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학교 저학년 읽기대장
송언 지음, 허구 그림 / 한솔수북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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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들이 작가까지 따져가며 동화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런데 예외적이고 독보적인 작가가 있으니 바로 송언 선생님이다. 송언 선생님의 신작을 소개해 주며 "얘들아, 송언 선생님 알지? 마법사 똥맨이랑 김배불뚝이랑 꼼지락 공주랑... 지으신 분 말이야." 하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고, 학급문고에 넣은 그 책은 금방 손때가 묻는다. 3년 전인가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월별로 작가별 작품읽기 행사를 했었는데 그때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달의 작가가 송언 선생님이었다. 올해 독서교육을 맡으신 선생님은 작가초청행사를 위해서 아이들이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설문조사하셨는데, 예상한 대로 송언 선생님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하여간 송언 선생님의 인기는....^^ 작가를 굳이 따지지 않는 아이들에게서조차 지명도가 이리 높은 비결이 뭘까?    


일단은, 재미있어서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웃겨서.... 어느 작품에나 빠지지 않는 웃음코드는 다음 작품을 또 기대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악동의 출연이다. 교실을 맘대로 휘젓는 악동녀석과 늘 뒷골 잡으면서도 그녀석을 미워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이야기. 악동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도 이런 이야기를 즐기는 것을 보면 뭔가 심리적 해소 효과를 느끼는 모양이다.


근래 나온 작품들 중에 이런 악동-할아버지 선생님 구도의 책들이 많았다. 나오는 작품마다 읽다보니 이제는 그 작품이 그 작품 같은 느낌도 솔직히 좀 들었었다. 이 작품의 제목 또한  <내 맘대로 학교>. 표지에 그려진 당돌해 보이는 한 아이와 그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털보 선생님의 모습에서 여전히 이어질 동일한 구도의 내용을 예상했다. 그런데......

일관적인 흐름이 있긴 했지만 느낌이 새로웠다. 주인공 만세는 엉뚱하고 자유롭긴 하지만 적극적인 악동은 아니다. 단지 즐거운 학교를 다니고 싶을 뿐이다.


일요일 저녁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와 여동생은 호호거리고 있지만 아빠와 만세는 우울감에 빠져 있다. 이유가 뭐겠는가? 아빠는 출근, 만세는 등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요일 저녁의 우울감... 이거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공감하는 감정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직 세상에 체념하지 않은 만세는 "재미있게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하고 잠자리에 든다. 


월요일 아침, 지각대장 존 한테서 일어날 법한 사건이 등교길에 일어난다. 학교길에 못보던 연못이 있고 거기서 개구리들이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만세는 이제 재미있게 학교 다니기가 가능해졌다.^^


나도 일요일 저녁 우울증에 빠진 만세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근데 이걸 어쩌지? 나한텐 게다가 직장이 학교인 걸. 학교에는 늘 즐겁고 싶은 아이들이 있는 걸. 나도 즐거운 학교에 다니고 싶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아이들이 불행한 학교에서 교사가 즐거울 수는 없다. 아이들의 웃음이 교사의 보람이고 활력소다. 아이들하고의 좋은 관계가 좋은 수업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니 만세가 어떻게 즐거운 학교를 다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육시간-줄 서서 차례로 뜀틀을 넘는 수업에 아이들은 지루해 한다. 만세는 선생님께 뜀틀을 갖고 더 재밌는 놀이를 하겠다고 제안한다. 아이들은 뜀틀을 분해해서 모래성도 만들고, 남생이 놀이도 하고, 기차놀이도 한다. 신나는 자유놀이 시간이 된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의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순환활동을 하게 된다.

고민 :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자유 놀이를 시켜도 될까? 즉, 수업의 내용(활동)을 아이들에게 정하게 해도 될까? 아이들에게 자유활동을 시키는 것은 교육내용을 구성하고 지도할 교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실제로 자유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이렇게 구조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은 별로 없다.


음악시간-피아노나 리코더 없어도 교과서로 이마를 치는 걸 리듬반주 삼아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아, 뭐....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기만 한다면 나도 이정도는 봐 줄 수 있다. 전에 '고물 밴드 이야기'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물건이 악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체험하는 것은 상당히 창의적인 교육이다.


읽기시간-동화 읽고 뒷이야기 상상하기 수업인데, 아이들이 교과서 동화가 재미없다고 불평한다. 그 때 개구리 아저씨가 나타나 재미있는 개구리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과서의 재구성은 나도 늘 염두에 두던 바라서 이건 좀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다. 근데 내가 개구리가 될 순 없어서 그게 좀 고민이긴 하다.


