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건축 행위는 정말 낭비였을까? 이들은 왜 이런 낭비를 하면서 힘들게 건축물을 지은 것일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들이 이렇게 낭비를 한 것은 이런 행위가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 P180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 엄청난 돈을 쓰고 국가의 모든 에너지와 기술을 집중해야 했다. 이 건축 과정에서 만약에 만 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고 10조의 돈을 낭비했다고 치자. 하지만 이들이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집트를 만만하게 여긴 이웃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가 침략해서 10만 명이 죽고 100조원의 재산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라미드를 짓는 것이 열배남는 장사인지도 모른다. - P180
지금은 한 국가의 최첨단 양자역학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 원자폭탄이나 전투기를 만든다. 원자폭탄을 만든 이들은 핵실험을 하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전 세계에 배포한다. 비키니섬에서 실행된 수소폭탄 실험의 버섯구름은 수천 년 전 사막 위의 피라미드의 모습과 같은 기능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피 같은 세금으로 국방비를 쓰는 것은 고대에 피라미드를 지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 P181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중학교 물리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다. 에너지는 그 모양이 바뀔 뿐 총량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하면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서로 바뀔 뿐 에너지 총량은 변화가 없다. - P181
위치에너지는 ‘질량×9.8(중력가속도) X 높이‘다. 고인돌을 예로 들어 보자. 고인돌은 10톤 정도 되는 커다란 바위가 3미터가량 높이에 올려져 있는 형태다. 이 경우 위치에너지는 10톤X9.8x3미터=294,000이 된다. 고인돌이 이만큼의 위치에너지를 가지는 것은 백명 넘는 사람이 수개월 동안 노동, 즉 운동에너지를 썼기 때문이다. - P182
모든 건축물은 누군가가 돈이나 권력을 써서 운동에너지인 노동력을 만들고, 이 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바뀐 결정체‘다. 만약에 우리가 어느 건축물의 위치에너지를 구할 수 있다면 그와 동가인 운동에너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운동에너지를 비교하면 누구의 권력이 더 큰지 알 수 있다. - P182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위치에너지 값이 커지려면 상층부에 큰 덩어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시를 하기 위해저는 건물을 가분수 형태로 지어야 한다. 중국 베이징에 지어진 CCTV사옥은 이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 P186
과시를 하는 인간의 모습은 건축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높은 곳에 큰 부피의 덩어리를 올려놓으면 위치에너지가 커져 과시할 수 있다는 원리는 헤어스타일에도 적용된다. - P188
우리는 머리를 매만질 때 스프레이나 왁스를 써서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세우거나 볼륨감을 키운다. 그 이유는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높은 부분이 머리 정수리이고 이곳에 볼륨이 있어야 위치에너지가 커지고 과시가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빠지면서 머리가 주저앉으면 왠지 자존감이 낮아진다. 위치에너지가 줄어서다. 이럴 때 머리의 볼륨감을 회복하기 위해 현대인들은 파마를 한다. - P188
갓은 머리카락과 가장 비슷한 재료인 말총을 가지고 볼륨감이 큰 모양을 만든 것이다. 양반의 갓은 높았고 중인 갓은 낮았다. 이 높이와 부피 차이가 신분의 차등을 보여 준다. - P188
신라 시대 금관을 포함해 모든 왕관은 대체로 머리 위로 삐죽삐죽 올라간 모양새를 띠고 있다. 머리 위 위치에너지를 높이기 위한 디자인 장치다. 조선 시대 여성의 경우에는 뒤로 땋은 머리를 위로 둘둘 말아 높이 쌓는 ‘가채‘를 했다. 이 역시 위치에너지를 통한 과시다. - P189
반대의 경우도 있다. 청나라 시대의 변발은 정수리까지 모두 삭발하고 뒷머리만 남겨 놓는헤어스타일이다. 아마도 권력자가 대머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자신이 머리가 빠지고 위치에너지가 낮아지니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온 국민을 대머리로 만드는 헤어스타일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 헤어스타일 권력의 ‘하향 평준화‘라고 할 수 있다. - P190
흔히 건축은 인간만 한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동물도 건축을 한다. 새도 둥지를 만들고 심지어 비버는 댐도 건설한다. MIT의 학교 상징 동물이 비버인데, 바로 비버가 댐을 짓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이다. 곤충도 건축을 한다. 거미, 벌, 개미는 집을 짓는다. 이같이 집을 짓는 건축 행위는 동물의 본능이다. - P193
인간의 건축에는 자연 속의 건축에는 없는 특징이 있다. 인간은 안식처를 만드는 것 외에 형이상학적인 목적만으로도 건축을 한다는 점이다. - P193
형이상학적 목적으로 지어진 최초의 건축물은 기원전 1만~8천 년경에 만들어진 ‘괴베클리 테폐‘다. 터키 남부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장례식을 위한 것이었다. - P193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은 건축으로 종교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 P195
유대교는 일체의 형상 조각을 우상숭배라고 하여 금한다. 대신 텍스트로 된 계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유대인이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건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 P195
