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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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였다. 길지 않았던 설 연휴를 시샘하듯 온종일 지척지척 겨울비가 내렸고, 바람마저 사뭇 거칠었다내내 어두웠기에 실내에서도 하릴없이 불을 밝혔다. 안온한 우울이 축축하게 묻어나는 오후, 아슴아슴 쏟아지는 졸음을 억지로 쫓아가며 책을 펼쳤다. '그래, SF 소설을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지.'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던 것이다. '미래를, 혹은 과학을 논한다는 건 언제나 황량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니까. 메마르고 거친 느낌을 중화하는 데는 역시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끈적끈적한 우울이 방안 가득 퍼지는 날씨가 좋지.' 가족들과 헤어져 숙소로 복귀했던 나는 그렇게 내처 책을 읽었다. 쓸쓸함을 넘어 청승맞은 느낌마저 감도는...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구매했던 건 열흘도 더 지난 일이었다. 메마른 날씨로 인한 건조한 분위기 탓이었던지 아니면 일이 바쁘다는 핑계가 발목을 잡았던 것인지 좀처럼 독서에 속도를 붙이지 못했던 나는 두 자리 숫자의 페이지를 겨우 넘긴 채 책상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위치만 바꿔놓고 있었다. 그렇게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듯한 위기를 겨우 막았던 건 어제의 궂은 날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울한 감정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그런 날씨에 혼자라는 외로움과 커피 한 잔이 더해져 나는 그만 우울함에 취해 정신마저 몽롱해진 기분이었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p.214 '감정의 물성' 중에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하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김초엽 작가는 1993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지극히 세련되고 정제된 문장과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린 전문적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멋들어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SF소설은 몇몇 마니아 집단을 제외하면 독자층이 그닥 두껍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SF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간 존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헤치는 테드 창과 같은 걸출한 작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 역시 테드 창의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SF소설 마니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SF소설이라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아보지 못할 세상, 다음 세대나 그다음 세대나 겨우 살아볼 수 있는 세상을 지금 세대가 겨우 맛보기로 미리 앞당겨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간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한탄 혹은 인생 자체의 덧없음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고를 철학적 전제로 하는 SF소설은 소설 전반에 흐르는 감정이 '우울'일 수밖에 없고, 나 역시 비슷한 성향의 인간이고 보니 SF소설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지. 언젠가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출항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슬렌포니아 근처의 웜홀 통로가 열리지 않을까…….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p.17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김초엽의 소설은 SF소설의 기본적인 특성을 잘 살린, 말하자면 기본기에 충실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만 하더라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안나는 냉동 수면의 '안티프리저'라고 불리던 유기물질 혼합 용액을 연구하던 과학자로서 남편과 아들을 먼저 외계 행성인 슬렌포니아로 떠나보내고 혼자 지구에 남아 남은 연구를 계속하다가 과학의 발전으로 슬렌포니아로 가는 항로가 영영 끊겨버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불쌍한 노인이다. 자신이 개발한 딥프리징 기술을 통해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면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이 출발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안나는 오늘도 폐기 예정인 우주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삶의 영역이 우주로 확장되었지만 인간의 생명이 유한한 것도,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반드시 기쁜 일만 선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감지된다. '스펙트럼'에 등장하는 할머니 과학자도, 공생 가설에 등장하는 류드밀라도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잊혀진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잊지 않는다. 과학이 비록 인류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를 되살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곰곰 되새기면서.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남미에, 서부 미국에, 인도에, 모두 흩어져서 살겠지. 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p.53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SF소설이라는 게 본디 과학을 통해 한계 너머의 세상을 갈구하면서도 사랑, 희망, 그리움 등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하려 드는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과 한계 내에서 안주하려는 이중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SF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날씨가 중요하다고 믿는다예컨대 맑고 건조한 날씨에는 SF소설에 손이 가지 않다가도 어제처럼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방안 가득 우울이 내려앉은 날에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멀고 먼 원시 과거의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악수를 청하고 싶은 것이다. SF소설은 그렇게 쓰이고, 또 그렇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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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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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당신의 기억이 나의 기억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서로의 기억과 기억이, 당신의 과거와 나의 과거가 서로의 갈피 속으로 거부감 없이 갈무리되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사랑에 무지했던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 상대방의 기억을, 흔하지 않은 과거를 서로의 기억 속에 더함으로써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는 걸 회상과 되새김을 통해 배우곤 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한 살풋한 기대와 떨림이 알 수 없는 불안을 억누르는 동안 우리의 곁을 스쳐갔던 여러 계절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오늘처럼 어둡고 이따금 물기 없는 눈이 흩어지듯 내리는 날, 장혜령의 에세이 <사랑의 잔상들>을 읽는다는 건 꽤나 운치 있는 일이지만 현실로 통하는 여러 통로들을 차단한 채 무작정 혼자가 되고 싶은 감정에 휘말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현실로부터 한발 비켜선 듯한 느낌은 내가 마치 투명 망토를 입고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올라 까마득한 곳에서 현실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합니다.

