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 10 그레이트 이펙트 2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김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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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보거나 들은 것만으로 읽은 것 같은 책들 중 한 권이 바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부정확한 기억력에 의지하면 원작을 읽은 적은 없지만 요약본이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읽은 것은 기억난다. 그것은 아마 <오디세이아>일 것이다. 학창시절 멋도 모르고 그냥 유명하다는 말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은 적 있다. 자랑처럼 말하지만 사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소설이나 다른 책에서 이 작품을 극찬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늘 부럽고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이런 기억 속에 오디세이아는 남아 있지만 아킬레우스를 다루는 <일리아스>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킬레스근을 말할 때를 제외하면 더욱.

 

망구엘의 책을 처음 읽는다. 그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세계적인 인문학자란 소개를 들었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어려울 것이란 짐작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언젠가 꼭 한 번은 읽어야지 마음 먹고 있던 두 책에 대한 해설서란 것에 눈길이 갔다. 원작을 먼저 읽어야 하지만 출간된 책들을 보면 과연 어떤 책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기대가 망구엘이란 유명한 인문학자를 통해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소설처럼 번역된 책과 서사시로 번역된 것들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을 생각하고 좀더 정확한 번역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뭐 이 시간에 책을 사서 읽으면 더 좋았겠지만.

 

호메로스 혹은 호머로 불리는 그(녀)에 대한 수많은 가정은 생략하자. 저자는 이 작품들이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이것을 맡겨두고 왜 이 책이 서양문학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지 들어보자. 저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자료는 지금까지 이 두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단숨에 깨트린다. 단순히 고전으로 알고 있던 이 작품들이 서양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지 보여줄 때 감히 성서와 그리스 로마 신화 옆에 놓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영향력 때문에 영국 출판사 애틀랜틱북스에서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의 세계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명저 10권 중 한 권으로 꼽은 모양이다. 참고로 <성서>와 <종의 기원>과 <꾸란>도 그 중 한 권이다.

 

모두 22장을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은 기본적으로 시간 순이다. 1장이 두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다룬다면 2장은 호메로스의 실존을 묻는다. 이후 이어지는 각 장은 철학자, 시인, 기독교. 이슬람, 단테 등을 거쳐 현대까지 이른다. 이 과정 속에서 이 작품들이 어떻게 해석되어지고, 읽혔고, 영향력을 행사했고, 하고 있는지 하나씩 밝혀낸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해 익숙하지도 않고 제대로 읽은 적도 없는 나에게는 너무 낯선 정보들이다. 단순히 정보만 나열된 것이 아니다. 시간과 인물들을 하나로 엮어서 분석하고 깊숙이 파고들어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이 정보와 지식은 너무 대단해서 나의 지력이 따라가질 못한다. 아쉽다.

 

하나의 좋은 작품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늘 그렇듯이 좋은 작품은 독자에 의해 다양하게 읽히고 분석되고 이해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중들에게 읽히는 것들은 충분히 납득할 자료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서양의 교육 과정 속에서 이 두 작품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게 될 때 이 이해도는 더욱 높아진다. 동시에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문학과 함께 시작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들고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나아가기에 좀 힘들게 읽었다. 많은 정보와 지식 덕분에 아직도 그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저자와 함께 이 시리즈에 관심이 간다. 나의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 넓고 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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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화 위원회 - 유령과 볼셰비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이상한 시도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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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은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왜 이 속담이 생각났느냐 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맞다면 이때의 불멸은 명성이다. 그럼 이 책에서 다루는 불멸은 무얼까?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명성이 아니라 진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 너무나도 불가능하고 덧없을 것 같은 이것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 불멸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불멸화 위원회는 레닌 사후 레닌의 매장 절차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장례위원회 이름이다. 불멸을 말하면서 왜 레닌이 나오냐고? 그것은 이 책 2장 다루는 건신주의자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하려 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그들 말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엄청난 학살과 숙청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 읽으면서 옛날 학창시절 붉은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학우와 선생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고 혁명을 맹신했는지 말이다. 또 그 시절의 참혹한 비극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새발의 피임을 알게 되었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교차 통신, 2장은 건신주의자, 마지막 3장은 달콤한 필멸이다. 교차 통신은 유령과 나누는 대화를 의미한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사후세계의 실존이다. 쉽게 우리의 개념으로 말하면 저승에서 이승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승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저승에 살아 있다는 의미다. 육체는 소멸했지만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천국을 말하며 불멸을 노래하는 것을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도움은 된다.

