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영국의 모 방송사에서는 그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냈나 보다. 뭐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을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조금 딱하기도 하고 이따금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나 모임, 정당 등 여러 사람이 모인 어떤 조직에 몸을 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무자비한 사람이 대우를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닥 새로울 것도 없지만.
심리학자들은 무자비한 사람을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성향 등 세 가지로 분석한다고 한다. 무자비한 사람들은 이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한 가지만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오늘 마키아벨리즘 성향의 원칙주의자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말은 참 근사해 보이고 조직 내에서도 원칙주의자를 신봉하거나 자신도 그와 같이 되려고 동경해 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긴 원칙주의자로 불렸던 여당의 당대표를 대통령으로 뽑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지금 요 모양 요 꼬락서니가 되었으니 내 결론이 어떤 것일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앙하거나 동경해 마지 않는 '원칙주의자'에 대해 나는 왜 그토록 싫어하게 되었을까. 적어도 '원칙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를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여전히'원칙주의자'를 좋아하고 그들은 어디서든 인기가 있다고 말이다. 어느 패널이 토론에서도 말했지만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35%의 국민들은 지지할 거라고 하지 않던가. 맞는 말이다. 그것은 다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말해보면 이렇다.
첫째, 원칙주의자가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원칙이라는 게 과연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 동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혼자만 옳다고 믿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다. 소위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과 시간을 내어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믿는 원칙 중 상당 부분이 사회적으로 결코 동의될 수 없는 독선적인 원칙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된다. 예컨대 원칙주의자가 믿는 것은 단지 그가 믿는 원칙일 뿐 그 원칙이 정당한 것인가는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원칙의 정당성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원칙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둘째, 원칙주의자는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도 평화를 자주 언급해서 하는 말이다. 그 둘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장담한다. 원칙주의자는 대개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특히 원칙주의자가 조직내 서열의 상위를 차지했을 때) 평화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힘에 의한 복종일 뿐 진실한 평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원칙주의자를 잠재된 대결주의자로 인식한다. 심하게 말하면 호전주의자인 셈이다. 예컨대 원칙주의자의 조직내 서열이 낮아지거나 동등해지기만 해도 그는 당장에 자신이 숨겨놓은 발톱을 드러낼 게 뻔하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화는 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용과 배려에 의해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의 냉정함, 또는 무자비함,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서열에 의한 복종이 유지될 때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들은 대개 자신을 아끼는 나르시시즘 성향도 강한데 달리 말하면 그들은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은 서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결부되어 자신을 서열의 맨꼭대기에 위치하게 하도록 한다. 베른대학의 대니얼 스퍼크 교수는 사회적 성공이 아닌 실제 삶에서는 관대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경향이 있다고 말하지만 원칙주의자들에게 그것은 허황된 말로 들릴 것이다. 나 또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를 원하는 것도 아니요, 원칙이나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미워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원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무자비함, 그것을 미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