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꽁꽁 숨겨둔 채 실컷 변죽만 울리다가 그냥 돌아섰던 기억, 혹시 있으신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게도 그런 경험 한두 번쯤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사춘기 시절의 수줍은 고백담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요.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할 말 못하고 애면글면 속만 끓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지만 말입니다.

 

청소년기에 저는 누구나 어른이 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언제 어느 때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교과서에서 배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자유는 청소년기에 더 많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참 순진하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시절에는 저보다 더 순진한 사람들이 어디를 가나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른들에게 있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책에서는 속 시원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더군요. 어렸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책이 어른이 된 후에도 많은 위안이 되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었는데 제게는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없었습니다. 논리는 없고 오직 이념만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책에 빠져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따금 '제국의 위안부'와 같은 한줌 값어치도 없는 책들이 출간되기도 하지만 그거야 얼마든지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겠지요.

 

무슨 말만 하면 종북이니,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이념적 단어들이 모든 논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가끔 대한민국에서는 말할 수 있는 자유보다 쓸 수 있는 자유가 더 폭 넓게 보장되는구나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읽을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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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면도 확실히 있네요.^^
그런데 책에도 아직 그 경계는 있는듯해요.
나쁜책 좋은책 ..하며..표현에 대한 고르기 랄까..
언어 등급이 있는것 같다고 느끼는 적도 있어요.
약간 더 나가면 외설처럼 빼버리고, 확 나가지
못하는 애매한 선 위에 문학이 있는건 아닌가...
할 적이 있거든요.ㅎㅎㅎ

꼼쥐 2016-01-15 14:46   좋아요 1 | URL
그렇죠. 아무래도 유교적 전통이 오랫동안 지켜져 온 우리나라에서 서구나 일본처럼 적나라하게 쓴다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책이 좋은 것 같아요. 누구를 붙잡고 대화하다가 괜한 소리로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장소] 2016-01-15 21:04   좋아요 0 | URL
맞아요..거침없는 표현이나 그 아슬한 경계를 문학이 대변해주기도 하죠.저도 그래서 책이 도피의 혹은 우회의 수단이라고 늘 생각하는 1인 입니다.^^

우민(愚民)ngs01 2016-01-14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요
그래도 가끔은 출판계에도 기득권 세력이 그들만의 홍보와
텃새 나아가 끼리끼리 표절도 묵인해 주는 나쁜 관습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 까요?

꼼쥐 2016-01-15 14:48   좋아요 1 | URL
작년에 있었던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죠. 어디 그분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다만 그분이 유명한 죄로 시범케이스가 되었겠죠. 출판계도 의외로 좁아서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니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았겠죠. 당연히 고쳐져야 할 일이지만.

초딩 2016-01-15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콜로세움의 던져주는 빵을 게글스럽게 먹느니, 담장아래에서 참을 인자 세번 쓰며 책을 읽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백년에 한 번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더 없이 좋을 것 같구요. 딱히 바라진 않지만 :-)

꼼쥐 2016-01-15 14:50   좋아요 2 | URL
정말 멋진 비유입니다.^^
작금의 세태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무자비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영국의 모 방송사에서는 그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냈나 보다. 뭐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을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조금 딱하기도 하고 이따금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나 모임, 정당 등 여러 사람이 모인 어떤 조직에 몸을 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무자비한 사람이 대우를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닥 새로울 것도 없지만.

 

심리학자들은 무자비한 사람을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성향 등 세 가지로 분석한다고 한다. 무자비한 사람들은 이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한 가지만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오늘 마키아벨리즘 성향의 원칙주의자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말은 참 근사해 보이고 조직 내에서도 원칙주의자를 신봉하거나 자신도 그와 같이 되려고 동경해 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긴 원칙주의자로 불렸던 여당의 당대표를 대통령으로 뽑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지금 요 모양 요 꼬락서니가 되었으니 내 결론이 어떤 것일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앙하거나 동경해 마지 않는 '원칙주의자'에 대해 나는 왜 그토록 싫어하게 되었을까. 적어도 '원칙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를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여전히'원칙주의자'를 좋아하고  그들은 어디서든 인기가 있다고 말이다. 어느 패널이 토론에서도 말했지만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35%의 국민들은 지지할 거라고 하지 않던가. 맞는 말이다. 그것은 다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말해보면 이렇다.