과학시간-아이들이 모둠별로 씨앗을 심었다. 화분에 물을 주자 잭과 콩나무처럼 순식간에 싹이 트고 자라 교실은 무성한 덩굴로 뒤덮였다. 당황하는 선생님을 두고 아이들은 숲 속으로 들어가 '곰 잡으러 가자' 놀이를 신나게 하다가 종이 치자 교실로 돌아온다. 바로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 속에서 즐거울 수 있다. 종이 치자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아이들은 무진장 건강한 아이들이다.


일요일 저녁 장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제 만세는 일요일 저녁이 우울하지 않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 그게 안된다. "만세야. 어른들의 세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단다. 개구리 연못 뿐 아니라 용이 사는 연못이라도 가보고 싶어. 하지만 아빠는 갈 수가 없단다. 왜냐하면 말이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란다."


나도 어른이고, 아빠의 고백이 나의 고백에 가깝다. 하지만 어떻게 즐거운 수업을 할까? 라는 즐거운 고민 속에 있을 때, 출근이 늘 고역이지만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의 즐거움 안에 교사의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맘대로 학교> <신 나는 학교> 거기에 나의 설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맘대로>가 방종은 아닌 것을, 아이들이 아직 모르는 <신 나는>공부는 어떤 게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면 좋겠다.


(송언 선생님! 책들이 늘 재밌었지만 이번 책은 특별했습니다. 선생님과 동업자(?)라는 것을 실감하고 맘이 든든했어요. 선생님의 고민이 저의 고민이네요. 앞으로도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 우리 교실을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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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초등학생을 위한 초등학생을 위한 100명의 위인들
장현주 지음, 마이신 그림 / 소담주니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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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 포장을 풀고는 '에잉?' 했다. 책 표지가... 검은 바탕에 흰 글씨 뿐.... 태백산맥이나 한강 류의 대하소설이나 장편 만화에서나 봤음직한 표지여서 좀 의아했다. 급히 책을 넘겨보니 본문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삽화가 풍성한데.... 에잉, 그리시는 김에 표지에도 좀 그리시지. 아이들이 책을 잡을 때 표지도 한 몫 하는데....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과 취향이고, 책을 만드신 분들의 어떤 의도가 있었다면 그걸 이해하고 싶다.


일단 이러한 책을 만드시게 된 착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너무 늦게 나왔다는 감이 있을 정도다. 이 노래가 회자되기 시작한 지 어언 몇년이던가? 그 동안에 충분히 나왔음직한 책인데, 지금이라도 나오게 되어 무척 반갑다.


위키백과에서 이 노래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니 이렇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韓國을 빛낸 百名의 偉人들)은 박인호 (박문영)가 작사, 작곡하여 1989년최영준, 노사사 의 노래로 발표한 노래이다. 한국역사인물을 주로 수식문과 함께 나열한 가사로, 대한민국에서 높은 대중성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역사의 진행에 맞추어, 고조선을 시작으로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남북국 시대(신라, 발해), 고려조선을 거쳐 대한제국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의 위인을 대략적인 연대순으로 5절에 걸쳐 수식과 함께 나열했다. 인물이 아닌 단체도 있으며 허구의 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음절상의 문제로 인물명이 로 대체되어 있기도 하며 양쪽 다 병기된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노래는 불린 지 20년이 넘었으며, 그동안 인원이 100명이 맞니 안맞니, 누구는 왜 들어갔으며 누구는 왜 안들어갔느니 등의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가사를 새로 쓰고 노래를 새로 만들면 될 것이다.^^ 일단 이 가사의 내용부터 이해해 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동안 무심코 아이들과 이 노래를 틀어놓고 목청껏 부르곤 했었는데,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이왕 부르는 거면 아이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주고 불렀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이런 부분이다.


죽림칠현 김부식-죽림칠현이 뭔지도 잘 모르는데다가 다른 가사의 구조로 볼 때 그것이 김부식의 수식어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지눌국사 조계종 의천 천태종, 주리 이퇴계 - 조계종과 천태종이 뭔지? 사람 이름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주리 이퇴계의 주리도 대부분 모른다.

