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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아픈데, 왜 그대는 그렇게 아픈가요 - 시가 먹은 에세이
김준 지음 / 글길나루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수도꼭지는 올드한 별명이고,

요즘은 울 때마다 벌금을 내서,

제대로 벌금을 내려면 집을 팔아야 할 정도라고 하여 ‘집.파.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어가진 고로,

이런 최루성 글은 잘 안 읽는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왜 그대는 그렇게 아픈가요’하는 제목만 보고 건강 서적이나 심리학 서적인줄 알고 집어 들었는데,

감정의 과잉이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중독되어 내려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여러 권의 시집을 내고, 각종 문학상을 휩쓴 내공 탓인가 보다.

 

그동안 시인이란 사람들에게 감성과 feel 충만한 사람들이란 선입견과 더불어,

그 감성을 절제할 줄 알고 그리하여 글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자전적 에세이라는걸 알았으면서도,

글을 통해 감정을 고이지 않게 풀어내는걸 기대했었고,

그래서 감정이 헤프다고 툴툴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글이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오히려 슬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읽는 내내 슬픔 속에 침잠하여 내가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도 잠시,

 

고백하자면 작가와 똑같은 처지였던 나는,

작가가 느낀 슬픔의 근원과 똑같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고로,

눈물을 흩뿌려야 하겠지만,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가지고는 수도꼭지도 되고 집.파.녀도 되는 나이지만,

내 자신의 일로는 눈물 흘려본 적이 없는지라,

이렇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작가가 부럽다면서 시큰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명치 끝 어딘가가 딱딱하고 묵직하게 아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갖지 못한 많은 것 중에서 제일 부러운 엄마란 이름이 내겐 보고픔으로 오늘도 고여서 비가 되려나 보다."

 

 

                                                                                                                                            (21쪽)

감정의 과잉이다 싶기도 했다가,

이런 글을 통해서라도,

자신에게 치유가, 글을 읽는 이에겐 위로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가,

감정이 널을 뛰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결여가,

그 결핍과 결여가 불러온 외로움과 가난이 글의 원천이라고 한다니 부러웠다가도,

어린 나이에 외로웠고 배가 고팠을 그를 나는 짐작할 수 있겠는지라,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왔고,

난 글을 못 써도 좋고 감정이 무뎌도 좋으니,

평생 외롭거나 고프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이런 나를 끝내 울리고 말았던 부분은,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 할때 버려진 감자를 구워 먹으면서,

길에서 주워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마리앙토와네뜨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배가 고프다는 이들을 향하여,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며 툴툴거리고 싶었지만,

내게 오롯이 전해져 어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의 일로는 울어본 적이 없다는 말은,

허물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랑 이음동의어이다.

한번 그렇게 허물어지면,

아무리 단단한 둑일지라도 그렇게 터져 버리면, 감당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이건 나를 대입시켰을때의 생각이고,

그를 향하여서는,

그가 그토록 외롭고 아팠기에,

그것들을 모두어 표지 그림처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러니 글을 쓸 수 있는 그가,

외롭고 아팠던 기억 속에 침잠하지 않고,

이렇게 글로, 시로, 치환시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 혼자만 '나만 왜?'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할 수 없어서 그렇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렇게 아픈 내가 있고,

내가 이렇게 아픈 그 시간에 그렇게 아픈 수많은 그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다. 구멍 난 양말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은 생활이란 것이고, 그런 것은 언제나 이겨 낼 수 있는 그저 시간이다. 실내화가 없어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발가락에 나무 바닥에서 튕긴 가시가 박혀도 그런 것은 그저 상처였다.ㆍㆍㆍㆍㆍㆍ상처는 아물지만 보고픔은, 기다림은, 그리고 남겨져서 슬픈 그리움은 아물지 않는다.(32쪽)

 

이 책이 좋은 것은,

이런 감정들로 나에게 카타르시스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고,

그런 감정들을 잘만 다스리면,

늘 그렇듯이 감정의 정화와 더불어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 주어서 이다.