 

첫째, 원칙주의자가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원칙이라는 게 과연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 동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혼자만 옳다고 믿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다. 소위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과 시간을 내어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믿는 원칙 중 상당 부분이 사회적으로 결코 동의될 수 없는 독선적인 원칙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된다. 예컨대 원칙주의자가 믿는 것은 단지 그가 믿는 원칙일 뿐 그 원칙이 정당한 것인가는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원칙의 정당성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원칙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둘째, 원칙주의자는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도 평화를 자주 언급해서 하는 말이다. 그 둘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장담한다. 원칙주의자는 대개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특히 원칙주의자가 조직내 서열의 상위를 차지했을 때) 평화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힘에 의한 복종일 뿐 진실한 평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원칙주의자를 잠재된 대결주의자로 인식한다. 심하게 말하면 호전주의자인 셈이다. 예컨대 원칙주의자의 조직내 서열이 낮아지거나 동등해지기만 해도 그는 당장에 자신이 숨겨놓은 발톱을 드러낼 게 뻔하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화는 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용과 배려에 의해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의 냉정함, 또는 무자비함,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서열에 의한 복종이 유지될 때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들은 대개 자신을 아끼는 나르시시즘 성향도 강한데 달리 말하면 그들은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은 서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결부되어 자신을 서열의 맨꼭대기에 위치하게 하도록 한다. 베른대학의 대니얼 스퍼크 교수는 사회적 성공이 아닌 실제 삶에서는 관대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경향이 있다고 말하지만 원칙주의자들에게 그것은 허황된 말로 들릴 것이다. 나 또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를 원하는 것도 아니요, 원칙이나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미워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원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무자비함, 그것을 미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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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이 사회를 지켜나가는게 아니라 원칙과 함께하면서 변칙이 가끔 기적을 만들어 내는걸 무수히 봐왔는데도 곧잘 잊곤 하죠.원칙이 대세니 ㅡ그게 승리한 걸로 보일지 몰라도 ㅡ대게 변화는 변칙에서 오곤 하죠.
구원같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늘 같은 노선이 아닌
일탈같은 상황에서 만나지고 말예요. 제 말은 다분히
환상적 측면을 가져가지만 앞으로 미래는 보통 ㅡ의 미래가 아닌 돌연변이가 세상을 바꿀것이란 말에 저는 일견 동의하는 쪽입니다.
순풍에 돗단듯 ㅡ이 아니라 역풍에서 활로가 나올 수 있는 것 처럼 ㅡ

꼼쥐 2016-01-12 12:24   좋아요 1 | URL
국가든 기업이든 발전의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의 원칙과 원칙준수의 필요성이 전재합니다. 그것은 저도 인정하는 바이고 누구나 수긍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장소 님의 말씀처럼 작금의 대한민국 경제 규모나 발전단계에서는 원칙보다는 어느 정도의 변칙이나 일탈이 필요하겠지요. 자유를 경험한 세대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행태는 영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6-01-12 13:3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다들 유신이니 민주화니 ..못 놓고 머릴 그쪽으로 두면서도 회의에 회한에 젖는게 아닌가 해요.스스로 뭔가 한다는 자각 ㅡ개개인이 ㅡ

마립간 2016-01-12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칙주의자이나 플라톤(-노자)주의자로서 말씀드리면,

제 의견은 세상의 모든 일이 원칙으로 이뤄졌다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적절하게 원칙을 깨거나 디오게네스(-양주)주의적인 면 최선-최적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경험한 세상-사회는 원칙을 지켜서 최선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원칙을 깼기 때문에 최선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에는 사회적 합의, 평화주의를 원칙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선택은 개인의 가치관이겠지만요. (강간살인자, 전쟁 도발 정치인에 대한 비대결주의의 입장에는 어떤 것이 가능할까요?)

