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 뉴베리상 수상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선물 날마다 그림책 (물고기 그림책) 22
케이트 디카밀로 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서석영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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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이한 내용이다. 케이트 디카밀로와 같은 대가가 아니라도 쓸 수 있을 듯한 그냥 무난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

누군가는 "별거 아니네. 그냥 이웃을 돕자는 얘기야." 해버릴 수 있을 듯한 이야기.


근데 뭐지?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막혔던 대사가 큰 소리로 터졌을 때 울컥해지는 이 감정은?

소녀가 터뜨린 대사에서 벅차오르는 이 느낌은?


교회를 다닌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탄절이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 지도하는 일과 식사준비하는 일 등이 부담되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어린 시절, 그리고 젊었던 시절 성탄절을 준비하며 느꼈던 설렘이 그대로 다시 느껴진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성탄절 전야 풍경이 비슷하다.)


성탄절 공연에서 프란시스는 천사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거리의 악사 할아버지와 원숭이다.

원숭이는 양철컵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전을 얻고, 악사는 음악을 들려준다. 프란시스는 그 음악이 꿈속에서처럼 슬프고 아득하다고 느낀다.

프란시스는 궁금하다. '할아버지와 원숭이는 밤이 되면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에게 묻지만 엄마는 관심이 없다. 프란시스의 무대옷에만 신경을 쓴다.

밤 열 두시에 프란시스는 거실로 나와 손전등을 들고 거리를 내다본다. 그 시간에도 악사와 원숭이는 거리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면 안되냐고 엄마에게 물었다가 핀잔만 듣는다.


드디어 프란시스의 연극이 있는 저녁이다. 엄마와 교회로 가는 길에, 프란시스는 악사에게 달려가 원숭이의 컵에 동전을 넣고 연극을 보러 오라고 초대한다.

"거리의 악사는 프란시스에게 웃어 주었지요. 그런데 두 눈이 슬퍼 보였어요."

프란시스는 그 눈을 가슴에 담았던 것 같다....... 연극은 시작되었으나 집중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그림작가에 대한 평 하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 - 목동 역할을 하는 아이들과 천사 역할을 하는 아이들 모두... (아 참, 얼굴은 안보이지만 낙타 역할을 하는 아이들도) 모두들 어찌나 천사같이 예쁜지.... 설렘으로 공연을 준비하던 그 옛날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 긴장한 프란시스의 표정, 환하게 외칠 때의 표정, 마지막 장에 차와 간식을 나누는 모든 이들의 흡족한 표정 등....  채도가 낮은 유화 느낌의 그림에 온갖 표정과 느낌이 살아있다. 


프란시스의 차례가 되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초조해하며 숨죽이고 기다리는 그 순간,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원숭이를 안은 할아버지가 들어선다. 안심한 프란시스의 입에서 드디어 대사가 나온다. 천사의 메시지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커다란 기쁨의 소식을 가져왔노라!"

한 마디 덧붙이기까지.

"커다란 기쁨의 소식을."


30년이 넘는 교회 생활 동안 아마 이 구절을 20번은 넘게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책에 박혀 있는 이 구절에서 비로소 내 마음이 격동할 줄이야.....

한국 교회는 오늘도 기쁨의 소식을 외치고 있으나 그 울림은 강단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만 겨우 퍼져나갈 뿐이다. 예배당 문턱을 절대 넘지 못한다.

그래서 쿼바디스라는 영화는 수백억을 지어 만든(수천억인가? 잘 모른다) 어떤 큰 교회를 비판하며 영화를 시작한다.(이 영화를 꼭 볼 생각이었는데 보진 못했다. 주워 들은 내용이다.)

복음이 더이상 복음이 아니고 시궁창에 처박혀 비웃음과 질타를 받고 있는 요즘, 작은 천사 아이의 입에서 나온 한 구절에서 난 '복음'을 들었다.

예수님이 오셨다. 그가 오신 이유는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도 아니고 '너희들끼리 사소한 일이 뭔 대단한 일인양 내 이름을 걸고 핏대 올려 싸워라'는 더더욱 아닐 터.

