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만의 영웅이 필요해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7
이어령 지음, 홍정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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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정치인을 뽑는 투표도 그 기준에 따라 당선자가 달라진다. 경제를 최고로 생각했던 유권자들이 선택한 대통령 때문에 우리는 인내를 요구받으며 살고 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개인의 삶에도 엄청난 변화와 파장을 불러온다는 걸 통감한다. 

내 인생의 멘토를 선택하는 것은 진정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선택할 위인이 많지 않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숨어 있는 위인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영웅'이야기는 멘토로 삼을 만한 기준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적어도 경제적 가치를 최고로 두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 아가들의 돌잔치부터 돈을 많이 벌라고 주문하는 부끄러운 세태에서 번쩍 정신나게 하는 글이다.  

"처음엔 울퉁불퉁한 돌덩어리에서 출발해. 이걸 조금씩 깎고 다듬으면 예술품이 되지. 우리 삶도 평생을 두고 완성해가는 조각품과 같아" (앞마당에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본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 준다. 그들은 뛰어나고 신비로운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늘 만나는 이웃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어떻게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지 알려 준다. 우리가 잘 알거나 낯선 이름이어도 그에게 무얼 배우게 될지 기대해도 좋다.   

 

한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웠지만 덕을 어지럽히는 경우엔 추상같이 호령했던 황희 정승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스스로 낮춰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알았던 유방은 덕이 있었기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간서치 이덕무와 서경덕, 전쟁터에도 책수레와 전담 사서를 데리고 다녔던 나폴레옹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만, 쌓은 지식을 자랑하고 으스대는 순간 빛을 잃은 나폴레옹은 두 가지 거울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살아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에 자부심과 행복을 느낀 스트라디바리의 열정과, 우리나라에선 알아주지 않아도 일본인이 가치를 알고 열광했던 '황도(황태옥)'라는 조선의 사발을 재현해 낸 신정희는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한 사람의 실천은 열 명을 눈뜨게 하고 백 명의 마음을 흔들고 천 명의 생각을 바꾸게 한' 톰아저씨의 오두막으로 노예해방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낸 비처 스토.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 보다 얼마나 유익하게 돈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강철왕 카네기와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는, 기업을 사유재산인양 자기 일족의 영달을 꾀하는 기업인들을 부끄럽게 할 자랑스런 인물이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란 질병으로 몸이 굳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주의 비밀을 밝혀 낸 스티븐 호킹박사와 시각장애를 갖고도 더 편리한 점자를 발명해 낸 루이 브라이. 루이 브라이의 점자를 한글에 적용하는데 성공한 박두성은 절망속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운 아름다운 분들이다.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실종되었지만 537일을 버텨낸 새클턴 탐험대는 성공보다 빛나는 인간 승리였다.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산과 대화를 나누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산악인 메스너.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덧씌운 외계인이 아니라,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인의 모습을 그려낸 E.T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낸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리의 영웅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책 속의 책에서 한국을 빛낸 인물로 나비 박사 석주명, 김수환 추기경,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 노르웨이의 라면왕 이철호, 옥수수박사 김순권, 천상의 목소리 조수미까지 다섯이 아닌 여섯 명의 자랑스런 한국인을 소개했다. 물론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간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도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며, 저마다 성격과 능력이 다르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배울점이 있으며,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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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생각이 뛰어노는 한자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
이어령 지음, 박재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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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뛰어노는 한자, 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한자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정말 내 머릿속에서도 한자가 뛰어 논다. 부수에 따른 한자의 가족을 줄줄이 소개하고,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뜻글자 한자를 제대로 알게 된다. 게다가 사람을 중시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글자에 담겨 있음에 감탄했다. 한자의 조합을 하나씩 풀어 설명해서 글자에 담긴 옛사람들의 생활과 마음까지 알 수 있다. 글자의 어원으로 옛사람들의 정신도 알게 된 한자의 매력에 듬뿍 취한 독서였다. 재미있는 삽화는 한자의 생성과 변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손가락 모양으로 일, 이, 삼을 만들고, 사방에서 온갖 숫자가 모이는 것을 나타낸 글자 십(十).환갑을 나타내는 화갑의 화(華)자는 十자 모양이 여섯 개, 一자가 하나가 조합된 글자로 61을 나타낸다니 놀랍다. 사람이 먹는 밥 한 톨에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씩 닿았다는 쌀(米)을 먹을 때 감사의 마음은 당근이다. 5만자가 넘는 한자를 부수가 같은 가족별로 나누면 214종이라는데, 그것으로 우주와 천지만물을 나타내는 글자를 만들어 냈다. 그중에도 으뜸인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꼽은 인(仁)은, 사람과 사람이 합쳐진 글자로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이 오가려면 자기를 살짝 낮춰야 한다는 건 새겨둘 말이다.

