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사과를 딴 소녀 옛이야기 읽으며 치유 1
김지예.차인우 지음, 성은혜지 그림 / 해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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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를 좋아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이들에게 고루 권해주는 편인데 그동안 옛이야기책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끼워넣었을 뿐 그 자체에 흥미를 갖지는 않았었다. 옛이야기의 특징인 인물의 전형성과 극단적인 스토리 등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지난 겨울, 옛이야기의 상징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알고보니 옛이야기가 그랬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징으로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원형을 손상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어린이들에게 적당하지 않다거나 교훈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내용을 삭제하거나 개작하면 옛이야기의 상징성에 큰 손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상징은 무의식에 작용하는 것이고, 그래서 모르는 사이에 옛이야기는 아이들의 무의식에서 치유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두 분은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한 학자이고 치료사이다. 이 책에 신뢰와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옛이야기 읽으며 치유'라는 시리즈의 첫 권이다. 옛이야기의 치유 기능을 표방한 책들이라니, 솔직히 솔깃하기도 하면서 좀 뜨악하기도 했다. 아이들한테 "자, 치료하자. 이건 약이야."하고 책을 들이밀면 과연 읽고 싶을까, 그리고 그렇게 다 알고 읽은 책이 과연 치유기능을 할까 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어른들이 굳이 강조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들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 중심으로 읽어나갈 것 같다. 처음 가졌던 기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옛이야기의 상징과 치유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저자들이니 지금까지 출간된 옛이야기 책들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오류들을 발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  

 

이 책은 옛이야기들 중에서 자매 이야기만 골라 묶었다. 자매 이야기의 대표격인 콩쥐팥쥐를 비롯 4편의 자매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번째 이야기 <황금사과를 딴 소녀>에서 구박하는 새어머니와 이복자매들 모티브는 콩쥐팥쥐와 동일하다. 돌아가신 친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조력자 모티브도  비슷하다. 여기서는 염소인데, 새어머니가 죽인 염소들을 묻은 자리에서 황금사과나무가 자라난다. 왕자의 잔치와 신발 모티브는 없는데, 대신에 황금사과를 따는 사람이 왕자님의 배필이 된다. 당연히 이야기의 주인공인 두눈이만이 황금사과를 딸 수 있었다. 결말에서 두눈이는 새어머니와 이복자매들을 용서하고 함께 살게 된다.

 

두번째 이야기 <콩쥐팥쥐>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콩쥐가 사또와 결혼한 이후의 이야기가 우리가 보통 아는 이야기보다 좀 더 길다.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대신 콩쥐 행세를 한다. 콩쥐는 불에 탄 연꽃에서 구슬이 되어 남았고, 나중에 사또 앞에서 다시 콩쥐로 나타난다. 결말은 위의 이야기와는 달리 팥쥐가 죽음을 맞고, 그 시신을 본 새어머니도 미쳐버리는 비참한 결말이다.(내가 듣기로 어떤 판본에서는 팥쥐의 시신으로 젓갈을 담그는 이야기도 나온다는데 여기에선 그런 이야기까지는 안나온다 - 아 근데, 삽화에 보면 장독대가 나오고 그 중 한 항아리의 뚜껑이 열려 있다...ㅠㅠ) 저자의 해설을 읽어보니 "팥쥐는 콩쥐를 괴롭힌 것에 그치지 않고 연못 속에 빠뜨려 죽였기 때문이지요. 또한 팥쥐는 콩쥐 속에 있는 또 다른 마음인 분노, 타나토스입니다. 팥쥐가 죽었다는 것은 이런 마음들과 분리되었다는 것이지요."  

 

옛이야기에선 잔인하게 죽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상징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것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해석하시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즉, 자신의 또다른 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분리, 극복으로 해석된다. 정말 그런가? 교대 다닐 때 국문학 수업이 있었는데 자기가 맡은 작품(옛이야기는 아니었고 소설)의 상징에 대해 분석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 눈에 띄는 대로 마구잡이로 신나게(?) 해석을 하면서 "뭐, 쉽네. 귀에걸면 귀걸이네." 이러면서 과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했던 사이비 해석과는 물론 차원이 다르겠지?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석해내는 상징이라면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이겠지? 나도 어릴적에 이 작품들을 읽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나의 무의식에서는 이런 과정들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을 해본다. 학문이 짧아서 어느정도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살펴보고 싶은 분야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베 짜는 큰딸, 베 메기는 작은 딸>, 네번째 이야기는 <지혜로운 처녀> 이야기다. 세번째 이야기는 해석이 아주 흥미로웠고, 지혜로운 처녀 이야기는 자녀에게 안심(?)하고 읽히고 싶을만큼 매우 교훈적이다.^^

 

이 시대는 아이들을 몰아가며 억누르는 시대이고, 당연한 귀결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럴수록 옛이야기는 더 큰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저자들이 이런 기획을 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도 더 많이 알아보고 싶다. 단, 아이들에게 먹일 때는 맛있는 밥으로 먹이고 싶다. 약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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