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편지 왔어요 작은걸음 큰걸음 5
조 외슬랑 지음, 정미애 옮김, 클레르 프라네크 그림 / 함께자람(교학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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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할머니(그냥 할머니도 아닌 증조할머니)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손녀인 아나벨은 12살, 할머니는 80이 넘으셨으니 나이 차이는 무려 70년! 공감대가 있을까? 

 

주고 받은 편지가 책 한권이 되었으니 공감대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난 젊었을 때 나이 40이면 다 살은 건 줄 알았다. 감정도 젊은 사람의 감정이 따로 있는 건 줄 알았다. 이를테면 설레임이나 기대, 감동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 난 40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시큰둥함이나 무관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떤 감정도 아직 죽지는 않았다. 60이 되면 달라질까? 80이 되면?

 

늙는다는 것이 감정의 소멸을 의미한다면 이들의 소통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소통을 했고, 나이를 넘어선 공감을 이뤘다. 

 

아나벨이 어른스럽고 조숙했거나, 할머니가 나이값을 못하는 사람이어서 통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아나벨은 사춘기 여자아이의 모습 그자체이고 할머니는 할머니다웠다. 그래서 통했다고 난 생각한다. 역할로 치자면 할머니의 역할이 더 컸다고.

 

왜 그런 생각을 했냐 하면 아나벨의 초기 편지를 보고는 답장할 마음이 눈꼽만치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할머니라면 말이다. 컴퓨터 자판 연습으로 할 수 없이 편지를 쓴다는 뉘앙스나, 아파서 부은 할머니의 발을 보고 리본만 두르면 선물처럼 보일거라는 둥 날씨가 거지 같다는 둥 무례한 표현들이 있어서인지 정이 가질 않았다. (내 손녀가 아니라서 그러나?)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소한 표현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친다. 편지가 거듭되며 이들의 소통은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간다. 

 

타이타닉 영화를 보러간다는 손녀에게 "화창한 날씨에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틀어박혀 끔찍한 여객선 침몰 사고를 다룬 영화를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는 할머니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너무 지루하고 어딘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던걸요." 하는 손녀의 귀여운 논쟁도 볼 수 있고 친구와 절교하게 된 이야기, 전쟁에 희생된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 등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픔을 털어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거침없이 편지를 쓰는 아나벨에 비해서 늙은 할머니가 꼬박꼬박 편지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할머니는 노쇠했고, 아픈 발은 그 증세가 심해져 결국 절단수술을 받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최선을 다해 편지를 썼다. 소녀시절 친구를 잃게 되어 후회하는 이야기, '네가 너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이야기....

 

마지막 편지는 할머니의 편지다. 아주 편안하고 따뜻하고 침착하고 잔잔한 유서와도 같았다. 바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린 삶이 죽음의 반대라고 알고 있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구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질 때면 내 몸이 거북해지면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것 같단다. 삶 자체가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이 무거워지는 거야...." 

 

두 사람 중에서 내 위치는 아무래도 할머니에 더 가까운가 보다. 어느새 할머니의 입장이 되어 읽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나벨이 고마웠다. 딱히 내켜서 쓴 게 아니었다 해도, 시작은 아나벨이 했으니까. 그리고 나와의 소통 속에서 조금씩 커가고 있는게 보이니까.... 내 말을 들어주었으니까,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늙고 병들고 한쪽 발마저 없는 내가 외롭지 않게 이세상과 작별할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까....

 

모든 소통의 문의 닫혀버린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분들이 과연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행복하게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을까? 휴대폰과 SNS의 과잉소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의 아이들은 또 어떤가? 이들에게 질적인 소통이란게 있을까? 이들은 과연 누구와 깊이있는 마음의 나눔을 할 수 있을까? 

 