계수나무로 초가삼간을 지어 한 식구가 모여 살 수 있기를 꿈꿨던 소박한 마음은,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현대인이 보기엔 아름다운 미담이다. 집(家) 속에 들어 있는 돼지의 정체를,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듯이 사람도 번성하라는 뜻이고, 식구들이 먹고 살기 위해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다는 것, 혹은 돼지를 잡아 조상께 제사를 지내는 곳이 집이라는 다양한 해석도 재밌다. 늙을 로(老)자를 거꾸로 한 효도 효(孝)자는 '어려선 부모에게 업혀서 자랐으니, 커서는 거꾸로 늙은 부모를 업어 드려야 한다'고 효도의 뜻을 쉽게 담아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괴상한 한자 찾는 내기를 하면서 발견했던, 수레가 세 개 모인 굉(轟 )자가 소개되어 반가웠다. 인간이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손으로 도구를 사용했으니 재주나 기술을 나타내는 말에 손(手)이 들어가고, 바퀴가 발명되면서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인간이 생각을 자유롭게 키워가며 발전했다는 건, 오늘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사물을 보고 생각을 맘껏 펼쳐 한자를 만들었으니, 그 한자 속에서 생각이 뛰어놀게 그냥 즐기면 된단다. ^^

사람들이 쓰는 말은 3천 개쯤 되지만 글자는 겨우 4백 개밖에 안된다고 한다. 중국은 신화로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우린 신화가 아닌 역사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으니 정말 자랑스런 일이다. 우리가 쓰는 말의 7~80%가 한자말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잘 쓰기 위해서도 한자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 순우리말로 알고 있는 것들도 실은 한자에서 유래됐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긴가민가, 흐지부지, 김치, 돈, 술래, 실랑이, 양치질의 어원을 풀어준 말미의 책속의 책은 신선한 발견이었다.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게 되어 정말 기뻤는데, 다섯 권의 책을 10일만에 리뷰를 쓰라는 건 엄청난 압박이다. 그 마감일이 오늘이라 만사 제쳐두고 올인해야 숙제를 끝낼 듯하다. 그동안 '알라딘증정' 도장이 거꾸로 찍혀 왔는데 이 책은 바로 찍혀서 보기 좋다. 이어령 선생님 책을 읽었으니 이런 고정관념도 버려야겠지?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도 일종의 편집증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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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1-2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하세요. 결국 해내셨군요.^^
박수를 보내요. 짝짝짝!!!

순오기 2009-11-24 00:55   좋아요 0 | URL
책이 재밌고 분량이 많지 않아서 쉽게 읽었는데 쓰는 건 만만치 않았어요.^^

희망찬샘 2009-11-29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평에는 마감날짜가 정해져 있군요. 푸른책들은 조금 미뤘다 써도 돼서 맘이 편하던데... 음 생각을 다시 해 보아야 할 듯. 요즘 체력이 어찌나 딸리는지...

순오기 2009-11-29 19:22   좋아요 0 | URL
나도 차일피일 하다가 항상 마감날 쓰거든요.
푸른책들은 많이 밀렸지만, 올해 끝나기 전에 마무리해야지요.ㅜㅜ
 
<더불어 사는 행복한 정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더불어 사는 행복한 정치 더불어 시리즈 1
서해경.이소영 지음, 김원희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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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를 배우는 초등고학년이 보기에 좋을 책이다. 초등생들은 학급반장이나 어린이회장을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선거로 뽑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실감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련된 용어도 쉽게 설명하고, 우화나 예화를 삽화까지 곁들여 재밌게 풀어 놓았다. 더구나 핵심은 박스 안에 정리하고 노랑색 바탕으로 처리해 눈에 확 들어온다. 친절도 하셔라!^^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생각이 깊어지는 자리'에 앞에서 다룬 내용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질문과 여백을 남겼다. 책을 읽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센스가 돋보인다.  