 

부디, 그가 상처 속에 침몰하지 말고,

상처를 잘 치유하여 더 단단한 옹이를 만들 수 있기를,

그렇게 그렇게 거듭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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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7-24 20:2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있는 것 같은데 시간내서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5-07-26 09:50   좋아요 1 | URL
님도 좋은 주말 되새요~^^
 
프렌치토스트 & 핫 샌드위치 - 촉촉하고 부드럽게, 건강하고 실속 있게
미나구치 나호코 지음, 안미현 옮김 / 리스컴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요즘 대세인 먹방, 쿡방에 뒤늦게 편승하려는듯,

이런 종류의 책을 열심히 사들이고 있는데,

막상 책을 펼치면,

내가 화보집을 구입한건가, 자료집을 구입한 건가, 또는 내가 이들의 호작질에 들러리를 서는 건 아닌가,

후회막심이곤 했다.

더우기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일본 푸드코디네이터가 쓴 책인줄 몰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난 지금,

일본 푸드코디네이터라는걸 알았다 하더라도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작용했을 것 같고,

결국 엉뚱한 기우로 판명났을 게 뻔 하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푸드코디네이터 외에,

아웃도어 쿠킹요리의 1인자라는 것이 한몫했을 것 같은데,

"간단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요리, 즐겁게 만드는 요리 레시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수사가 무색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따라하기 쉬웠고, 아무렇게나 뚝딱 만들어도 맛이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궁금한게 있었는데, '프렌치 토스트'라는 제목과 관련하여서 이다.

왜 프렌치 토스트라고 하는 지 알 수 없었으나,

그보다 먼저 궁금한게 밥은 알맞은 분량으로 지어 먹을 수 있지만,

빵은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다 타버리고,

마리앙토와네트 시절엔 베르사이유 궁전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으며,

바닥이 온통 오물이어서 피할 목적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이힐을 신었다는데,

위생 상태가 그 정도이면 금방 부패했을거고 그렇지 않으면 딱딱한 하드 브레드 상태였을텐데,

어찌 먹고 살았을까 하는 거였다.

백성들도 다들 마리앙토와네트를 닮아 빵이 없어 배 고프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는 수준이었을까?

 

그런데 이 책에서 '프렌치 토스트'의 연원을 알 수 있겠더라.

프렌치토스트라는 것은 달걀물에 적셔서 구운 것을 얘기하고,

핫샌드위치는 속재료를 넣어 구운 것을 지칭한단다.

딱딱해진 빵을 달걀 우유물에 넣어 재워놓았다가,

후라이팬에 구우면서 그 위에 토핑을 얹으면 토스트이고,

핫 샌드위치도 굽는건 프렌치토스트와 같지만,

재료를 사이에 넣어 먹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렌치토스트가 휴일의 여유로움을 느끼기 위한 식사라는 건 어폐가 있다.

우아하게 즐기는 것은 좀 그렇고,

메이플시럽만 얹거나 간편한 토핑만을 얹어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이겠다.

핫샌드위치도 마찬가지이다.

냉장고 속에 자투리 채소나 재료들을 이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빵 사이에 끼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아무렇게나 만들어 먹던, 이름하여 퓨젼요리와 비슷한데,

그런 퓨전요리가 좋은 것은 영혼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고,

그리하여 얻게 되는 즐거움은 덤이다.

       새우 아보카도 샌드위치                      볶음국수  샌드위치 

       전갱이튀김  샌드위치                         마파가지  샌드위치 

       나폴리탄 스파게티&오믈렛  샌드위치    장어구이오이 샌드위치

       일본식 치킨 샌드위치                         불고기 샌드위치

 

개인 적인 생각으로, 위의 것들은 재료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럭셔리해서 한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것 같고,

게다가 음식의 궁합을 생각할 수 있는 점에서도 좋았다.

음식을 제대로 잘 어울려 먹는 것만으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니까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난 새우와 아보카도, 오이와 장어의 조합을 눈여겨 봤다. 

