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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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그 여자는 내가 죽이지 않았어.

누명을 벗겨줘!"

억울하다는 살인범의 한 마디.


이 책을 읽기 전 떠오른 티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었던 한국 연쇄살인범 -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정두영, 정남규, 조두순-에 대해 분석을 했었는데 온몸에 소름을 일으키며 잔인하고도 끔찍한 그들이 또다시 이 책을 만나게 되면서 소름이 났었습니다.

과연 이 연쇄살인마의 진실은 무엇일지 궁금하였습니다.

사형에 이르는 병

 

"야, 가케이." - page 13

대학에서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부르며 조롱당하는 그, ​마사야.

어느날 현관에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겉에 적힌 주소는 아버지의 글씨였고 봉투를 뜯어보니 안에는 또 한 통의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 누구지? - page 25

마사야는 다른 면회 희망자와 함께 서늘한 긴 복도를 걷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걷는, 구치소 복도.

벤치가 늘어서 있고 위쪽에는 배지 번호를 알리는 전광판이 있었습니다.

금속 탐지기에 걸릴 만한 휴대전화나 금속으로 된 물건들은 미리 로커에 맡겨둔 채 벤치에 앉아서 기다립니다.

그리곤 안내를 받아 면회실 의자에 앉습니다.

파이프 의자에 앉은 그 사람.

너무나 평범해 보였습니다.

차분한 태도의 온화해 보이는 이 남자, 다름아닌 '하이무라 야마토'.

엽기살인범, 연쇄살인귀, 질서형 살인범, 연기성 인격자아애자, 귀축, 시리얼킬러, 정신이상자, 괴물 등등. - page 28

아크릴판 너머의 하이무라는 문득 길게 찢어진 눈을 가느라닳게 뜨더니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합니다.

"오래간만이네. 마 군." - page 28

 

 

그런 하이무라가 마사야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아홉 번째 살인."

그는 힘이 실린 어조로 단숨에 고했다.

"스물세 살의 여성이 교살당하고, 깊은 산속에 유기된 사건. 그건 내가 저지른 범행이 아니야. 그 여자는 내 타깃과는 달라. 수법도 다르고. 그 한 건만큼은 난 누명을 쓰고 있어." - page 36

자신이 몇 사람을 죽였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하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쓰기 싫다고 말하는 그.

다음 편지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라는 인간이 법을 근거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회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이 세상에 반드시 정의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법률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질서란 법으로써 유지되기 때문에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준에서는, 기억에도 없는 아홉 번째의 살인까지 떠맡아서 교수형을 받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정작 중요한 진범이 죄에서 벗어나 아직도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생각을 당신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까지나 당신 개인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의 주장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당신이 좀 더 나은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 page 41 ~ 42


괜한 참견일 듯, 이미 판결이 난 사건에 그의 부탁을 거절하려 하지만 왠지모를 이끌림에 결국 그는 살인범의 요청을 수락하여 그 주변 인물과 사건 관계인들을 만나가면서 나름의 조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이무라의 어린 시절.

처참한 환경 속에서 불행히 살았습니다.

잠시 침묵한 뒤, 마사야가 물었다.

"하이무라는 자기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으음, 나라오카는 낮게 신음하고는 대답했다.

"복잡하지요. 뭐랄까, 양면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사랑하지만, 동시에 어쩔 도리가 없는 답답함도 느꼈죠. 남자를 계속 갈아치우는 모습에 혐오감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자기가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취직해서 효도하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덧없이 사고로 죽어버려서, 결국 그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 page 96


사생아, 열악한 성장 환경, 책임감도 능력도 없는 어머니.

주위의 멸시, 괴롭힘, 양아버지에 의한 신체적, 성적 학대. 바랐지만 받을 수 없었던 교육, 성사 직전에 취소된 입양.

주위의 편견이나 멸시, 관공서의 일손 부족이나 어머니의 무지 같은 것들이 수없이 쌓여서 지금의 그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연쇄살인마로......


그의 인생을 추적하면서 발견하게되는 한 장의 사진.

그 속에 마사야의 엄마 에리코가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사야.

과연 에리코와 하이무라, 마사야 사이엔 어떤 진실이 있는 것일까?