건축과 지나치게 연동된 종교들은 신전이 건축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건축물을 구심점으로 모여야 하는데, 신전 건축에서 멀어질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 P195
건축물 없이 문자 같은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 유목 민족의 종교는 전파에 유리하고 건축물이 지어진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 P196
건축은 종교를 강화하는 장치지만 텍스트인 경전은 종교의 전파에 효율적인 미디어다. 그래서 세계적 규모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모두 각각 성경, 코란, 불경 같은 소프트웨어인 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들이다. - P196
물론 종교가 전파된 후 그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강화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성당, 사원, 절 같은 건축물이다. - P196
후발 주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건축에 기초한 선배 종교들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인류 문명에서 건축보다 뒤늦게 자리 잡은 문자 체계와 결합한 덕이다. 문자, 양피지, 종이의결합은 종교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건축과 문자의 경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P196
초기에는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적어서 건축의 영향력이 컸지만 금속활자의 발명 이후 문맹률이 떨어지면서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문자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훨씬더 커진 상태다. 게다가 인터넷 시대에는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 P196
상가는 보통 배후에 아파트 단지가 있을 때 만들어지는 상업 시설이다. - P198
실리콘밸리 IT 산업 생태계를 보면 차고 창업처럼 초기투자비용은 적게 들지만 무한 경쟁 시스템을 통해 살아남은 기업만 공통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와 동일한 시스템이 한국의 상가 교회 시스템이다. 창업의 문턱은 낮되 무한 경쟁을 통해 실력 있는 목회자가 살아남아 대형 교회로 성장시키는 시스템이었다. - P199
누군가가 단상 위에 서 있으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많은 이가 그의 추종자로 느껴치고, 그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숫자만큼 큰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대중이 바라보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 P202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자리‘는 직함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사람이 위치한 물리적인 공간이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면 권력이 생긴다. - P202
우리는 정치 집회를 할 때 주로 광화문 광장에 모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 중심은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 -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축선상의 중심 공간이 광화문 광장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집회는 단순히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는 의미를 떠나 권력의 중심축을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 행위다. - P208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이러한 중요한 축의 선상에 위치한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권력의 장악을 보여주는 것이다. - P208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좌우대칭이고 궁전의 입면도 좌우대칭이다. 피라미드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입면도 좌우대칭이다. 두바이 왕궁 앞의 길은 대놓고 베르사유 궁전을 흉내 낸 좌우대칭이다. 미 국회의사당 앞길,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길 모두 좌우대칭의 모습이다. 권력을 나타내는 공간이 좌우비대칭인 경우는 없다. - P209
왜 권력의 공간은 모두 좌우대칭일까?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규칙을 찾는데,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규칙 중 하나가 시각적 좌우대칭이다. 어느 공간이 하나의 규칙을 보일 때 그 공간은 하나로 인식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군복을 입고 있을 때 하나의 군대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좌우대칭의 공간은 하나의 규칙하에 놓인 하나의 큰 공간이 되는 것이다. - P209
규칙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중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공간 내에 권력의 차등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09
거대한 건축물과 공간을 좌우대칭이라는 규칙하에 묶어 놓으면 그 안의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작은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공간 구성은 개인의 존재감을 억누르는 전략인 것이다. - P210
좌우대칭으로 이루어진 통합된 하나의 건축 공간은 조직을 하나 되게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스타일로 된 모든 유니폼도 조직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 P211