할아버지가 들어오신 것, 그리고 성탄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누는 것. 이 자리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 그것이 복음일 것이다.   

 

펼친 화면에 그려진 마지막 장면엔 모두가 평화스럽게 웃고 있다. 할아버지도 엄마도 아직도 연극 분장을 다 벗지 못한 아이들도, 서빙을 하느라 분주한 집사님(?)들도. 원숭이까지도.

어떤 이유에서든 할어버지가 소녀의 초대를 거절했다면, 또는 현관 앞에서 차단 당했다면 이 장면에 웃음은 있되 평화는 빠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뭐가 빠졌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기적인 복음을 만들어 그것으로 자기 앞가림을 하는 자들 때문에 예수님은 오늘도 수난 당하시고 이 소박한 기쁨의 자리에도 예수님의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정말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말은 나를 향하여 하는 말이다. 얼마 전 햑교에서 벌점을 받은 아들에게 내가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든 자들과 니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라. 니가 속한 집단의 사소한 규율도 지키지 못하면서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 창피하지도 않냐?" 

사실 이건 나에게 돌려야 할 말이다. 그래서 어디 가서 교회다닌다는 말을 잘 못한다.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게 도와주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편안함에, 게으름에, 욕심에, 집착에 그 무엇이든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으면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받아들이기 무척 어렵다. 나는 저 중 여러가지에 해당한다. 언제쯤 나는 그것을 깰 수 있을까. 언제쯤 이 소녀의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이 그림책은 심각한 도전을 나에게 던진다. 주제에 욕심을 좀 내자면 나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던지는 도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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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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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좋아한다. 국어 수업에서 이 활동이 나오면 난 최대한 시수를 늘려 충분하게 수업을 한다. 그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는 명분보다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쓰기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도 이 수업에는 흥미롭게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니 수업도 잘 되고, 일석 삼조쯤 되었던 셈이다.


내가 처음 시도했던 방법은 문장을 하나 던져 주고 모둠의 아이들이 릴레이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숲 속에 다람쥐와 곰이 살았어요." 라든가 "어느 날 우리 반에 새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아침에 눈을 뜨니 사방이 조용했어요." 등등....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게 만들거나, 갑자기 김을 빼놓거나, 예전에 말 많았던 어떤 드라마처럼 모든 주인공을 죽게 만들거나 등등의 부작용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나를 웃게 만들고 때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두번째 방법은 스토리큐브라는 교구를 이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건 특히 열광하는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늘 뒷목 잡게 만들던 아이가 갑자기 반듯해져서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했더니 하교시간에 알림장을 내민다. 학교생활 잘했다고 써달란다. 그러면 엄마가 스토리큐브를 사준다고 했다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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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 면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9개의 주사위가 한 세트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게임이다. 여기에서 난 그림을 단서로 이야기를 만드는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지막 세 번재 방법은 그림카드를 활용한 수업이었다. 그림이 환상적이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런 그림카드가 어디 있을까 찾다가 보드게임에서 찾아냈다. <딕싯>이라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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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인데 여기에 84개의 그림카드가 들어 있다. 그림은 환상적이면서도 무한히 열려있고 다의적이다. 이걸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당장 구입해서 집에서는 보드게임을, 학교에 가져가서는 국어수업을 했다. 맘에 드는 카드를 한 장씩 고르고 그 그림을 문장으로 표현하게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다. 2학년 아이들과 이 수업을 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그동안 이놈들 땜에 속썩었던 걸 한 방에 용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물론 등장인물 다 죽이기 등의 엽기적 결말을 좀 차단한 고심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니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수업들이 떠오른다. 책이 만들어진 과정이 비슷한 맥락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해리스 버딕이라는 작가는 14점의 그림을 가지고 편집자를 찾아갔고, 그림에 딸린 이야기의 원고를 다음날 가지고 오기로 하고는 30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각 그림에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한 문장이 딸려 있을 뿐이다. 해리스 버딕이 가져오려고 했던 이야기는 대체 어떤 이야기였을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이 궁금증은 바로 알스버그가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겠는가?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도 이게 대체 뭔 소린가 눈치 채지 못하는 곰탱이가 바로 나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그 그림책은 미국 초중생들의 글쓰기 수업에 널리 활용된다고 한다. 교사들이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그림카드 수업까지 해봤으니 나도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을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


