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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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게 뭔지 아니? 가는 비행기에서 본 후지산이었어."

뭐? 정말 그렇게 말했어?

코끼리는? 말은? 바다는? 별이 총총한 하늘은?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금, 나와 동생에게 그 여행에서 가장 좋은 추억은,

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추억은 후지산이라고 했던 어머니다.

p. 57

얼마 전 3박 4일간 아버지의 칠순을 맞이해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해외로 나가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여러 가지로 설레기도 했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여행을 앞두고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 에세이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여행만큼이나 설레었다. 내가 다녀온 여행과 혹시 교집합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만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여행은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백화점을 가도 여행이라고 느낀다면 좋은 여행이 될 것이고,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을 걸려 나가도 내가 불편하고 좋지 않으면 나쁜 여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여행 드롭 속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서울도 있고, 여동생과 휴가를 맞춰서 케냐로 떠나기로 했다가 전 날 취소되어 장소가 로마로 변경되었던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특히 서울 이야기에서는 삼계탕 이야기가 있었는데, 익숙한 가게나 장소만 가더라도 마음이 집처럼 편해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끄덕여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었는데, 유달리 목욕을 좋아하는 여주인공 아오이의 이야기가 사실은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은 구절도 발견했다. 그녀 역시 온천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온천에 있으면 비 오는 날이 좋아진다고 한다. 온천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날, 큰 비를 만났고 결국 온몸이 잔뜩 젖은 채로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큰 비에 돌아갈 길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함께 곁들여진 삽화 덕분에 더 따뜻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기. 책을 읽으며 내 여행의 기억들도 하나 둘 떠오르는 걸 보면,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유의 맛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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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 아프고 힘들었던 나를 찾아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시간여행
권은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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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행복하기만 하면 그 행복을 결코 행복인지 모를 것이다.

왜냐면 불행이 어떤 것이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행을 겪어본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이 어떤 건지 알 뿐만 아니라

그 행복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p.149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자기 계발서에 심취했다. 하나같이 성공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성공론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해 보였다. 당연히 저자의 프로필을 봐도 하나같이 한자리를 하고 있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거나, 학벌이 뛰어났다. 물론 처음부터 금수저를 타고난 경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성공담은 읽으면 읽을수록 힘이 빠졌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성공을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한동안 자기 계발서를 덮고 살았다. 오히려 소설이나 역사서가 내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책을 내는 경우가 많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연재한 글이 책으로 엮여서 나오기도 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뛰어난 성공을 이루지 못했어도 오히려 성공한 사람들보다 더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들도 많다. 과거에 비해 책을 내기가 어렵지 않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쓴다는 것은 뭔가 자신의 것을 남에게 전하는 역할임에 틀림없다. 사실 저자의 이력을 읽고 놀랐다. 삶에 참 우여곡절이 많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그녀의 책 속에는 밝은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3남 2녀 막내로 태어난 저자는 다음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10대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어려서부터 청각장애를 앓았는데, 가족 중 한 형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저자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지만, 지인의 말에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를 했다가 돈을 전부 날리고 디스크로 걷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다. 글로만 봐도 저자의 삶은 정말 쉽지 않았던 것이 맞다.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을 탓하고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다.

사실 저자가 투자를 하게 된 것 역시 거절을 못 하는 성격 때문이었다고 한다. 큰일을 겪으며 저자는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기준의 우선순위를 자신에게 둔 것이다. 당장 내가 행복한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삶의 행동이 변하게 되었다. 적절한 거절을 알게 되자, 자신의 에너지를 지킬 수 있었고 그것은 또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저자의 삶을 보면 불평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참 많아 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꿰뚫어 보고 그를 통해 또 다른 교훈을 얻어 가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불행을 겪었기에 진정 삶의 행복을 알 수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그 어느 누구의 말보다 깊이 있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삶의 행복은 내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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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 고객센터
마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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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혼자 키우던 아이 한소원. 아이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고 있었다. 그저 숫기가 없거나, 낯을 많이 가리는 게 아니라 말을 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처음으로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른 날.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바로 아이 앞에서 말이다. 그날 이후 아이는 큰 죄책감을 갖게 된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큰 소리라 불렀기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죄책감 말이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했고, 아이는 꽤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아이는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아이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은 아이에게 색안경을 끼었지만, 그녀가 많은 것을 포기하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니는 소원을 들어주는 앱을 개발한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아이를 찾은 사람들과 아이 자신의 이야기다.

