다. 그렇다면 내가 읽는 책,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공부, 내가 하는 일과 취미를 연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현재 내 생활을 이루는 모든 활동들이 언젠가 하나로 연결되리라는 확신은 든다. 글로든 일로든, 아니면 둘 다로든. 확신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나만의 '공부할 권리'를 열심히 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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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4-1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한달 넘게 델꾸 있었는데 이제 주문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키치님 리뷰 너무 좋아서 화르륵 타올랐어요 읽고 싶다는 욕망이 화르르륵ㅋㅋㅋㅋ

cyrus 2016-04-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345쪽 인용문에 공감이 됩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자세는 정말 좋은 거죠.

알라딘 서재/북플은 내 생각이 담긴 글이 공개되는 공간이라서 자신의 무지함 또한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남의 글을 읽다가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공손하게 알려줄 수 있어요. 상대방의 지적을 받고난 뒤에 자신이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면 나의 무지함이 보입니다. 이러면 무지함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데 상대방의 지적으로 인해 자신의 무지함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지함을 깨달으면 조금은 부끄러워도 그냥 좋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 도리어 화를 내거나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서재/북플에 이런 분들을 가끔씩 보게 됩니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우리 시대 여성을 만든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현실문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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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거나 사회적 금기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몹시 끌렸다. 고려의 신하이면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운 이성계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쉽고 편한 친일 대신 고단할뿐더러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반일을 택한 안중근, 유관순 같은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 여고, 여대에 다니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저항한 글로리아 스타이넘,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이들의 삶에 눈을 떴다. 허나 어디까지나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을 뿐, 감히 동경하거나 흠모하지는 못 했다. 그런 말을 하자면 책임이 따를 텐데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아낼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나의 흐리멍덩한 정신을 번쩍 깨우는 책을 만났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시민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58년 맨체스터의 급진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로는 드물게 노예제에 반대하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어릴 때부터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자유롭고 진보적인 집안에서 자랐어도, 여성을 남성의 하인이나 노예, 집안의 사유재산쯤으로 여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기란 어려운 일. 왜 팽크허스트는 직접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을까. 그녀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자기 집 안에서도 남녀의 차별은 존재했다고 말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그녀를 보고 "얘가 남자애로 태어나지 않았어"라고 말한 일은 그녀 마음에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결혼 후 빈민구제위원회에 들어가서 겪은 일들은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빈민 문제를 비롯해 아동 문제, 교육 문제, 노동 문제 등은 남성들이 간과하거나 신경 쓰지 않으며 여성들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느꼈다. 가령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여자는 젊어서 노동 기회를 얻지 못하고 늙어서는 연금을 받지 못해 빈곤에 시달리는 문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맡기고 남성에게는 묻지도 않는 문제 등은 남성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고 해결할 의지도 없기에 여성이 참정권을 얻어 여성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남성들의 전투는 몇 세기 동안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남성들은 이러한 공포와 파괴 행위에 대해 기념비와 위대한 노래와 서사시라는 보상을 받았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서 싸운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숨 말고는 누구의 목숨도 해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이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pp.15-6)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지적하는 영국의 사회 문제가 21세기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다. 오히려 한국은 여성차별을 넘어 여성을 혐오하는 양상마저 나타나는 꼴이라니.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똑똑하고 적극적인 여성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권리를 보호하고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기 몸 하나만 지키는 게 아니라 딸린 가족들과 가까운 이웃들을 돌보고,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게 뭘지 생각한다. 마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들이 기록하는 역사(history)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진정한' 위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기도 무겁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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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honne 2016-07-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님은 이 책도 읽으셨군요!! 네이버 블로그서 뵙다고 여기서도 뵈니, 왠지 더욱 반가운 그런 느낌입니다.^^ 저도 잘 읽어볼께요!!

키치 2016-07-01 14:09   좋아요 0 | URL
thehonne님 반갑습니다!! 저 네이버 블로그에도, 알라딘 서재에도 상주하고 있어요. 자주 보아요 ㅎㅎ 이 책은 북펀드 참여한 걸 계기로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 덧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당신이 옳다 -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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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 자크 아탈리는 이 책에서 '나는 이제 지쳤다'고 선언한다. 오랫동안 세계와 유럽, 조국 프랑스를 개혁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지만, 정치는 나아지지 않고 경제는 나빠지기만 하며 사회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심각해질 뿐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는 각 개인에게 요청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기'를! 