건축 공간의 좌우대칭 배치는 공간을 하나로 묶어 커다란 존재감을 만들어서 개개인을 스케일상으로 압도하기 위한 건축적 전략이다. - P211
현대에 와서는 시선의 집중을 받아 권력을 창출하는 방법이 건축 외에 하나 더 생겼다. TV, 영화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TV에 많이 나오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된다. 현대인들은 신전 꼭대기를 우러러보기보다는 TV나 스마트폰 스크린을 더 많이 쳐다본다. 그 모니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P211
건축에서 미디어로 양상만 바뀌었을 뿐 바라보기와 권력의 본질은 그대로다. - P212
TV나 영화에 나올 수 없는 일반인들은 그런 권력을 가지기 위해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다. 내 사진을 누군가 본다면 내가 권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감시를 받으면 권력을 빼앗기지만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 주면 오히려 권력을 갖게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셀카를 찍어서 SNS에 열심히 올리는 사람은 십시일반 자신의 권력을 만들고 있는 중인 것이다. - P212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가진 연예인과 과거의 권력자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연예인의 권력은 영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5천년 전 수메르문명의 권력자는 건축물을 만들고 죽을 때까지 권력을 점유했다면 지금의 연예인은 방송국의 시스템을 잠시 빌려 아주 짧은 기간 권력을 가진다는 점이 다르다. - P213
방송을 통한 권력은 일시적일 뿐 프로그랩의 종영과 함께 끝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미디어 시스템을 장악한 사람이 이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방송국 시스템이 곧 과거의 신전 건축이다. 방송국 사장이 이 시대의 제사장인 것이다. 방송국 사장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느냐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상파 TV의 사장 자리를 놓고 공방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 P213
현대는 미디어가 권력을 만드는 세상이다. 즉 시청률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PD는 과거의 건축가가 했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권력 창출자다. 앵커맨은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큰 권력을 갖는다. 손석희 앵커같이 시청률이 높은 뉴스의 앵커는 이 시대의 중요한 권력자다. 이들도 고대의 신전 꼭대기에 서 있는 제사장과 같다. - P214
권력이 생겨나면 함께 따라오는 것이 중독이다. 권력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연예인들이 인기가 내려갈 때 힘든 것은 이러한 권력의 중독에서 벗어날 때 생기는 금단현상 때문이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권력은 찰나성이 더욱 심하다. - P214
우리는 건축과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만드는 법을 안다. 이제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을 어떻게 잘 분배해서 균형을 맞추고 상호 견제하게 만드느냐다. - P214
건축에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해주는 특별한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계단‘이다. 계단을 살펴보면 우선 재미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그리스부터 잉카문명까지, 시기적으로는 수천 년의 건축 역사 동안 계단 한 단의 높이는 대략 18센티미터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P214
계단의 높이가 비슷한 것은 인체의 크기가 지난 수천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은 고관절, 무릎, 발목, 발가락이라는 신체 관절 부위를 가지고 직립보행하는 인간이 좁은 면적 안에서 다른 높이의 공간으로 가기 위해 고안한 장치다. 인체 모양이 극단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계단의 모양과 크기는 유지될 것이다. - P215
건축에서 가장 확실하게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있는 자리는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 있는 자리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더 가진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P215
높은 곳이 권력의 자리라는 것은 면적과도 관련이 있다. 대체적으로 높은 곳은 좁다.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이 넓어야 구조적으로 안정되기 때문이다. 산을 보더라도 높은 정상 부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상대적으로 희귀한 공간인 높은 곳은 희소성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권력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한다. - P216
우주 어느 곳을 가든지 만물은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중력 때문에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가만히 있으면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것을 거슬러서 높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당연히 힘이 남는 권력자들만 가능한 일이다. - P216
우리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이러한 권력 추구의 본능이 반영된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권력욕이 많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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