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탐정 오이카케 히나코 - JM북스
츠지도 유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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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너무 귀여웠습니다.

알고보니 평소에는 덕질을 좋아하는 '여고생'이 사건만 터지면 '명탐정'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짝사랑 열성팬인 '오이카케 히나코'의 사건 해결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짝사랑 탐정 오이카케 히나코

 

오늘도 어김없이 '같이 쓰는 방' 안에서는 절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우왓!" - page 7

첫 장면은 우리의 주인공 '히나코'와 방을 같이 쓰는 오빠 '쇼헤이'의 비명 아닌 비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고 또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상황.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2, 3주에 한 번은 터지는 사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 '인테리어 대격변'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것도 히나코가 좋아하는 꽃미남 남자 사진들이

우측에서나, 좌측에서나.

앞쪽에서나, 뒤쪽에서나.

위쪽에서나, 밑쪽에서나.

얼굴, 안면, 면상, 페이스...... 온갖, 모든 각도에서 찍은 똑같은 얼굴 몇 백 개가 뜨거운 시선을 쇼헤이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 page 10

예전에는 히나코 책상 주변에만 있던 것이 점점 쇼헤이 쪽 공간까지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웃어넘길 수준을 한참 넘어선 지금.

그는 스스로에게 내뱉곤 합니다.

"내가 봐주니까 아주 갈 때까지 가는구나. 적당히 해라." - page 11

그리곤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중심엔 히나코가 좋아하는 연극배우, 스모 선수, 아역, 만화가, 나아가 수상마저 휘말리게 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건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히나코.

과연 이 수상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히나코는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각 사건마다 펼쳐지는 그녀의 탐정 이야기는 때론 대범하면서도 아기자기하여 읽으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해 주었습니다.


첫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히나코는 그토록 열혈히 좋아하던 상대에 대한 태도가 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전까지는 범접할 수 없는, 멀리서 바라보고 그를 향해 마음을 주는,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면서 '열성팬'으로써의 역할을 하지만 사건을 통해 자신이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자신과 대등한 존재임을, 아니 가면을 쓴 존재였음을 알게 됨으로 공허히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조금은 씁쓸한 마음마저 들곤 하였습니다.



마치 만화영화를 본 듯 마냥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도가 지나친 일명 '사생팬'들이 있어서 그들의 스타가 곤혹스러움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안타까움을 사기도 하는데......

히나코도 '팬'이라는 선에서 도를 넘을 듯 넘지 않기에 조금은 조마조마 하지만 결국은 미워할 수 없는, 한때 열성적이었던 팬으로 남았기에 귀여워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채로운 사람들에게 사랑이 빠지는 히나코.

과연 다음엔 누구에게 열성적으로 빠져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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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기 위해 오늘도 일하다 -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오타키 준코 지음, 최윤영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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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까지는 남의 얘기로만 여겼습니다.

경력단절......

현실의 저에게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을 때 솔직히 회사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워낙 몸도 약했기에 힘겨웠지만 그보다 더 따가웠던 사회적 눈초리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출산을 하고......

그래도 사회는 변화하고 다시 재취업이 될 줄 알았습니다.

사회초년생이 되기 위해 썼던 원서보다 더 많은 원서로 지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편으론 머리로 이해가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지금은 단념 아닌 단념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20대 때의 자존감과 30대가 된 저의 자존감의 차이는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이도 들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따가운 눈초리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어깨에 자존감은 내려놓음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나았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문구가 이끌렸습니다.

결혼, 출산, 육아로 끊임없이 벽에 부딪히며

자신감을 잃어가는 여성들에게 전하는

몸과 마음을 지키며 행복하게 오래 일하는 법

일을 다시 할꺼란 헛된 희망은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굽혔던 내 자존감을 조금은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

나로 살기 위해 오늘도 일하다

 


<들어가며>의 이야기를 읽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일, 가정, 육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시간이나 자신의 건강과 타협하며 주위와 균형을 맞춘 딱 알맞은 '자리'를 찾는 것에 많은 여성이 고생하고 있다. - page 5

