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것만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 상황이 어둡고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영화 속 예수의 모습에 대해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예수가 영화 속에서 그랬던것처럼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사고를 멈출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삶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힘들고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경범죄로 끝나지 않았다. 흑인들은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들고일어났다.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번진 이러한 움직임은 흑인 인권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흑백분리법 역시 1년 뒤 폐지되었다.
이 사건은 법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옳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법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때론 무고한 사람이 아닌, 살인자를 보호하는 법을 지키는 것이 이치에 맞을 수도 있다. 또한 차별적인법들, 이를테면 젠더 이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거나 전쟁·폭력에 반대해 병역을 거부하고 평화적인 복무 선택권을 주장하며 법에 대항하며 싸우는 행동이 옳은 일일 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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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숟가락에 관한 우화는 너무도 명확하게 삶의진실을 짚어준다.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이라는 점.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 세상의 어둡고 부정적인 것만 확인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사람은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곳 같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천국을 누리고 있다. 인식을 바꾸고 깨달은 사람에겐 지옥도 천국이 된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 중 <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런말을 썼다.
내가 그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도 햇빛 아래 서 있지만 태양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뿐그들은 오직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그 그림자를 자신의 법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 것을.
그렇다면 그들에게 태양이란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 외에 무엇인가?
이 글에서 태양은 마주 보는 자에게 따뜻한 빛을 주지만 등진자에게는 그늘만 드리우는 존재다.

나의 스승인 혜원 스님은 예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다. 인간들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인간은 자신들이 걸어야 할 대지가 날카로운 가시와 돌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걷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신발을 만들어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땅을 부드러운 가죽으로뒤덮는 것이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발에 신발을 착용해야 하는변화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두 번째 방법은 아무런 변화 없이 원래대로 걸어다니면 되었다. 스승님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 세상 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세계가 가죽으로 뒤덮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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