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아픈데, 왜 그대는 그렇게 아픈가요 - 시가 먹은 에세이
김준 지음 / 글길나루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수도꼭지는 올드한 별명이고,

요즘은 울 때마다 벌금을 내서,

제대로 벌금을 내려면 집을 팔아야 할 정도라고 하여 ‘집.파.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어가진 고로,

이런 최루성 글은 잘 안 읽는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왜 그대는 그렇게 아픈가요’하는 제목만 보고 건강 서적이나 심리학 서적인줄 알고 집어 들었는데,

감정의 과잉이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중독되어 내려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여러 권의 시집을 내고, 각종 문학상을 휩쓴 내공 탓인가 보다.

 

그동안 시인이란 사람들에게 감성과 feel 충만한 사람들이란 선입견과 더불어,

그 감성을 절제할 줄 알고 그리하여 글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자전적 에세이라는걸 알았으면서도,

글을 통해 감정을 고이지 않게 풀어내는걸 기대했었고,

그래서 감정이 헤프다고 툴툴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글이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오히려 슬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읽는 내내 슬픔 속에 침잠하여 내가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도 잠시,

 

고백하자면 작가와 똑같은 처지였던 나는,

작가가 느낀 슬픔의 근원과 똑같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고로,

눈물을 흩뿌려야 하겠지만,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가지고는 수도꼭지도 되고 집.파.녀도 되는 나이지만,

내 자신의 일로는 눈물 흘려본 적이 없는지라,

이렇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작가가 부럽다면서 시큰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명치 끝 어딘가가 딱딱하고 묵직하게 아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갖지 못한 많은 것 중에서 제일 부러운 엄마란 이름이 내겐 보고픔으로 오늘도 고여서 비가 되려나 보다."

 

 

                                                                                                                                            (21쪽)

감정의 과잉이다 싶기도 했다가,

이런 글을 통해서라도,

자신에게 치유가, 글을 읽는 이에겐 위로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가,

감정이 널을 뛰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결여가,

그 결핍과 결여가 불러온 외로움과 가난이 글의 원천이라고 한다니 부러웠다가도,

어린 나이에 외로웠고 배가 고팠을 그를 나는 짐작할 수 있겠는지라,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왔고,

난 글을 못 써도 좋고 감정이 무뎌도 좋으니,

평생 외롭거나 고프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이런 나를 끝내 울리고 말았던 부분은,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 할때 버려진 감자를 구워 먹으면서,

길에서 주워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마리앙토와네뜨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배가 고프다는 이들을 향하여,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며 툴툴거리고 싶었지만,

내게 오롯이 전해져 어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의 일로는 울어본 적이 없다는 말은,

허물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랑 이음동의어이다.

한번 그렇게 허물어지면,

아무리 단단한 둑일지라도 그렇게 터져 버리면, 감당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이건 나를 대입시켰을때의 생각이고,

그를 향하여서는,

그가 그토록 외롭고 아팠기에,

그것들을 모두어 표지 그림처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러니 글을 쓸 수 있는 그가,

외롭고 아팠던 기억 속에 침잠하지 않고,

이렇게 글로, 시로, 치환시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 혼자만 '나만 왜?'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할 수 없어서 그렇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렇게 아픈 내가 있고,

내가 이렇게 아픈 그 시간에 그렇게 아픈 수많은 그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다. 구멍 난 양말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은 생활이란 것이고, 그런 것은 언제나 이겨 낼 수 있는 그저 시간이다. 실내화가 없어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발가락에 나무 바닥에서 튕긴 가시가 박혀도 그런 것은 그저 상처였다.ㆍㆍㆍㆍㆍㆍ상처는 아물지만 보고픔은, 기다림은, 그리고 남겨져서 슬픈 그리움은 아물지 않는다.(32쪽)

 

이 책이 좋은 것은,

이런 감정들로 나에게 카타르시스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고,

그런 감정들을 잘만 다스리면,

늘 그렇듯이 감정의 정화와 더불어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 주어서 이다.

 

부디, 그가 상처 속에 침몰하지 말고,

상처를 잘 치유하여 더 단단한 옹이를 만들 수 있기를,

그렇게 그렇게 거듭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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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7-24 20:2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있는 것 같은데 시간내서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5-07-26 09:50   좋아요 1 | URL
님도 좋은 주말 되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