예전의, 아니 지금의 제 상황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원치않게 눈물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은 여성스러움과 육아의 경험을 살려 보람 있게 일을 지속하고자 발버둥 쳐온 기록이기도 하다. 볼썽사나운 일이며 미숙한 일도 많았고(그야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런데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것,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진짜 일의 참맛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제도로는 실현될 수 없는 것, 여성들 스스로가 바꾸어나가는 것과 나갈 수 있는 것.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몸도 돌보면서 자신과 주위 사람 모두 행복하게 보람 있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할까. 이런 것들을 나의 작은 이야기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 page 6 ~ 7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


역시나 그녀도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결혼을 먼저 하고 입사한 회사에서는 '어차피 바로 그만두겠지'라는 시선.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평생 일할 거예요"라고 말하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세상의 가치관.

그녀의 소리없는 아우성은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일 이외에도 매일의 집안일 육아에 아이의 학교 행사 및 임원 일 등을 맡거나 부모를 병간호해야 하는 일이 더해지면서 정신없이 바빠진다. 갱년기에 가까워지면 몸 상태나 기분의 요동에 농락당하는 일도 자주 있어 여성의 심신이 받는 충격은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해진다.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할지, 일에 중점을 둘지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든 공통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우선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것'. 위를 지향하기 이전에 계속할 수 있는 일과 일하는 방식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page 29 ~ 30


'엄마'로써 일을 하면서 경력 단절 여성으로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다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기도 한 그녀.

하지만 기회는 우연찮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날 잡담을 나누다 사장에게 "사이트를 만드는 것보다 허브를 사용한 건강보조식품이라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고 문득 생각난 것처럼 단순히 말했다. 그러자 당자아에 "오타키 씨가 해주는 겁니까?" 하는 예기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 page 81

그렇게 시작된 몇 개의 가는 실들이 이어져 결국 '사장'이라는 자리에 오른 그녀.


그녀 역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 중심엔 '여자'라는 이유.

그 이유 단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벽은 참으로 높았습니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을 찾게 되면서 세상 앞에 당당히 일어 선 그녀의 모습에 그동안 움츠려 있었던 저에게 꾸짖음과 함께 희망을 선사하곤 하였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직접 해 주었다면 폭풍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자'로 산다는 것.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결혼, 출산, 육아......

점점 '엄마'로써의 역할을 강요하면서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걸......

그 위치에 들어서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나' 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지만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또다시 나의 자존감은 고개를 숙이곤 합니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를 만나면서 조금은 '나'라는 존재도 되돌아보며 용기를,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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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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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리소설의 대가라 하면 누구나 입을 모아서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작품은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기에 그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안 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는 그의 작품을 그저 일드로만 보았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책을 찾아 읽어보지는 못하고 있던 찰나, 이번 기회에 그의 진면모를 알아보고자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제131회 나오키상 후보작이자 일본 WOWOW TV에서 8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화제의 밀리언셀러라기에 읽어보지 않아도 이 소설이 얼마나 흥미로울지는 예상이 되었습니다.


악의 화신인 한 여자, 그녀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농락당하는 한 남자

어둠 속을 걷는 두 남녀의 운명, 그리고 충격의 결말


환야 1, 2


어두컴컴한 공장 안에 공작 기계의 검은 그림자가 줄지어 있다. 마사야가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밤의 묘지가 연상되었다. 하기야 아버지가 묻힐 무덤은 이렇게 멋들어지지 않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 page 9

아버지의 죽음.

제단 앞에서 아버지 유키오가 생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 세 사람과 친척 몇 명뿐이 빈소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친척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은 고모부 도시로뿐.

그는 마사야에게 자신이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보험 증서는 있지?"

도시로가 물었다. 마사야는 잠깐 손길을 멈췄다가 다시 접시를 씻었다.

"네, 있어요."

"좀 보여 줄래?"