그 14점의 그림들을 단서로 하여 쓰여진 이 책은 작가 구성부터 놀랍다. 사실 난 외국 소설의 작가는 잘 몰라서 14명을 다 아는 건 아닌데... 스티븐 킹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자이고, 웨이싸이드 아이들을 쓴 루이스 새커는 올해 우리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은 『빨간 머리 마빈 시리즈』의 작가고, 엇, 린다 수 박은 『사금파리 한 조각의 그 린다 수 박? 거기에 케이트 디카밀로까지! 


그 뿐 아니라 작품을 읽으며 몰랐던 작가에 대한 궁금증까지 생겨났다. 표지그림으로 쓰인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그림>을 이야기로 쓴 작가 코리 닥터로우는 SF 전문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그 상상력이란.... 비상한 사람의 상상력은 나같은 범인이 따라가기에 버거울 정도다. 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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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이어졌는지 모를 철로 위로 네 명의 아이들이 탄 수동차가 보인다. 수동차에는 돛이 달려 있고 한 아이는 항해복을 입고 있다.

아이는 평소에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 "공간에서는 거의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어째서 시간은 한 방향과 한 가지 속도로만 움직이는 거지? 더 빨리, 더 느리게 갈 수는 없나? 그리고 뒤로 갈 수는 없어?"

"만약 시간이 모든 방향, 모든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은하계 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인간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미지의 문제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가능한 장면을 우리 앞에 형상화 해놓는다. 그 모든 것이 주어진 그림과 문장, 제목을 반영하고 있다. 입을 헤벌리고 읽었다. 와우~ 놀랍다.


린다 수 박의 <하프>도 맘에 들었다. 그림이 흑백인데도 숲의 느낌이 얼마나 싱그럽고 고요하며 환상적인지. 한 쪽의 바위 위에 놓여 있는 하프. 저 건너 멀찌감치서 그것을 바라보는 한 소년. 제시된 문장은 이것이다. "진짜였어. 소년은 생각했다. 진짜 있었어."

'진짜' 뭐가 있었을까? 그건 숲의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마법과 주문, 마법에 걸린 자매의 우애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게 소년을 울게 했고 위로했다. 

작가는 현대 사람들이 마법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암암리에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적절한 시기, 우연, 운좋은 발견 등을 통해서....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싶다. 모든 기대가 사라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만 내 앞에 놓여져 있을 때 특히 그렇다. 그럴 때 난 가 본 적도 없는 그 숲을 그린다.


<오직 사막뿐>을 쓴 M.T.앤더슨도 잘 모르는 작가인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영화트루먼 쇼의 결말 부분을 볼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호박의 그림이 가장 인상적인데 이야기 또한 가장 강력하게 인상적이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여기서도 특유의 아련한 슬픔을 자아낸다그의 작품 <3층의 침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렇게 강한 이미지를 주진 않았지만 아픈 소녀의 손을 잡아주고 소녀의 동생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마지막 편인 <메이플 거리의 집>이 스티븐 킹의 작품이었는데 왜 그의 작품이 영화로 많이 제작되는지 알 것 같았다짧은 작품 속에서도 시한폭탄의 초침이 재깍거리는 듯한 소리가 독자의 심장을 울린다.

 

어떻게 보면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상상력의 여지를 작가들이 채워버렸다는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하지만 상상력의 여지는 무한하니까... 상상력의 씨앗은 또 어디서든 뿌려질 것이다.