  갈릭스테이크 샌드위치,   돼지고기조림샌드위치,          중국풍 햄오이 샌드위치,

  고등어통조림샌드위치,    김치 샌드위치,                     어육소시지 샌드위치,

  초코 마시멜로 샌드위치,  커스터드 크림과일 샌드위치,  딸기 단팥샌드위치

 

 

요번 사진에 나와있는 샌드위치들은, 위의 것보다는 좀 더 구하기 쉬운 재료들이다.

겉으로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것들도 속재료와 스프레드를 어떤 것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제일 윗줄의 '중국풍 햄 오이 샌드위치'가 그런 예이다.

둘째줄의 고등어통조림은 버터와 마요네즈를 스프레드로 쓰고 속재료로 채썬 양상추를 올렸다.

아랫줄의 두두개는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하나는 머스터드를, 하나는 단팥을 스프레드로 사용했다.

단팥을 스프레드로 사용한 건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생각을 고착시킬 필요가 없다.

발상을 전환하기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새롭고 유니크해 질 수 있다.

 

고이면 썩고 뭉치면 굳어 버리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인 동시에,

우리가 지양해야될 모토이다.

 

생각과 발상을 유연하게 하면,

삶 또한 부드럽고 유연해진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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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5-07-21 15:28   좋아요 1 | URL
지금 막 배가 고파서 뭘 먹을까 했는데, 샌드위치 먹어야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5-07-23 18:46   좋아요 1 | URL
오늘은 중복이라는데, 땀 대신 비가 주룩주룩내려요.
맛난 보양식 드셔요~^^

책읽는나무 2015-07-21 15:47   좋아요 2 | URL
프렌치토스트~~달걀물에 적신 토스트였군요?제가 프렌치토스트를 즐겨하고 있었네요?ㅋ

샌드위치에 장어가????보양식 토스트??ㅋ 장어 좋아하는 신랑이랑 아들한테 장어샌드위치를 한 번 해줘봐??생각하고 웃었습니다^^
생각과 발상을 유연하게 하면 삶 또한 부드럽고 유연해진다는 님의 마지막 문구를 보니 아까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풀려갑니다ㅋ
장어 샌드위치를 막 상상하면서 갑자기 웃겨 이미 좀 풀렸달까요??^^
노래도 한 몫 했어요 시원한 가창력 좋아요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5-07-23 18:49   좋아요 0 | URL
전 식빵 한봉지를 사면 그냥 맨입으로 반정도는 먹게 되더라구요.
먹다 먹다 지겨우면 냉동실에 얼리고,
그랬다가 꺼낸걸 달걀 입혀 구워 먹어요.
샌드위치나 럭셔리 토스트, 언감생심입니다여~^^

노래까지 들어주시고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여~ㅅ!

지금행복하자 2015-07-21 16:56   좋아요 1 | URL
샌드위치가 넘 럭셔리해요 ㅎㅎ
프렌치 토스트는 계란. 우유에 적셔 구워놓고 설탕 뿌려 먹어야 젤 맛있어요 ㅎㅎ
어렸을 때 엄마가 많이 해 준 간식이에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5-07-23 18:50   좋아요 0 | URL
전 버터만 넣어서 약간 짭쪼름하게...ㅋ~.
기분조으면 딸기잼을 얹어 먹습니다~^^

단발머리 2015-07-21 19:14   좋아요 1 | URL
전 프렌치 토스트 위에 치즈랑 슬라이스 햄 올리고 딸기쨈을 발라먹는데요.
정체 불명인데 아이들이 좋아해요.
얘들아, 미안하다@@

양철나무꾼 2015-07-23 18:51   좋아요 1 | URL
치즈랑 햄까지면 완전 럭셔리죠~^^
정체 불명이라뇨?
퓨전이라니까요~ㅅ!

수이 2015-07-21 19:49   좋아요 2 | URL
새롭고 유니크하게_
요렇게 해봐야지_ 하고 샌드위치를 마구마구 조각내고 있습니다;;
근데 팔기에는 아직 뭔가 좀 거시기한 이 묘한 조합;;;;;;;;;;;;;;;

단발머리 2015-07-23 18:53   좋아요 1 | URL
제가 먹어보고 친절한 감상평 드릴 수 있는데... 멀리 계셔서 아쉽네요.ㅋㅎㅎ

양철나무꾼 2015-07-23 18:53   좋아요 3 | URL
야나님의 가게는 보나마나 완전 대박입니다여~ㅅ!