저자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 되기를 체념하거나 꿈조차 꾸지 않고 남들이 정해준 모습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두렵고 게으르고 수동적인 생활에 안주한다. 둘째는 비판하고 시위하고 저항하며 분노를 표하는 것으로 자신이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분노를 표할 뿐 실질적으로 행동을 취하지는 못한다. 셋째는 남이 정한 운명을 거부하고 그들에게 얽매이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 되기'를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간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자신 되기를 택한 사람들은 아주 많다. 예술가들도 있고, 사상가들도 있고, 기업가들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스티브 잡스처럼 유명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사회활동가로 변신한 사람도 있고, 빈민촌에서 값싼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하는 대신 스스로 사업을 벌인 사람도 있다. 남들이 정한 운명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거부하고 자기가 스스로 있기를 원하는 곳에 가서 자기 자신이 되거나 자기가 있는 곳을 자기 자신이 되기에 충분한 장소로 바꾼다면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 되기의 범주에 속한다.


자기 자신 되기는 '사건', '휴지기', '길'이라는 세 단계가 필요하다. '사건'은 안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의지나 욕구가 발현되는 계기다. '휴지기'는 기존의 자기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침묵과 집중, 명상을 하는 과정이다. 휴지기 동안에는 자신의 삶에 가해진 속박과 한계를 파악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이 유일한 것이며 각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마침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해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다섯 단계의 '길'을 걷게 된다. 


모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 대신 창조자가 되어 자신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열망에 따라 정의한 '나만의 의미 있는 삶', 즉 어느 누구도 똑같은 방법으로 디자인해낼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p.197)


이 중에 나는 자신의 유일성을 성찰하는 네 번째 단계가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다른 능력과 개성을 가지고 다른 운명을 사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째서 다들 똑같은 모습이 되고 똑같은 능력과 개성을 가지길 원하며 똑같은 삶을 살길 바랄까. 마음에 피어오르는 꿈이나 욕망을 체념하지도 말고 현실을 비관하지도 말고 오롯이 그것들을 실현하는 삶을 산다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으로서 자기 자신 되기를 요청하는 자크 아탈리의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서 애처롭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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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항력이다 - 무기력보다 더 강력한 인생 장벽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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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 휴일이 더 바쁜 것 같다. 휴일이랍시고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 안을 뒹굴뒹굴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점심 먹을 시간.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 나면 밀린 드라마 봐야지, 인터넷 서핑 해야지, 쇼핑몰 구경도 해야지, 서평도 써야지... 평일엔 분명히 휴일 되면 공원 산책도 하고 겨울옷 정리도 하고 대청소도 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휴일이 되고 보니 자잘한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문제는 저항력이다>는 미루고 피하고 변명하며 오늘도 하지 않는 심리에 관해 설명한다. 대한민국 1호 인지과학자인 저자는 2013년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세상에 내놓고 한동안 다음 책을 쓰지 못 했다. 안정적인 교수직을 버리고 스스로 작가의 삶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미루며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그랬다. 저자는 당장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피하고 변명하며 3년이란 시간을 보낸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미루기, 피하기, 변명하기. 어째 셋 다 내가 참 잘하는 일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지만 하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고, 자괴감과 죄책감, 수치심, 분노, 슬픔에 시달려 마음이 편치 않다면,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당신 스스로 '저항력'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만들어할 일은 제쳐두고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p.9-10)


저자는 전작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 소개한 무기력과 저항력의 차이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 개념에 빗대 설명한다. 니체는 이 책에서 인간의 정신 성장과 인류 역사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 단계로 분류한다. 낙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주인에게 평생 봉사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낙타는 스스로 일을 도모하지 않고 남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기 때문에 무기력에 시달릴 순 있어도 저항력을 가지진 않는다. 사자는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산다. 내면에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무기력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거부하는 힘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저항력을 가진다. 낙타가 '하지 못한다'면 사자는 '하지 않는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그런데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되지도 않는다. '해야 해'라고 말하는 자아와 '하기 싫어'라고 거절하는 자아가 힘겨루기를 하고, '하고자 하는 나'와 '하기 싫은 나'가 마음을 무대로 싸우는 꼴이다. (p.23)


저항력은 '해야 해'라고 말하는 자아와 '하기 싫어'라고 거절하는 자아가 힘겨루기를 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 '하기 싫어'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해야 해'라고 자기 자신에게 되뇌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 낙타가 사자가 된 후 용을 만나는데, 용은 사자에게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의무를 준다. 용의 명령을 이기지 못할 때 사자는 그것으로 그치거나 나쁘게는 낙타로 돌아간다. 


