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믿고 읽는 출판사 '연담L'.

이번 주제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가족 동반 사건'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강제 동반 사건'


잊을만하면 접하는 사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최근에도 30대 중반의 한의사가 부인과 아이 등 가족 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

더구나 아무 죄도 없고 자신의 의사 표현도 잘 할 수 없었던 미취학 아동을 살해한 후 자살을 한 그.

그가 붙잡힌 뒤 진술한 이야기 중

아들과 딸이 부모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는 자녀의 생명까지도 앗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그에게서 과연 진정한 가장이란, 부모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끔 하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비추어질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살인이 시작되었다.


살인자에게


여름 미풍에 수많은 유등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한들거리는 유등 사이로 퍼지는 빛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눈에 뭐 들어갔어?" - page 9


소원 유등 축제를 준비하는 '유진웅'에게 반장이 말을 겁니다.

"유진웅! 오늘 조퇴해?"

올려다보는 각도 때문인지 반장이 나를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유등이 단단히 고정된 건지 움직여보면서 대답했다.

"할머니가 하래. 이거 끝나면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

"물고기 유등은 다 만들었어? 오늘까지 마무리해 준댔잖아."

"어쩌지. 아직 다 못 했어. 미안해."

"아직도? 아 씨! 너 때문에 한희 선배한테 핑계대야 하잖아." - page 11


진웅이가 조퇴를 하는 이유.

바로 오늘은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돌아오는 날입니다.

그리고 서울로 떠났던 자신의 형 '진혁' 역시도 할머니와 자신이 있는 집으로 잠시 와 준다고 하였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게된 아버지와 형.

그들에겐 말못할 사연이 있었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내게는 일가족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가 있다. 사업 실패를 비관해서 가족을, 그러니까 나와 엄마와 형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세상엔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 page 14


어색한 침묵.

하지만 최대한 진웅이는 착한 '아들', '동생'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릴 적부터 그를 향한 수군거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을이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의문의 죽음이 우리가 내려온 직후 발생했다며 모두 미심쩍어했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그 자식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어디서든 들려왔다.

'그 집안은 더러운 피를 타고난 거야.'

험담과 욕설과 그보다 더한 말들이 우리의 가슴 위로 차곡차곡 더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도 형이 여자애를 죽인 범인이라는 소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형의 눈빛이 점점 서늘해졌다. 서울로 떠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자마자 형은 바로 짐을 쌌다.

형이 집을 떠나던 날, 나는 앞으로 내 본심을 감추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진하고 착한 아이를 연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형처럼 나도 쫓겨날 순 없는 노릇이까. - page 23


그날 밤, 반장은 노란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 차림으로 진웅이의 집을 기웃거립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왜 폰 안 받아? 내가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

"전화했었어? 미안해. 몰랐어.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놓고선 방에 뒀네." - page 30

집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는데 왜 반장은 자신의 집으로 왔을까......

"아아, 내가 왜 왔나면, 한희 선배 때문에. 한희 선배가 연꽃 유등을 두 개 정도 만들어 올 수 없냐고 부탁을 해와서 말이야. 믿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나 뭐라나. 너도 알잖아. 한희 선배가 나 믿고 있는 거. 그래서 그 얘기 하러 온 거야."

"연꽃 만들어 달라고?" - page 33

처음부터 자신에게 맡길 작정으로 부탁을 받은 그.

만만하게 보인 자신이 한심한 건지, 유등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반장이 한심한 건지 판단이 안 서는데 그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한테 돈 빌려달라고 찾아왔다고, 그 사실을 애들한테 말할지 말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결국 그의 부탁아닌 부탁을 들어주게 된 진웅.

알고보니 자신이 반장과 대화하는 걸 형과 아버지는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오는 길.

폐쇄된 양계장에서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들은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시신은 내 또래 남자애였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남자애이기도 했다. 내게 유등을 만들라고 시킨 뒤 학교에 나오지 않은 아이, 정태민.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늦게 알아보았지만 분명 반장이었다. 반장이 죽은 채 내 발치에 엎드려 있었다. - page 83


살인 전과가 있는 진웅의 아버지는 신고자이자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집중 조사를 받게 되고 정황 역시도 그에게로 맞추어가는 듯 하지만 진웅은 그럴수록 더 의심이 가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형, 진혁.

과연 아버지와 형 중 누가 반장을 죽인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범인인지.

단 5일간 진웅, 아버지, 진혁 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의 전말은 이미 비극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부터 거슬러가게 됩니다.


이 가족의 비극을 보여주었던 형과 동생의 대화.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


 


'가족'이지만 오히려 '가족'이었기에 각자의 고통과 상처, 절망과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였던 그들.

최후의 비참한 결과가 더없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나 진웅과 진혁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편견에 사로잡혀서 진실을 못 보고 하는 말이지." - page 120

우리의, 사회의 편견이 비극에 비극을 낳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