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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학교 만들기 - 인디스쿨 함께 쓰는 책 프로젝트 1
공창수 외 지음 / 지식프레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라는 책을 읽고 깊이 공감했다. 요즘 아이들의 병적인 현상은 그 원인이 모두 놀이의 결여에 닿아있다.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거나 육체적 정신적인 폭력을 즐기게 되어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만든다. 교실에서 교사가 해결해주기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교과전담이어서 다음 해에 2학년을 맡자마자 당장 실천을 했다. 학교가 근린공원과 맞닿아 있는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학교 시정표와는 다르게 맘대로 블럭수업을 하고 중간놀이 시간을 만들어 노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노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근린공원에 나가 일단 우유부터 마시고, 중앙마당에서 출발하여 근린공원을 한바퀴 뛰고, 그 다음은 고무줄놀이, 경찰과 도둑놀이 등 그때그때 아이들이 '꽂힌' 놀이를 중심으로 놀다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아쉬운 마음을 안고 교실로 들어와 나머지 수업을 했다. 통합교과 '봄' 수업을 할 때는 쑥을 캐서 쑥버무리를 해 먹고(공원에서 뜯은 쑥은 아이들 몰래 버리고 소요산 청정지역에서 시어머님이 뜯어오신 쑥으로 대체^^;;) '이웃' 수업을 할 때는 마을의 놀이터를 하루에 한 군데씩 순례하며 놀았다. '가을' 수업을 할 때는 이곳저곳 다니며 가장 이쁜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고 낙엽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겨울엔 바람개비를 만들어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고, 눈이 오면 당연히 눈놀이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지금도 이 때 아이들이 보고싶다. 교실에 찜통을 걸고 쑥버무리를 쪄서 한 쪽씩 떼어 주었을 때, "아잉~ 맛이가 이상해~" 이러다가 "음 그래도 맛있다." 짭짭 오물오물 먹던 아이의 이쁜 입이 생각난다. 별별 희한한 아이들이 많던 반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놀며 부대끼며 고생인 줄도 모르고 한 해를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일 년은 불법으로 점철된 한해였다는 것을...^^;;; 그리고 20년 경력의 40대 교사가 어찌 그리 무식하고 용감할 수가 있었던가 라는 것을....ㅠ 근린공원이든 어디든 학교 밖을 나가려면 결재를 득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생각했더라면 일년을 그렇게 놀며 보내진 못했을 것이다.
다음 해에는 3학년을 맡았는데, 나가 놀려면 결재를 득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은 데다가, 갑자기 늘어난 9개의 각각 이름 붙여진 교과를 공부하려니 좀처럼 놀 틈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또 있었으니, 다년간 수제작해 온 온갖 교구들과 틈틈이 사 모은 보드게임들이다. 창체 시간을 활용해 이것들을 가르쳐 놓았더니 아이들은 쉬는시간만 되면 모두 바닥에 깔려 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수업 종이 치면 정리시키고 수업을 시작하는 게 좀 어려웠을 뿐, 쉬는 시간을 활용한 놀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옆반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와도 아이들은 무사히(?) 놀이에 빠져 있었다. 난 흐뭇했다. 마치 놀이에 일가견이 생긴 교사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올해, 고학년을 맡았다. 첫날 내 소개에서 난 용감하게도 놀이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라고 날 소개했다. 아이들이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뭔가 불길한....?^^;;) 그랬다. 내 생각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놀이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냥 자유시간' 둘째는 '축구 아니면 피구' !