(꼼쥐 님께서 제 서재를 자주 방문하셨다는 전제 하에 제가 사용하는 용어로 설명하자면, 저는 플라톤-노자주의 선호자이지만, 강플라톤-노자주의자는 아닙니다.)

꼼쥐 2016-01-12 12:30   좋아요 1 | URL
때로는 강요된 원칙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정한 위치에 잇는 공인, 타인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세운 원칙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마치 패배나 굴종으로 오인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오히려 몸을 낮추고 그들의 의견을 따라갈 필요가 있는 것이죠. 백수가 자기 혼자서 어떤 원칙으로 살아가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원칙을 준수하는 삶이 더 나을 수도...

마립간 2016-01-12 12:33   좋아요 1 | URL
꼼쥐 님의 글의 의도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적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언어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사회를 보는 저의 의견입니다.

꼼쥐 2016-01-13 15:58   좋아요 0 | URL
저는 자신의 의견을 누구나 마음놓고 개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마립간 님처럼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정중하고 논리적인 말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하고요. 예컨대 다짜고짜 욕설이나 상스러운 말을 하면서 논리도 없는 말을 댓글에 다는 경우에는 저도 대꾸할 여력도 없어서 삭제하곤 하지요.
 

대체로 자기 주장이 강하거나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 참 야무지다' 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여자에게 특히 더 심하다. 더이상 반박할 말이 없어 그(또는 그녀)의 똑똑함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 말에는 사뭇 가시가 돋곤 한다. 아니라고 해도 목소리 톤이나 얼굴 표정에서 금세 드러난다. 다들 알지 않나. '그래, 너 잘났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은 살아남기도 어렵고, 남들과 적당히 융화하며 산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우리 사회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산업사회 초창기에 횡행하던 편법에 의한 성취, 불법적인 부의 축적 등 불법과 편법에 의한 공정성의 상실이 가장 크겠지만 유교적 계급의식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그로 인해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에 대한 비아냥, 불신, 반목 등 부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가 하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내면에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 바른말을 하면 '네가 뭘 알아' 내지는 '감히 내 앞에서...'와 같은 식의 반응을 보이는 선민의식을 갖게 되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수세력의 공격도 이러한 유교적 선민의식에 바탕을 두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폐단을 없애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경제적 이익을 편취하기 위한 불법이나 탈법은 여전히 성행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은 산업사회의 초창기보다 훨씬 높아졌다. 예컨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비서관의 취직을 돕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모습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흙수저 논란을 불러온 이러한 불법행위는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더욱 힘을 얻을 게 뻔하다.

 

