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래요? 라임 어린이 문학 27
진희 지음, 차상미 그림 / 라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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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웅변대회'란 게 있었지요. 씩씩하고 목소리 큰 친구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대회였어요. 아마 스스로 참가 희망 하진 않았을 거예요. 저는 수업 시간에 발표하려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뺨 뜨거워지던 아이였으니까요. 선생님들께서 하라니까 원고를 외우긴 했죠. 그런데 막상 단상 위에 올라가니, 그냥 울고 싶다는 공포감 밖엔 기억이 안 나요. 초등학교 시절 제 부끄러운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 내준 건 동화, [나만 그래요]의 주인공 여은이였어요



여은이는 수업시간에 발표는커녕, 친구 이름 부르기조차 부끄러워서 못해요. 소심한 건 사람마다의 특징이니 흉 될 건 없죠. 그런데 여은이의 경우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아요. 예를 들어, 우유 당번 짝꿍에게 같이 우유 가져오자고 말하기가 힘들어 혼자 낑낑 우유 박스를 옮기려는 고생하지를 않나, 우유를 쏟아버리지를 않나... 게다가 우유 당번 짝꿍이 미워지는 마음이 생겨나니 어쩌나요. 점점 엉망이 되는 것 같아요.


주인공 여은이만큼이나 어린 시절 실제 소심했다던 '진희' 작가는 다행히도 여은이에게 마음속 창문을 열 기회를 주었어요. 여은이가 인자하신 교장 선생님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본 것이죠. 우유 상자가 너무 무거워 혼자 못 드는 상황에서 "도와줘!"라고 큰 소리로 외쳤으니까요. 그러자 두 명씩이나 되는 친구들이 쪼르르 뛰어와 "같이 들자!"하지 뭐예요. 이제 다음번엔 우유 당번 말고도, 어떤 당번이라도 척척해낼 수 있을 것만 같네요. 여은이 마음의 창문이 곧 활짝 열릴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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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재미 풍선껌 푸른숲 작은 나무 22
선자은 지음, 나오미양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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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요즘 미니멀리즘인지 미니멀 라이프인지에 빠졌다... 마치 사이비 종교 같았다. 내가 사 달라는 건 다 사 주던 엄마가 확 변해 버렸다. 늘 '버려! 버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버리는 일에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

『재미재미 풍선껌』 11쪽 본문


대는 그 말, '버려! 버려! 오늘은 또 뭘 버리지?' 한국 사회에서도 소비주의 트렌드 연장에 선('미니멀리즘'이 어떤 면에서는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주의의 야누스적 양상도 보이니까) 미니멀리즘 신봉자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버려! 버려!'의 강박을.



선자은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버리고 비우는' 엄마와 '새 물건만 보면 단 물 빼먹듯 취하려는 딸'이 만난다면? 『재미재미 풍선껌』은 실제 있을 법한 모녀 관계를 축으로 전개되어 독자를 단숨에 몰입시킨다. 주인공 아린이는 3학년, 최신형 스마트폰을 '겟' 하느냐를 큰 화두로 생각하는 소녀이다. 실은 키즈폰을 쓰고 있다. 친한 친구 은서는 속을 긁으려는 것인지, 출시되자마자 예약해서 샀다며 최신형 스마트폰 '시크릿 A'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 A7의 한정판 굿즈를 자랑한다. "너도 하나 사"라는 부아 돋우는 말을 항상 덧붙이며.

아린이는 은서의 새 물건들이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못해, 기운이 쪽 빠진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며 아린이의 소비욕구에 재깍 반응해주지 않는 엄마마저 미워지려는 지경이다. 그런데 우연히 동네 길거리에 주인 없는 좌판을 보았다. 가게 이름은 '재미재미,' 온갖 알록달록 유혹적인 군것질거리를 잔뜩 늘어놓고 파는 좌판인지라 아린이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500원을 주인없는 좌판대의 '무지개 풍선껌'과 바꿔 갖는데.......

아린이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풍선껌을 차례로 씹으면서 강렬한 단맛의 쾌감만큼이나 매번 강렬한 재미를 느낀다. 단, 풍선껌의 단물이 빠질 때까지만! 재미있으려는 찰나, 단물빠진 껌 뱉듯 재미의 세계에서 강제 퇴출당한다.


『재미재미 풍선껌』은 결국 아린이가, 진정한 '재미'는 자기의 삶에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및 추억 만들기에서 나온다는 것, 현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사랑스러운 성장 동화책이다. '재미재미'를 능동적으로 만들거나 느끼지 못해서,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동영상에서 호들갑스러운 행동과 과장된 언어로 '재미'를 파는 것을 수동적으로 사는 데 익숙했던 친구들이 자연스레 '재미'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준다.

"내가 추구하는 재미는 풍선껌의 단물이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스마트폰에 지문이 더덕더덕 붙은 우리들 중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 질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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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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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들어오자마자, 동네 도서관에 대출 예약을 걸어 놓았는데 히야! 3달을 기다려서야 내 손에 들어오다니! 불과 석 달 만에 책표지가 누덕해졌다. 얼굴 뾰루지 솟는 데는 무심해도 책 너덜거리는 데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로서는 일단 촉이 솟지만, 꾹꾹 누른다. 그만큼 김훈 작가님을 알아 모시는 애독자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생각으로.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다. 

[연필로 쓰기] 첫 페이지



故 올리버 색스, 故 이윤기, 故 장영희, 내촌목공소 김민식, 그리고 김훈, 내가 책 읽다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들은 우연일까? 세상 살아오신 날들이 많거나 이미 세상을 뜨신 분들이다. 곰곰 생각해봤는데 이들이 연륜에서 나온 사색의 힘을 보여주는 나이여서가 아니라 참으로 겸손하여 이분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릇"이라는 작은 단어에 담을 수 없도록 정신은 높게 활공하는 데도 참으로 스스로 낮추시니 그 겸손함을 흠모하는 것 같다.