그의 아홉 번째의 살인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 소설 속 연쇄살인범의 모습은 우리가 마주하였던 연쇄살인범과도 닮아있었기에 쉬이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현실같은, 한편의 웰메이드 범죄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적합하였습니다.


마사야와 하이무라가 나눈 대화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마사야는 입을 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싫어했습니다. 너무 싫어서, 자신이 아닌 뭔가가 되고 싶었죠. 자신의 형태를 이루는 것들, 환경이나 주위의 인간, 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나의 응석을 받아주고, 치켜세워주고, 일시적으로 꿈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동화되는 것이 기분 좋았습니다."

하이무라가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모두 그런 법이야. 현재 상황에 완전히 만족하는 일은 없어. 언제나 '여기 아닌 어딘가'를 바라지. 우리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야." - page 351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 이 소설.

소설 속에서 아마 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위의 편견, 멸시, 사회적 무책임.

'악인'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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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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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알게 된 건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방송을 통해서였습니다.

첫 여성 출연자로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는 '사람'의 냄새가 풍기곤 하였습니다.


그래서일까!

이번 김진애의 도시 3부작은 이 한 문장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사람이 들어오면

도시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일하고 거닐고 노니는 공간인 '도시'의 공간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이번에 만나게 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도시 3부작의 첫 포문을 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도시를 읽는 핵심적인 시각을 '도시적 ' 콘셉트로 제시하였고 이 콘셉트들이 모여 다채로운 도시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열두 가지 콘셉트를 따라서 전개되는 도시 이야기.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이상해하는 능력,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그럼 의문이 들게 됩니다.

왜 '도시적 콘셉트'인지.

이에 대해 그녀가 이야기합니다.

인간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모여 있는 공간이 도시이고,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공간이 도시이므로 이 열두 가지 콘셉트가 도시라는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정의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page 15


우선 바라본 '익명성'.

익명성은 도시적 삶의 근본 조건이라고 하였습니다.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같이 살아가며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합니다.

익명성이라는 조건 위에서는 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도시의 약속이다. 길을 다니는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가자아 고도화한 도시 예술이다.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익명의 시민들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시의 약속이다. 광장에서의 환희를 독려하는 것은 순간이나마 도시의 익명성을 넘어서게 하는 가장 고도화한 도시 예술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길과 광장에 대해 저마다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다. 추억, 그리움, 설렘 그리고 부러움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문화 유전자'로 사람들의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길과 광장이 끊임없이 재소환되는 현상을 봐도 그렇다. - page 53

그렇게 익명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역학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이 도시적 삶이 된다는 점.

익명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았던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억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일제 잔재 청산을 외치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였었습니다.

그러다 복고풍의 유행과 세계화의 영향이 섞이면서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가라앉게 되면서는 군산, 목포, 부산, 인천, 순천, 통영 등의 항구도시들에서 이른바 '적산 가옥'의 보존과 복원에 대해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만약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 역시도 우리의 역사였기에 철거만이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조선 시대 이전의 건물과 마을은 보존하고 복원할 대상이 되고, 근대의 건물과 동네는 보전과 재생으로 떠오르고 아픈 역사의 현자아들도 새삼 발굴해서 열심히 기억하고자 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오히려 고민이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이 시대의 공간을 어떻게 후대에 남기느냐 하는 것이다. - page 115 ~ 116


빈티지를 감식할 줄 알게 된 지금, 전통을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된 요즈음, 아픔도 돌아볼 줄 알게 된 작금의 분위기가 반갑고 또 고맙다.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지나치게 성급하거나 무성의하게 진행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오래 익은 시간은, 그 시간의 힘만으로도 설득력이 생긴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언제나 거기에 있을 듯한 안정감을 준다. 과거의 경험은 그대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흩어지기만 하는 것 같은 오늘에 깊이감을 드리운다. - page 119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역사의 기록을 발굴하고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기억과 기록은 씨앗이 된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은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기록이 풍부할수록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여럿이 또는 동시 대인이 같이 공유하는 집합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 집합 기억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온전히 그러한 집합 기억의 풍요로운 저장소다. - page 120


열두 가지 콘셉트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도시'가 풍요로운 이야기들로 다가왔습니다.