 

"단 한 번도 지우개를 가진 적이 없었다. 생의 핵심을 그린 적도 없었지만 지우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지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걸 그린 캔버스는 어디에 있을까. 분명 우리는 매일 쉼 없이 어딘가를 오갔는데 그건 어떤 지도에도 표시된 적이 없다. 눈길 위에 새겨진 바퀴 자국, 차창에 부딪힌 새의 주검. 분명 우리는 지운 적이 없었다." (p.60)

 

학습을 통해 억지로 주입하거나 세월을 대가로 어렵게 얻어진 것들만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기억이 사랑이라는 전파를 타고 무한대의 용량으로 밀려와 내 기억 속에 너무도 쉽게 스며들었을 때, 그것은 마치 하나의 기적처럼 기억에 대한 나의 편견을 부숴버렸습니다. 단 몇 차례의 눈길과 작은 관심만으로도 그 많은 기억들이 내게 옮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고, 처음으로 사랑에 눈 뜬 풋내기는 비로소 사랑의 기적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한 점과 또다른 타인의 한 점이 만나는 이미지를 목격한다. 개별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사건(언제나 축적된 시간 속에서, 그를 통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곧 사건이다), 그러나 맞닿는 순간 서로의 과거를 포용한다. 포용한다는 것은 서로의 속내를 듣고 이해하거나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두 개의 사건이 맞부딪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설령 물리적으로 과거가 공유되는 지점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p.186~p.187)

 

작가 장혜령은 우리가 경험했던(혹은 경험했음직한) 보편적인 것들, 예컨대 여행, 사랑, 이별, 비밀, 독서, 영화, 사진, 그림 등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함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렸을 만한 것들을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승화시킵니다. 여행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비밀을 가진 사람/ 칼을 놓는 사람/ 이별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 이후의 사람, 총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출간이 기약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써내려갔을 많은 글들이 경계와 틀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나옴으로써 우리에게 스며들게 될 작은 기억들일지도 모릅니다.

 

"흔히 표현은 나로부터 먼 곳에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지점을 건드리는 데서 도래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생각하며 표현에 다가가고자 했다. 내가 느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씀으로써 읽는 사람이 그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면 했다. 보는 것은 나이지만, 내 감정을 지우고 이미지를 남길 때 그 표현은 비로소 시에 가까워졌다. 그것은 나라고 적을 주어 자리에 타인이 머무를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p.217)

 

예정에도 없었던 삶을 우리는 등 떠밀려 사는 격이지만 우리가 얻고 가는 한 줌의 기억들은 한낱 덤으로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기억은 곧 자신의 삶이라는 등가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장혜령의 <사랑의 잔상들>을 읽는 순간, 작가의 십 년 세월이, 그 기억들이 우리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전파를 타고 무한대의 용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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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참선 1~2 세트 - 전2권 참선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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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한다. 영혼마저 서늘해지는 듯한 그 시간에 나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산 위 체육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맑아진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찬물에 샤워를 한다.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일련의 절차들을 나는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남보다 예민한 나의 성향이 조금쯤 무뎌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일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말했던 둔감력이 내게는 아주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그친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이자 어떻게든 개선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둔감, 그것은 바로 본래의 재능을 더 크게 꽃 피우는 최대의 원동력이다."

 

테오도르 준 박이 쓴 <참선 1, 2>을 읽으면서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하게 예민한 성향을 타고 태어났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민하다는 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일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일이며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민하다는 건 자신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낼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며, 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 역시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예민함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자신에게 끌리는 예술에 심취하거나 요가든, 명상이든, 혹은 참선이든 자신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거나. 이런 까닭에 선천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은 예술가가 되거나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고 나는 믿는다.