"......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설거지 같은 건 내일 해도 되잖니. 지금 보여 줬으면 좋겠구나.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면 내가 꺼내 오마." - page 15

그는 보험 증서들을 보면서 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네 엄마가 죽기 전이니까 벌써 3, 4년 전이구나. 목돈이 좀 필요하다면서 부탁하기에 내가 4백만 엔 정도를 구해 줬어. 이런 불황에 친형제 간에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하려니 입이 안 떨어져서 그만 오늘까지 왔는데, 나도 이제는 사정이 위태로워서 말이지." - page 17


사실 도시로는 부모님을 꾀어 투기 매매 주식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단 자신이 돈을 넣겠다며 유키오더러 차용증을 쓰라고 하는 등 유키오도 설마 처남이 자기를 속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아버지의 자살.

사실 마사야는 아버지의 자살을 예감하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릅니다.

곤두박질치는 회사 사정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미즈하라 부자의 운명에 마사야는 차라리 아버지가 죽어 줬으면, 그래서 생명 보험금이라도 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을 맨 아버지를 보았을 때 왠지 모를 안도감마저 들었던 그.

이런 저런 생각을 멈추고 잠시 눈을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갑자기 발밑에서는 충격이 전해지면서 굉음이 울리고 바닥이 들썩거리기 시작합니다.

창틀이 휘어지고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는 아수라장 속에 대들보에 깔려 있는 누군가가 보입니다.

미동조차 없는 도시로.

그리고 의 웃옷 주머니에서 비어져 나온 누런 봉투.

마사야는 도시로에게 다가가 누런 봉투를 꺼내던 그때, 도시로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뭔가를 호소하듯이 입을 움직이고 있는 그를 보며 이성보다는 본능에 가깝게 옆에 있던 기왓장을 집어 들고 도시로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눈엣가시였던 도시로의 죽음.

돌아서던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젊은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신카이 미후유.


그런데......

고모부 도시로의 죽음이 탐탁지 않음을 알게 된 이들로부터 조여오는 난국 속에서 미후유가 등장하게 됩니다.

"있잖아."

미후유가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만 떠나면 어떨까?"

"뭐라고?"

"떠나자, 같이." - page 105

그렇게 마사야와 미후유는 새로운 삶을 찾아 도쿄로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살인을 알고 있는 미후유에게 포로가 되어 그녀의 출세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하나둘 제거하며 그의 그림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미후유도 자신의 외모와 머리로 취직한 회사에서 승승장구를 하며 출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빛인 미후유의 곁을 맴도는 그림자 마사야의 모습은 『백야행』에서의 주인공들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둘이서 헤쳐 나가기로 약속했잖아. 주위가 온통 적이야.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고상한 척할 수만은 없어."

"그건 알지만, 미후유가 걱정돼서 그래."

"나는 괜찮아. 마사야가 내 편인 한 싸울 수 있어. 그러니까 마사야,"

그녀가 살짝 치켜 올라간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배신하지 마."

그녀가 바라볼 때면 마사야는 온몸이 빨려들 듯한 착각에 빠진다. 눈을 깜박거리던 그가 머리를 털듯이 흔들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언제나 미후유 편이야. 절대 배신하지 않아."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기뻐." - page 227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며 점점 더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시청 형사 '카토'는 수 년에 걸쳐 이 두 사람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마치 미후유가 마사야에게 했던 이야기처럼.

"이건 함정이야. 그리고 그 끝에는 개미지옥이 있지. 이 협박장을 보낸 인간이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야. 앞으로 몇 번이고 계속 돈을 요구할걸? 평생 따라다닐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 page 327

그들도 그 끝에 개미지옥이라는 걸......


점점 그녀의 손바닥에서 놀아났음을 깨닫게 된 마사야.

그는 지하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미후유, 너는 내게 소가를 죽이게 했어. 네 손은 더럽히지 않았다고 여기는 거야. 하지만 아니지. 너도 사람을 죽였어. 너는 나를 죽였어. 내 혼을 죽였다고. - page 302


파멸의 끝에......

그림자는 마치 빛에 가려 사라져 버렸고 그 빛은 또다시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읽고나서 가슴이 너무나도 먹먹하였습니다.

마사야......

"환한 낮의 길을 걸으려고 해서는 안 돼."

미후유가 정색하고 말했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 page 334


팜므파탈이었던 미후유.