홍길동, 임꺽정-소설 속 인물로만 아는 경우도 많은데 소설 속에 나오는 초인적 능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대쪽같은 삼학사-이 부분도 삼학사가 사람 이름인 걸로 오해하는 경우,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경우 등 이해도가 많이 떨어진다. 척화파로 청나라게 끌려갔다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죽어서 대쪽같다고 하는데, 다시 조명해보면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서화가무 황진이-'서화담은 황진이'라고 되어 있는 가사도 있다. 천하일색 황진이도 서경덕은 유혹하지 못한다는 일화가 있어서 나는 그걸로 이해하면서도 뭔가 찜찜했었는데.... 서화가무였네?

이수일과 심순애-이들이야말로 허구의 인물이다. 조중환의 장한몽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위의 예 외에도 초등학생 정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을 갖고 있으니 아이들이 잘 모르는 부분만 뽑아서 한 장씩 읽어 주어도 흥미있겠다. 학급에 한 명 정도는 뭔가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 "아~~ 그런 거였어요~~??" 하면서 오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반응을 기대해 본다.^^


다 이해하고 나면, 가사에 대한 비평을 해 볼 수 있겠다. <한국을 빛낸>이라는 제목에 비추어봤을 때 이 인물은 적합하지 않다. 대신 이 인물이 들어가야 한다.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등등... 역사란 어차피 객관적일 수 없다. 서술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이 노래 가사도 마찬가지다. 작사가가 고른 인물일 뿐이다. 가사를 고치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지만 비평은 할 수 있다. 아, 흥미진진하겠다.^^*

 

마지막으로, 부록이 완전 고맙다. 워크북은 아이들과의 활동에 많은 아이디어를 준다. 그리고 체험학습 책은 정말 유용하다. 일단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분포를 볼 수 있고, 그 뒤에 하나하나 설명과 위치, 연락처 등을 실어 놓아서 쓰임새가 높다. 이렇게 유용한 책의 기획은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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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치티가 간다! 그림책이 참 좋아 23
신동준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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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다. 너무 앞서가면 안된다.


여기는 카프리카 대륙의 부릉게티 초원이야.

풀과 나무에선 온갖 부품이 주렁주렁 열리고

호수에선 기름이 퐁퐁 샘솟지.

부릉게티는 자동차들의 천국이야!


이 첫 장면에서 난 이런 짐작을 한다.

부릉게티? 자연의 보고인 세렝게티를 연상시키면서 비꼬았구나.

호수에선 기름이 펑펑 샘솟는다고? 머지 않아 끔찍한 일이 생기겠구나.

자동차들의 천국! 오, 그래. 지금은 천국이겠지. 하지만..........


난 부릉게티 초원이 현대문명의 천국을 상징한다고 넘겨짚었다. 그리고 이 찬란함은 곧 비참함으로 바뀔 것이라고, 결국 이 책은 과학문명 사회를 경고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보다. 넘겨짚다가 팔 부러지게 생겼다. 이 책은 경고가 담긴 책이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읽으면 되는 책이다. 오히려 아주 훈훈하다.


수많은 종류의 자동차들은 각각의 역할과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 속력을 자랑하는 스포츠카 치티는 늘 우쭐하는 경향이 있는데, 새로운 기름호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다른 자동차들의 우직한 역할에 기가 죽고 만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치티가 해야 할 역할도 있었다. 결국 자동차들은 서로 돕고 격려하며 목적지에 도달했다. 


자동차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함께 살아가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아이들에게 큰 재미를 주면서 설득력까지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는 환경오염의 주범이기 이전에, 아이들에게 익숙한 존재다. 특히 아들들은 대부분 취학 전 일정 기간 동안 장난감 자동차에게 대단한 애착을 보이는 시기가 있다. 그 때의 감정을 되살리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나랑 가장 닮은 자동차는 누구인지, 나는 어떤 자동차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퍽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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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치워야 돼 날마다 그림책 (물고기 그림책) 21
정하영 글.그림 / 책속물고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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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초반부를 봤을 때는 깔끔한 아이-지저분한 아이, 양심적인 아이-양심없는 아이, 부지런한 아이-게으른 아이가 대비되는 구조에서 뭔가 갈등과 화해가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사실 그 해결이 상당히 궁금했다. 집안에서도 그런 구도는 흔히 있지 않은가? "어째 이 놈의 집구석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궁시렁궁시렁......."


교실에도 그런 구도는 있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결국 배째라 하는 편이 이기게 되어 있는 게임이다. 지켜보는 교사 입장에서는 샘파는 놈은 업어주고 싶고 배째라 족은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고,  샘파는 놈이 그게 좋아서 파는게 아니라면 늘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에 어떤 후련한 해결책이 나오는지 기대가 되었다.