 

유령과의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가 풀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은 날카롭다. 유령과의 대화라고 단순히 미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을 것이다.”(33쪽)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과학의 힘을 믿었고 과학적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다윈 이후 진화라는 단어는 진보와 뒤섞여 사용되곤 했는데 이것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가 흔히 진보라고 부르는 것 중 대다수는 우리의 바람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삶의 의미를 불멸에서 찾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과 교차 통신문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가 영화 속에서 재미로 봤던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2장은 러시아로 무대가 옮겨간다. 핵심 인물은 고리키다. 그의 비서였던 모라다. H.G. 웰스다. 이들을 통해 20세 초 러시아의 상황과 불멸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의 기반이 영지주의의 한 분파란 설명에선 고개가 갸웃하지만 그들이 혁명의 달성 혹은 권력 쟁취를 위해 벌였던 어마어마한 숙청과 학살은 고개 숙이게 만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리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무참하게 깨졌다.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볼셰비키가 저지른 학살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과학에 기댄 그들이 레닌의 사체를 보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지 보여줄 때 과학이 또 다른 신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는 인간 경험의 바뀌지 않는 특성들을 다루는 이야기이다.”(263쪽) 이 문장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불멸주의는 인간 소멸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런 소멸 과정보다 더 완전하게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기획이다.”라고 할 때 인간과 불멸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차 통신을 통해 다른 세상에 사는 영혼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과 동일하고, 레닌처럼 보관된 사람이 다시 재생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불멸의 정의로 “죽고 나면 이승에서건 다른 세상에서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데 있다.”(45쪽)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세상을 다룬 판타지 소설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를 참고한다면 과연 이런 불멸이 의미가 있을지 좀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뭐 이때 부활한 자들은 좀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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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LAST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창작집단A.P 기획 / 애니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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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긴 후 읽은 후기를 보니 영화 프로젝트를 감안하고 그린 만화다. 그래서인지 구성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다. 실제 이 만화 설정을 제대로 다루려면 지금보다 몇 권은 더 늘이고 주인공의 특성을 좀더 살려야 한다. 이 부분이 많이 빠지면서 무력에 기대게 되고 조직 안의 순위 상승을 위한 대결이 중심에 놓인다. 이 때문에 ‘100억이 오가는 지하경제의 중심지’란 문구에서 기대한 것이 사라졌다. 그것은 주인공이 펀드매니저였던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펀드매니저 장태호는 조폭 돈 70억을 바탕으로 작전을 펼친다. 성공하면 대박이다. 작가는 이 작전이 펼쳐진다는 것만 알려준다.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세부적인 정보는 없다. 그리고 장태호에 집중한다. 그는 1등을 위해 살아왔고, 어느 정도 그것을 이루었다. 그가 이 작전의 성공을 자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건 작전을 통해 또 다른 작전이 걸리면서 그는 무일푼이 된다. 성공의 가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이 추락이 그냥 돈을 잃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폭이 그냥 조폭이겠나. 그의 동료였고 여자친구의 오빠는 먼저 목을 메어 자살하고 그는 도망가다 잡혀 죽기 일보 직전이다. 겨우 도망가지만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달아날 때 가지고 있던 지갑 속 돈들도 3개월 만에 사라졌다. 배고픔이 찾아온다. 참을 수 없다. 집 밖으로 나온 짜장면 그릇의 단무지에 눈길이 간다. 또 다른 추락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본 것이 서울역의 무료 배급이다. 이제 그는 서울역 근처에서 흔히 보게 되는 노숙자 중 한 명이 된다.

 

이번 추락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서울역을 둘러싼 지하경제체계다. 폭력에 의해 순위가 정해지고 그 가장 위에 있는 인물이 모든 부를 독식하는 구조다. 그 돈은 소위 말하는 맹인이나 거지 등이 구걸해서 모든 돈이다. 더 심한 것은 장기 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이다. 이 100억이 장태호를 유혹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태호가 서열 6위를 때려눕힌 후 다가온 차해진이다. 이제부터 그는 100억을 얻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깨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물론 100억에 대한 수수료도 지불해야 하지만.

 

흔히 펀드매니저를 연상할 때 가장 떠오르는 지적이고 연약한 모습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적인 것은 그의 삶이 알려주지만 운동 등으로 다져진 체력은 연약함과 거리가 멀다. 서울역 노숙자들의 대형이 되었지만 겨우 서열 6위다. 100억으로 인생을 바로 잡으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1위와 만나야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를 만나기 위한 수련과 대결과 음모다. 그리고 그 속에 이 노숙자 세계로 내려온 사람들의 삶이다. 누구 한 명 사연 없는 사람 있냐고 할 때 그 사연 말이다. 그리고 서열 2위 류를 통해 싸움 실력을 키운다. 작전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처음 지하경제 100억을 말했을 때 그 돈이 한 번에 흐르는 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그 돈은 서열 1위가 이제까지 모은 돈이다. 그는 만화 속 서울역 지하경제체계를 만든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둠 속에 존재한다. 그러다 장태호의 서열이 올라가면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엄청난 파워와 공포를 다루면서 지하경제를 지배하는 어둠의 왕으로. 이제 주인공은 그의 이력 때문에 더 눈길을 받는다. 그 앞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작도 그의 이력과는 별 상관없이 진행된다. 이제 그는 조폭과도 같은 세계에 발을 담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로서의 매력을 발휘하는 부분이지만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지점이다.

