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아이는 집에서 엄마가 키워야만 해."


"일도 안 하는 전업주부가 지칠 게 뭐가 있다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애들이랑 놀기만 하면 되는 부러운 인생 아니냐."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

저 역시도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얼마나 눈치가 보이고 업무는 매일 쌓여있는데......

퇴근하면 쫌 쉬자."


"주말이니까 그동안 쌓인 피로 좀 풀자."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대화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제가 원하지 않아서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기대를 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기에 그냥 입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책으로 만나게 되다니!


특히나 공감되는 문구에 책을 잡자마자 읽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만 한다? 육아와 가사는 여자의 일?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

말이 안 통하는 가부장제 꼰대 남자들을 향한 최후통첩!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지금까지 매우 긴 시간 동안 정말로 열심히 살아 왔다.

언젠가 마라톤 선수가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는데,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렇다. - page 7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38년 동안 대형 석유회사에서 정년퇴직한 '쇼지 쓰네오'.

길고 길었던 샐러리맨 생활로부터의 해방감에 순간 허전함도 있지만 역시나 자유의 몸이 된 기쁨이 더없이 컸습니다.


주말 아침.

죠난대학을 졸업한 뒤 데이토물산에서 전문직으로 일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서른 셋의 딸 '유리에'에게 그는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유리에 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나?"

"친구들을 보면, 전혀."

유리에는 카운터 너머에서 수도꼭지를 비틀며 물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정사니 스드메까지 정하고 나면 곧바로 임신을 위한 숙제가 기다리고, 임신하고 나면 입소 전쟁이라니까. 정말 힘든 모양이더라고. 숨 쉴 틈도 없을 만큼.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늘어나는 건 걱정뿐이라던데. 그 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다 괴로울 지경이야. 부럽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걸." - page 21

하지만 더없이 충격적이었던 유리에의 한 마디.

"그리고 또...... 난 아빠 같은 아버지를 보며 자랐으니까 말이야." - page 21


유리에와의 대화에서 냉정을 유지할 수 없어 대화 주제를 바꾸어 봅니다.

아내인 '도시코'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엄마는 대체 어딜 간 거냐?"

"메종 돌체에."

"또 거긴가." - page 23

10년쯤 전에 투자 목적으로 5층의 방 한 칸을 사 두고 부동산에 관리를 맡겨 두었는데 작년 말 즈음부터 빈방이 된 뒤부터 도시코는 빈 방을 청소한다며 종종 그곳엘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의 물건들을 그리로 옮겨 놓더니 최근에는 거기서 지내는 일이 잦아진 도시코.

"엄마가 그렇게 말했니? 아빠랑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설마. 엄만 자기 자식 앞에서 아빠 험담이나 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아내의 표본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그런 여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다 마음속에 담아 두는 타입이니까. 자기 혼자 꾹 참으면 모든 일이 다 잘된다고 생각하다 보니 결국에는 저렇게 돼 버리지."

"저렇게 된다니, 어떻게 됐다는 건데?"

"누가 봐도 후겐병이잖아."

"후겐병?" - page 24 ~ 25

현모양처였던 그녀는 남편이 원인인 병 '후겐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딸의 시선이나 말 속에 담긴 속내를 이제야 하나 둘씩 알아가다보니 어느새 자신은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어진 그.

환갑을 넘긴 남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쑥스럽지만, 문득 외로워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인간은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고독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쁜 나날에 가려져 있던 고독이란 놈은 한가해지는 순간 빠끔히 고개를 내미는 모양이다. - page 42


그러던 어느 날 아들 가즈히로가 퇴근길에 그의 집에 들르기로 합니다.

조심스럽게 입을 뗀 가즈히로.

"사실 오늘은 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어."

가즈히로가 말을 꺼냈다.

"실은 어린이집에서 애들을 데려오는 일을 해 줬으면 해서."

"설마 아오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냐? 고작 세 살이잖아."

"마이가 일을 시작하는 거니?"라고 도시코가 물었다.

"마이는 입소전쟁에 실패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그만둔 거거든. 그때부터 다시 죽기 살기로 일자리를 구해서 겨우 파견사원으로 일하게 됐어. 다행히 올 4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됐는데, 통근 시간을 따져 보면 데리러 오는 시간이랑 1시간 정도 틈이 생기더라고."

"연장보육이란 게 있지 않니?"

도시코가 다시 한번 묻는다.

"그 어린이집은 연장보육을 안 해. 등하원도우미를 구할까 생각해서 알아봤는데 그렇게 되면 이것저것 문제가 커지더라고. 가족들이 봐 주는 게 제일 안심이란 결론이 났어."