 

"왜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왜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지 못할까? 인생의 소소한 기쁨들에 감사하며, 피할 수 없는 짐들은 기꺼이 짊어지고, 때때로 발생하는 불편함과 충격을 견디면서 말이다. 세상의 무의미함과 만사의 덧없음을 무심히 넘기면 좋으련만 왜 나는 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그토록 확신했을까?" (참선 1, p.124)

 

<참선>을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인간의 자기 고백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와 나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겠지만 저자가 젊은 시절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인생에 관한 숱한 질문들을 나 역시 끝도 없이 묻고 부딪쳐왔던 까닭에 저자의 고백이 예사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던 저자가 일신의 영달을 뒤로한 채 송담 스님의 시자가 되어 '환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30여 년의 출가생활을 했다는 그가 2017년 환속하여 다시 테오도르 준 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저자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수행 과정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어리숙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욕에 반응하지 않아서 때로는 사회화가 덜 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멸시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경쟁심과 불안감으로 가득할 때가 많다." (참선 2, p.184)

 

나도 학창 시절 인연이 닿은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웠던 적이 있다. 수행의 목적이 아니라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혹해서 아주 잠깐 용맹정진에 든 스님들처럼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결기에 차서 참선에 임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참선을 행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는 숫제 참선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이미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에서 저자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용화사를 제 발로 찾아와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과 수행자로 살면서 저자가 겪었던 고뇌와 갈등,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다. 2'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에서 저자는 속세와 떨어져 살았던 자신이 송담 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하고 참선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참선의 혜택과 효능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 >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힘들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내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스님을 생각했다. 나는 비록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지만 종교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 동시대를 사는 인생의 도반으로 스님은 내게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스님이 내게 들려주었던 말이 있다. "수도자는 삶 전체를 탐하는 자요, 속세의 인간은 삶의 순간순간을 탐하는 자이다. 탐하는 대상은 다를지언정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참선>을 읽고 멀리 있는 스님 생각을 했던 나는 내일 아침 오랜만에 참선에 들지도 모르겠다.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고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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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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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감지하는 데서 온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어떤 확신을 갖고 믿는다는 건 타인을 존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예컨대 그와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이해득실이나 체면 따위와는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주어진 나의 역할과 존재 이유가 타인의 그것과 같을 수도 없으며, 우리가 보는 수많은 역할들이 어느 건 고귀하고 어느 건 천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까닭도 각각의 역할들이 그 빛깔을 조금씩 달리 하며 스스로 빛나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마리아에게 은밀한 기쁨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태극기를 팔러 가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떼다 팔던 시절, 마리아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 꾸러미를 리어카에 싣고 팔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무엇에 홀린 듯 태극기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는데 그건 어쩌면 열아홉 살의 마리아가 미지의 나라 독일로 출발하는 순간에 보았던, 태극기가 무수히 펄럭이던 장면의 뒤늦은 효과인지도 몰랐다." (p.59)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권여선 작가의 단편 소설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마리아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드러낸다. 살아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마리아의 존재가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새롭게 부각되었던 까닭은 그녀의 삶이 두드러지게 헌신적이었다거나 이웃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거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미미했고, 있는 듯 없는 듯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다 떠났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안에서 가장 사소하고 미천한 존재인 막내 마리아는 자라면서 가능한 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자기 존재를 감추고 무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숨어서 공부했고 숨어서 성당에 나갔고 숨어서 일을 꾸몄다. 그 은신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마리아가 파독 간호사를 지원해 독일로 떠난 후 사흘이 지나도록 집안에서 그녀의 부재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숨어서 약을 먹고 주사를 놓았으므로 마리아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을 눈치챈 이웃이나 성도는 아무도 없었다." (p.44)

 

소설은 마리아가 일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성당의 성도들이 그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신장암을 앓던 마리아가 혼자 진통제를 투여하며 죽음의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부 수립 무렵 완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마리아가 체득한 생존 전략이 최대한 자신을 숨기는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고단한 노동과 고독 속에 살다 세상을 떠난 마리아에 대한 뒤늦은 이해와 연민의 감정은 결국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고귀한 삶'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게 한다.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가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p.67)

 