내가 상상력을 추구하는 건, 아니 인간이 상상력에 큰 가치를 두는 것은 그것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력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킨 면도 있고 간혹은 악의적인 상상력이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상상력은 이 세상에 의미를 불어넣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며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 안의 상상력을 발견할 때 기특하고 기쁘다.

그런데, 내 안에는 얼마나 되는 상상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쪼그라진 형체만 발견하게 될까 두려워 펼쳐 보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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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괴물전 책콩 저학년 3
유순희 지음, 이영림 그림 / 책과콩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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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아줌마인 나는 이제 과자를 싫어하고 아이들이 과자 먹는 것을 자제시켜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과자를 좋아하고 마트에 가면 꼭 과자를 몇 봉 사서 주방 수납장 한 칸에 넣어둔다. 그 중 절반은 내가 먹고 절반은 아들이 먹는다. 요즘은 사실 조금 덜 먹기는 하는데... 과자가 싫어져서 라기보다는 너무 비싸서다. 질소과자... , 여기서 그 얘기는 하지 말자.

 

과자 괴물전이라 하니 밥보다 과자를 좋아하는 아이가 등장하고, 과자 괴물이 나타나 어찌어찌하여 이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다. 처음은 비슷한 듯 했다.... 그러나 갈수록 나의 예상과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난 이런 상황을 즐긴다. 나의 예상과 멀어질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유순희 님은 신작이 나왔나 내가 가끔 검색해 보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지우개 따먹기 법칙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 중 한 편이고 우주 호텔의 느낌도 참 좋았다. 이 책 또한 느낌이 좋다. 유순희 님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눈물겨운 그 느낌이 있다. 게다가 이 책은 아이들이 잘 아는 시중의 다양한 과자가 등장하고 재미 또한 뒤지지 않으니, 2학년 정도를 맡았을 때 감질나게 읽어주면 아이들이 졸졸 쫓아다니며 더 읽어달라 조를 것 같다. 특히 특정 과자의 맛을 묘사한 그 부분들에선 아이들의 눈이 스스르 감기며 고통을 참는 비명이 터져 나올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말이다.

홈런볼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먹으면 초콜릿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아주 맛있는데. 그걸 입에 넣고 혓바닥과 입천장으로 녹이면 단맛이 목구멍에서 가슴까지 퍼지는데.”

과자에 관한 한 작가가 나보다 고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이런 부분에서 해 본다. 난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과자를 먹어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과자 맛을 음미하며 먹는 과자돌이 형제 금동이와 은동이는 별사탕을 구하러 땅 위로 나온 새끼괴물과 만난다.(새끼괴물은 의도치 않게 과자괴물이 되었다) 별사탕... 아주 어릴 때, 과자라곤 그거밖에 없었던 뽀빠이 과자에 몇 개 들어있던 별사탕... 그냥 설탕 뭉쳐놓은 거라 지금은 있어도 안 먹지만, 그래도 추억이 떠오르는 그 별사탕... 그 별사탕을 찾으러 온 새끼괴물의 사연이 참 눈물겹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도, 누군가와의 사연이 담기면 그에게는 특별한 맛이 된다. 그 맛을 아빠괴물은 요술 맛이라고 표현했다. “그 때 할머니의 눈은 달빛처럼 그윽하고 따뜻했지. 그 때의 별사탕 맛은 요술 맛이었어. 아무리 울적해도 별사탕만 먹으면 행복해졌으니까.”

작가는 후기에서 출산 때 밤새 끓여 새벽어둠을 뚫고 달려온 친구의 미역국 맛이 요술맛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난 갑자기 궁금해져서 남편과 아이들의 카톡방에 바로 질문을 올렸다. “만약 엄마가 죽든가 해서 없다면 어떤 음식을 볼 때 엄마 생각이 젤 많이 날까요?”