그저 빽빽한 건물들과 복잡하게 살아가는 우리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 속엔 우리의 과거가, 현재가, 앞으로의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인상깊게 다가왔었습니다.

 


우리가 '도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아마도 도시는 누구에게든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도시를 만드는 핵심적인 '플레이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도시에 흥미를 가질수록 더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도시'가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되기에

더 알고 싶어하고 더 좋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도시에 살아가는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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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미움들 - 김사월 산문집
김사월 지음 / 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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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렸습니다.

사랑하는 미움들

 

​사실 그녀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아무런 거리낌없이 귀를 기울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앞서 조심스런 <접속>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심장 두 개가 가장 가까이 닿게 하고, 당신의 심장박동 신호에 귀를 기울여 나의 것과 속도를 맞춥니다. 그리고 눈을 가만히 감아요. 나는 어쩌면 당신의 꿈속으로 접속할 수도 있겠죠.


이제 내가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요.

저의 이야기들을 용서해주시겠어요? - page 5

그렇게 서로의 심장 속도를 맞추고 가만히 눈을 감으며 꿈속에서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습니다.

외롭다. 심심하다. 누구라도 내 옆에 있었으면. 사무치는 고독에 푹 잠긴 채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서 라면을 먹으며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야지, 생각했다. - page 15


​아이였기에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무섭고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을 숨기지않고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당당히 자신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에 그만 내 모습을 투영해보기도 합니다.

그러곤 한참을 멍하니 있어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는 '트위터'와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트위터가 켜진 스마트폰.

리트윗과 하트들 사이.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죽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우리는 어색함에 웃었다.

"정말 죽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죽고 싶을 정도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괴로웠던 적이 있었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내가 너 때문에 죽는 거야. 나는 너 때문에 죽는 거야.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어떤 고통을 끝내는 키가 나의 죽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 page 81 ~82

요즘들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마감한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노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가 애잔하게 제 마음을 울리곤 하였습니다.




책 제목처럼 <사랑하는 미움들>에 대해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부족함투성이인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참으로 어렵기만 합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러나 예전처럼 나를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page 159 ~160



조금씩 그녀는 우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손끝을 따뜻하게 만들고 숨을 천천히 쉬어 심장박동을 진정시킨다. 나만의 시간. 오직 나만 생각해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이 나를 기다린다. - page 202

그리고는 우리에게 전한 이야기.

강하게 쥐면 손에 무엇도 남지 않는 모래를 가지려면 가볍게 손을 오므려 넘치지 않게 찰랑찰랑하게 담기. 나의 몫만큼 가지며 오래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희망하기로 했다. - page 205


저는 긍정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세상 속에서 웅크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발짝 떼기가 두려워 자꾸만 주저앉곤 하였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녀가 손을 내밀며 말해주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여기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자책하며 아파하지 말라고.

당신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당신이 세상에 있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꾹꾹 눌러 쓴 진심이 그녀의 글에서, 노래에서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녀 덕분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안심하고 고맙고 눈물나는 일이라는 것.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는 내 자신이 '사랑하는 미움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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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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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아이러니함을 느꼈습니다.

'불행'과 '멋짐'이 공존하다니......


알고보니 이 소설 속 '아줌마'가 보통이 아닌가봅니다.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왜 이렇게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

시시각각 찾아오는 불행엘 온갖 실수를 하게 되는데......


과연 이 아줌마!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펼쳐질 좌충우돌을 통해 펼쳐질 이야기가 기대되었습니다.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잉그리 빈테르'.

정말이지 평범한 가정 속의 엄마이자 아내였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면서도 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 변호사 남편.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셋.


하지만 불행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샤워 캐비닛은 따로 설치하지 않을 거예요. 욕조 안에서 샤워를 해결하면 되거든요."

우리는 집을 짓기 전 배관공과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네."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샤워 캐비닛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초공사는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 page 14


샤워 캐비닛이 있으면 실용적일 것이라 말하는 남편.

사실 그녀가 설계 도면에 있던 샤워 캐비닛을 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이 문제로 말다툼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중고 매물 시장인 'finn.no'에서 매물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집은 바로 우리의 운명이었다. - page 85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의 집이라 외치는 그녀.