120쪽 정도의 분량에 문장도 어렵지 않기는 하지만 고학년이 읽으면 좋겠다 싶다. 하지만 이해의 층위는 다르더라도 3학년 정도면 읽기에 무리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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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과를 딴 소녀 옛이야기 읽으며 치유 1
김지예.차인우 지음, 성은혜지 그림 / 해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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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를 좋아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이들에게 고루 권해주는 편인데 그동안 옛이야기책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끼워넣었을 뿐 그 자체에 흥미를 갖지는 않았었다. 옛이야기의 특징인 인물의 전형성과 극단적인 스토리 등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지난 겨울, 옛이야기의 상징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알고보니 옛이야기가 그랬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징으로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원형을 손상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어린이들에게 적당하지 않다거나 교훈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내용을 삭제하거나 개작하면 옛이야기의 상징성에 큰 손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상징은 무의식에 작용하는 것이고, 그래서 모르는 사이에 옛이야기는 아이들의 무의식에서 치유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두 분은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한 학자이고 치료사이다. 이 책에 신뢰와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옛이야기 읽으며 치유'라는 시리즈의 첫 권이다. 옛이야기의 치유 기능을 표방한 책들이라니, 솔직히 솔깃하기도 하면서 좀 뜨악하기도 했다. 아이들한테 "자, 치료하자. 이건 약이야."하고 책을 들이밀면 과연 읽고 싶을까, 그리고 그렇게 다 알고 읽은 책이 과연 치유기능을 할까 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어른들이 굳이 강조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들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 중심으로 읽어나갈 것 같다. 처음 가졌던 기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옛이야기의 상징과 치유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저자들이니 지금까지 출간된 옛이야기 책들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오류들을 발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  

 

이 책은 옛이야기들 중에서 자매 이야기만 골라 묶었다. 자매 이야기의 대표격인 콩쥐팥쥐를 비롯 4편의 자매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번째 이야기 <황금사과를 딴 소녀>에서 구박하는 새어머니와 이복자매들 모티브는 콩쥐팥쥐와 동일하다. 돌아가신 친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조력자 모티브도  비슷하다. 여기서는 염소인데, 새어머니가 죽인 염소들을 묻은 자리에서 황금사과나무가 자라난다. 왕자의 잔치와 신발 모티브는 없는데, 대신에 황금사과를 따는 사람이 왕자님의 배필이 된다. 당연히 이야기의 주인공인 두눈이만이 황금사과를 딸 수 있었다. 결말에서 두눈이는 새어머니와 이복자매들을 용서하고 함께 살게 된다.

 

두번째 이야기 <콩쥐팥쥐>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콩쥐가 사또와 결혼한 이후의 이야기가 우리가 보통 아는 이야기보다 좀 더 길다.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대신 콩쥐 행세를 한다. 콩쥐는 불에 탄 연꽃에서 구슬이 되어 남았고, 나중에 사또 앞에서 다시 콩쥐로 나타난다. 결말은 위의 이야기와는 달리 팥쥐가 죽음을 맞고, 그 시신을 본 새어머니도 미쳐버리는 비참한 결말이다.(내가 듣기로 어떤 판본에서는 팥쥐의 시신으로 젓갈을 담그는 이야기도 나온다는데 여기에선 그런 이야기까지는 안나온다 - 아 근데, 삽화에 보면 장독대가 나오고 그 중 한 항아리의 뚜껑이 열려 있다...ㅠㅠ) 저자의 해설을 읽어보니 "팥쥐는 콩쥐를 괴롭힌 것에 그치지 않고 연못 속에 빠뜨려 죽였기 때문이지요. 또한 팥쥐는 콩쥐 속에 있는 또 다른 마음인 분노, 타나토스입니다. 팥쥐가 죽었다는 것은 이런 마음들과 분리되었다는 것이지요."  

 

옛이야기에선 잔인하게 죽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상징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것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해석하시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즉, 자신의 또다른 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분리, 극복으로 해석된다. 정말 그런가? 교대 다닐 때 국문학 수업이 있었는데 자기가 맡은 작품(옛이야기는 아니었고 소설)의 상징에 대해 분석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 눈에 띄는 대로 마구잡이로 신나게(?) 해석을 하면서 "뭐, 쉽네. 귀에걸면 귀걸이네." 이러면서 과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했던 사이비 해석과는 물론 차원이 다르겠지?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석해내는 상징이라면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이겠지? 나도 어릴적에 이 작품들을 읽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나의 무의식에서는 이런 과정들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을 해본다. 학문이 짧아서 어느정도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살펴보고 싶은 분야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베 짜는 큰딸, 베 메기는 작은 딸>, 네번째 이야기는 <지혜로운 처녀> 이야기다. 세번째 이야기는 해석이 아주 흥미로웠고, 지혜로운 처녀 이야기는 자녀에게 안심(?)하고 읽히고 싶을만큼 매우 교훈적이다.^^

 

이 시대는 아이들을 몰아가며 억누르는 시대이고, 당연한 귀결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럴수록 옛이야기는 더 큰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저자들이 이런 기획을 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도 더 많이 알아보고 싶다. 단, 아이들에게 먹일 때는 맛있는 밥으로 먹이고 싶다. 약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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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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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을 때 문학도서의 경우 몇 명의 작가들을 기본적으로 정해 두고 골고루 읽히려 노력하는 편이다. 권정생, 송언, 황선미, 유은실, 문선이 님 등 몇 분을 빼놓지 않고 있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작가가 한 분 더 생겼다. 바로 이 책의 작가인 유순희 님이다.