저항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해답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니체가 인간의 정신 성장의 궁극적인 단계로 본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가 놀이를 즐기듯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저항력을 이길 수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큰일은 감당하기 쉽도록 잘게 쪼개서 조금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업이라면 하찮아 보이는 문장이나마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저항력을 이기는 밑거름이 된다.


몰입과 숙달은 우리를 창조성으로 이끄는 두 개의 길이다. 몰입은 어려워도 숙달은 그보다 쉽기 때문에 스미스의 그 주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 준다. 그러므로 저항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숙달되고 습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복과 숙달, 습관이 창의성을 만들고 그 창의성이 우리를 장인에서 예술가로 성장시킬 것이다. (p.306)


저항력은 또한 A라는 일을 하다가 B로 넘어갈 때 생기기 쉬우므로 가능한 한 변화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어 피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고, 꾸준히 하는 습관이 들면 미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이 황금 같은 휴일에 방에 처박혀 서평을 쓰는 것도 몇 년 동안 꾸준히 서평을 써온 습관 덕분이며,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어렵지 않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몰입과 습관의 힘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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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확장하다 -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을 최대로 높이는 법
슐로모 브레즈니츠.콜린스 헤밍웨이 지음, 정홍섭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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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능력은 지능의 여러 면을 한데 모아 실제 방법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훈련을 통해 뇌 능력을 최대화함으로써, 특히 나이가 들어도 뇌가 민감하고 적절한 지각력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뇌 능력의 최대화란 그저 뇌를 더 자극하거나 능력을 향상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략) 이것은 세상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을 더 잘하는 법, 즉 주의해야 할 것과 주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획하며 올바로 결정하는 법을 말한다. (p.4)


스트레스와 뇌 인지능력 분야에서 30년 넘게 연구해온 심리학자 슐로모 브레즈니츠가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두뇌를 최대로 쓴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뇌를 최대한 사용해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뇌의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연습과 훈련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정 연령 이후부터 한정된 뇌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태도'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적응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고 학습을 멈춘다. 경험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안주한다. 


저자는 뇌에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뇌의 능력이 향상된다고 설명한다.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길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학업을 마쳤더라도 독서를 하거나 언어를 배우거나 더 높은 학위에 도전한다. 쉴 시간이 생기는 대로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아 몰두한다. 뇌는 더 복잡한 일을 할수록, 여가활동을 할수록, 운동할수록 능력이 향상된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거나 일만 해서는 인지능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상당한 인지적 노력과 텔레비전에 필요한 것을 비교해보라. 눈 속에서 여명이 붉게 밝아오는 한 여인을 상상하기보다 텔레비전을 켜면 푸른 눈이 아름다운 여인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떤 어셈블리도 필요하지 않다. 마음이 창조하기보다 반응한다. 인지적 노력은 제로에 가깝다. (p.253)


독서는 뇌 능력을 향상시킨다. 독서는 흰 종이 위에 있는 검은 표시들을 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해독하고, 이전 기억들을 분류하고 떠올리고 상상하는 등 뇌의 다채로운 활동을 요한다. 심지어는 종이 위에 쓰여있지 않은 저자의 의도나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해야 한다. 텔레비전 시청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스크린 위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저 보기만 하면 된다. 보는 사람이 이미지를 정확히 해석하고 충분히 이해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다. 뇌가 하는 일이 많지 않다. 


독서 말고도 운동하기, 취미 생활 즐기기 등 뇌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다수 소개되어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뇌 과학의 세계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고, 나이가 들수록 쇠퇴한다고 여겼던 뇌 능력을 연습과 훈련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가 뇌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뿌듯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독(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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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3-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