이렇게 열의를 보이시니, 안될 턱이 있습니까여?

어여 개업하셔요, 야나 님표 샌드위치, 토스트, 커피랑 먹고파요~^^

비로그인 2015-07-21 20:00   좋아요 0 | URL
무궁무진한 재료들에 신선한 조합이군요!

양철나무꾼 2015-07-23 18:54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완전 눈이 호강이예요~^^

2015-07-22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3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발원 2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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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본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등을 행사하는 안보관련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는데요,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은 87세의 할머니 자이이 아사코씨가 이에 항의해서 아베 총리에게 보낸 손편지에 적힌 말입니다. 자이이 할머니는 70년전 고베 대공습 때 집이 두 차례나 불타고 남편이 부상에 시달리는 등 참혹한 '진짜 전쟁'을 체험한 세대입니다. 자이이 할머니는 "전쟁으로 희생된 시민들의 슬픔을 지위가 높은 분은 알 수 없는 건가,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줄어 들면서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며, '다리가 아파서 반대시위에 참여할 수 없어 대신 손편지를 보내 항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침 신동호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말과 말' 코너에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며칠에 걸쳐 김선우의 '발원1, 2'을 읽었다.

그동안 그녀의 작품들은 내게 들쭉날쭉해서,

시집<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같은 경우에는 무한감동을 받았다고 설레발을 쳤었지만,

수필이나 소설들은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이 공동으로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라는 기획의도로 요청해,

연재되었던 것을 거듭 퇴고 해서 이 책이 되었다는데,

그동안 광고를 통해 몇 번 만났지만, 비껴갔었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재 이웃의 페이퍼 글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시작하게 되었다.

 

읽으면서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발원의 뜻이, '어떠한 일을 바라고 원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는 뜻 말고도,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다짐하는 맹세, 또는 부처나 보살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뜻하는 종교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는데,

내가 그녀가 여자 작가라는 선입견을 갖고 시작해서 그랬는지,

그녀가 요석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요석을 대등하게 내세운 이유를 잡아내지 못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이 책의 작중화자라고 생각하고 감정이입했던, 원효의 그것과 일치되지 않다보니,

글에서 느껴지는 임팩트가 약했다.

 

읽는 내내...뭔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2권 말미에서 '강신주의 해제'를 만나면서 이유를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충분히 채워지니,

하나의 좋은, 아니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종교와 정치는 전혀 다른 얘기인듯 보이지만,

어찌보면 같은 얘기이다.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종교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고도의 복선을 깔아,

개연성과 핍진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음은 물론,

작품 구성면에 있어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안배하였고,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대칭과 대조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균형과 조화를 맞추려 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일례로,

원효는 불교를 새로 빛나게 한다는 뜻의 법명이고,

당시 사람들은 새벽(旦)이라는 뜻의 우리말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 원효와 대조를 이루기 위해서 그랬으리라 예상되는데,

원래 아름다울옥'요', 돌 '석'자를 쓴다고 문헌에 나와 있는 '요석(瑤石)'이

이야기 속에서 빛날 '요', 저녁 '석'자를 쓰는 '요석(曜夕)으로 바뀐다.

