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허리 인대를 다쳐 한동안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겉으로 보기에는 다 나은 것 같지만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여지없이 재발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때로는 아주 심하게 아플 때도 있고, 조금 뻐근하다가 이내 좋아질 때도 있다.

 

어제는 좀 과하게 피곤했었던지 오늘 아침부터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설라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와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엉거주춤 걷는 폼이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의원을 찾았다. 찜질에 전기치료에 부황에 침까지 맞고서야 치료가 끝났다. 내일 또 오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서 소를 잃고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지. '내가 소를 잃었구나. 다시는 소를 잃지 않도록 단속을 보다 철저히 해야겠는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비록 소를 잃었다고 할지라도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현 정부와 지난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국민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예컨대 지난 정부의 사대강 공사로 인해 해마다 구경하는 녹차라떼나, 큰빗이끼벌레의 창궐을 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나 현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으로 인해 역사 바로 알기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 북한과의 강대강 대결로 인해 깨닫게 되는 평화의 소중함 등은 비록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치지 못했지만 소를 잃었다는 사실만큼은 국민들이 똑똑히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기레기 언론으로 인해 우리가 소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정부의 실정이 잦아지면서 소를 잃었구나, 국민들이 확실히 깨닫는 건 좋은데 이렇게 계속 소만 잃으면 소는 누가 키울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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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다. 봄을 대표하는 게 비라거나, 비였다거나, 비였을 거라는 사실을 홍보라도 하는 양 정말이지 봄비스럽게 내리는 것이다. '헐,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하는 걱정에 앞서 나는 봄비에 대적할 만한 적당한 생각을 찾느라 온종일 부산했다.

 

 

봄비스러운 생각 1.

 

지도에 표시된 벚꽃 개화시기처럼 춘곤증 만연 시기는 지도에 표시할 수 없는 것인지... 등고선 모양으로 멋지게 표시한 지도를 보면서 짧은 스커트 차림의 기상 캐스터가 등장하여 이렇게 예보하는 것이다. "올해 서울의 춘곤증 만연 시기는 대체로 삼 월 오 일에서 십오일 사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참고하시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총총."

 

 

봄비스러운 생각 2.

 

세상에는 갖가지 박물관이 다 있는데 왜 생각 박물관은 없는 것인지... 예컨대 김 아무개의 생각, 이 아무개의 생각 등을 영상과 지면으로 박물관 곳곳에 시대순으로 비치하여 한 사람의 생각이 나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경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물관 큐레이터 언니는 박물관을 찾은 어린 아이들에게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린이 여러분, 우리가 다음에 볼 생각은 1905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고생만 직살나게 하다가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이 아무개 님의 생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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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아득하고 바득하던 봄이 문득, 코앞에서 헹가래를 치고 있다. 참 빠르기도 하지. 나는 춘곤증 1리터를 원샷한 기분으로 오후 내내 취해 비틀대다가 뭔가 또렷한 것을 찾고, 검색하고, 뒤지고, 두드리다가 마침내 몇 권의 신간 에세이를 화투 밑장을 빼듯 여기에 적는다.

 

 

 

내가 이 책을 알게된 것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의해서였다. 하루키는 이 책을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하루키의 책을 읽고 나 또한 '한번 읽어봐야겠는걸'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다.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잔혹하게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했던 게리 길모어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에 의해 집필된 이 책은 자신의 집안에서 이루어졌던 폭력과 학대를 통하여 한 인간이 살인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여행기는 사실 읽는 동안만 즐거울 뿐이지 다 읽고 나면 가슴에 남는 건 그닥 없다. 어떤 경우에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 여행기 중에 '좋았다' 싶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박준이 쓴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억에 오래 남았던 여행기였다. 이번에 그는 떠나지 않고 온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 책으로 떠나는 여행을 들고 찾아왔다.

 

 

 

 

 

 

 

언젠가 우연히 보았던 [인간극장]에서 작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천주교 신부였던 그가 환속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한 '민들레 국수집'을 열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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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3-0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민들레국수집 인간극장에서 보고 감명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꼼쥐 2016-03-05 18:57   좋아요 0 | URL
저는 그때 [인간극장]을 보면서사람이 이렇게 선할 수도 있구나, 감탄했었어요.
 

못 믿으시겠지만 나는 집에서 야생동물을 키우고 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적어도 너더댓 마리나.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원체 순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야말로 조심조심 신경을 썼기 때문일 듯싶다. 그들과 함께 산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많아야 8~9개월쯤 된 듯한데 그동안 나는 아무런 문제나 어려움 없이 비교적 잘 지내왔다.

 

마침내 사달이 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급한 볼일이 있어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너무 서두르다 보니 장롱 속에 야생동물이 숨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입고 나갈 옷을 한참 찾고 있는데 뭔가 차가운 물질이 손에 닿았고, 그 즉시 나는 '아,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예감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팔로 친 것에 대한 분풀이였는지 그동안 배불리 먹었던 물을 울컥울컥 죄다 토해 놓는 게 아닌가. '이런, 젠장!', 생각 같아서는 실컷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내 잘못이 컸었던지라 차마 욕은 하지 못하고 대충 수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몇 번을 거듭하여 걸레로 닦앗지만 퀴퀴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 이제는 더 이상 같이 살면 안 되겠구나. 서운하지만 이쯤에서 그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야겠다.' 하는 독한 마음을 먹고 꽁꽁 숨겨져 있던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꺼내 놓고 보니 그동안 어찌나 물을 많이 먹었던지 곧 터질 듯한 기세였다. 나는 그렇게 "물 먹는 하마, 아니 물 먹은 하마"를 야생으로 돌려보냈다. 한편 국회에는 '욕먹는 하마'를 키우는지 늘 욕먹을 짓만 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하마가 존재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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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생각했는데도 아무런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와 종종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다른 문제에 서서히 빠져들거나 아예 생각의 끈을 싹둑 잘라버림으로써 그 문제와 영원히 결별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동안 고민하던 문제는 비록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동고동락 하면서 꽤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던 바 도마뱀이 제 꼬리를 자른 채 달아나는 것처럼 그렇게 내팽개치는 것은 좀 무책임하지 않은가 생각할 때가 많다.

 

얼마 전에는 이따금 마주치는 이웃집 꼬마가 "아저씨, 꿈이 뭐예요?" 묻길래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 줄 알고 '꼬맹이가 맹랑하기도 하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글쎄..." 하고 얼버무리는데, 시간을 두지 않고 재차 묻기를,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 나한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했어요. 난 꿈이 뭔지 모르겠어요." 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보니 아이는 어른들이 말하는 꿈이란 게 도대체 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어찌 대답해야 할까 곰곰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꿈이란 건 말이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꿈을 한두 가지씩은 갖고 있게 마련이지. 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내가 알기론 아마 없을 것 같구나." 했더니,

 

"꿈이 있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많잖아요?" 묻길래,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어떤 사람이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면 그런 꿈은 저 하늘로 올라가 한동안 머물다가 어느 날 너와 같은 어린 아이의 가슴에 뚝 하고 떨어져서 점점 자라다가 끝내는 그아이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는 거란다. 그러니까 너도 네가 가진 꿈을 이루지 못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네가 못 이룬 꿈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손으로 꼭 이루어지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고 말했다.

 

아이는 알았다는 듯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법 의젓한 자세로 꾸벅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내가 줄곧 생각했었지만 어느 순간 단번에 내팽개친 그 문제들은 마치 광활한 우주를 정처없이 떠도는 우주 미아가 된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비록 해결책은 찾지 못햇다 할지라도 조금 더 생각하며 가슴 한편에 오래도록 지니고 있어야 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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