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 쌍둥이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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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던 시절에 엘러리 퀸의 소설들이 나왔었다. 그 유명한 시그마북스다. 그 당시 이 시리즈에 눈길이 갔지만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고려원에서 나온 <X의 비극>과 <Y의 비극>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책도 소장하다보니 그 소중함을 몰랐다. 이것은 그 당시 나온 SF장르의 그리핀북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겨우 몇 권만 샀었고 나중에 절판되면서 구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의 무지함은 부끄럽고 아쉽기만 하다.

 

이번에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가 전권 출간되었다. 시그마북스에서 나온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이 제목은 낯설다. 국내 첫 번역이다. 언제나처럼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한 호평은 그 작품의 호불호에 상관없이 유혹적이다. 개인적으로 몇 권 읽은 퀸의 소설들이 취향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을 펼쳐 읽으면서 예전에 읽은 작품의 좋았던 점보다 맞지 않았던 부분이 더 먼저 떠오른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이다. 거기에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환경을 나 자신도 모르게 무시하면서 현대의 작품들과 상대평가를 하면서 더 심해진 것도 있다. 이것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산불로 인한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산불을 처음 만났을 때 퀸 부자는 죽을 고비를 넘긴다.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없어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수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알고 보면 사연이 있다. 유명한 사교계의 카로 부인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저택을 방문한 것이다. 이 부인은 유럽으로 여행갔다는 소문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제목대로 이 아이들이 샴 쌍둥이란 것이다. 카로 부인은 이 사실을 숨겼고, 유명한 사비에르 박사가 이것을 고쳐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드러나는 과정은 조심스럽고 조용히 진행된다.

 

산불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밀실을 배경으로 살인이 펼쳐진다. 사비에르 박사가 살해당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스페이드6 카드는 다잉메세지 같다. 퀸 경감이 간단하게 범인을 잡는다. 범인이 자백까지 한다. 그런데 너무 쉽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퀸이 숨겨진 사연을 추리하고 다른 범인이 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 다른 범인 찾기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범인으로 지적된 용의자가 사라진 후 거대한 밀실 속의 인물들이 한 명씩 용의자가 된다. 홈즈의 말처럼 한 명씩 범인에서 지워나가야 할 차례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간단한 사건인데 뒤틀리면서 꼬인다. 산불의 존재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도 있다. 경찰들을 불러서 한 명씩 조사를 하고 신선한 공기 속에서 추리를 했다면 쉽게 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단한 것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문제다. 수상한 사람이 등장하고 이 인물이 카로 부인과 연결되고, 새로운 용의자가 살해당하면서 다시 꼬이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작가는 꼼꼼하게 보여준다. 퀸의 장점이 바로 독자와의 정면대결인데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내가 이 정면대결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진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읽은 작품들을 바탕으로 직관에 의해 범인을 추리한다. 당연히 맞추지 못한다.

 

이 작품이 설정한 장치들은 이후에 많은 미스터리 만화나 소설 등에서 변주된다. 아마 이런 기억들이 이 작품의 가치를 낮게 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 이런 사실을 알고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고 읽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다 읽은 지금 감탄보다 어디서 봤는데 하는 느낌이 먼저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책 앞에서 말한 것처럼 퀸 부자만이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마 유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설정도 이미 다른 후배 작가들이 사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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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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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은 대단했다. 가히 거장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자주 명성과 상관없이 읽지 않는 작품들이 있지만 기회가 닿으면 늘 읽는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으면 더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 책이 받은 상들은 개인적으로 낯설다. 이렇게 뒤섞인 감정들은 책을 들고 읽으면서도 변함없었다. 목차가 의미하는 바도 몰랐고 한 여자가 저지르는 살인과 도피가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화자가 바뀌는 순간 기대했던 반전이 펼쳐졌다.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은 첫 장이 가장 많다. 앞부분은 소피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면서 사라진 기억과 그 옆에 놓인 죽음 때문에 한 편의 사이코스릴러였다. 범인은 뻔하고 그녀의 도주가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다. 기억 상실과 그 곁에 놓인 사체는 그녀를 공황 상태로 몰아간다. 이 순간에도 나의 마음 한 곳에서는 숨겨진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 예감은 사실이 되었지만 이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부터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그리고 그 끔찍하고 꼼꼼하고 잔혹한 행동에 놀라고 긴장한다.