 

아직 다작을 하신 작가는 아니지만 작품의 수준이 한결같이 나를 감탄시킨다.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싸이클은 대체로 이렇다.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을 읽었다-그 작품에 꽂혔다-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한다-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어본다-다른 작품도 마음에 든다-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사실 이 분의 비교적 최근작을 먼저 읽었다. <우주호텔>이라는 책이다. 분량이나 글씨 크기로 봤을 때는 저학년용이다. 하지만 그 주제는 내 마음에 커다란 무게로 내려앉았다. 서평을 쓰기도 힘들 만큼. 이후로 이분의 작품을 찾아 읽다가 오늘 이 책을 손에 잡았다. 우주호텔보다 느낌은 가볍지만 여전히 알차다. 짧은 동화 속에 이렇게 꽉 찬 내용이 들어 있다니.

 

책의 서문에 작가가 떡하니 이렇게 써놓았다. "여러분도 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해보세요."

안돼~~ 그건 일종의 사행성 게임이란 말이야. 그리고 뒤이어 벌어질 교실의 풍경은 안봐도 비디오란 말이야.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내 마음은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쉬는시간에만 하도록 하지 뭐. 그리고 딴 지우개는 그 날이 끝나기 전에 돌려주는 걸로.

내가 이런 걸 규제해야 하는 어른이며, 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욕을 먹는 교사라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이럴 때는 원망스럽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지우개 따먹기 대장인 상보와 그 짝꿍인 홍미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상보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살고 있으며(아빠는 넉넉하지 않지만 성실히 노력하는 좋은 사람) 공부도 그닥 잘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반에서 일등하는 게 있는데 바로 지우개 따먹기.

늘 좋은 냄새가 나는 깔끔한 홍미는 엄마가 조향사다. 지저분한 상보보다도 지우개 따먹기로 상보와 늘 맞서는 깔끔한 준혁이를 더 좋아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할애한 내용은 상보와 준혁이의 엎치락 뒤치락 지우개따먹기 실황 중계다. 여느 스포츠 경기 못지 않게 꽤나 흥미진진하다. 그러면서, 상보가 아빠와 지우개따먹기를 하면서 하나하나 세워나간 지우개 따먹기의 법칙들이 소개된다. 10가지나 된다.

 

이건 어쩌면 인생의 법칙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들 부자의 인생철학?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철학은 있다.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라든가, 딴 지우개는 절대 돌려주지 않는다 등의 법칙을 세웠다면 그 사람의 수준은 딱 그정도인 것이다. 그럼 이들 부자의 법칙은 어떤 것인지 볼까?

 

공부를 잘하는 준혁이는 지는 걸 참을 수 없어 늘 상보와 대결을 벌이곤 한다. 그날은 준혁이가 모처럼 이겼다. 준혁인 그것 보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후, 딴 지우개를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 상보는 법칙 4번을 들어 따진다. "지우개 따먹기 할 때는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킨다. ,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행동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

시합이니만큼 되도록 이길 수 있기 위해서 법칙 5"납작한 지우개는 피한다.", 법칙 8"집중하기"와 같은 것들도 있지만

법칙 1"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법칙 10"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할 때 상대는 나의 친구이다."

와 같이 함께 하는 매너에 관한 것들도 있다. 이정도의 인생철학이라면 그들이 비록 평범하게 살고 있더라도 얼마나 멋진가!

 

마지막 훈훈한 마무리까지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되겠기에 여기까지만.

한군데, 아이들은 그냥 지나칠만한 곳에서 난 울컥했는데 홍미가 상보 생일에 직접 만든 향수를 선물하는 장면이다. 거기에서 돌아가신 엄마 냄새가 났다.

"아빠, 내 몸에서 엄마 냄새가 나. 신기하지?"

아빠는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울컥했다. 아빠는 향수를 부엌 창문가에 놓았다.

