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하던 때, 신분 증빙용으로 여권 들고 약국에 줄 서 있었던 기억을 꺼내니 친구가 "정말? 정말?"을 연발하며 놀라워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합니다. 코로나가 확산 일로에 있던 때, 아파트 단지 내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항균력 99.9% 시트지와 '턱스크 혹은 노마스크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 마시라'는 경고문도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때는 서울 소재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거주지역이 탄로(?)났다는 한 모녀가 전국구 뉴스거리가 되었더랬죠. 코로나 확진 사실을 숨기고 과외를 했던 인하대 대학원생은 실형까지 받았고요. QR 코드 확인 없이는 공공장소 출입이 어려워졌기에 홈리스 분들이 (도서관이나 백화점에 비치된) 정수기를 이용 못해 물조차 마시기 어려웠다는 인터뷰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터널을 지나는 와중에 너도나도 '포스트코로나'를 예측했지요. 드디어 그 터널을 지나온 2023년 시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가 개인 및 공동체적 차원에서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포스트코로나 #팬데믹 #마스크


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아찔할 정도로 많은 신간이 쏟아집니다. 시류를 파악하는 데 부지런한 저자와 발 빠른 출판사들 덕분이지요. 책이 워낙 많아서, 고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으로 고른 이유는 지은이의 약력 때문이었습니다. 정수근 교수는 연세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친 심리학 박사입니다. 네임벨류에 넙죽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법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자의 전문성이 '코로나 시대 정신건강'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다뤄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 즉 약 6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팬데믹 브레인]을 집필했다고 후기에서 밝힙니다. 또한 본인이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므로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거나, 최신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정식으로 학술지로 출간되지 않은 연구들에도 기댔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편집을 야박하게 했다면 230쪽을 150쪽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을 본문은, ""코로나는 우리의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를 Q&A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1, 2, 3부로 구성된 책의 얼개를 가볍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사회적 고립 실험' 중이라는 전제하에 팬데믹을 겪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서술합니다. 저자는 감염 후유증으로 섬망, 브레인 포그, 그리고 인지저하증을 언급하고,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리학자인 만큼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축소가 해마(인지능력과 관련)의 축소로 연결된다는 실험, 코로나로 인한 스킨십 부재 혹은 감소가 뇌의 체감각 기회를 감소시켜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무서운 연구결과도 언급합니다. 특히, 소위 "코로나 베이비"의 인지능력 저하에 대한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11~2019년 사이 태어난 아기들 IQ 98~107인데 반해서,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태어난 아기들 IQ 평균은 86, 2021년생 아기들 아이큐 평균은 78.9 였다고 합니다. (뭣이 중한디? 심리학자는 역시 '인지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를 느끼게 했던 1부 였습니다)

2부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


2부에서는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끌 이야기들을 카드뉴스 수준으로 나열합니다. 예를 들어, 줌 피로(Zoom Fatigue)의 원인이나, "마기꾼"의 비밀(마스크의 인식방해 효과), 마스크와 언어습득 능력의 상관관계 등등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린 익숙한 화두들이 각각 소챕터를 이루는 구성입니다.

저는 2부를 읽다 여러 차례, 책을 덮었는데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백신접종 후유증의 개인편차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믿고 기대하느냐에 따라 후유증을 심하게 혹은 약하게 겪도록 만들 수 있다"(135)고 주장합니다. 출판사측에서는 친절하게도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만큼 아프다"라는 소제목을 달아 주었지만 저는 고개 갸우뚱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적인 사람일수록 작업기억용량이 크다는 주장도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주장을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학 문외한이라 "작업 기억 용량"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장기적 손익 계산을 더 잘하는 사람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더 협조적이라는 주장으로 윗 글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작업 기억용량"만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자발적 협조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한데요. 반례를 들자면, 외부로부터의 시선, 즉 문화적 압력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유럽과 미국에 비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 지키는 데 철저했습니다. 

3부 "펜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3부는 "팬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제목에 담긴 낙관적 뉘앙스 그대로 인간이 팬데믹을 잘 이겨내리라는 데 저자가 한 표를 던집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자여서 그런지, 흥미롭게도 그 재난 극복의 힘을 "인간 뇌의 가소성"에서 찾습니다. 즉, 심리한 문외한이자 평범한 독자로서 제가 보기에 그 관점은 1부와 2부에서 내내 보이는 전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대한 개인화된 해석과 해법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정수근은 팬데믹 이겨내는 해법으로, 종교 활동 등 사회적 교류와 지지 높이기, 감정 조절력 높이기, 공포 영화를 즐겨주지, 꿀잠 자기 등 지극히 개인화된 차원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앞서 말했던 QR 코드가 없어 공공시설의 정수기 사용을 못했던 홈리스분에게 공포 영화를 즐겨서 회복 탄력을 높이거나 꿀잠 자라는 해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저자 정수근 교수는 코로나 시기와 현재에도 활발하게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저자의 최근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한 심리 문제를 다룬 글은 없더라고요. 저는 저자가 2024년쯤에 [팬데믹 브레인] 후속판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시 내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직 정수근 교수만 제시할 수 있는 화두와 날카로운 분석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팬데믹 브레인]이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잠정적인 썰 위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한 걸음 멀어져서 차분하게 분석한 내용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팬데믹 브레인]을 읽으며, 오늘날의 미디어가 전문가적 지식이라는 것을 얼마나 빠르고 널리 대중화시키는지, 전문가적 지식이 얼마나 평준화되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에서 제시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SNS인풀루언서가 발행하는 가쉽거리 포스팅이나 뉴스에서 많이 읽어왔거든요. 이 점은 흥미롭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주, 충청북도의 한 사찰에서 찍어 온 사진입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았고, 음용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없는데도 기꺼이 바가지를 들어 물을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코로나 시절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입니다.


다시 한번,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망각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와 정신건강에 관한 다른 글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아시는 분들은 댓글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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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