정작, 김 훈 선생님 소설을 안 읽었다. 『공터에서』가 유일하고 산문집도 『라면을 끓이며』만 읽었다, 어쩌다 온라인 신문 기사에 기고하신 글들은 찬찬히 읽었다. 그런데도 이 분을 감히 알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나는 김훈 작가가 무척 좋아진다. 좋아지는 이 마음을 어쩌기 어렵다. 1948년에 태어나 역사의 질곡을 보고 겪고 살아오신 어르신으로서도 좋고, 소설가라는 직업인으로서도 존경스럽다. 감기 걸려 소아과 병원을 찾는 어린애를 살뜰히 살피는 젊은 엄마를 어여삐 보는 그 마음, '날 잡아봐라' 하듯 21세기형 춘향몽룡 놀이하는 젊은이들의 연애놀음에 흐뭇해하시는 그 마음도 고맙다.


『연필로 쓰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 울컥, 눈물이 솟구쳤는데

이건 김 훈 작가님만이 부릴 수 있는 요술이다. 작가가 걸었던 남한산성, 일산 호수공원, 멀찌감치서 바라본 건져올려진 세월호,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수집했던 할매들, 상갓집의 친구들, 함께 만나고 본 것 같은 시간감이 느껴진다.


지난주 최대 수확이었던 올리버 색스 교수의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도 느꼈지만, 겸손하고 큰 분들이 어느 선에 오르면 다음 세대의 정신적 안녕을 걱정하시나 보다. 임종으로 향해 가던 병상에서도 올리버 색스 교수는 스마트폰 좀비가 되는 요즘 사람들을 가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김훈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페이지 곳곳에서 동물성을 잃어가는 전자회로 부품이 되어가는 젊은 사람들, 어린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일흔이 넘으셨으니 이제 '할아버지'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이분은 대신 살아 있는 순간순간 감각을 최대한 누리고 감사해한다. 오이지의 씹히는 맛, 자전거 라이드 길가에서 들이키는 냉면육수의 숭고함, 우륵과 황병기 선생님이 올려다보았을 별 밭 아래서의 겸허함, 감각으로 넘친다.

삶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덕분에 보는 것 같다.

고마운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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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권? 700권? '처분'이라는 단어조차 불손하게 들려서 내보내지 못하고 같이 사는 그림책이 수백 권입니다. 미니멀리즘을 방해하는 공간 잠식력 때문에 '이고 사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림책에서 수액을 얻던 시절도 있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요? 옛 애인 만나는 기분으로, "그림책 now"전에 지난 5월 다녀왔습니다. "세계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나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110여명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300여점을 전시했다고 하네요.


"그림책 now"전은 '서울숲' 근방에 '겔러리아 포레' 전시관에서 감상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은 쉽게 찾았는데 정작 전시공간 찾느라 조금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하에 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의 2018년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수상자 이고르 올레니코프(러시아)의 원화 작품을 위시해 아시아 최대 국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어워드인 ‘나미콩쿠르(NAMI CONCOURS)’의 2019년 수상작, 세계적 권위의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의 2017년 선정작 등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과 동일한 혹은 비슷한 느낌으로 포토존을 군데 군데 설치해 놓아서 전시장 내 동선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입니다



마음을 사로잡은 공간이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전하기가 어렵네요. 위 사진 속 의자 3개 보이시죠? 누워서 편히 있으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이 동영상으로 지나갑니다.



‘나미콩쿠르(NAMI CONCOURS)’ 수상작입니다.

위 영상 속 점 무늬가 뭘까요?^^ "망중한"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낸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힌트만 드릴게요. 기가 막힙니다! 주말에 가면 저 벤치에 오래 머무를 수 없겠죠? 평일이 좋은데 "그림책 now"전은 이번 주말까지 전시 마감이니 아쉽네요.


"그림책 now"전 포스터 속 그림의 작가가 그린 또 다른 일러스트레이션, 할머니가 마주하고 있는 이미지의 상단에 젊은 날의 할머니로 보이는 인물이 즐겁게 춤 추고 있습니다.


그림의 힘이라니! 선 몇 개, 농담의 변화만 주었는데도 베짱이의 무기력함이 느껴지네요.




큼지막하게 전시해놓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직접 종이책을 통해 페이지 넘겨가며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평면이지만 전시장내 공간 구성을 독특하게 해서 공간감과 입체의 묘미도 즐길 수 있습니다.




둘러보는 데도 족히 1시간은 걸릴 텐데, 이렇게 작은 그림책 도서관도 전시장 내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아뜰리에 수업도 있고요. 그러니 전시장 나오면서 아쉽지 않으려거든 넉넉히 2~3시간은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내일까지 전시 마감입니다. 그림책을 수액삼아 파릇하신 분들이라면, 서울숲 나들이 연계해서 동선 한번 짜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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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먹는다! 햄만 빼내서 김밥 옆구리 터지는 일 안 생기게 그냥 먹는다!

자장면! 간혹 일부러 찾는다! 물론, 돼지기름으로 야채를 볶았다는 걸 알아도 그냥 먹는다! 


이중적인 면모.


그런데, 21시 주말 늦은 시각. 상가 거리를 지나다가, 이 문구가 많이 거슬려서 사진을 찍었다.

불편하다. "6개월 미만 어린양만 사용"

"6개월"도 불편한 데, "사용"이라니! 


『호모 데우스』를 읽다보면, 더더욱 다른 동물의 살을 탐하는 습성이 불편해지던데

위 문구를 보니 한동안 김밥이며 자장면에도 젓가락이 안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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