그러자 아들의 즉답이 날아왔다. “난 곰탕!” 아들은 곰탕을 좋아한다. 며칠 동안 먹어도 물리지 않나보다. 그래서 사골 끓이는 거 무척 번거롭지만 밤새 거품과 기름 걷어가며 가끔 끓인다. 주로 웬수지간으로 지내는 모자 사이지만 내가 죽으면 곰탕을 보고 눈물 한 방울은 흘려 줄 건가 보다. “엄마가 주방 수납장 한 칸에 넣어놨던 과자라고 대답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달콤한 별사탕 맛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 이야기를 읽고 아이들이 과자가 먹고 싶다라든가 앞으로는 과자를 조금만 먹어야겠다라고 감상을 쓴다면 난 좀 실망할 것 같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한 번 읽어보겠다. 이 책은 좀 무식한 표현으로 안전빵이라서(아이들이 좋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 목록에 넣고 잘 써먹어야겠다. 내 목록에 이렇게 한 권 한 권 책이 추가될 때마다 나도 별사탕을 먹은 듯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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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씹어 먹는 아이 -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1
송미경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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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없거나 아주 빈약하거나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들여다보이는 동화를 읽으면 나도 이정도는 쓰겠다 라는 아주 말도 안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한다.(물론 쓸 수 없다. 그걸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진짜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재밌게 읽는 거로구나.....

송미경 작가는 내게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다. 복수의 여신에서 그 맛깔스러운 문장과 상큼한 내용에 끌렸고 광인수술보고서에서 그의 실험정신과 주제의식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드는 느낌은 이제 참신한 상상력을 넘어 기묘한 4차원의 세계를 보는 느낌이다. 이 작가에게는 어떻게 이런 게 보일까? 어딘가에 숨어 눈에 띄지 않거나 눈에 띌까 두려운 이런 내면들을 어떻게 들여다 보았으며 어떻게 이해했을까?


돌 씹어 먹는 아이 』라는 엽기적인 느낌의 표제작을 비롯하여 7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나의 경우에, 단편은 읽고 나면 다른 책들과 내용이 뒤죽박죽 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내용이 짧은 만큼 여운도 짧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데 이 책의 단편들은 워낙 느낌이 독특해서 다른 작품들과 쉽게 섞일 것 같지가 않다. 그림작가 안경미의 독특한 그림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첫 작품 제목은혀를 사 왔지』다. 혀를 사다니, 소 혓바닥으로 뭘 해먹는단 소리는 들어봤지만 그 혀는 아닐 게 아닌가? 정육점은 아닐테고 어디서 혀를 판다는 거지? 

"시장에 갔어." 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일 년에 한 번 삼일간 열리는 '무엇이든 시장'에 말이야." 화자인 시원이는 이 시장을 둘러보다 결국 건방진 당나귀가 파는 '혀'를 사 온다. "왜 하필 혀를 사 왔냐고? 난 혀가 없거든."

이 어린 아이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말하고 싶은 날도 있는 것이리라. 드디어 혀가 장착되었다. 속사포처럼 날리는 독설들은 상대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양심 없는 동네 빵집 아저씨, 늘 시비 걸고 괴롭히던 친구들, 어린 아들의 공부에 모든 것을 맞춰 놓은 엄마에게까지. 그리고 다음 날, 아이는 시장에 다시 간다. "나는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내 책가방, 가방속 책들, 신발주머니와 실내화를 펼쳐놓았어. 마지막으로 나는 내 혀를 꺼내어 가장 앞줄에 놓았지."

하루의 속시원한 독설이 이 아이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는 왜 하루만의 독설에 만족하고 혀를 도로 팔았을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속 시원한 말이 단지 속 시원하지만은 않은 사람도 있는 법... 그런 사람들은 그냥 갈구지만 않아도 착하게 살 수 있는데.... 착한 사람을 가만 두지 않고 괴롭히는 이 사회는 참 몹쓸 사회다. 시원이가 혀 아닌 더한 것을 사오려 하기 전에 제발 가만히 놔두길 바란다.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기만 하라고.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에서는 능청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다. 고양이 부부가 지은이네 집에 들어와 자기네가 친부모라며 딸을 데려가겠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다. 엄마는 지금 혼자서 김장을 담그고 있는 중이라 입으로만 화를 낼 뿐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고양이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은이는 정말 내가 저들을 닮은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쿠키를 먹다 소파에서 잠든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간식을 먹은 후에 소파에 널브러져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늘 학교 다녀오면 곧바로 숙제와 학습지를 해야 한다고 하고 낮잠이란 있을 수 없지.... 평온하고 나른한 모습에서 동질감을 찾은 지은이는 고양이 부부를 따라나선다. 고양이 부모의 말들.

