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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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소개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때로는 한 편의 소설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어요."

뭔가 드라마틱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책을 통해 변화된 이들의 이야기가......

128호실의 원고』​ 


이야기는 2016년 4월 25일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보내는 편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

남편과 휴가차 간 그 곳에서 원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남편은 이 원고가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서랍에 버려진 채 묵혀 있던 거라고 하지만 그녀가 원고를 읽으면서 누군가가 써놓은 글도 발견하게 되고 소설인지 경험담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매혹적이었기에 우선은 원고에 적힌 주소로 이 원고와 함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녀의 편지에 답장이 왔습니다.

원고의 주인인 '실베스트르 파메'.

그는 그녀가 원고를 발견했다는 브르타뉴 지역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원고는 1983년 4월 3일, 30 여 년이나 뒤늦게 피니스테르에 있는 한 호탤에서, 그것도 바다가 보이는 객실 머리맡 탁자에서 원고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사실!

자신은 156쪽까지만 썼는데 그 후로의 글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

그 후로 몇 년 동안 저는 원고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보곤 했답니다. 운명의 주사위를 다시 던지듯 훌륭하게 끝마친 원고를 편집자에게 들이밀고 문단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젊은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지요...... 보시다시피 저는 어렸을 때 꾸었던 미완성의 꿈을 여태껏 끌고 온 것 같군요. - page 21


그렇게 자신을 '미완성'이라 단념하는 그에게 그녀는 또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의 후반부 작가가 덧붙인 주석만 봐도 그자가 당신의 원고를 가로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끼어들어놓고 감탄을 자아내는 결말을 쓰다니요! 물론 장담컨대 당신이 쓰려고 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결말일 거예요. 이렇게 편지를 쓰는 지금, 저는 이번 만남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 상상하고 있어요. 상처 난 감수성과 예민함을 지닌 당신과, 적절한 곳에 꼭 맞는 단어를 실수 없이 넣을 줄 아는 탁월한 이야기꾼인 그 사람의 만남. 하지만 어떤 만남은 실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걸작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의 탄생을 방해하고 마니까요......


실베스트르 씨, 여기까지가 제 독후감입니다.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살면서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들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만성 통증처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답니다. 당신의 글을 또 읽게 되기를 기대할게요. 출판은 언제라도 가능하니 꼭 마무리하세요. - page 25


그리고는 안느 리즈는 원고의 이야기를 완결 지은 이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일명 '128호실의 수수께끼'.


원고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돌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고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이 원고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조금씩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소설 속 얘기는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소설 덕분에 우리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게 됐답니다. 별난 방법으로 인생의 맛을 다시 찾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왜냐면 이 땅에서의 여정이 보잘것없고 순간적일수록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혹은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니까요...... - page 82

상처를 치유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고 사랑도 쟁취하는 등.

그렇게 안느 리즈는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또 하나의 인연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찾게 될까요? 혹시 우리가 대장정의 결말에 너무 큰 환상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정의 끝에서 누군가를 찾아냈는데 그가 소설의 존재를 잊었거나, 지금은 그 내용을 깔보기까지 한다면 너무 실망스럽지 않을까요? 맞아요, 저는 겁이 나요. 제발 우리가 쌓아 올린 이야기의 서사에 걸맞은 결말이 나기를 기도합니다. 결국은 오직 결말만이 작품에 숭고함과 영속성을 부여하니까요.

어쨌든 계속해서 소식 전해드릴게요. 당신은 그 소설에서 한 챕터를 맡은 체인의 고리예요, 다비드...... - page 258 ~ 259


그리고 이 소설의 묘미였던 반전.

그녀는 왜 그토록 원고의 여정을 좇았는지.

예상치 못하였기에 짜릿함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이라 여겼지만 알고보니 거의 대부분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이 소설, 『128호실의 원고』.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따뜻함이, 감동이 있었습니다.

'미완성'이 '완성'으로 향하는 그 글자들이 결국 우리의 인생의 단편의 이야기였음을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미완성의 원고를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로 완성을 향해 달려나갈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요즘.

벚꽃이 흐드러진 나무 아래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더없이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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