이보다 더 악녀일수 있을까.

그녀의 미모 뒤에 감춰진 잔혹함이 더없이 그녀를 빛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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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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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소개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때로는 한 편의 소설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어요."

뭔가 드라마틱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책을 통해 변화된 이들의 이야기가......

128호실의 원고』​ 


이야기는 2016년 4월 25일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보내는 편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

남편과 휴가차 간 그 곳에서 원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남편은 이 원고가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서랍에 버려진 채 묵혀 있던 거라고 하지만 그녀가 원고를 읽으면서 누군가가 써놓은 글도 발견하게 되고 소설인지 경험담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매혹적이었기에 우선은 원고에 적힌 주소로 이 원고와 함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녀의 편지에 답장이 왔습니다.

원고의 주인인 '실베스트르 파메'.

그는 그녀가 원고를 발견했다는 브르타뉴 지역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원고는 1983년 4월 3일, 30 여 년이나 뒤늦게 피니스테르에 있는 한 호탤에서, 그것도 바다가 보이는 객실 머리맡 탁자에서 원고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사실!

자신은 156쪽까지만 썼는데 그 후로의 글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

그 후로 몇 년 동안 저는 원고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보곤 했답니다. 운명의 주사위를 다시 던지듯 훌륭하게 끝마친 원고를 편집자에게 들이밀고 문단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젊은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지요...... 보시다시피 저는 어렸을 때 꾸었던 미완성의 꿈을 여태껏 끌고 온 것 같군요. - page 21


그렇게 자신을 '미완성'이라 단념하는 그에게 그녀는 또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의 후반부 작가가 덧붙인 주석만 봐도 그자가 당신의 원고를 가로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끼어들어놓고 감탄을 자아내는 결말을 쓰다니요! 물론 장담컨대 당신이 쓰려고 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결말일 거예요. 이렇게 편지를 쓰는 지금, 저는 이번 만남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 상상하고 있어요. 상처 난 감수성과 예민함을 지닌 당신과, 적절한 곳에 꼭 맞는 단어를 실수 없이 넣을 줄 아는 탁월한 이야기꾼인 그 사람의 만남. 하지만 어떤 만남은 실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걸작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의 탄생을 방해하고 마니까요......


실베스트르 씨, 여기까지가 제 독후감입니다.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살면서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들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만성 통증처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답니다. 당신의 글을 또 읽게 되기를 기대할게요. 출판은 언제라도 가능하니 꼭 마무리하세요. - page 25


그리고는 안느 리즈는 원고의 이야기를 완결 지은 이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일명 '128호실의 수수께끼'.


원고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돌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고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이 원고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조금씩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소설 속 얘기는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소설 덕분에 우리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게 됐답니다. 별난 방법으로 인생의 맛을 다시 찾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왜냐면 이 땅에서의 여정이 보잘것없고 순간적일수록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혹은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니까요...... - page 82

상처를 치유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고 사랑도 쟁취하는 등.

그렇게 안느 리즈는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또 하나의 인연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찾게 될까요? 혹시 우리가 대장정의 결말에 너무 큰 환상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정의 끝에서 누군가를 찾아냈는데 그가 소설의 존재를 잊었거나, 지금은 그 내용을 깔보기까지 한다면 너무 실망스럽지 않을까요? 맞아요, 저는 겁이 나요. 제발 우리가 쌓아 올린 이야기의 서사에 걸맞은 결말이 나기를 기도합니다. 결국은 오직 결말만이 작품에 숭고함과 영속성을 부여하니까요.

어쨌든 계속해서 소식 전해드릴게요. 당신은 그 소설에서 한 챕터를 맡은 체인의 고리예요, 다비드...... - page 258 ~ 259


그리고 이 소설의 묘미였던 반전.

그녀는 왜 그토록 원고의 여정을 좇았는지.

예상치 못하였기에 짜릿함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이라 여겼지만 알고보니 거의 대부분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이 소설, 『128호실의 원고』.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따뜻함이, 감동이 있었습니다.