"우린 절대 바쁘지 않아. 가끔 사람한테 쫒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우린 음식을 모아 두지 않아. 그저 좀 덜 먹는 날이 있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지." 

비교적 성실하게 내 일을 미루지 않고 사회의 상식과 규범에 맞추어 살아온 나는, 나와는 달리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인 아들을 이해 못해 끙끙 앓는다. 방학인 요즘 모처럼 새벽교회에 갔다가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 두 개 싸들고 하얀 입김을 뿜으며 학원버스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보고 들어온 날, 아직도 한밤중인 아들을 향해 거의 저주에 가까운 한숨을 뿜어낸다. 이 아이의 방학 하루 일과는 거의 백수들의 그것에 가깝다. 점심때 쯤 나가 한밤중에 들어온다. "시간대를 바꾼 것 뿐인데 엄마는 왜 한숨이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사람이 쉬기도 해야지" 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이 아이는 이제 고3이다. 분명히 내가 낳긴 했는데 영혼의 부모는 고양이가 맞는 것 같다. 고양이 엄마~ 당신이 얘 좀 책임져 줘. 밥은 내가 먹일게.


표제작인 『돌 씹어 먹는 아이』의 내용은 제목만큼이나 엽기적인데, 문학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라 했다. 해석의 자유는 독자들한테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걸 어떻게 해석할까 상상해보니 웃음이 나온다. 설마 조약돌 하나를 입에 넣고 살짝 깨물어 보려나?

"저는 돌 씹어 먹는 아이예요." 

라고 아이가 가족 앞에서 고백했을 때, 그 다음 장면을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 갈수록 태산이라고 해야 하나, 블랙유머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나도 네게 할 말이 있다. 나는 흙 퍼 먹는 아빠야."

오 마이 갓!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근데 작가는 그만 하질 않는다. 너무해!

가족들 몰래 얼린 못을 케첩에 찍어 먹는 걸 즐겼던 엄마, 지우개를 먹다 최근에는 더한 것을 먹기 시작한 누나... 그들은 울며 서로를 위로하다 뒤엉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4단 찬합에 도시락을 싸서 가족은 소풍을 떠났다. 4단 도시락에 들어 있는 메뉴를 이제 더이상 엽기적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자신의 메뉴를 권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 모두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지구는 동그랗고』는 내게 너무 어려웠다. 그들을 실제 인물로 머리 속에 그려보니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작가가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나도 세상을 다 산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이해가 안되거나 별로 이해하고 싶지가 않은 상황이 있다.

『아빠의 집으로』를 읽을 때는 엄마의 심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젤 가슴아픈 작품이었다. 걱정스러웠다. 앞으로 잘 살겠지?

『아무 말도 안했어?』에서 나는 작품의 전체 내용보다도 아무도 못 듣는데 병우만 듣는 그 '바보' 라는 소리에 꽂혔다. 수민이는 아무 말을 안했을 수도 있지만 병우의 감각은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던 거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억지를 쓴다고 다그치기만 할 게 아니라 얘기를 들어줘야 하겠구나. 얼마 전 읽은 교육서적에서 "인간은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낄 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충족이 안되면 생존을 위한 행동(소위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된다."라는 대목을 메모해 두었던 게 갑자기 생각났다. 이런.... 동화를 읽고 교육서적과 줄 긋는 이런 분석질은 적절치 못한데.... 하여간에 내 곁에 병우가 나타나면 일단 눈쌀을 찌푸리지 말자고 다짐을 해 둔다.