"설마 너, 한 살짜리 렌도 어린이 집에 맡길 생각이냐?"

"그럼. 당연한 거 아냐? 마이가 출근한다니까?" - page 72 ~ 73


졸지에 아들 부부의 손주 두 명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데려 와 한 시간동안 돌보는 일을 하게 된 쇼지.

처음 그의 태도는 그야말로 가부장제에 꼰대 그 자체였습니다.

"단순히 돈 문제만이 아니야. 마이는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고."

"정신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애 둘의 뒤치다꺼리만으로 하루가 다 가는 매일매일을 살다 보면 미쳐 버릴 것 같다던걸."

"뭐?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되는구나. 엄마란 건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존재인데."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마이도 꽤나 지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말이야."

"일도 안 하는 사람이 지칠 게 뭐가 있다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애들이랑 놀기만 하면 되는 부러운 인생 아니냐. 남자들에겐 그런 태평한 삶이 불가능한데 말이다."

"그 점은 나도 아버지 의견에 동의해. 대낮에 공원에서 모래장난이나 좀 하는 걸 가지고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 건지 솔직히 나도 알 수가 없다니까." - page 75 ~ 76


그런 그도 조금씩 눈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동창회에서 간만에 만난 친구 '아라키' 도 황혼이혼을 향해 가고 있었고 아내는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꺼리고 딸에게서는 '당신'이라는 말까지 듣는 현실에서 자신의 부주의함과 그도 모르는 사이 가족들에게서 멀어진 것을.

이제야 '가족'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아니,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기는커녕 난 도시코를 관대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걸."

"제가, 관대하다고요?"

"그럼, 그렇지. 나라면 그런 자식과 두 번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테니 바로 이혼할거야. 그런데도 도시코는 부지런히 내 뒤치다꺼리를 해 주었으니까."

"이혼하면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것 뿐만은 아닐 거야. 그 이유만이라면 정말 최저한의 가사노동만 하고도 만족했을 거야. 하지만 도시코는 언제나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었지."

"어째서였을까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도시코가 원래 상냥한 사람이라 그랬을거야. 착한 사람이잖아."

"그렇게 말해 주시니 고맙네요."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했어."

"전 당신하고 결혼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응? 날 놀리는 건 아니겠지?"

"아뇨, 정말로요. 당신은 정년까지 성실하게 회사에서 근무하며 오랜 시간 동안 아주 적은 용돈으로도 불만 없이 묵묵히 일해 줬어요. 그리고 도박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대출도 만들지 않았고, 성격도 온화했는걸요."

"고작 그것뿐이잖아?"

"고작 그것뿐이라고는 해도,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가 이 세상에는 무척 많다고 들었으니까요. 제 동창들 중에서도 남편의 게으름이나 빚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거든요."

"그런가......, 기뻐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저도요." - page 363 ~ 364


아직도 우리 사회 역시 여자에게는 '모성'을 요구하고 있는게 현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첫 아이를 출산하고 아무것도 몰라 방황하고 두려웠는데 남편은 당연히 '엄마'가 되었으면 알아야하는게 아니냐는 듯이 이야기하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 일을 하려고 했지만 사회에서 돌아오는 건 차가운 시선뿐.

지금은 어느정도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에 적응하는 중이지만......


소설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라에서 세운 계획에 그대로 휘말린 거제. 노인들과 어린애를 돌보는 일을 여자에게 시키면 복지 쪽으로 돌릴 예산을 줄일 수 있으니께."

복지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큰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그만 잔에 든 따뜻한 술을 홀짝 마셨다.

"언니야 말대로다. 나라에선 그런 걸 모성애라느니 가족애라는 단어로 포장해가꼬 서민들을 속일라 했지. 우리 같은 서민을 바보로 생각하고 있는가는 내 모르지만, 우리는 절대로 안 속을 기다"라고 작은누나도 열띤 목소리를 낸다. - page 195 ~ 196

지금은 '육아휴직'도 있고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는 아직도 미비한 변화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보다 여자들이, 엄마들이 사회에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솔직히 이 소설을 읽고나면 통쾌할 줄 알았는데 읽고난 뒤 멈추지 않는 눈물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마도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를 다시금 내다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약 이 소설을 남편이 읽는다면 어떤 반응일지......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아이들이, 가정이, 사회가 존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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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 일, 관계, 삶의 과부하 속 내 마음 회복수업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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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의 제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의욕도 없고......

마냥 축 쳐진 모습.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지금의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것입니다.

집 밖이 무서운 요즘.

뉴스 속에서는 자꾸만 증가하는 '코로나 19' 국내현황 속에서 불안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 관계, 삶의 과부하 속 내 마음 회복수업

"나도 모르게 방전된 이유!"