 

모든 사실이 하나의 드러난 사건을 가리킬 때 반전이 시작한다. 이 반전의 시작은 일기다. 지금부터 몇 년 전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 일의 결과는 언제 나오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빠르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남자 프란츠의 기록은 한 사람이, 한 가정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흔히 하는 말로 열 경찰이 도둑 한 사람 잡지 못한다는 말처럼 소피와 주변 사람들은 그 어떤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고 몰락한다. 죽는다. 무섭다.

 

하나의 장이 바뀌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새로운 긴장감이 고조된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사라졌지만 어색함이 남아 있다. 이 어색함을 속도감과 긴장감으로 마구 빨아 당기는 힘이 마지막 장에서 펼쳐진다. 손에 땀을 쥔다. 앞에 풀어놓은 사건과 상황들이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은 모든 의문을 해결한다. 이제 둘의 대결이 펼쳐진다. 속고 속이고 속는 척 하는 이 대결은 이 소설의 백미다. 이 부분을 늦은 밤 읽으면서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더 반전이 펼쳐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상으로 옮겨질지 궁금하다. 원작을 그대로 옮겨도 좋겠지만 시간과 공간과 등장인물들의 재배열이 필요할 것이다.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을 품었던 것이 뒷이야기에서 풀렸듯이 영화 속에서도 그럴지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의아함을 심어줬다. 그리고 제목에 대한 의문이 읽는 내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마지막에 가면서 풀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한 명 더 기억해야 할 작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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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자풍 1 -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 쾌자풍 1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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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우혁 앞에는 늘 <퇴마록>이 붙는다. 이후 나온 몇 권의 책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변함없다. 내가 읽은 것도 <퇴마록 시리즈>를 제외하면 <왜란종결자>가 유일하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꽤 된다. 언제부터인가 이우혁도 너무 낯익어 모든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세히 손꼽아 보면 읽은 책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신작이 나오면 늘 눈길이 간다. 아마도 이것은 역시 대표작인 <퇴마록 시리즈> 때문일 것이다. 그 속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와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이 자연스레 다른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제목만 보아서는 내용을 잘 알 수 없다. 쾌자라는 단어도 잘 모른다. 그런데 제목에 대한 설명을 보니 ‘쾌자를 입은 포졸이 중원에 거대한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은 낮은 지위의 포졸이지만 숨겨진 실력이 만만치 않은 고수의 새로운 강호행 정도였다. 이 추측의 일부는 현재까지 맞는데 과연 어느 선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포졸 지종희의 약삭 빠르고 거침 없는 행동이 예상하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고, 어느 장면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모두 5부작으로 기획되었다. 그중 겨우 1권을 읽은 상태에서 전체 내용을 추측하는 것은 금물이다. 물론 무협소설의 틀을 가진 작품이다 보니 나의 촉은 그쪽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이 무협이 아니라 역사소설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각 장의 시작을 역사로 풀어내는 것과 이어져 있다. 동시에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읽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일부가 떠오른다. 이 일부가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어질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무협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이것은 퇴마록의 주인공 현암의 무공을 풀어낸 것에서 이미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면서 무림의 존재를 인정하고 남궁세가 같은 무협소설 속 가문을 그대로 적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작가의 말처럼 이것을 하나의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서 우리의 전통 ‘해학’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리고 이 해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포졸 지종희다. 현재까지는 그의 등장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점점 비중이 놓아지면서 아주 거대한 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대가 중원임을 알게 된다. 명나라 조정 대신의 죽음에서 시작된 동창의 두 밀사가 지종희를 만나기까지 다룬 것이 1권이다. 이 모든 음모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후반부에 설명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작가가 공을 들인 지종희의 성격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한계를 어느 선까지 정했지만 눈치 빠르고 이익에 밝고 행동도 재빠른 그를 볼 때 아마도 거침없는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이미 난전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가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보여줬지만 더 넓은 중원에서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5부작 중 겨우 1권만 읽은 상태고 이제 겨우 이야기 도입부임을 생각할 때 전체를 평가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을 이미 경험한 독자에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좋아하는 장르인 무협소설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개인적으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무협소설의 틀을 따라가는 것은 좋지만 기연이나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양한다. 뭐 작가의 필력을 감안할 때 그럴 필요 없지만. 빨리 2권을 읽고 싶지만 단숨에 끝까지 달리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하다. 빨리 완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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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죄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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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출간된 이 소설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시작이다. 시리즈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출간되었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현재까지 출간된 이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단편집에 실린 것은 확인할 수 없어 제외한다. 예전에 나온 고려원 판 소설을 읽을 때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당시 미스터리 소설을 그렇게 열심히 읽지도 않았고, 특별한 몇 명을 제외하고 외국작가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난 소설은 늘 그렇듯이 기억 한 곳에 자리 잡고 불쑥불쑥 생각이 난다. 그러다 밀클에서 나온 몇 권의 작품은 작가에게로 관심이 옮겨가게 만들었다.