 

편집도 돋보이지만 내용도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주제별로 잘 정리했다. 정치, 국가, 권력이란 무엇일까? 정확한 개념과 민주주의 원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과 시민의 정치 참여, 국제정치의 역할까지 생각을 확장시킨다. 더구나 최근의 우리 상황을 예로 들어 공감하고 이해하기에 좋다. 꼭 알아야 할 것들은 번개표로 한 번 더 정리했고, 쉬운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책이 제법 두껍지만 자료사진과 삽화, 여백이 많은 편집이라 부담스럽지 않다. 내용도 어렵지 않고 삽화가 재밌어서 절대 지루하지 않다고 보증한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정치'라는 제목은 현재 우리 현실과 다르지만, 이 책은 참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싸움질이나 하는 방탄국회, 온갖 비리와 거짓을 일삼는 정치가들이 싫어서 외면하고 싶은 속내를 부끄럽게 한 책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디어트(idiot) - 바보나 얼간이, 지능이 세 살 정도 수준인 사람 - 정치에 관심 없는 시민'은 아니었다고 자부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갖고 있던 4.19 화보집을 보았고, 충청도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성이 강했던 곳이라 어른들이 하시는 정치적 발언을 여과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 때문에 역사의식과 정치적 소신을 갖게 된 성장기였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뒤에서 구시렁거리기 보다는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부모의 역사의식이나 정치적인 소신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전이되는 것 같다. 우리 삼남매도 성장 단계에 맞춰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실감한다. 인간사회에서 다양한 의견과 다툼을 해결하는 정치에 결코 무관할 수 없기에, 우리는 가급적 긍정적인 생각으로 참여해야 한다. 모두가 무관심하거나 외면했을 때의 결과도 감당해야 된다. '왜'라는 현실적인 물음에 올바른 선택으로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가 같이 읽고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정치를 외면하지 말라고 일깨우는 책이다. 

*옥의 티 
4장 시민의 정치 참여에서
'내손으로 만드는 민주국가'와 '민주주의를 꽃피운 사람들'은 편집 순서가 바뀌어야 될 것 같다. 
221쪽 셋째 줄 '앞 장에서 다룬 4.19혁명~' 이라고 나왔는데 실제는 뒷장에서 다루고 있다. 내용상으로도 촛불집회보다는 '민주화 운동의 첫걸음 4.19혁명, 민주화의 꽃 광주 민주화 운동, 내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 6월 민주항쟁'이 먼저 나와야 맞을 것 같다. 

163쪽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선거에 참여해서 투표를 할 수 있어'라고 기록했는데, 229쪽에선 '우리나라는 만 21세가 되어야 선거를 할 수 있어요'라고 되어 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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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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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세책방과 필사쟁이, 전기수가 활동했던 조선 중기 이후를 배경으로 작가 이영서의 상상이 빚어낸 멋진 동화다. 게다가 김동성 화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예쁜 그림이라 소장가치도 충분하다. 영화 천년학에서 보았음직한 정자는 마음에 오래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다. 
 


필사쟁이 아버지 덕에 글을 깨친 장이(이름이 '문장')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며,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죄를 쓰고 태형으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세책방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장이 아버지의 침묵으로 살아남은 세책방 최서쾌는 장이를 거두고 홍교리는 장이에게 필사를 맡긴다. 언문 필사는 곧잘 하지만 한문 필사는 아직 멀었다고 깨닫는 장이는 언문보다 한문을 높이 생각한다. 그러나 홍교리는 언문의 우수성과 효용성을 알려준다. 한문으로 된 글을 읽으면 재밌느냐는 장이의 물음에 '나도 어렵고 재미없다, 재미는 없어도 곱씹고 새겨들을 말은 있지' 라고 대답한 홍교리의 서재는 서유당(책과 노니는 집)이다. 후반 천주교 박해를 그리는 장면의 긴장감과 반전은 압권이다. 