'미완성'이 '완성'으로 향하는 그 글자들이 결국 우리의 인생의 단편의 이야기였음을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미완성의 원고를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로 완성을 향해 달려나갈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요즘.

벚꽃이 흐드러진 나무 아래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더없이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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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 - 야루 산문집
야루 지음 / 마이마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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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금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행, 미술, 스포츠, 음식,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서진의 뉴욕뉴욕>.

올드 뉴요커 이서진씨는 30년 전과 달라진 뉴욕을 보면서 아쉬움과 감탄을 연발하곤 하였습니다.

"나 때는 이렇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하는 요즘.

저 역시도 가끔은 어릴 적 놀던 동네에 대한 추억으로 울적할 때 쯤 그곳에 가 보곤 하였었습니다.

내가 놀던 놀이터.

내가 자주가던 문구점.

그리고 학교.

그때의 풍경들은 제 추억 속 한 장으로만 자리잡고 있고 변한 모습에 씁쓸한 마음만을 간직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사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들곤 합니다.

심지어 '나' 마저도 변했는데......

그래서 이 책이 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길 바라는 제 이기적인 마음때문일까......


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봐봐요. 동네에 계신 아주머니들은 모두가 뽀글이 파마를 하고 있고 그런 아주머니들이 누군가 흉을 볼때에는 말투가 전국 어디나 다 똑같아요. 누가 그렇게 하자고 합을 본 것도 아닌데 신기하리 만큼 비슷해요. 어때요. 말하니까 하나둘씩 기억이 펼쳐나고 있죠? 이렇게 우리는 다들 기억하고 있어요. 머리속에 일부러 달달 외운 것도 아닌데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이 흘러나오게 돼요. - page 6

무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장면.

잊고 있었지만 우리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애기들.

참으로 정겨움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똑똑똑 누구십니까>에서는 이사 떡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사를 왔을 때 윗집, 옆집, 아랫집에 이사를 왔다면서 떡을 돌리러 갔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었습니다.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있어도 떡을 안 받겠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떡을 들고 갔다가 다시 들고 오게 되는 그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

하지만 여기에 적힌 이야기는 우리네 인정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하였습니다.

"옆집에 왔어요 이사. 주래요 엄마가"

꼬마는 땅바닥 어딘가를 보면서 바들바들 그 떡을 내민다. 머리를 다듬길 잘했지. 쪼그려 앉아 꼬마가 건네는 떡을 받은 뒤 꼬마의 눈을 바라보며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꼬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고 나는 꼬마가 혹시나 넘어질까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 집으로 들어갔는지 확인한 후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요즘 세상에 이사 떡이라니. 건네 받은 그 떡이 꽨나 따듯하다. - page 40

<#인품을 사려거든>을 읽고나서는 '방산시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래된 시장인지라 정이 아주 넘치는 곳이 이곳이다. 몇 번 얼굴을 튼 사이라면 가볍게 음료수도 건네 주시고 흥얼거리던 노래에 합창을 제의하시기도 한다. 내가 자주 가는 비닐집에 들어서면 사자아님은 꼭 인사 대신에 노래를 부르시곤 하는데 나는 가끔 그럴때면 화음을 넣어가며 순간적으로 방산시장 녹색지대를 결성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나면 사장님은 항상 퇴행성 류마티스가 싹 다 낫는거 같다고 기쁘게 울먹이신다. - page 80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대형마트나 백화점.

정렬화되어 있는 물품들 속에서 무인으로 셀프 계산까지 가능해지면서 점점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요즘에 익숙해져버리는 아이들에게 이 곳에서의 '인품'을 사러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우리 아이는 훗날 느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행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엔 부모님과 같이 갔던 곳.

이제는 내가 아이와 같이 가면서 느끼게 된 부모님의 감정, 그리고 그 시절들.

변하였지만 그 마음만은 변치 않았다고 느끼고 싶은걸까......

참으로 아이러니하였습니다.


잠시나마 추억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더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은 것 중심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냄새'가 아련히 가슴 속에 남아 변화 속에 방황하는 나를 따스히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한 잔의 추억과 한 잔의 그리움이 묻어있었던 『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

한 잔의 커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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