책 안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미용실 직원, 가족을 떠나 길고양이를 키우고 사는 남자, 행복 검투사로 불리지만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은 유명 강사, 데이트 폭력으로 하나 있는 동생을 떠나보낸 언니 등 각자의 소원은 모두가 달랐다. 그들은 광고를 보고 소원을 찾아온다. 소원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준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했을까? 과연 소원은 왜 무료로 사람들의 소원을 해결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일까?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하나 남은 동생 다은과 사는 언니 다정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처절한 복수극 혹은 무시무시한 사건이라 생각할 수 있었는데, 생각지 못한 반전을 마주하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은행에서 일하는 다정은 VIP 고객의 얼굴을 보는 순간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바로 그놈 김민준이었기 때문이다. 돈 있다가 유세를 떠는 그는 5년 전, 동생 다은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바로 그놈이었기 때문이다. 광고를 본 다정은 소원을 찾아간다. 그놈을 죽이고 싶다... 아니 그놈 또한 동생 다은처럼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정의 이야기를 들은 소원은 그녀의 핸드폰에 앱을 깔아준다. 그리고 다정을 다시 방문한 김민준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본 다정은 핸드폰을 켜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얼마 후, 큰 소리가 나고 민준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박는다. 그리고 그 사고로 민준은 사망한다. 민준이 사망하자, 다정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혹시 자신이 건 전화가 남아있을까 봐라. 하지만 다행히 사건은 민준의 심장발작으로 결론지어지고, 오히려 민준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이유로 다정은 동정표까지 받게 된다. 사실 다은이 사망하기 전, 다은은 남자친구인 민준과 그의 친구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장면을 고스란히 찍힌다. 그 일로 다은은 자살을 하게 된다. 다정은 민준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다은을 성폭행했던 민준의 친구들을 찾기 위해서다. 과연 다정은 복수의 성공할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상황과 과거, 사연을 가지고 있다. 책 중간중간 드문드문 등장하는 소원의 이야기는 각 사연과 어우러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죄책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원이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그녀 역시 조금씩 변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 것이다. 소원을 통해 각자의 소원을 이루어가는 사람들. 끝이 애매하게 끝나서 왠지 더 여운이 남는다. 소원성취 고객센터 2권을 만날 수 있을까? 다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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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1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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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이 행복이나 적응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아이를 낳는다.

불일치와 박탈 상태에 있을 때 출산을 기피한다.