'그냥 자유시간'을 줄 수도 있다. 전의 아이들처럼 바닥에 깔려 잘 놀아준다면 말이다. 말하자면 내 의도대로 놀아주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얘네들은 달랐다. "절대로 너의 뜻대로 놀아주진 않겠어" 라는 듯이, 애써 마련한 그 수많은 교구와 보드게임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보통 쉬는시간 관리를 한 달 정도 하면 자리가 잡혀서 교실에서 꼬물꼬물 복작복작 보기 좋게 놀기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하루같이 관리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에 못 가게 할 수는 없으니 쉬는시간마다 신경쓰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마실나가는 것(복도나 남의 교실에서 다른 반과 뒤섞여 떠들며 노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많은 생활지도 문제가 발생했고 정말 골치가 아팠다. 이것 하나가 정착되지 않으니 아이들을 이뻐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첫 체육시간부터 이 아이들은 축구 아니면 피구를 하자고 했다. 그걸 너희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몇몇이 삐죽거리며 입이 댓발 나왔다. 줄 세우기부터 놀이로 진행했는데 반응이 별로,,,, 남은 시간을 술래잡기류의 몸풀기 놀이로 진행했는데 이건 최악이었다. 마치 "우리들을 뭘로 보고 이따위 시시한 놀이를...?"이라는 태도. 매주 잘 계획된 주간학습 안내를 나눠주고 거기에 준해 수업을 진행해 나갔더니 그제야 이해를 했다. 금요일에 주간학습 안내를 나눠주면 체육수업부터 살펴보고 "우와 다음주에는 발야구네~!" "에잉, 다음 주는 소고춤이구나...." 이렇게 되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 한달간, 그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축구가 아닌 체육수업'을 진행하는 동안의 삐걱거림은 내게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한 학기 내내 학급운영이 껄끄럽고 힘들었다. 모든 수업에 앞서 체육수업을 철저히 준비했다. 한 달 이후로는 아이들도 체육수업에 순순히 즐겁게 잘 따라왔다. 그래도 그 한 달의 삐걱거림의 여파는 오래 갔다. 놀이에 대한 자신감은 그냥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졌다.
놀이에 한한 한, 나의 한계를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학년들 앞에서는 그 한계가 발현되지는 않았다. 편해문 선생님의 주장처럼 아이들은 그저 텅빈 시간을 놓아주면 창조적으로 잘 놀았다. 나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이쁘고 즐거웠다. 하지만 고학년은 좀 달랐다. 이 아이들은 이미 많이 굳어있다. 놀이의 창조성은, 한참동안 놀이로 말랑하게 풀어주어야 그제야 발휘되는 것 같다. 그때까지는 교사의 리더십과 운영의 묘가 많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 점에서 많이 미숙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한계. 내가 아이들을 '놀려' 줄 수는 있으나 함께 '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 안타깝다.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읽고 끄적거리고 온갖 상상놀이를 하며 '조용히' 놀았다. 몸을 쓰는 놀이를 즐기지 않았다. 어릴 때도 즐기지 않았던 놀이를 40이 넘어 무슨 수로 즐기겠는가? 가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오지랖 쩌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는데, 나한테는 그냥 이게 놀이다. 각자 자기에게 놀이인 것을 하고 놀면 되는 것을. 어쩌다가 놀이까지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온갖 세심함으로 함께 놀아주어야 되는 세상이 되었을까? 우리 어렸을 때 선생님은 그런거 안해주셔도 우린 잘 놀았고 앞날 미리 걱정하지 않고 날마다 즐겁고 행복했었는데.... 이런 한탄은 사실 의미가 없고, 이 시대는 이게 필요하니 어찌됐건 난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은 이런 한계와 난관에 봉착한 나에게 많은 참고가 되겠다. 이 저자들의 '학교야 놀자' 책도 가지고 있고 가끔 활용하곤 했는데, 이 책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아이디어도 넘치고, 활용도도 높다. 특히 체육수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팁들이 많이 들어 있고, 체육과 역사를 결합한 역사 RPG게임은 초등교사들의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라 뿌듯하고도 반갑다.
책을 읽다보니 놀이의 고수인 이 책의 저자분들도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놀이수업을 자기 것으로 만드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는 문제점의 불거짐-난관-해결의 과정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난관 속에서 헤매고 있듯이 말이다. 왜 뭐하나 쉬운게 없을까? 놀이까지도 이렇게 노력해야 하나? 라는 한숨이 살짝, 나온다. 놀이란 건 저절로 돼야 되는거 아니야? 우린 어렸을 때 누가 가르쳐 줬었나?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맞다. 우리 어릴 땐 결핍이 아니었고 이 아이들 시대는 결핍이다. 그러니 애써서라도 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이 글을 끝내고 난 다시 정독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