 

6두품의 원효를 처음 화랑에 뜻을 두었으나 끝내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캐릭터로 만든 것이나,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계율을 들어 전시에 앞장 서서 나라를 지키는 화랑과 대립 각을 세운 것은,

소설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와 종교는 모두 어떤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 일반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걸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장치쯤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여왕이,

"비두 벌판에서 내가 너를 구해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계산이 분명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장면에선,

현실의 누군가가 오버랩 되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처음에 원효에게 관대하고 넉넉했으며 요석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했던 여왕은,

나중에 원효를 전쟁에 승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요석을 이용하는데,

지독하게 정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있는데,

요석을 곁에 두고, 이용하기도 했던 그 여왕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첨성대와 황룡사ㆍ분황사를 만든 것은 선덕 여왕이고,

그런 선덕여왕과 진덕, 진성 여왕을 거쳐,

태종무열왕의 시대에 이르러 원효와 결혼했다더라 라고 알고 있었는데,

게다가 원효가 황룡사에 머물었던 건, 진덕여왕 2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이,

누구라고 지칭되지 않은 한명의 여왕이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묘사되다가,

바로 요석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으로 넘어가 버리니까 말이다.

 

책력과 천정에 대해서 언급되면서 첨성대가 거론되는데,

첨성대는 역법을 만들기 위한 운행관측의 측면보다는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성의 의미가 강했으리라 짐작되고,

또 하나 요석이 길쌈을 장려하는 등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인네로 묘사되는데,

길쌈으로 만든 게 광목이고 거기에 천연염료로 염색하는 것까지 나오는데,

우리나라에 문익점이 목화를 가지고 들어온 것은 고려말로 알고 있다.

소설이긴 하지만, 이런 세세한 것들이 자꾸 어긋나 버리면,

개연성을 잃게 되고 재미가 떨어진다.

 

물론 소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가상의 설정이겠지만,

원효는 워낙 중요한 역사적인물이어서 정확한 연도를 알고 있는데,

소설 속 설정이라지만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되면,

알고 있는 그것에 억지로 꿰어맞추려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소설을 가지고 논리적 오류라고 억지를 쓰게 되고,

그 다음부턴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지고, 개연성도 떨어지는 듯 느껴지지만,

그건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내가 처음 저자 김선우가 요석에게 감정이입하여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이 책이 아쉽다고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원효를 스님인것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라,

요석을 사랑하고,

요석과 함께 삶을 살아간 인간 원효에게 초점이 맞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러다가 2권 마지막의 '강신주의 해제'와 '작가 후기'를 통하여,

저자가 이 작품을 통해 하려 했던 얘기가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실마리가 풀리면서 고개를 주억여가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니가 그려내려 했던 건 고승 원효나 깨달음을 얻은 큰 스님 원효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 사이로 뛰어들어,

울고 웃으며 같이 살아간 인간 원효를 그리려 했기 때문에,

요석의 일과 삶과 사랑이 맞물려야만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여성적인 문체이고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옮아가,

종교와 정치는 닮은 구석이 있다고 했던 이유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냐, 너를 바꾸고 싶은게냐?"(1권,334쪽)

라며, 세찬 빗줄기가 되어 원효의 등짝을 후려쳤던 혜공의 목소리가 책을 읽고난 지금까지 각인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왕의 무덤 곁에 백성의 무덤이 있는 것이 이상할 바 없노라. 성군이라면 익히 배워야 할 인(仁)의 정치가 그것을 허한다.ㆍㆍㆍㆍㆍㆍ"(1권,316쪽)

라던 여왕의 의지와 속뜻이 읽혀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시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몸소 겪지 않으면,

시민들의 슬픔을 지위가 높은 분은 알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가장 감동적이었으며, 내 자신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부분은,

그동안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던,

내 자신을 자극시킨다고 생각했던 깨우침이 아니라,

"흐응, 그렇지, 깨달음은 좋은거야.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빠져 있으면 깨달음이고 뭐고 다 귀신 밥이지. 흐응, 너도 알겠지? 젤로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응? 깨달아서 뭣에 쓰게?"(1권,342쪽)

라는 선문답 같은 한마디였는데, 이는,

부처를 사랑하는 것과 부처가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로 현현하고 종내는 서로 통하여 어우러질 것이라는ㆍㆍㆍㆍㆍㆍ(1권,345쪽)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값진 것이었다.

 

"집착의 대상을 모두 없애서 열반에 머물 수 있지만, 커다란 자비의 마음으로 인해 열반마저도 없애 머물지 않는다."