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누구나 갖가지 일상에서 어느 정도 과부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자신의 과부하 상태를 체크하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부하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새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과부하가 퍼져나가는 양상을 알면 대비가 가능하고 자기연민과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책에서는 일러주었습니다.


바쁜 일상의 부작용부터 인간관계의 상처까지.

책 속에서는 사례와 그에대한 조언들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24시간 나오는 뉴스가 집단 과부하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에서 말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라"고 꾸짖는 온갖 뉴스와 정보에 사람들은 갈등한다. 적게 보고 싶어도 어느새 계속 미디어를 접해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항상 모든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끊임없이 파악하지 못하면 '좋은'시민이 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page 80

끊임없이 '코로나19'에 대한 뉴스.

희망적인 이야기보다 자꾸만 급증하는 확진자들과 이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 이와중에도 폭리를 취하고자 하는 이들......

그야말로 '과부하'에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샌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의욕이 없어."

기운이 없고 진이 빠진 느낌을 어른들만 느끼진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도 피곤해하고, 아이들의 친구들도 피곤해하며, 내가 일하다가 만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축구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몸이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는 데 '지친' 것이다.

기진맥진한 상태, 진이 빠진 상태, 기운이 없는 상태는 내가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공통분모다. 단순히 피곤한 정도가 아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은 감각이다. 그리고 기운이 떨어질수록 그 상태를 극복할 힘을 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page 190


그럼 과부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피면서 자연스레 현실로 돌아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당신 혼자가 아니다. 운 좋게 건강과 행복,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잘 갖춘 선진적인 지역에 산다고 해도 각자가 싸워야 하는 크고 작은 장애물은 존재한다. 작가 잭 콘필드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깨워준다.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지나치게 충실하다."

불행에서 빠져나가려는 변화를 모색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속엔 긴장(장애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혈의 피해를 줄이려면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 page 93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자기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선택 가운데 하나는 언제 끝낼지 결정하는 것이다. 내 친구의 두 살짜리 조카가 저녁을 먹다 말고 조그마한 귀여운 손을 식탁에 내려놓고는 단호하게 "나 배불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떠오른다. - page 228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하는 것.

언제 다가가고, 언제 유지하고, 또 언제 멈출지 판단하여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책에서는 일러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참 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그 선택을 실행하기에 많은 의지가 필요하였습니다.

매일 결정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쉽게 과부하가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주 사소한 것부터 습관화하여 결정 과정을 단순화하고 사전에 계획하며 날마다 결정할 양을 줄이는 것, 그렇게 조금씩 균형있는 규칙적인 삶의 중요성 역시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로버트 브롤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의 작은 일을 즐겨라. 어느 날 돌아보면 큰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 page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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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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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믿고 읽는 출판사 '연담L'.

이번 주제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가족 동반 사건'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강제 동반 사건'


잊을만하면 접하는 사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최근에도 30대 중반의 한의사가 부인과 아이 등 가족 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

더구나 아무 죄도 없고 자신의 의사 표현도 잘 할 수 없었던 미취학 아동을 살해한 후 자살을 한 그.

그가 붙잡힌 뒤 진술한 이야기 중

아들과 딸이 부모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는 자녀의 생명까지도 앗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그에게서 과연 진정한 가장이란, 부모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끔 하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비추어질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살인이 시작되었다.


살인자에게


여름 미풍에 수많은 유등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한들거리는 유등 사이로 퍼지는 빛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눈에 뭐 들어갔어?" - page 9


소원 유등 축제를 준비하는 '유진웅'에게 반장이 말을 겁니다.

"유진웅! 오늘 조퇴해?"

올려다보는 각도 때문인지 반장이 나를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유등이 단단히 고정된 건지 움직여보면서 대답했다.

"할머니가 하래. 이거 끝나면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

"물고기 유등은 다 만들었어? 오늘까지 마무리해 준댔잖아."

"어쩌지. 아직 다 못 했어. 미안해."

"아직도? 아 씨! 너 때문에 한희 선배한테 핑계대야 하잖아." - page 11


진웅이가 조퇴를 하는 이유.

바로 오늘은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돌아오는 날입니다.

그리고 서울로 떠났던 자신의 형 '진혁' 역시도 할머니와 자신이 있는 집으로 잠시 와 준다고 하였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게된 아버지와 형.

그들에겐 말못할 사연이 있었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내게는 일가족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가 있다. 사업 실패를 비관해서 가족을, 그러니까 나와 엄마와 형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세상엔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 page 14


어색한 침묵.