 

시리즈 첫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워낙 띄엄띄엄 나오다 보니 이 시리즈의 순서도 제대로 기억 못한다. 물론 내용도. 아마 김봉석의 최근작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읽지 않았다면 시리즈 첫 권이란 것도 몰랐을 것이다.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에도 이런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인터넷 서점에 실린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다. 가끔 이런 사실을 다른 곳에서 읽게 되면 꼭 확인하고 싶어지는데 바로 이번이 그런 기회였다. 언젠가는 이 시리즈에 대한 순서를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뒤에 나오는 시리즈에 비해 이번 작품은 분량이 조금 적다. 하지만 스커더의 과거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만난다. 시작은 웬디라는 여성이 살해당하면서다. 그녀를 죽인 범인이 금방 잡히는데 이 범인이 유치장에서 자살한다. 그녀의 아버지 해니포드는 왜 그녀가 죽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매튜를 찾아온 것이다. 이미 범인을 잡았고, 범인이 자살한 지금 경찰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매튜는 범인을 잡는 도중 유탄에 맞은 소녀가 죽은 후 경찰을 그만뒀다. 그 후 면허 없는 탐정 일을 하고 있다. 해니포드는 경찰 소개로 그에게 왔다. 이렇게 해서 범인 찾기가 아닌 왜 죽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는 탐정이 된다.

 

그녀가 죽게 된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와 그녀를 죽인 범인 밴더폴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밴더폴은 웬디와 함께 살았고, 그녀를 죽인 후 길에서 미친 사람처럼 있다가 잡혔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약인데 소설 어디에도 마약 이야기는 없다. 이들의 과거를 하나씩 좇아갈 때 드러나는 사실들은 제목처럼 아버지들에게로 이어진다.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아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있다. 하지만 이 뻔한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출간된 연도가 1976년임을 생각할 때 충격적인 설정일 수도 있지만 스커드가 말했듯이 결코 현실에서 적지 않은 사건이다. 이런 예상을 벗어나 두 남녀의 마음속으로 작가는 들어간다. 그리고 진실을 밝힌다.