해결책은 없었다. 늘 혼자서 치우던 즐리는 어지르기만 하는 그리에게 방을 나눠 쓰자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뭐야, 나도 안 치워!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고 만다. 사이좋게 요리해서 먹던 두 친구는 각자 통조림 등 인스턴트 식품만 사서 혼자 먹고 아무데나 버렸다. 집안에는 쓰레기 산이 생겼지만 서로 오기가 난 두 친구는 끝까지 버텼다.


어느 날 불어난 빗물이 두 친구의 집까지 밀려들어와 쓰레기를 모조리 쓸어 갔다. 둘은 다시 행복해졌지만....? 함께 낚시 가서 잡아온 커다란 연어를 요리하려는 순간... 어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을까? 여기에서 우리가 버린 것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무서운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너무 늦었긴 하지만 그래도 즐리나 그리나 할 것없이 낑낑거리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장면이다. 이고 지고 끌고 나르는 그리를 보니 웃음이 나오면서 그동안의 얄미움을 용서해주고 싶어진다. 지쳐버린 즐리가 재활용 쓰레기장 앞에 두 발 뻗고 앉아있는 장면에서도 살짝 웃음이 지어진다. 이 두 장면은 뒷면지에 그려져 있다. 그것만 넘기면 이 책은 끝이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지구의 생명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는 지금 뒷면지 쯤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면만 넘기면 책은 끝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즐리와 그리보다도 더 배짱이 두껍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우리 중의 즐리가 "그리 때문이잖아! 왜 내가 치워야 돼?" 라고 소리쳐도 때는 늦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살 터전을 지키는 데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더 애쓰는 방법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배째라고 버티는 수많은 그리들 옆에서 애먼소리 들어가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가는 분들. 나는 그런 분들을 종종 본다. 나도 귀찮더라도 아이들과 꼼꼼하게 분리수거하는 일, 개인 컵 가지고 다니는 일, 온수로 하염없이 샤워하지 말고 후다닥 씻고 나오는 일 등 한 가지라도 더하려고 애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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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긍정훈육법 -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 학급긍정훈육법
제인 넬슨 외 지음, 김성환 외 옮김, 김차명 그림 / 에듀니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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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던 날 난 공개수업을 했다. 동료장학이어서 서너 명의 동료교사가 참관을 했다. 수업설계에는 신경을 썼지만 자료 준비 등 세세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엔 좀 아까워서 그냥 넘어갔다. 평상시 수업을 보여줘야지, 안 쓰던 자료를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생각도 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그야말로 '평상시' 수업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중간에 '버럭'을 한 번 하고 다시 집중을 시킨 다음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두 번쯤 왔는데 아무리 평상시 수업이라지만 손님이 있는데 예의상 '버럭'을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진행을 했더니 수업은 갈수록 꼬여만 갔다. 겨우겨우 지도안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게 수업을 마쳤다. 참관하신 선생님들은 우리끼리의 예의로 좋은 평이 쓰여있는 참관록을 두고 가셨지만..... 난 아이들을 노려봤다. '이것들을 낼부터 어떻게 혼낼까?'  