p.175

14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작년 말 이직을 했다. 14년을 다니면서 연애와 결혼, 두 아이를 출산했다. 두 아이 모두 출산을 5일 남겨두었을 때까지 출근을 했다. 큰 아이를 낳고 6개월 만에 직장에 복직했다. 진통하면서도 회사에서는 전화가 왔고,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으면서도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육아휴직 중에도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나가 잔업을 처리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볼 수 있지만, 7년 전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그나마 그렇게 했기 때문에 4개월이나마 육아휴직을 (겨우) 받을 수 있었고, 복직 후 남은 8개월을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적응 시간을 3일 밖에 갖지 못한 채 떼어놓은 아이는 아침마다 울었고, 눈이 팅팅 부은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핏덩이를 떼어놓고 출근을 하는 건가...!'하는 자괴감에 매일같이 울면서 출근을 했다. 둘째 때는 그나마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핸드폰에 어린이집 번호가 뜨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의 상당수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열이 날 때 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친정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셨던 터라, 아이의 육아 공백을 상당수 채워주셨다. 남편은 출산휴가조차 쓸 수 없는(쓸 수는 있지만, 남편이 빠지면 그 여파가 팀원들에게 가기에 차마 쓰지 못했다.) 상황이었던 터라(출산 당일만 자리를 지켰고, 퇴원 후 조리원으로 이동할 때도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셨다.), 출산 후 육아부터 지금까지 육아는 모두 내 몫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와닿는 것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으로 직접 겪어낸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10개월가량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4개월이 채 못되어 다시 취업을 했던 이유는 올해 3월 큰 아이의 입학 때문이었다. 돌봄교실 신청 자격 요건이 맞벌이부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는 입학과 동시에 늘봄 학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가슴 한 편에는 엄마의 퇴근시간까지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내일모레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반 인원은 총 18명이다. 여아가 10명, 남아가 8명. 총 4개의 학급으로 1학년 전체 인원은 80명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 학교는 학생 수가 많은 편이라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작년에 비해 5,000명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제서야 그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그래도 내 주변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매스컴에서는 그런가 싶었는데 인원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매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부는 아이를 낳게 하려고 많은 세금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왜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는 것일까? 단지 돈 몇 푼에 아이를 낳는 무모한 짓(?)을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실제적인 수치로 대입한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할 때도 많지만, 매일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상당수다.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왜 아이를 둘이나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아무리 세대가 달라졌다 하고, 인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와 살림의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경력과 아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세대 속에서 여성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아이를 낳기에는 모든 상황이 이미 답정너가 되어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도 맞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 될 수많은 이유가 산재해있다. 출생률은 단 한 가지 이유가 해결된다고 급등하지 않는다. 바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0.6의 출생률의 다양한 이유를 하나하나 꼽고 있다. 20년간 4차에 걸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대안들을 통해 변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저자는 그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설명한다. 단시간에 해결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들이 너무 많다. 아예 대한민국 대개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사람의 인식이 아닌, 다변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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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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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흠칫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 생각하고 책을 봤는데, "있다" 였기 때문이고, 사회과학 분야의 책일 거라는 생각과 달리 장편소설이었다는 것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작가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는데, 작년 꽤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 단편소설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 책의 주인공인 김한섭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는 기분이다. 한섭씨로 불리는 그는 전직 2선 국회의원이자 사회부 장관 출신이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가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마주하는 한섭은 인사도 마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그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자신을 못 알아봐 준 것에 대한 아쉬움도 그중에 일부 있긴 했지만, 그걸로 마무리하기에는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한섭은 사실 공치사를 하거나, 생색을 내는 정치인과 선이 좀 다르긴 했다. 대학시절 군부가 세상을 장악했던 시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목도하며 착한 사용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은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그는 사회부 장관으로 노인복지에 관한 정책을 끌어내어서 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가의 재정으로만이 아닌, 기업들의 도움을 끌어내기도 했고 결국 그 일로 복지정책을 완성해 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야당 후보인 이동현은 공약으로 노인연금을 폐지를 시작으로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노인들에게 주던 핸드폰 보조금 폐지 등을 내세운다. 결국 그가 대통령이 되자, 사회는 노인에 대한 모든 복지정책을 폐지하기 시작한다. 졸지에 노인들은 생계를 걱정할 지경이 되고 만다. 결국 노인 범죄와 자살률이 치솟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노인들이 식당에 들어서면 선불로 계산을 받는 식당들이 생겨난다. 무임승차 폐지뿐 아니라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막기까지 하는 상황이 연거푸 계속되자, 한섭을 필두로 노인들이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하기 시작한다. 과연 한섭과 노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사우나를 즐기는 장관, 국민들과 소탈하게 곰국 한 그릇 먹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지라 김한섭의 모습은 색다름을 넘어 호감과 실제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사실 책 속 이야기는 과장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학이 발전해서 기대수명은 점차 늘고 있다. 결국 소설 속 이야기는 언젠가 우리 사회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100세를 넘게 사는 시대에서 노인들의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다행히 책 속 노인들의 모습은 태극기 부대를 연상시키지는 않았다. 아마 한섭이 정도를 지키며 이들을 대변했기 때문일 테지만,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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