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저항력이다 - 무기력보다 더 강력한 인생 장벽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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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 휴일이 더 바쁜 것 같다. 휴일이랍시고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 안을 뒹굴뒹굴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점심 먹을 시간.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 나면 밀린 드라마 봐야지, 인터넷 서핑 해야지, 쇼핑몰 구경도 해야지, 서평도 써야지... 평일엔 분명히 휴일 되면 공원 산책도 하고 겨울옷 정리도 하고 대청소도 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휴일이 되고 보니 자잘한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문제는 저항력이다>는 미루고 피하고 변명하며 오늘도 하지 않는 심리에 관해 설명한다. 대한민국 1호 인지과학자인 저자는 2013년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세상에 내놓고 한동안 다음 책을 쓰지 못 했다. 안정적인 교수직을 버리고 스스로 작가의 삶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미루며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그랬다. 저자는 당장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피하고 변명하며 3년이란 시간을 보낸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미루기, 피하기, 변명하기. 어째 셋 다 내가 참 잘하는 일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지만 하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고, 자괴감과 죄책감, 수치심, 분노, 슬픔에 시달려 마음이 편치 않다면,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당신 스스로 '저항력'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만들어할 일은 제쳐두고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p.9-10)


저자는 전작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 소개한 무기력과 저항력의 차이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 개념에 빗대 설명한다. 니체는 이 책에서 인간의 정신 성장과 인류 역사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 단계로 분류한다. 낙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주인에게 평생 봉사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낙타는 스스로 일을 도모하지 않고 남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기 때문에 무기력에 시달릴 순 있어도 저항력을 가지진 않는다. 사자는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산다. 내면에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무기력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거부하는 힘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저항력을 가진다. 낙타가 '하지 못한다'면 사자는 '하지 않는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그런데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되지도 않는다. '해야 해'라고 말하는 자아와 '하기 싫어'라고 거절하는 자아가 힘겨루기를 하고, '하고자 하는 나'와 '하기 싫은 나'가 마음을 무대로 싸우는 꼴이다. (p.23)


저항력은 '해야 해'라고 말하는 자아와 '하기 싫어'라고 거절하는 자아가 힘겨루기를 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 '하기 싫어'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해야 해'라고 자기 자신에게 되뇌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 낙타가 사자가 된 후 용을 만나는데, 용은 사자에게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의무를 준다. 용의 명령을 이기지 못할 때 사자는 그것으로 그치거나 나쁘게는 낙타로 돌아간다. 


저항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해답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니체가 인간의 정신 성장의 궁극적인 단계로 본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가 놀이를 즐기듯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저항력을 이길 수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큰일은 감당하기 쉽도록 잘게 쪼개서 조금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업이라면 하찮아 보이는 문장이나마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저항력을 이기는 밑거름이 된다.


몰입과 숙달은 우리를 창조성으로 이끄는 두 개의 길이다. 몰입은 어려워도 숙달은 그보다 쉽기 때문에 스미스의 그 주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 준다. 그러므로 저항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숙달되고 습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복과 숙달, 습관이 창의성을 만들고 그 창의성이 우리를 장인에서 예술가로 성장시킬 것이다. (p.306)


저항력은 또한 A라는 일을 하다가 B로 넘어갈 때 생기기 쉬우므로 가능한 한 변화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어 피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고, 꾸준히 하는 습관이 들면 미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이 황금 같은 휴일에 방에 처박혀 서평을 쓰는 것도 몇 년 동안 꾸준히 서평을 써온 습관 덕분이며,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어렵지 않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몰입과 습관의 힘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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