동화나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것들을 원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내 머릿속에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돼. 필요 이상으로 태양 가까이 날아가면 몸이 타버리는 불행이 따를 거야. 하지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오는 경고의 메시지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모두 뽑아버렸다. - page 86

결국 남편과 약속했던 금액보다 100만 크로네 더 주고 그 집을 사게 됩니다.


그녀의 직업은 노르웨이 한 대학교 문학과 교수입니다.

그런 그녀의 직장에서도 학부 개편과 구조조정으로 이직이나 해고의 문제가 그녀에게 불안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에 은근히 그녀에게 '악당' 역할을 권하면서 따돌리는 직장 동료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학과장은 그녀에게 제안(?)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학부 개편과 관련하여 당신이 분과 코디네이션 일을 맡아주세요." - page 176


그런데 불행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듯이......

"잉그리 씨, 나는 오늘 특별히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할 시간 말입니다. 향후 20년 동안 당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연구 작업인지, 아니면 기타를 연주하며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치는 일인지! 그건 당신이 선택해야 할 일입니다. 다행히도 당신이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딘가요?"

"러시아입니다."

"러시아라고요?"

"우리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죠?"

"저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리 대학의 슬로건은 '혁신'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동유럽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 약 1주일간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 page 190 ~ 191

자신이 살던 집도 팔아야하고, 새 집으로 이사도 가야할 판에 사절단으로 러시아에 가야하다니!

그녀도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토록 일을 벌였을까.

지금까지 나는 어디에 있었으며, 또 앞으로는 내게 어떤 일이 생길까.

그 와중에 나는 러시아로 가야만 했다. - page 206


그 후에 펼쳐질 기상천외한, 황당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 속에서 심근경색에다 방광염,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귓병까지 그녀를 괴롭히는 병마와 함께 헤쳐나가는 과정이 참으로 '웃프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특히나 동료가 학장실에서 가져온 '성화'로 인해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단풍이 우거진 숲속에서 두 개의 오솔길을 앞에 두고 선택을 내려야 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가끔은 두 개의 길 중 하나는 옳은 길, 다른 하나는 잘못된 길을 의미할 때가 있다. 잡초가 우거진 비좁은 오솔길과 널찍하고 환하게 열려 있는 오솔길.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선 어떤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문제는 내가 이미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새집을 구입하며 지나왔던 길.

목감기 약을 들이켰던 길.

훔친 성화를 숨겼던 길.

아니, 어쩌면 나는 여전히 숲속의 양 갈래 오솔길 앞에 서서 어떤 길로 발을 옮겨야 할지 선택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 page 342


하지만 뜻밖의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

그리고 돌아온 집.

과연 그녀에겐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지......


잉그리 빈테르에게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한 마리 참새예요.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매 순간마다 소비해버리지요. 무지와 두려움과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당신이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 page 354

이 질문은 우리에게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그것을 향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이 소설은 3부작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에 뜬금없었던 고백으로 조금은 어색했던 부부사이가 한결 풀리면서 1부가 끝을 맺었는데 2부에선 어떤 현실이 펼쳐질지 궁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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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와 함께 떠나는 소아시아 역사문화산책 - 터키에서 본 문명, 전쟁 그리고 역사 이야기
조윤수 지음 / 렛츠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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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문명은 소아시아에게 빚을 지고 있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소아시아를 특별히 사랑한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만난 문구였습니다.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소아시아'

검색해보니 이는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민족이동의 통로이자 식민활동의 무대였으며 예로부터 갖가지 문명이 꽃피었던 곳이라고 하였습니다.(두산백과)

동방과 서방을 연결했다고하니 인류의 모든 문명이 공존할 이곳의 이야기가 궁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떠나게 된 여행.


거석문화의 웅장함을 보여준 괴베클리 테페, 히타이트 제국의 도시 하투샤

최초의 동서양 전쟁이 일어났던 트로이, 산 정상에 무덤이 있는 넴루트

바빌론 미타니 문명의 한 자락이었던 안티오크까지!


대사와 함께 떠나는 소아시아 역사문화산책

 


여행을 떠나기 앞서 우리가 둘러볼 곳을 한 장의 지도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소아시아.

문명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지형적 조건이 있었습니다.