참관록을 찬찬히 읽어보다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라는 부분에서 덜컥 걸렸다. 난 이 부분에 컴플렉스가 있다. 이상하게도 내 수업의 참관록에는 '허용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쓰신 분들은 좋은 의미로 그 단어를 쓰셨을 것이다.(이날을 제외하고 지금까지의 공개수업은 비교적 상큼하게 잘 끝났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단어는 나를 흠칫하게 한다. 마치 아이들을 손놓고 내버려두는, 무능한 교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난 이 부분에서 무능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아이들의 행동을 단호하게 통제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선택한 것은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친절한 동료교사를 많이 본다. 그들의 교실은 대체로 통제가 잘 안된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절한 교사는 끊임없이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 노력에 비해 아이들은 별로 감동받지 않는다. 그래도 이 친절한 교사는 "난 아이들에게 알아달라고 교육하는 게 아니야. 힘든 건 나의 숙명이야."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노력한다. 일면 존경스럽다. 나도 한때는 친절한 축에 들었지만 이 지난한 과정에서 포기하고 '버럭' 증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교사는 단호하다. 이 부분에 맺힌 게 많은 나는 이런 교사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복도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교사는 목소리를 깐다.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짧고 단호한 훈시 후 교사는 다시 아이들을 이동시킨다. 얼음들은 숨을 죽이고 걸어간다. 우와~ 난 이 과정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뭐냐.... 10년 후배도 저렇게 하는데... 난 헛살았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 교사는 이쪽 아니면 저쪽이기가 십상인 것이다. 친절하거나, 단호하거나. 그런데 '친절하며 단호한' 이라니 어떻게 하면 그게 될까? 그것이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다. 사실 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교사라서. 친절하다기엔 가끔 버럭을 하고, 단호하다기엔 애들이 너무 시끄럽다.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교사는 그야말로 나의 로망이다. 이 책에 비법이 있다니, 어찌 안 읽어볼 수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미리 분류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내가 취할 게 없다 싶으면 중간에 책을 덮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법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는 학급회의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실은 내가 굉장히 비선호하는) 방법이어서 솔직히 중간에 책을 덮을 고비가 몇 번 왔다. 하지만 이 교육법의 정신에 크게 공감하고 감동받을 만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가장 공감되는 것은 상벌제도의 폐해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상벌제도를 교실에서 전혀 시행하지 않는다. 불편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 상벌에 연연해 왔던 시절이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보면 처벌의 장기적인 영향 3Rs가 나오는데 반항(당신은 나를 통제할 수 없어. 내 멋대로 할 거야), 보복(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복수하고 상처 줄 거야), 후퇴(그래 나는 나쁜 사람이야)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은 문제행동(여기서는 '어긋난 행동'이라고 부른다)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오히려 강도가 더해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행동 아래 감춰진 신념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감정은 소속감과 자존감이다. 인간은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낄 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충족이 안되면 생존을 위한 행동(소위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의 자존감과 소속감에 흠집내는 짓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상처주고 상처받고, 힘들어했었다. 상벌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때그때 행동에 대한 지적을 말로 해야 했었는데, 씹어뱉듯이 말하는 나의 나쁜 말습관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또다른 징벌인 경우가 많았었다고 느낀다. 이제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행동만을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겠다. 너는 지금 이런 부분이 너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준다. 하지만 너는 변함없이 우리 반의 소중한 존재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이런 메세지를 어떻게 진심으로 전해줄 수 있을까? 상황마다 고민해야 되는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도 아이들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이나 버릇없는 행동, 자기들이 무슨 당연한 권리를 가진 듯이 행동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생긴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어긋난 행동' 을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행동 아래 감춰진 신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원인을 살펴보려는 노력 없이 그 아이를 단지 비난하고 처벌한다면 부정적 행동은 더욱 강화된다.   


이 책에서 발견한 내게 가장 중요한 지침은 <아이들이 해결 방법을 찾도록 하기> 였다. 단호한 교사라면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그때 그때 제시해 주고 거기에 따르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제시하는 방법은 그와 달랐다. 아이들에게 되묻고, 생각하게 하고, 해결방법을 찾도록 하고, 스스로가 선택한 방법을 지키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교사가 심판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동안 심판자로서의 내 역할은 참 위태위태하고도 부질없었다. 그러니 이 지침이 내 몸에 배도록 노력을 해 볼 생각이다.


가장 찔리는 문장을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학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83)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학생에게 존중받기를 바랄 수 있느냐? 라는 질문도 이어진다. 음..... 할 말이 없다. 나이가 들고, 이상이 꺾이고, 이곳 저곳에서 상처받고, 지치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아이들을 품어주어야 할 대상으로보다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진취적이기 보다는 방어적이 되고, 그러다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 성가신 일을 생산하는 존재들에게 무의식적인 적의가 생겨났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존중이란 없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이 책은 솔직히 나에게 방법적인 팁을 많이 주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미 굳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늘 하던 방식에서 멈칫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게 어쩌면 당분간은 더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한 후배가 이런 하소연을 했다. "차라리 모를 때가 편했는데 알면 알 수록 학급이 더 엉망이 돼요." 주워들은 건 있어서 나의 방식을 고집할 수가 없으니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왕도가 있었다면 누구나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길을 더 보여주었고 난 여러가지 길 사이에서 들락날락 하며 헤매고 있는 중이다.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아마 난 그만두는 날까지도 끝까지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의 고민이 아이들에게 조금의 약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그 고민을 선사한 이 책에게 감사한다. 사실 친절과 단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것만 해도 이 책은 나에게 큰 선물이며 잡는 과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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