『종이 집에 종이 엄마가』는 사실 엄청난 이야기다. 어린 미솔이가 겪은 일의 10분의 1도 나는 이나이 될 때까지 겪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쿨하면서도 따스하다. 미솔이가 그 나이에 겪기에 너무 엄청난 일을, 그래도 따뜻하게 겪어서 참 다행이다. 


쓰다 보니 일곱 편에 대한 감상을 다 말해 버렸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거나 다른 이들의 느낌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이야기 주머니를 가진 작가가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위기철 님은 <이야기가 노는 법>이라는 책에서 동화작가는 억지로 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그저 작가로 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이런 뜻의 말을 하기도 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작가의 이야기 주머니 속에서 꿈틀거릴 때, 또 맛있게 써서 내어놓으시길 기다린다. 이 책, 참 특별한 느낌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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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선생님과 진짜 아이들
남동윤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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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새로운 경향을 한 가지 말한다면 예전에 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동영상 등을 동기유발을 위한 도입활동 뿐 아니라 본 활동에까지 끌어들여 감상이나 요약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한다. 예전이라면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문을 쓰는 등의 활동은 2월 쯤 진도가 거의 끝나고 애매한 시기에, 그것도 약간 눈치를 보면서 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교과서에 들어와 버렸으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국어교육(또는 독서교육)은 일단 시대의 흐름에 맞다고 본다. 


그 다양한 매체들 중 만화는 어떨까? 대답부터 하자면 "O.K!!"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남은 3주를 위해서 국어 한 단원을 남겨 두었는데 이 마지막 단원에 등장하는 매체가 바로 만화다. 평상시 아침독서시간이나 도서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만화를 읽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담임이 갑자기 "얘들아~ 너희들 만화 많이 읽어봤니? 이번 단원에서는 만화를 가지고 수업을 하자~" 이러면 아이들이 좀 적응이 안되는 표정으로 날 볼 것 같기도 한데....^^;; 하여간에 수업을 위해서이니 만화건 뭐건 찾아본다. 일단 도서실에 아이들이 읽을 만한 만화부터 골라보았다. 와이나 만화천자문 등의 학습만화 종류는 빼고 스토리 중심의 만화를 찾아보니 별로 없다. 내가 좋아하는 짱뚱이 시리즈가 있긴 한데 이건 나온지 오래되어 이미 너덜너덜하다. 도서구입 예산 자투리 조금 남은 걸 가지고 만화 몇 권을 골라 구입했다. 그 중의 한 권이 이 책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화 읽는 걸 좀 자제시킨다고 해서 내가 어린시절 만화를 안 읽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도 만화가게의 추억이 있는 몸이다. 그런 내가 이 만화에 주는 점수는 꽉꽉 채운 별 다섯 개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만화를 만났다~!!" 라고 호들갑을 떨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등장인물은 처녀귀신을 닮은 노처녀 강귀신 선생님과 16명의 4학년 1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12편의 이야기는 잘 짜여진 단편 동화 같은 탄탄한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치하고 과장된 캐릭터가 아닌 것이 마음에 든다. 등장인물의 개성이 드러나긴 하지만 웃기기 위해 과하게 꾸며낸 캐릭터가 아니어서 더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코미디로 치면 유치한 몸개그나 말장난이 아닌 감동이 있고 여운이 남는 코미디라고 할까? 게다가 이 분의 그림 수준은 만화가 아닌 장르까지 손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편의 이야기 중 어떤 것은 웃기고, 어떤 것은 찡하고, 어떤 것은 섬뜩하며 어떤 것은 훈훈하고 어떤 것은 상상력이 넘친다. 한 편씩만 예를 들면

웃기다:<우리 선생님은 귀신>-이 작품에서 젤 극대화 된 캐릭터는 선생님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냥 캐릭터 만으로도 웃기다. 처녀귀신을 닮은 외모에 모태솔로, 감정기복이 심하고, 특기는 아이들 말 무시하기, 학부모님들 만나는 걸 젤 싫어하고 가장 좋아하는 날은 방학이라 방학식날 아이들보다 더 좋아한다. 그래도 이 학급, 1년동안 알콩달콩 잘 지낸단 말이다. 마치 40대 아주머니라기엔 너무 유치한 내가 아이들 데리고 1년을 그럭저럭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교사에게 너무 심한 인격을 요구하지 말라고. 아이들과 마음만 맞으면 이 정도 인격으로도 추억 돋는 일년을 잘 보낼 수가 있다고!(아, 말하다보니 저 깊은 곳에 감춰놨던 본심이 나와버렸다...)