 

물론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작가는 섣부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갑작스런 변화를 다루지 않는다. 장태호 인생에서 1등이 어떤 의미인지, 그가 거기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감성을 자극할 장면으로 역전을 만들 것 같은 순간에도 반전을 만든다. 모든 실패의 원인이 다른 작전이 아니라 그의 탐욕에서 비롯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욕망이 너무나도 강하게 표현될 때,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 이 반전은 그에게 무작정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그 흔한 할리우드 방식의 승리는 없어진다.

 

인터넷 만화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을 이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색이 주는 강력함과 감정과 액션을 통해 드러내는 연출은 시선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많지 않은 대사는 가독성을 높여 단숨에 세 권을 읽게 만든다. 개인적인 기대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높이 오르려고 한 곳이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1위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줄 때도, 그가 이룬 부를 볼 때도 가슴 한 곳에는 그들은 지하 속에서 이전투구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돈은 엄청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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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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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제8권이다. 2009년에 출간되었다. 분량이 무려 781쪽이다. 아마 이 정도 분량이면 볼 때 먼저 질릴 텐데 이 책을 받았을 때 흥분부터 했다. 왜냐고? 전작 <스노우맨>을 읽었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량에 상관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 다음 페이지를 정신없이 넘기게 되는 경험을 하니 말이다. 뭐 사람 따라 이런 소설이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강한 유혹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전작에서 큰 상처를 입은 해리는 오슬로를 떠난다. 그가 간 곳은 홍콩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수많은 홍콩 영화를 통해 너무나도 익숙한 그곳. 이곳에서 그는 반폐인으로 살아간다. 마약과 알코올에 절어서 무력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를 찾아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카야다. 여경찰이다. 그를 찾아온 이유는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자 두 명이 죽었다. 하지만 그의 상관이었던 군나르 하겐은 연쇄살인사건임을 직감한다. 노르웨이에서 이런 사건에 가장 적합한 경찰은 바로 해리다. 이 부분이 특히 강조된 작품이 바로 <스노우맨>이다.

 

해리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움직일 마음이 없다. 단 하나의 방법은 그의 아버지 올리브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함께 돌아온다. 이 귀향으로 모든 사건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 내부의 알력이다. 살인사건을 전담하려는 크리포스와 일선 강력반의 대립이다. 내무부는 크리포스를 앞세운다. 하겐이 해리를 부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해리의 능력을 통해 이런 대립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의도다. 이제 해리는 전심전력을 범인을 쫓는 것 외에 경찰 내부의 권력 싸움도 같이 감당해야 한다.

 