원효의 주저 『금강삼매경론』에 등장하는 말이다. 혼자서 열반에 들었다고 희희낙낙하는 사람이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진흙탕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는 온몸에 진흙이 묻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옷을 깨끗이 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흙투성이의 사람을 만질 수도 없을 것이다.(2권, 281쪽)

강신주의 해제가 아니었으면, 요원했을 수도 있겠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대상이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다는 깨달음ㆍㆍㆍㆍㆍㆍ.

사람만이 힘이고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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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5-07-18 11:40   좋아요 1 | URL
쟁(爭)을 화(和)로 이끌어가려 노력했던 원효는
시대와 종교를 초월하는 생각을 가진 분이었다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5-07-19 12:23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지누를 떠올렸어요. 이지누의 절터 톱아보기랑 너무~다른 듯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짧은 리뷰 속에서 쟁을 화로 이끌어가려 했던 원효를 읽어내신 님, 쫌 멋지신걸요~^^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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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치거나 힘들때,
정여울이 헤세에게 위로받았던 방식으로, 우리를 치유의 길로 인도하지만,
너무 쉽게 접근하려다보니 헤세의 정신세계에 근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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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같은게 필독서여서, 열심히 읽었지만,

독후감을 써서 상도 받았던 거 같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내용도 이해할 수 없는걸 가지고 작문을 하는 수준이어서, 취향이고 말고 할 게 없었다.

하지만, 글에 슬픔과 우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읽으면서 같이 슬퍼지고 했던 기억이 있다.

 

작년인가? <작가의 붓>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화가'헤세'와 작가 '헤세'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에서 슬픔과 우울의 정서가 짙게 느껴졌다면,

그림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워서,

늘 명랑하고 해맑은 기운, 삶을 사랑하는 자의 여유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붓
 도널드 프리드먼 지음, 박미성.배은경 옮김 /

 아트북스 / 2014년 3월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아니나 다를까?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글을 쓰면서는 온갖 종류의 강박증에 시달렸지만,

그래서 글에서는 그런 것들이 느껴졌지만,

나이 마흔 넘어, 우울증을 치료할 요량으로 시작한 그림을 그릴 때만은,

'내가 이 세상에서 수채화를 제일 이쁘게 그린다'는 주관적 자부심에 넘쳤다고 한다.(헤세로 가는 길, 112쪽)

 

사실 '정여울'이 쓴 '헤세로 가는 길', 이 책을 여행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헤세가 쓴 책들을,

나에겐 중학교 이래로 게속 어렵다고 인식되어진 책들을,

정여울이라는 문학평론가가 알기 쉽도록 해설해 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고 여지껏 미뤄 왔었다.

 

그런데, 정여울은 헤르만 헤세는 스스로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였기에 수많은 독자들에게 깊고 따뜻한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었다, 고 하며,

그런 자신이 헤세에게 받은 치유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어서,

자신 또한 상처 입은 치유자, 나아가 상처조차 사랑할 수 있는 강인한 치유자가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치유자가 되어준 헤세를 그리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로 시작할 정도로,

작가 정여울에겐 헤세가 치유자였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헤세가 그녀라는 매개자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치유자로 다가오는,

힐링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우리에게 치유자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아파봤고 고민해 봤기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이 어떤 문제로 왜 고민하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었으며,

그가 치유받았던 그 방식들을 작품 속에서 우리에게 해법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가 신앙인도 아니고 무신론자이면서도 '영적인 삶'을 꿈꿨기 때문에,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그가 자기 자신과도 객관성을 유지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픈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고,

마침내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사실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깨닫기까지 오랜시간을 돌아서 온 것 같지만, 후회는 없다.