코허리가 죽은 순 토종 얼굴, 장이와 낙심이다. 두 어린이가 만나는 장면은 내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어쩜 요렇게 예쁜지...  내리 딸만 낳아 넷째로 태어나 '낙심'이라 이름 짓고, 그 다음 태어난 아들의 백일상을 차린다고 돈 몇 푼에 낙심이를 팔아버린 아버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 내 마음이 다 아팠다. 그래도 기생아씨에게 응석도 부리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니 다행이다. 당차고 야무진 낙심이 덕에 장이가 겪는 어려움도 단번에 해결된다. 장이가 오빠 역에 어울리는 녀석이라면 낙심이는 깜찍하고 사랑스런 캐릭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마지막에 낙심이의 손을 잡고 '책과 노니는 집'이란 현판을 가져 오신 홍교리는 둘의 새로운 인연을 열어가기 바라는 듯...



어린이 시선과 눈높이로 이야기를 끌어가기에 천주교 박해를 깊이 있게 다루진 않지만,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가치를 새기기엔 부족하지 않다. 조선 중기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아는 고학년이 읽으면 충분히 공감될 상황이다. 홍교리가 비록 낡은 옷을 입을지언정 책을 사들이기에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며 공감할 알라디너가 많겠다. 더구나 홍교리의 이 말씀은 공감의 쓰나미에 쓰러지지 않을까? ^^  

   
  책은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78쪽)  
   

멋진 도리원에서 전기수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봄밤의 연회는, 만발한 꽃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낙심이가 무심히 던지는 말 속에 다음에 전개될 상황을 암시하는 복선이 깔려 있다. 순진한 낙심이가 뾰로통한 심사로 뱉는 말을 허투루 흘리지 않으면 긴장감은 배가 된다. 미적아씨방에 이야기를 들으러 온 서대감댁 마님의 정체는 놀랍다. 하늘 아래 낮고 천함이 없이 모두가 귀하다는 천주교의 교리는, 자신의 신분이 원망스럽고 한스러운 사람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기에 좋았을 듯하다. 불쌍하다고 거두어준 허궁제비의 고발로 봄밤의 연회가 천주교들의 집회였음이 드러난다. 서대감댁 마님의 허여멀건 얼굴이 실체를 드러내는 긴박한 상황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천주교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홍교리의 위험을 감지한 장이는, 홍교리가 서학 책을 어디에 두었을지 찾아내어 불태운다. 관군이 홍교리 집에 들이닥치기 전에 천주교 책을 찾아내야 하는 긴박한 순간, 서학과 연결지어 서가 위치를 감지한 장이의 지혜로움은 역시 책 읽는 사람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에 버금가는 필사쟁이가 되었을 장이가 '책과 노니는 집'이란 현판을 받고 아버지가 꿈꾸던 그 집을 사서 세책방을 열었을 거라 짐작되는 마무리에 즐겁게 책을 덮었다. 홍교리가 전한 장이와 아버지의 인연에 뭉클 눈시울이 젖었다. 멋진 그림과 펼쳐지는 장이와 낙심이를 만나러 빠져 들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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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0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이 천주교 박해를 한 이유가 무언지 책속에 나오나요?

순오기 2009-11-07 18:45   좋아요 0 | URL
제가 중간에 굵은 파랑색에 노랑 바탕까지 깔아서 표시한대로 천주교 박해를 깊이 있게 다루진 않아요. 부모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표면적인 이유만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건 다시 찾아봐야 겠네요.^^

bookJourney 2009-11-0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너무 근사해요. 아이에게 책을 사주고도 저는 책을 못보았어요. ^^;
전, 신종플루로 자택격리중이랍니다. 며칠을 끙끙 앓고, 지금은 조금 정신이 들어서 서재 마실 나왔어요. 남들은 쉽게 지나가기도 한다는데 ... 제 체력이 영 부실했던지 그저께부터 반 기절 상태였어요. ㅠㅠ

순오기 2009-11-08 22:54   좋아요 0 | URL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너무 무리하게 일한거 아닌지...휴식이 필요할테니 푹 쉬세요.