전편에 등장한 반가운 인물이 있는 반면에 낯선 인물도 적지 않다. 해리를 데리러 홍콩까지 온 카야와 해리를 무너트려 크르포스에 권력을 집중하려는 미카엘 벨만 등이 대표적이다. 하겐이 해리에게 조력자라면 벨만은 장애물이다. 벨만은 충분한 인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건의 핵심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직관과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다. 해리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들 때문이다. 사건을 들여다보고 숙고하고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직관은 증거물과 함께 범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이것이 비록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놀라운 것은 범인의 잔혹하고 대담한 살인 방법이다. 고문도구다. 특히 레오폴드의 사과는 놀라운 고문도구이자 살인도구다. 입에 넣기는 어렵지 않으나 빼기는 너무 어려운 무시무시한 살인도구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앞부분에 이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 사과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작용을 했는지 알게 된다. 상상력은 이 끔직한 고문도구가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것인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무너진 해리 홀레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절제를 한다지만 그는 아편을 하고 술을 마신다.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범인을 꼭 잡겠다는 의지 정도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그가 자기 파괴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왜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술을 마실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날씨 탓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행적이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수사 능력은 그를 적으로 돌린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더 많은 분량뿐만 아니라 규모도 더 커졌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콩고까지 지리적 공간이 늘어났다. 단순히 무대만 커진 것이 아니라 이 속에 이 나라가 껴안고 있는 문제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단순한 배경처럼 다가왔던 것이 나중에는 중요한 설정이자 장치로 변하는 구성은 정말 일품이다. 만약 더 깊게 들어갔다면 그 나라의 비극을 잘 보여줄 수 있겠지만 긴장감이 다른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준 몇 가지 상황들은 나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게 만든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사실 이 정도 분량을 소설을 읽을 때면 중간에 범인이 잡혀도 이 놈이 과연 범인일까 의문을 가진다. 남은 분량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여기에 연쇄살인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느 선에서 멈출지 추리하게 된다. 물론 범인도. 이 과정을 작가는 하나씩 보여주면서 진행하는데 나의 머리는 경험 속에서 먼저 범인을 찾는다. 가장 먼저 용의자가 떠오른다. 삭제한다. 다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면서 한두 명으로 줄어든다. 가장 유력한 범인이 보인다. 이것을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노우맨이다. 이 긴 소설 속에서 잠시 등장해 한니발 렉테에 조금 부족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뭐 이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이자 트릭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많은 분량이지만 결코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다. 속도에 빠지면 시간을 잊게 만든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제대로 따라가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곳곳에 드러나는 해리의 성격과 특징은 중간중간 몰랐던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준다. 단순히 하나의 장치로 설정했던 것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할 때 허투루 글을 쓰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의 냉혹하고 이기적이고 거침없는 성격도. 한 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가히 올해 읽은 최고 소설 다섯 권 중 한 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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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뿔 1
고광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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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말할 때, 특히 80년대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80년 5월 광주고, 다른 하나는 87년 6월 항쟁이다. 시간이 지났으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두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왜냐고? 이 사건의 주모자가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29만원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그를 추종하는 인물들과 종북을 외치는 정치인과 그 언저리들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올라가서 해방 후 친일잔재를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한 역사와 맞물려 돌아간다. 수많은 친일파들이 독도에는 열을 내어 흥분하지만 그 시절은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는 불편한 현실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작가는 80년대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썼다. 현재로 진행되는 것은 87년 6.29 선언 이후다. 아마 이때 민주화를 외친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제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가 찾아왔다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 체육관 대통령이 아니라 직선제를 쟁취하고 수감되어 있던 양김이 풀려나는 것을 보고 그 옛날 4.19혁명 때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대로 흘러왔다. 지금의 정치현실을 혹자는 유신보다 더하다는 말도 할 정도다. 물론 외형적으로 유신보다 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정권을 한 번 맛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웹툰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강풀의 <26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80년 5월 광주와 복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풀의 원작이 좀더 감성적이고 자극적이고 감동적이라면 이 소설은 좀더 진중하다. 피해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직접 그 당시 계엄군 지휘자와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해서 다양한 시각을 담아냈다. 강풀의 원작보다 더 많은 인물을 담아내었다는 점과 악당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소설이 지닌 힘이다. 하지만 가슴 울리는 감동은 사실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잘못 읽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등장인물 몇몇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박갑수. 그는 이 소설의 중심이다. 하지만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러나 이 죽음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왜 그는 죽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의문을 가장 먼저 조사하는 인물은 친구인 양창우 기자다. 박갑수와 전날 술을 마셨고 자신도 모르게 단서를 가진 인물이다. 박갑수의 반대편에 선 인물이 있다. 광주 계엄군 장교였고 살인을 사주한 장상구 의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친일로 돈을 모았고 신분 세탁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한 전력이 있다. 장 의원은 폭력배를 부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인물이다. 금력을 이용해 조폭을 부리고 권력과 금력을 통해 언론사 등을 주무른다.

 

장 의원과 박갑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것이 주요한 미스터리다. 그런데 이것은 쉽게 앞에서 나온다. 이 미스터리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긴장을 심어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여기에 장 의원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장의원의 부하였던 서창수 중사와 북파요원이었던 구성도다. 이들이 과거의 부하였다면 현재 조폭인 박태춘이 있다. 그는 장 의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이권과 과거 등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신문사 민 사장과 박갑수 마지막 술자리를 같이 했던 오 마담 등이 있다. 이들도 현재와 과거 속에 박갑수와 장 의원 등에 엮여 있다. 이런 관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과정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한 현대사를 정치, 언론, 조폭, 교육계, 공권력 등의 다양한 유착과 처참했던 과거를 연결시켜 풀어낸 것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대 속에 개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권력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어떻게까지 변하는지, 양심이란 단어가 이권과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현실이 얼마나 지속적인지, 하나의 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너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분량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갑자기 비중이 줄어든 양창우 기자의 경우는 조금 당혹스럽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축소되고 80년 광주로 가면서 균형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물들 속에 현대사를 제대로 담아낸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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