 

두번째 주인공인 홍미 엄마를 조향사로 설정할 만큼 작가는 '냄새'를 중요한 모티브로 삼은 것 같다. 아이들은 이해할지 모르겠는데 난 이것이 이 동화를 더욱 살아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냄새'가 갖는 의미.... 난 그게 뭔지 조금은 안다. 이처럼 작가는 짧은 동화에 이중 삼중의 의미를 겹쳐 넣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자유로울수 없는 법이라 교사인 나는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놀이란.... 삶이다. 그것을 통해서 삶을 배운다. 바로 상보가 인생의 법칙을 수립했듯이 말이다. 또한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 , 거기까지 시간은 좀 걸린다. 잠시 눈에 거슬린다고 차단하지 말고 참고 지켜봐 주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방향제시와 조언은 가끔 필요할 때도 있다. 그것도 직접적인 말 보다는 이런 책을 함께 읽는 것이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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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지혜 - 옛이야기가 품은 열두 가지 자연법칙
린다 부스 지음, 김옥수 옮김, 기 빌루 그림 / 다산기획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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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책과 환경도서의 결합이다. 이런 책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글씨도 작고 그림체도 아기자기하기보다는 좀 낯선 편이어서 책을 손에 들게 되기까지가 좀 어려울 듯하다. 나도 요즘 옛이야기에 좀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살펴보게 된 것이지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그냥 패스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이리저리 살피며 구성을 훑어보던 내 입에서 오호~ 하는 감탄이 나왔다.

 

부제를 살펴보니 <옛이야기가 품은 열두 가지 자연법칙> 이라고 되어있다. 여러 나라의 옛이야기를 고루 접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데 그 이야기들 속에 자연의 법칙이 담겨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니 그건 또 얼마나 신기한지.

 

옛이야기는 시에라리온, 튀니지 등의 아프리카, 필리핀, 미얀마 등의 아시아, 또 북아메리카와 발리섬 등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나라의 것들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어디서 한 번씩은 다 들어본 것 같다는 것이다. 옛이야기의 보편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열두 가지의 자연법칙은 여기에서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법칙 1. (상호 의존성)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

법칙 2. (시스템 무결성) 서로가 없으면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

법칙 3. (생물 다양성)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가 건강하다.

법칙 4. (협동과 협력) 함께 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한 삶의 기본이다.

법칙 5. (적절한 규모) 자연의 눈으로 생각하라.

법칙 6. (공공재) 하늘도 땅도 이웃도 소중한 공유 자원이다.

법칙 7. (살아 있는 순환구조) 만물은 돌고 돌아 새롭게 태어난다.

법칙 8. (쓰레기 = 먹이) 내가 버린 쓰레기는 누군가의 음식이 된다.

법칙 9. (균형 되먹임) 생태계는 늘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한다.

법칙 10. (강화 되먹임) 좋은 것은 더 좋아지고, 나쁜 것은 더 나빠진다.

법칙 11. (비직선성) 조그만 개울물이 거대한 강물을 이룬다.

법칙 12. (지구 시간) 살아 있는 생명체와 발맞추어 걷자.

 

이러한 자연법칙을 어떤 옛이야기로 풀어나갔을까? 서로가 없으면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는 제2법칙은 필리핀의 옛이야기가 이렇게 품고 있다. 야자수로 만든 집이 있었는데 집을 이루는 부분들이 서로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며 다투기 시작했다. 기둥은 기둥대로, 지지대는 지지대대로, 벽은 벽대로.... 그러다가 서로가 없으면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규중칠우쟁론기, 다섯 손가락 이야기, 입이 똥꼬에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세계의 옛이야기들에서 소재만 조금씩 다를 뿐 이러한 통일성을 보게 되는 것은 참 흥미롭다.

 

공유자원에 대한 제6법칙은 나이지리아의 옛이야기가 말해준다. 아주아주 옛날, 사람들은 힘들게 밭을 갈 필요가 없었다. 배가 고프면 하늘을 조금씩 잘라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잘라서 먹다 남은 걸 쓰레기로 버렸다. 화가 난 하늘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높이 올라가 버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게 되었다. 공유의 비극을 이렇게 풀어낸 옛이야기가 있었다니, 참 신기했다.

 

마지막 제12법칙 지구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벼를 끌어올린 농부라는 중국의 옛이야기가 말해준다. 제목과 같이 한 농부가 벼가 자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벼를 끌어올려 키를 키웠다가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정말 오늘날의 우리는 벼를 끌어올린 농부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며,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단순한 옛이야기 속에 깊은 진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다.

