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가벼운데 다루는 내용과 문장은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유산상속에 대한 고찰이라니..
흥미로운 내용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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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1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은하수 2024-04-11 13:18   좋아요 1 | URL
이 달엔 기필코 끝까지 읽고 싶네요~~^^*
 

한 쌍의 손이 물에서 나와 각진 구멍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탐색하는 손가락이 아주 작은 협곡의 경사면을 닮은 구멍의 두꺼운 안쪽 벽을 기어올라 표면까지 나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자리 너머에 이른 손은 갈고리처럼 눈을 움키고 당겼다.
머리가 나왔다. 헤엄치던 사람이 눈을 떴다. 그는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광활하고 단조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고 흰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지푸라기 빛깔이 들어간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에게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설령 숨이 찼더라도 날숨에서 나오는 김은 아무 색깔 없는 배경 속에서 보이지 않있다. 그는 팔꿈치와 가슴을 얕은 눈밭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 P9

그들의 작은 행렬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칼에 
베인 새와 개, 파충류, 설치류로 이루어진 흔적을 남겼다.
수업 도중에 로리머는 종종 제자에게, 칼을 잡은 
손에 진실을 찾는 눈의 인도를 받는 사랑이 어리지 않는다면 메스를 다루는 호칸의 놀라운 재능은 결국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로리머는 돋보기 아래에서 돌과 식물, 동물이 
얼어붙게 된다면자연에 대한 탐구는 삭막해진다고말했다.  - P88

동식물 연구자는 열렬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애정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다. 메스가 끝내버린 생명은 그 생명체의 반복될 수 없는 개별성에 대한 깊고도 헌신적인 감사로 기려야 했다. 동시에 이런 감사는,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생명체가 자연계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해부된 토끼는 다른 모든 동물의 부위와 특질, 더 나아가 환경까지 조명해주었다. 토끼는, 풀잎 한 장이나 석탄 한 조각과 마찬가지로,전체의 작은 파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전체를 담고 있었다. 이 사실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다른 점을 전부
차치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똑같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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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왔다. 나는 길을 건너기가 두려웠고 
비스듬하게 서 있는 집들이 내 쪽으로 쓰러지거나 
보도가 솟구쳐 나를 들이받을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언제든지 그들 중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내게 다가와 나를 때려눕히거나, 아니면 내게 한껏 길게 혀를 내밀어 보일 수도 있었다. 고향에서 메타가 그랬을 때처럼. 가면무도회가 열렸을 때 그녀는 나를 보러 와서 가면의 틈새로 내게 혀를 내밀었다.

택시 한대가 지나갔다. 손을 들자 운전사가 멈췄다. 내가 문을 열지 못하자 그가 내려서 문을 열어 주었다. - P217

모든 것이 항상 그토록 똑같았다 내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던게 바로 그 점이었다. 
그리고 그 추위. 또 다 똑같은 집들과 동서남북으로 뻗은 다 똑같은 거리들. - P218

나는 ‘고통이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이미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나는 괜찮았다. 가끔 가다 마치 침대밑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는 걸 빼곤. - P221

그들의 말소리가 멈추자 빛줄기가 다시 방문 아래로 들어왔다.
마치 모든 것이 다 잊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이 물밀 듯 되돌아오는 것처럼. 나는 누워서 그 빛줄기를 보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에 대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아침들과 안개 낀 날들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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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살면 안돼요." 도스 부인이 말했다.
월터가 떠난 뒤로 내가 일주일 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자 하는 말이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항상 피곤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하고싶은 일이라곤 
아주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침대에서 뭘 좀
먹고 그러다가 오후에는 오래오래 욕조 안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머리를 물 속에 담그고 수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게 폭포라고 상상했다. 모건 쉼터에서 우리가 목욕을 하던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 같은. - P110

그리고 나는 항상 그 연못이 나오는 꿈을 꾸고 있었다. 폭포가떨어지는 바로 근처는 물이 깨끗했지만 얕은 곳들은 진흙탕이었다. 연못 주위에는 밤이면 피어나는 그 커다란 흰색 꽃들이 자랐다. 팝꽃,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백합 모양에 진한 단내가 아주 강하게났다. 멀리 떨어져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헤스터는 그 향을 견디지 못했고, 그 냄새를 맡으면 어지러워했다. 강가의 바위 밑에는 게가 있었다. 나는 목욕을 하다가 게들 때문에 첨벙대곤 했다.
게는 긴 더듬이 끝에 작은 눈이 달려 있었고, 사람들이 던진 돌에맞으면 껍데기가 으스러지면서 부드럽고 하얀 물질이 보글보글 흘러나왔다. 나는 항상 이 연못이 나오는 꿈을 꾸며 꿈속에서 그 녹갈색 물을 보고 있었다. - P111

"안돼요, 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살면 안돼요." 도스 부인이 말했다.
사람들은 ‘젊은‘이라는 말을 하며 마치 젊다는 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굴지만, 정작 늙어가는 것은 항상 그리도 무서워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늙어서 이 모든 망할 일이 다 끝났으면 좋겠어. 그럼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침울한 기분에 빠져있진 않을 텐데! - P111

이윽고 택시가 왔다. 길 양편의 집들은 작고 
칙칙하건 크고 칙칙하건 모두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살아오는 
동안 줄곧 알고 있었으며 오랫동안 두려워해왔다는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두려워해왔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제 그 두려움이 자라나 있었다. 거대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나를 가득 채우고 온 세상을가득 채웠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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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사 오늘의 젊은 작가 44
이희주 지음 / 민음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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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가 갈수록 진창에 빠진 듯 기분이 나빠지는 소설. 나(만)의 천사, 섹스돌, 섹스봇, 인형 ...어떤 이름을 붙인다 해도 그 이름에 투영된, 궁극의 미美에 대한 인간의 저급한 욕망과 집착에 결국 쓴 물이 올라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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