찡하다:<꼬마 저승사자>-꼬마 저승사자가 소혜를 데리러 왔다. 소혜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다. 소혜는 저승에 가기 전에 집을 한번 돌아보겠다고 부탁한다. 그 길에 소혜를 걱정하고 눈물 흘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혜는 늘 보던 일상의 물건들 앞에서 추억과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 어리버리한 저승사자의 표정이 점점 변한다. "울보야, 나중에 보자." 그 이후는?^^


섬뜩하다:<소시지 더 주세요!>-급식 시간에 소시지를 다 먹자 더이상 밥 먹을 의욕이 없는 아이들. 비듬나물 한 줄기를 입에 넣고 거의 구역질을 하는 아이들. 센과 치히로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진심 섬뜩하더라.


훈훈하다:<주인찾기 대작전>-소민이가 길에서 만원을 주웠다. 신 나하는 소민이에게 만원짜리의 세종대왕님이 주인을 찾아주라고 말씀하신다. (작가는 만원짜리를 여러 번 그리느라 고생하셨을 것 같은데, 거기에 세종대왕님의 표정까지 매번 바꿔 그리셔야 했다는) 소민이와 세종대왕님이 합심하여 열심히 주인을 찾는다. 찾아낸 주인은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였다. 만원은 할아버지가 며칠 일해서 번 돈이었고. '주인님'을 찾자 안도의 눈물을 흘리시는 세종대왕님. 흐뭇한 소민이.


상상력 넘친다:<토끼와 함께>-동식이는 상현이네 집에 갇힌 토끼를 풀어주었다. 토끼와 함께 동식이가 간 곳은 달나라 떡집이었다. 달나라엔 진짜 떡방아 찧는 떡집이 있었던 것이다.(얼떨결에 간 동식이 역시 열심히 떡방아를 찧어야 했다) '지구인이 떡방아를 찧어서 더 찰지고 맛있는' 떡은  날개 돋힌 듯 잘 팔린다. 상상력 치고는 참 고전적이지만 그러면서도 신선했다. 


한 편씩만 소개해 봤는데, 읽는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고를 작품이 다 다를 것이다. 버릴 작품 없이 다 재미있다. 작가는 어릴 적에 특이한 상상과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외계인 오줌인 줄 알았다. 걱정이 되고 또 걱정이 되었다. 내가 외계인으로 변하면 어쩌지? 무서워서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일기를 쓰던 아이는 커서 만화가가 되어 이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엉뚱할 때도 있고 뭔가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지만 그 아이들이 꾸려 가는 세상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남은 교직생활 중 귀신 선생님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는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런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있다 보내주고 싶다. 뭔가 특별한걸 가르치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고 아이들의 꿈을, 상상력을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아이들의 따뜻함에 함께 행복해하다 때가 되면 웃으며 보내주고 싶다. 기억에 남는 선생님 같은 것 별로 바라지 않는다. 그냥 일상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서로를 할퀴지 않고 상대방의 부족함에 분노하지 않고 내게 남는 돌 슬며시 꺼내어 빈 자리 괴어주며 살아가면 좋겠다. 

문제는 힘을 빼는 것은 힘을 주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데 있다. 살짝 힘을 뺀 이 만화책을 읽으며 참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과도한 힘이 들어갈 때, 아이들이 쓸데없는 거에 목숨걸며 핏대 올릴 때, 다시 꺼내어 같이 읽을 수 있게 책꽂이에 잘 꽂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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