타인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직접 온몸으로 관통하며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헤세의 작품들을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 뭐라고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어릴땐,

그의 작품들이 왜 높게 평가받는지를 알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중,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터득하게 되었는데,

'데미안'을 통하여 그 누군가를 사랑하면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와 친하지 않았다. ㆍㆍㆍㆍㆍㆍ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누구의 마음에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할 때 자신을 잃어버린다.(데미안)

 

사랑이란 말은 좀 추상적이고,

난 그 사람이 쓴 글씨나, 그림들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세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에 편지를 곁들이는 것을 좋아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작품을 소장한 사람은 내가 죽고 나서 큰 돈을 벌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작가의 손글씨로 직접 쓴 다정한 편지를 받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실제로 헤세의 세 번째 부인 니논과 헤세의 인연도 독자의 팬레터와 저자의 다정한 답장으로 시작되었다. 우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니논은 헤세가 새로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그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듬뿍 담아 지적인 흥취가 물씬 풍기는 팬레터를 띄웠고 외로운 헤세를 감동시켰다. 독자 편지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넘게 이어졌고, 헤세보다 무려 18년이나 어렸던 니논은 마침내 꿈같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헤세로 가는 길, 56쪽)

여기선 18세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어리다는 건 나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냥 18년이라고 하는것보다 명확할 것 같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작품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동경한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비밀이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에 달렸음을 알고 있었다. 유쾌한 천성, 끝없는 사랑, 그리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낭만과 서정, 그것이이야말로 삶을 축복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그는 「정원의 친구들」에서 그 자잘하고 소소한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114쪽)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정원의 친구들」이 책의 제목인지, 책 속 글의 제목인지 모르겠다.

책 제목이라면 『』를 사용했어야 했을 것 같고,

시중에 『정원일의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이 있으니 그걸 따르든지 원제목을 원어로 병기하는게 좋았겠고,

책 속 글의 제목이라면, 책의 제목을 따로 밝혀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행기라서 그런지, 책 속 사진들 하나 하나 다 느낌을 갖고 있고,

나에게 소근거리는 것 같아 멋진 프로포즈처럼 생각되었다.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렵기만 했던 헤세에 한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헤세가 어렵다는 인식을 극복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체화하여 정여울의 것으로 만든 얘기를 하고 있어서,

막상 헤세의 작품들을 트라이 투 했을때,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헤세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 버린게 아닌가 아쉽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부럽고 갖고 싶었던건, 책상의 상판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저 책상과 걸상이었다.

저 책상에 앉아서 나도 글이 쓰고 싶으면 글을 쓰고,

꽃과 나무가 그리울때는 정원을 가꾸고,

날씨 좋은 날에는 풍경을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이 책의 긍정적인 면을 꼽자면, 방콕족인 내가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는 거다.

헤세가 걸어간길, 살아간 길을 그렇게 그렇게 따라 걸어보고 싶어졌다.

난 무신론자이지만,

어떤 영적인 깨달음은 언감생심이어도,

삶이 힘겹게 느껴질때면 그렇게,

'나는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동경한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비밀이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에 달렸음을 알고 있었다' 던 정여울이 말한 그 방식대로 치유받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게 먼저여야 할텐데,

'이다'의 '끄적끄적 길드로잉'같은 걸 보면서 시동을 걸어야 겠다.방식대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치유받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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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7-15 17:48   좋아요 0 | URL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헤세라지만 글과 그림에 재능있는 그가 부러운걸요^^
이다의 작게 작게 읽고 싶어서 구입했지요.
제게도 힐링이 필요해요!!

양철나무꾼 2015-07-17 18:16   좋아요 0 | URL
그쵸?
우울증을 적절하게 다스릴 수만 있다면,
그걸 할 수 있다는 건 보통 내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니,
거의 구도자의 수준이겠지만,
가끔은 부럽기도 하죠.

그러니까 `공평하신~`이란 말을 할 수 있는 걸거예요~^^

cyrus 2015-07-15 18:22   좋아요 0 | URL
저 사진 속 책상, 제가 다녔던 대학 강의실 책상과 비슷해요. 책상과 의자가 연결된 형태. 정말 앉기가 무척 불편했습니다.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길 수 없거든요.

양철나무꾼 2015-07-17 18:17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저 강의실 책상 썼었어요, 좀 불편하죠?
하지만 나를 위한 맞춤이라면,
거기다가 저 원목느낌은 소박하고 왠지 젠틱하게 느껴져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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