같은하늘 2009-11-09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이거 전에 본것 같은데... 다시 쓰셨나요?

순오기 2009-11-11 22:29   좋아요 0 | URL
리뷰대회 전에 올렸던 건데 다시 올렸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아이세움 명작스케치 2
0. 헨리 지음, 최순희 옮김, 리즈베트 츠베르거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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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난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에 눈물 한 줄기 흘리는 감동을 선사한다. 초등 고학년이 보기 좋게 삽화도 넣어 깔끔하게 만든 그림책이다. 



일주일에 집세가 8달러인 아파트에서 흐느끼는 델라,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집안을 둘러봐도 값나가는 살림 하나 없는 가난한 모습이다. 문패엔 '제임스 딜링햄 영'이라고 쓰여 있지만, 세월이 좋아 일주일에 30달러를 벌어들이다가 지금은 20달러로 줄어들었다니 이들은 지금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침대에서 흐느끼던 델라는 황급히 눈물 자국을 지우고 외출하는데 어디로 가는 걸까? 
 
 

이들 가난한 부부에게도 자랑거리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대로 물려받은 짐의 금시계였고, 하나는 여왕의 보석도 무색해졌을 아름다운 갈색 폭포처럼 윤기 있게 물결치며 어깨 밑으로 흘러내린 델라의 머리채였다. 델라는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짐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마담 소프로니 두발 용품' 가게로 들어갔다.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눈부신 머리채를 자른 델라는 멋진 금시계줄을 사서 돌아온다. 짧아진 머리를 보면 짐이 화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하지만 집에 남은 돈이라곤 1달러 87센트 뿐이었으니 그 돈으로 어떻게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느냐 스스로 위로한다. 다만 남편이 여전히 어여쁜 아내로 생각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간절히 할 뿐... 긴장과 기다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짐은 머리를 잘라 팔았다는 델라를 보며 멍해 있다가 와락 부둥켜 안았다. 무슨 일일까?

   
  오해하지 마, 델라. 당신이 머리채를 잘라 버렸던, 밀어 버렸건, 아니면 감았던 어쩌건 간에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하게 될 리가 있겠어? 하지만 저 꾸러미를 풀어 보면 내가 왜 멍해 있었는지 알게 될 거야.  
   

델라는 재빨리 끈을 풀고 포장지를 뎦이는 순간, 기쁨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눈물과 흐느낌으로 변했다. 왜 그랬을까?

그 상자에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은 델라가 꿈꾸던 진짜 거북의 등딱지로 만들어 가장자리에 보석이 박힌 머리핀 세트였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짐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바뀌어 있었으니... 델라는 자기 머리카락은 금세 자란다며 정신을 수습하고 짐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금시계줄을 내밀었다. 하지만 짐은 델라의 머리핀을 사기 위해 금시계를 팔아 버렸으니... 

가난한 부부의 눈물겨운 사랑의 선물은 그 옛날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선물을 드린 동방박사의 선물처럼 지혜로은 것이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 사랑은 세상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이었음을 이들 부부와 독자 모두 공감하리라.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여전히 생계와 겨울나기가 어려운 가난한 이웃이 겪어야 할 겨울은 춥기만 하다. 부자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즐기겠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도 많이 식어버렸다고 한다. 있는 자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없는 자는 더욱 살기가 팍팍한 대한민국에서 마음이 훈훈해지는 감동의 크리스마스를 꿈꿔보는 건 헛된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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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07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예전에 읽은적이 있지만 정말 가슴이 울컥해지는 단편이에요^^

순오기 2009-11-07 18: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울컥한 감동!!

섬사이 2009-11-08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베트 츠베르거의 그림, 참 분위기 있죠?
책그릇에서 나오는 명작의 재발견 시리즈도 모두 리스베트 츠베르거의 그림이던데,
<캔터빌의 유령>밖에 못 읽었어요.
<수수께끼 아이>도 읽고 싶은데.. 자꾸 미루고만 있네요.

순오기 2010-03-09 01:1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분의 그림책이 처음이라 잘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