 

80여 쪽의 얇은 책이지만 고학년은 되어야 스스로 읽으며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은 교사가 읽어주면 참 좋겠다. 한꺼번에 읽지 말고 한 번에 법칙 하나씩. 옛이야기의 힘은, 아이들에게 긴 설명이 필요없는 강하고 오래가는 울림을 줄 것이다. 저자인 린다 부스 스위니는 생태계 교육자이자 교육학 박사라고 하는데 옛이야기로 환경교육을 하고자 한 안목과 아이디어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앞에서 내가 그림이 낯설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림을 그린 기 빌루는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올해 최고의 그림책10'4권이나 오른 그림작가라고 한다.^^ 이래저래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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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 경제 어린이 행복 수업 1
박현희 지음, 김민준 그림 / 웅진주니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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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국어교과서에 세 가지 소원 이야기가 실렸던 게 기억난다. 소원을 잘못 말했다가 소시지가 코에 붙어버린 이야기. 결국 남은 것은 소시지 한 줄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딸린 질문에, 여러분 같으면 어떤 소원을 이야기하겠습니까? 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갖게 해주세요."라고 썼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가족이 화목하게 해 주세요 라든지 우리나라가 통일 되게 해 주세요 라고 쓴 아이들을 무슨 위선자 바라보듯이 보던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난 그날 아이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었고, 상처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날 아이들의 대답은 곧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묻는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요즘 초등교육과정 관련 연수를 듣고 있다. 그 중 사회교과의 강의를 맡으신 선생님께서 "경제수업을 시작하실 때는 꼭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제안하셨다. 도서실에서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학급에서 교과연계를 고려해 돌려읽기(윤독)를 하고 있는 나는 경제 단원이 나오는 학년을 맡았을 때 경제관련 책들을 참 열심히 찾고 살폈었다. 몇 년 전이었지만 좋은 책들이 참 많았다. 경제 원론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들.

하지만 다시 그 학년을 맡는다면 나는 조금 아쉽지만 그 책들을 포기하고 이 책을 선택하겠다. 세 가지 소원에 얽힌 슬픈 추억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고등학교 사회선생님이신데, 내용도 구성도 무척 참신하다.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마다 한 학급의 나눔장터 이야기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첫번째 나눔장터는 물물교환 형식으로 열었는데 불편함이 많아서 쿠폰(즉 화폐)를 발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화폐의 발생 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두번째 나눔장터에서 아이들은 쿠폰을 남발하였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고 나눔장터는 실패로 끝났다. 2장은 이렇게 해서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번째 나눔장터에는 착한 축구공이 등장한다. 3장의 제목은 <소비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 , 우리는 제대로 된 소비를 통해 바른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 대형 할인마트가 영세상인들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4장의 제목이 이 책의 제목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이번 장터에서 상미는 엄마가 싸구려로 사주어 불만이던 청바지를 가져와 팔았다. 놀랍게도 멋쟁이 진희가 그 청바지를 샀다. 아주 예쁘게 입고 다닌다. 알고보니 진희의 멋진 패션은 비싼 옷으로 이루어진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가격과 만족도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이어서 모방소비, 과시소비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던 미다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장에서 내가슴을 울린 이야기는 소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식 중개인으로 열심히 돈을 벌며 살던 주인공이 어느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엄쳐 나오는게 중요하지. 안 그러면 빠져 죽어요." 이리하여 그는 돈이 많지만 행복하지 않던 삶에서 가난하지만 하고싶은 것을 하는 삶으로 전환했다. 이어서 저자는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하기에 행복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행복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행복의 열쇠에 돈에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행복해진다고 해요."

세 가지 소원 수업을 다시 하게 된다면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대의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데 행복지수는 100위권 밖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돈=행복 이라는 등식을 신념처럼 가지고 있는, 그러면서 늘 불행해하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5장에서는 소비 욕구를 부추기는 광고에 대해서 적절한 예로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마지막 6장의 제목은 <돈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우리나라의 부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아이들은 마지막 장터를 마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기부하는 데 뜻을 모았다. 아이들은 말한다. "그동안 나눔장터도 즐거웠지만 이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기특한 아이들이다.

경주최씨 큰 부잣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소개되어 있는데 참 인상적이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그 옛날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조상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부 문화와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꿈꾸면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아이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적절한 분량에(1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귀엽고 적절한 그림들이 어우려져 정말 딱 좋은 수준의 경제책이 나왔다. 경제용어와 지식에 편중되지 않고 아이들의 바른 가치관 형성을 돕는 책.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도 어떤 때는 욕심이지만 이 책만큼은 욕심을 한 번 부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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