 

이 소설의 재미는 왜에서 시작하여 진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간결한 문장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현실 속 경찰 생활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천천히 독자를 매혹시킨다. 전직 경찰이자 면허 없는 탐정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것도 흥미롭다. 알코올 중독이지만 일을 할 때 꼼꼼하면서도 차분하게 한걸음씩 나가는 그의 모습은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저질 기억에 의하면 뒤로 가면서 중독 증상이 더 심해지는데 아직은 멀쩡해 보인다. 나의 착각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바로 진실이다. 진실을 알고자 의뢰한 사건이 그 진실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이때 그가 보여주는 행동과 반응은 읽은 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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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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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얼마나 많은 살인이 나올까 하는 쪽으로 먼저 흘러갔다. 죽음이란 단어가 나에게는 살인이란 단어로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착각은 책을 펼쳐 읽으면서 점점 사라졌고, 작가가 풀어내는 죽음이 하나씩 등장할 때 그 기발함에 놀랐다. 역자도 말했듯이 번역과 제본의 차이 때문에 정확하게는 ‘거의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가 맞지만 말이다. 사실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미스터리나 액션이 가미된 것이었다. 기대가 너무 오버했지만.

 

이런 죽음을 한 페이지에 하나씩 넣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대단히 실험적이다. 독자도 읽으면서 죽음을 찾아야 하지만 작가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일상과 문화, 예술 등에서 죽음을 찾아야 한다. 죽음이란 단어를 품은 혹은 의미하는 단어를 넣어서 맞추기도 한다. 쉽게 가려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렇게 했다면 죽음을 넣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재미나 균형이 깨어졌을 것이다. 전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하나씩 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찾아낸 죽음을 하나씩 발견할 때, 정확하게는 편집에 의해 굵은 글씨로 표시된 것을 읽을 때 너무나도 다양한 죽음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을 깨닫는다.

 

첫 죽음은 여자 친구에게 차인 후 돌연사를 꿈꾸면서 시작한다. 그 10초 뒤에 자동차 사고로 한 남자가 죽는다. 이런 죽음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죽음은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다. 동물, 아이디어, 세포, 시간, PDA, 낙엽, 소설 등 너무나도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이런 죽음을 여자 친구에게 차인 남자의 일상을 통해 하나씩 발견하고 찾아낸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죽음이 아닌데 읽다 보니 계속해서 이번 페이지에는 어떤 죽음이 나올까 나도 모르게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죽음이 예상한 것을 넘어섰을 때 감탄한다.

 

차인 후 화자의 일상은 평범함을 벗어난다. 전락한다. 주변을 둘러본다. 하나씩 정리한다. 그러다 게을러 돌보지 못했던 실파의 죽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내일 하지 뭐.’의 결과다. 변화가 시작된다. 운동을 한다. 헬스장에서 만난 한 인조인간 같은 여자와 섹스를 한다. 즉흥적인 만남이 생겼다 사라진다. 이런 일상의 변화 속에 그를 둘러싼 죽음은 계속된다. 처음 죽었던 남자가 애인 아녜스의 애인이었다거나 옛 여자 친구와의 전화 도중 그녀가 살해당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이어진다. 여기에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수많은 연결점 중 하나가 그이기 때문에 경찰이 그를 방문한다.

 

화자의 직업은 작가다. 일상의 일들을 메모하고, 전 애인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고, 운동으로 몸을 변화시킨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자신을 둘러싼 죽음을 벗어남과 동시에 자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한 순간에 전락한다. 그것은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운다. 이것을 통해 그는 희생과 공생을 배운다. 또 다른 삶의 변화가 찾아온다. 작가는 이런 변화들을 조용히 지속적으로 진행한다. 물론 진정한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다시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 사랑이 죽음을 조용히 밀어낸다.

 

기발한 상상력과 페이지 하나에 죽음을 지속적으로 넣은 실험은 전체 균형을 파괴하지 않고도 잘 진행된다. 곳곳에 숨겨진 블래코미디는 순간 놓치기도 하지만 가끔 웃게 만든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주석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많다. 그것은 죽음을 품은 단어와 의미 때문이다. 기발함에는 동의하지만 그 기발함 때문에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블랙코미디와 흐름을 살짝 잃은 것은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혹시 다음에 읽게 된다면 죽음보다 전체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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