하지만 최대한 진웅이는 착한 '아들', '동생'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릴 적부터 그를 향한 수군거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을이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의문의 죽음이 우리가 내려온 직후 발생했다며 모두 미심쩍어했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그 자식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어디서든 들려왔다.

'그 집안은 더러운 피를 타고난 거야.'

험담과 욕설과 그보다 더한 말들이 우리의 가슴 위로 차곡차곡 더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도 형이 여자애를 죽인 범인이라는 소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형의 눈빛이 점점 서늘해졌다. 서울로 떠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자마자 형은 바로 짐을 쌌다.

형이 집을 떠나던 날, 나는 앞으로 내 본심을 감추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진하고 착한 아이를 연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형처럼 나도 쫓겨날 순 없는 노릇이까. - page 23


그날 밤, 반장은 노란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 차림으로 진웅이의 집을 기웃거립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왜 폰 안 받아? 내가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

"전화했었어? 미안해. 몰랐어.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놓고선 방에 뒀네." - page 30

집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는데 왜 반장은 자신의 집으로 왔을까......

"아아, 내가 왜 왔나면, 한희 선배 때문에. 한희 선배가 연꽃 유등을 두 개 정도 만들어 올 수 없냐고 부탁을 해와서 말이야. 믿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나 뭐라나. 너도 알잖아. 한희 선배가 나 믿고 있는 거. 그래서 그 얘기 하러 온 거야."

"연꽃 만들어 달라고?" - page 33

처음부터 자신에게 맡길 작정으로 부탁을 받은 그.

만만하게 보인 자신이 한심한 건지, 유등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반장이 한심한 건지 판단이 안 서는데 그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한테 돈 빌려달라고 찾아왔다고, 그 사실을 애들한테 말할지 말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결국 그의 부탁아닌 부탁을 들어주게 된 진웅.

알고보니 자신이 반장과 대화하는 걸 형과 아버지는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오는 길.

폐쇄된 양계장에서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들은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시신은 내 또래 남자애였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남자애이기도 했다. 내게 유등을 만들라고 시킨 뒤 학교에 나오지 않은 아이, 정태민.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늦게 알아보았지만 분명 반장이었다. 반장이 죽은 채 내 발치에 엎드려 있었다. - page 83


살인 전과가 있는 진웅의 아버지는 신고자이자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집중 조사를 받게 되고 정황 역시도 그에게로 맞추어가는 듯 하지만 진웅은 그럴수록 더 의심이 가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형, 진혁.

과연 아버지와 형 중 누가 반장을 죽인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범인인지.

단 5일간 진웅, 아버지, 진혁 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의 전말은 이미 비극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부터 거슬러가게 됩니다.


이 가족의 비극을 보여주었던 형과 동생의 대화.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


 


'가족'이지만 오히려 '가족'이었기에 각자의 고통과 상처, 절망과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였던 그들.

최후의 비참한 결과가 더없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나 진웅과 진혁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편견에 사로잡혀서 진실을 못 보고 하는 말이지." - page 120

우리의, 사회의 편견이 비극에 비극을 낳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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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최수일 지음 / 비아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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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수학'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에는 숫자부터 시작하여 사칙연산, 도형, 확률과 통계, 미적분 등......

공식에 공식을 더하여 '수능'을 치고나면 그동안 배운 수학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럼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사칙연산만 알아도 우리 삶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어려운 수학개념들을 배워야하는건가......'

'수학은 필요한 사람만 배워도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저자 '최수일'씨는 이야기하였습니다.

수학은 참으로 쓸모가 많습니다. 그런데 수학이 얼마나 유용한지 이해하기 위해서 대단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수학은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입니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학도 몇 군데 등장하지만,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이 간단한 개념입니다. 이 책은 수학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을 위해 썼습니다. 여러분은 수학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 사실 일상에 필요한 수학은 이미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일상과 수학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게 하는 교육이 부족했을 뿐이지요. - page 7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수학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우리의 일상에서 '수'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달력.

자동차 번호판.

우리가 지나는 길과 건물 등.

생각해보면 너무나 쉽게 '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 카드와 같은 비밀번호를 쓰는 카드는 최소 몇 장일까요? - page 30

궁금하였습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서 2017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신용카드는 총 9,946만 장이었으며, 2018년 말에는 1억 장이 넘었다는 가정 하에 비밀번호 개수가 9,980개.

그래서

내 카드의 비밀번호가 9182라고 했을 때 1억 장 중에서 9182라는 비밀번호를 쓰는 카드가 내 카드 말고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때 9182라는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카드는 단 하나이고, 이것이 최소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답이 됩니다. - page 30 ~ 31

별생각 없이 많을 꺼라는 제 예측을 보기좋게 빗나가게 한, 그래서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엉뚱하고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그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일상 속 수학의 세계로 인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무심코 지나칠 뻔 했던 일상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수학'이라는 학문의 매력도 새삼 느끼게끔 해 주었습니다.