성당의 가을 바자회가 끝나가는 파라솔 아래서 죽은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마리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자신들의 무관심을 자책하며, 마리아가 돌보던 어린 소피아의 입양을 앞다투어 주선할 듯이 떠들어대지만 현실에서의 그들은 당장 내일, 아니 바자회가 끝나는 그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마리아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자신의 고독이나 고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생을 일관되게 살았던 마리아와 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선한 척, 고고한 척 살아가는 우리들 중 과연 누구의 삶이 고귀한 것인가? 작가는 소설 속 인물 베르타의 입을 통해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라고 말했던 마리아. 자신의 운명과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자 했던 마리아의 일관된 태도는 이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계절을 살아내기 위해 내가 가진 힘 중 필요한 힘을 쏟아붓고 있는가.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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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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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실내화에 쓴 검은색 매직 글씨의 이름처럼 도무지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웬걸. 한여름 강가 바위에 썼던 물글씨처럼 너무도 쉽게 말라버린 기억들 탓에 한때 치매를 의심했던 적도 더러 있게 마련. 여름 햇살이 힘들게 쓴 물글씨를 지우는 것처럼 흐르는 세월이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오래된 기억을 잊기 위해 으레 또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지도 모른다. 실연의 아픔을 잊는 데는 새로운 사랑이 특효약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설가 한지혜는 오래 묵힌 자신의 낡은 기억들로부터 책을 시작한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시적 낭만과는 별개로 작가가 들려주는 기억은 그닥 낭만적이지도 않고, '그땐 그랬지' 하는 식의 갈색 추억이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기발하거나 예외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편등한 환경에 내던져진 한 인간의 고난 극복기쯤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내가 거쳐 왔던 신림동의 가파른 산동네의 풍경을 아련한 추억으로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무언가 한 일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그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일일지도 모른다. 늘 흥얼거리던 유행가 몇 곡이지만 열심을 다해 불렀다. 그렇게 부르고 있자니 고인 시간도 흐르는 것 같고, 막힌 벽도 무너지는 것 같고, 일찍 늙은 청춘도 아직 살 만한 것 같았다.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 (p.59)

 

내게도 눈에 대한 몇몇 특별한 기억이 있다. 경희대에 다니는 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갔던 어느 날, 서울에는 눈이 하염없이 내렸고, 폭설로 인해 지하철이 연장 운행을 한다는 친구의 말만 굳게 믿고 1호선 열차를 탔던 친구와 나는 2호선으로 환승을 하는 신도림역에서 강제 하차를 당하고 말았다. 2호선 열차는 이미 끊긴 지 오래. 역사 밖으로 나오자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친구와 나의 주머니를 톡톡 털어서 나온 돈은 고작 삼천 원 남짓.두당 오천 원을 외치는 택시기사의 달콤한 유혹을 뒤로한 채 우리는 눈발이 날리는 서울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신도림에서 신림동의 서울대 근처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한 채. 그날 우리는 맘씨 좋은 어느 택시기사의 배려 덕분에 미터기에 찍힌 요금만 겨우 내고서 신림동 하숙집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지만 힘들어하는 내게 '동이 트기 전에 신림동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친구의 위로는 얼마나 황당했던가.

 

20여 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써온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은 총 4개의 골목으로 나뉘어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첫 번째 골목, 이웃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골목, 세상과 시류에 대해 쓰고 있는 세 번째와 네 번째 골목이 그것이다. '인생의 풍요로움은 꿈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p.86)'고 썼던 작가의 꿈은 자신의 글이 많은 곳에 닿아 작가 자신과 같았던 마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 중 한 사람인 나로서는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이라는 이 책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 아닌,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는 첫 발자국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이제 이 글이 어디까지 어떻게 닿을지 모르겠다. 많은 곳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같았던 마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혹여 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나는 언제나 실패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p.283)

 

경자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나는 금세 '벌써 한 해가 다 가버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말이다. 나는 이렇듯 지금 시점에서는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을 바라볼 테고, 때로는 이룰 수 없는 아주 큰 꿈을 가볍게 말하기도 할 것이며,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의 글은 이따금 처연한 슬픔으로 읽히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로 읽히기도 하고, '맞아. 그렇지!' 하는 공감으로 읽히기도 한다. 유난히 눈이 귀했던 올 겨울, 사락사락 내리는 눈송이처럼 2020 1월의 시간이 자박자박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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