대한민국에서 젊은 인재는(그것도 고급 인재는 더더욱) 살기 어렵다. 젊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는 이유는 비단 취직을 하지 못해서가 아닌 듯하다. 날씨도 추운데 이런 가슴 시린 이야기를 하게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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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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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이지만 이따금 대필을 부탁받는 경우가 있다. 틈만 나면 열심히 책을 읽는 덕에 남들 보기에 나는 글도 잘 쓰는 사람이려니 하는 선입견을 여러 사람의 머리에 각인시켜 놓았나 보다.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본의가 아니었다는 말과 함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이러이러한 주제로 짧은 글 하나 써줄 수 있겠나?'하는 말이나 그와 비슷한 부탁을 자주 듣는 까닭에 그에 대한 변명이나 완곡한 거절의 표현을 한두 마디쯤 늘 준비하고 다닌다. 이를테면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신 것은 감사하나 저는 사실 글을 쓸 줄 모릅니다.'로 시작하여 이차저차한 이유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내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재주도 없는 놈이 덥석 떠안았다가 뒷감당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것보다야 낫지 싶어서 글을 대신 쓰는 일만큼은 철저히 거절한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떠안는 일도 더러 있다.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썼음직한 글을 내게 들고와서는 적당히 고쳐달라고 막무가내로 떠맡기는 경우이다. 그들의 부탁은 대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니 나보다는 낫겠지'하는 식으로 선제공격을 함과 동시에 내가 무르춤하며 거절의 말을 내비칠라면 '엉성해도 괜찮으니 고쳐만 주게' 일침을 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게 억지로 맡은 일을 처리하자면 나 또한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한다. 그야말로 사서 하는 고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도 한가하고 여유가 있을 때면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남의 돈을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마음 놓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말이지... 아무튼 나는 그렇게 맡은 일을 한껏 뒤로 미루다가 이 일 저 일이 한꺼번에 닥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서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늘 한결같다. '아,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매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글쓰기 관련 서적을 읽을 생각은 도통 하지 않았다. 이 무슨 똥배짱인지 모르겠다. 그와 같은 책을 읽는다고 없는 재주가 갑자기 튀어나올 리 만무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글쓰기에 관한 상식 일변도의 그렇고 그런 내용일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컸기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쓴 <서민적 글쓰기>를 읽게 된 것은 지인의 권유에 등 떠밀리다시피 한 일이었다. 모 인터넷 서점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로서는 책을 읽기도 전에 약간의 열등의식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시절 저자의 글쓰기 경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의외로 술술 읽혔다.

 

책은 독자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경험을 줄기차게 언급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소심한 성격과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자신의 책을 몇 권 출간했으나 모두 말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더 혹독하게 글쓰기 연습을 했음을 고백한다.

 

"짬날 때마다 책을 읽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한 달도 안 돼 노트를 바꿔야 할 정도였다. 노트가 한 권 두 권 쌓여갈 때마다 글쓰기 실력도 나날이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그맘때 "내가 나중에 유명작가가 되면 글쓰기 연습한 이 노트들도 값어치가 올라가겠지?" 하는 상상을 즐겨하곤 했다. 그런 생활을 7년쯤 하자 학교에 있는 내 캐비닛은 다 쓴 노트로 가득 찼다." (p.126)

 

내가 특히 관심을 두고 읽었던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쯤에 실려 있는 '서평은 어떻게 쓰는가'였다. 나도 이따금 책을 읽은 후 나의 블로그에 서평이랍시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을 가끔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어떤 체계가 있는 글쓰기보다는 내 나름대로의 막무가내식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기회가 되면 깔끔하고 멋진 글을 한두 편쯤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그것은 책으로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작은 갈망인 셈이다. 칼럼과 서평을 위주로 글을 써왔던 저자는 서평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선 편하게 쓰고, 스포일러를 조심하고, 자기주장과 책 인용을 구별하고, 모르는 이야기는 쓰지 말고, 지나친 권장은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저자와 조금 다르다. 글쓰기 실력이 연습을 통해 극복되고 향상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끌리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연습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소설과 같은 장문(長文)이 아닌 서평이나 일기 형식의 단문(短文)을 위주로 쓰는 일반 블로거의 입장에서 '기-승-전-결'의 구성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그리 오래 연습하지 않아도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자가 없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2% 부족한 셈이다. 그것은 바로 필자의 경험이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지 않은 글은 아무리 잘 쓴 글일지라도 재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낱글자의 배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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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며칠전에 꼼쥐님 서재를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써주시는 글이 무척 재미있어서 틈나는대로 읽고 있어요...!
막문단을 읽으니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와서 댓글 남겨요.
 

이 달 20일이면 아들의 열세 번째 생일, 우리나라 나이로는 이제 열네 살이 된다. 곧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내 눈에 아들은 여전히 어리게만 보인다. 생일 선물로 아들이 원하는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생일 선물을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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