가로와 세로의 가장 멋진 비율인 '황금비'.

이 역시도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었습니다.

명함이나 신용카드.

이들이 황금비로 된 사각형이라니!


 

정말 일상 곳곳에 있었습니다.

다만 관심이 없었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왜 수학을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수학의 본질인 논리적 사고와 체계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기에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학'만한 학문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등수학 개념만으로도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넓어지는데 그보다 더 확장된 중등수학, 고등수학은 더없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나아가 '나'를 이해하는데에도 큰 영향을 줄 것 같았습니다.

왠지 다시 초등학교 수학책을 펼쳐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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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이고 남편이고 주부입니다만
왕찬현 지음, 기해경 그림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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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남편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연하이고

남편이고

돈을 벌어주는 남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저와 하나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주부'의 생활은 안하지만 '연하'이고 '남편'의 심정은 어떨지......

연하이고 남편이고 주부입니다만


그에게서 '주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부의 마음이란 이렇구나.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배우자를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고, 밤늦게까지 상대를 기다린다.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정성 들여 만든 요리를 맛있다고 말해주는 상대를 보니 마음이 자연스레 풀리는구나. 배우자는 고생하며 일을 하고, 나는 그런 배우자를 보필하며 고생스러운 집안일을 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을 위한 꽤나 합리적인 역할 분담이다. - page 8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전한 그의 '닭백숙' 이야기는 참으로 공감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밖에서 일하느라 고생하는 건 알지만......

가끔은 우리의 심정도 알아주면 안될런지......

남편에게 생색내는 것은 아니지만 넌지시 이 책을 권해주고 싶었습니다.


'연하' 남편인 그의 이야기에서 나의 남편이 한 때 했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요컨대 주장의 핵심은 연상 여친의 매력이라 하면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것. 누님의 행동과 말에는 어떤 권위와 품위가 묻어있다. 그건 강압적이지 않을 뿐더러, 재즈처럼 따뜻하고 바닐라 라테처럼 달달하다. 노련한 누나들은 본능적으로 어린 남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아는 듯 같다. 말을 놓았던 것도 상냥한 권위를 그대로 따랐을 뿐인데, 새삼 억울함이 밀려온다. 덕분에 투철한 예의범절로 무장했던 후배는 꼼짝없이 위아래도 모르는 시건방진 남자가 되어버렸다. 온기를 담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상대를 홀리는 품격, 그것이 내가 경험한 연상의 매력이다. - page 128 ~ 129

그래서 지금의 나의 연하 남편은 후회한다는......

'오빠'라 불리고픈 욕망을 채우지도 못한 채 오늘도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솔직히 제 주변에도 '결혼'에 조심스러운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묻는 질문.

결혼을 하는 게 나을까?

안 하는 게 나을까?

이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찾았습니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만나 평생을 약속한다는 것이 여전히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을까? 결혼을 위한 무수한 고되들에 혼란스럽다. 성격, 수입, 대출, 집, 출산, 육아, 양가 부모님과의 관계 등,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복잡해지는 것만 같다. 이미 결혼이 손쉬운 포기의 선택지가 되어버린 시대에 평생의 반려자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낭만주의자라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다. 결혼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는 아니기에,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그 누구도 이를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세상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반쪽을 만난다는 것. 그 이유만으로도 결혼은 그럭저럭 괜찮은 답지다.


부부로서의 삶은 고됨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옆에서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보면 손끝까지 채워지는 충만함을 느끼곤 한다. 더러 팍팍한 현실에 숨이 막힐 때, 적어도 한 사람은 내 옆에 있다는 안도감이야말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시시각각 흔들리는 위태로운 나를 포기하지 않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꽤나 든든한 일이다. - page 229 ~ 230

그래도 결혼하기를 잘 한 건......

아마도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을 얻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님'과의 소소한 일상 속 로맨틱하고도 스릴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돌이켜보면 내 결혼 생활은 티격태격하기만 한 것 같기에 지난 세월이 아쉽기만 하였습니다.

마냥 바라보기만 해도 으르렁 거렸던 우리.

아마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그가 건넨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책을 읽고나니 조금은 달라 보였습니다.

결혼하기 전 '사랑'이라 믿으며 '평생'을 약속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왜 그토록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지......

오늘은 그와 함께 가볍게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지난 감정을 떠올리며 서로의 소중함을 느껴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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