소아시아 전체가 타우러스 산맥 외에는 대부분 밀밭이 이어진 평평한 대지다. 게다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온화한 기후에 강우량이 풍부한 비옥한 땅이다. 소아시아는 흑해 에게해 지중해를 끼고 있으니 사람이 살고 교류하기에 이만큼 좋은 여건이 없다. - page 11

정말 신이 특별히 사랑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만큼이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에 '양날의 검'과도 같았습니다.


우선 방문하게 되는, 터키어로 '배꼽 모양 언덕'이라는 괴베클리 테페의 발굴현장.

가는 길엔 아무 인가도 없고 메마른 둔덕만 연이어 보이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가 보니 정상엔 수천 년 동안 흙으로 덮인 신전 발굴현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변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찾고자 고고학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이 인가와 떨어진 이곳까지 올라와서 신을 모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 또한 풀어야 할 과제다. 신전이 있는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사방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명당이다. 이 넓은 땅에 파묻힌 인류의 초고대문명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맴돈다. 일설에는 농부가 밭을 갈다가 땅속에 박힌 돌기둥을 발견했다고 한다. 터키 중부에 위치한 퀼테페의 아시리아 식민지 문화 등 위대한 문화유산도 현지 운전기사의 제언으로 우연히 발견됐다는데 인류 문화유산의 발견은 모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가 보다! - page 27


그렇게 흔적을 좇아가는 여정 속에서 인류의 문명을, 전쟁을, 역사를 되짚어가며 끝나지 않은, 앞으로도 이어질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전개시킬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곤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트로이 목마'와 관련된 이야기.

마침 트로이에 들어서면 목마가 우뚝 서 있다고 합니다.

최초의 동서양 전쟁이 일어난 곳을 찾은 호기심, 패전국 트로이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 목마.

트로이는 그리스인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알려졌기에 이곳을 점령해 지역의 맹주로서 힘을 얻고 아울러 엄청난 재력을 축적하려는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우리에겐 빼앗긴 여자를 되찾는다는 신화적 스토리가 더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의 생활상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적절한 이야기를 붙이는 소위 스토리텔링이 돼야 더 친근하고 깊게 볼 수 있는 법이다. 호머도 마찬가지였을까? 그에게도 450년 전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머의 스토리텔링은 사실에 신화를 덧붙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page 48


인상적이었던 곳은 '리디아 사르디스'였습니다.

금속을 녹여 분리할 정도의 기술을 가진 민족이었고 당대의 페르시아와 견줄 정도로 강했던 리디아가 이제는 그 존재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가장 융성한 시점에 지도자의 판단 착오로 650여 년의 국가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다 백제의 '의자왕'이 떠올랐다는 저자.

의자왕 역시 해동증자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지도자였으나 자기만 믿고 충신을 멀리한 결과 비운의 왕이 되지 않았나.

귀국해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를 다시 찾았다. 부소산성을 따라 걸으니 고란사와 낙화암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백마강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강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데 문득 이 바람이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에서 불어왔다는 느낌이 든다. 리디아에서는 백제 의자왕이, 부여에서는 리디아 크로이소스 왕을 떠올려지는 것은 왜 그럴까. - page 109

타지에서도 우리의 역사와의 연결점이 있다는 점에서 '역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접했던 안타까운 현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지안테프는 이런 풍요로움 이면에 말 못 할 고민도 품고 있다. 이 시는 시리아 국경과 불과 120km 떨어져 있어, 200만 명 가지안테프 인구에 쏟아져 들어온 시리아 난민이 30만 명이나 된다. 이로 인한 여러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 page 174 ~ 175


인류의 문명이 잉태됐던 풍요로운 가지안테프이건만 지금은 시리아 내전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지안테프의 속살을 본 이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애처로움이 남아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알게 되는 걸까. - page 175 ~ 176

그래서 집시 여인의 애잔한 눈빛이 자꾸만 가슴에 사무치게 남았습니다.

우리가 좌우로 움직이면 그녀의 신비로운 눈도 따라 움직이며, 보는 이의 마음에 자신이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역사 여행을 하고나니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곳에 대한 앎의 갈증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소아시아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 소아시아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바라보니 보다 역사를, 인류의 문명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지역을 따라 그 속의 이야기를 파헤쳤다면 다음엔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떠나는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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