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래된 지혜 - 공존의 가치를 속삭이는 태초의 이야기
김선자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부제로 ‘공존의 가치를 속삭이는 태초의 이야기’가 붙어 있다. 제목과 연결시키면 신화나 전설과 관련 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 이 책은 신화에 대한 이야기다. 지역은 동아시아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고, 대상은 그 소수민족의 신화다. 이 신화를 17장으로 나눠 보여주는데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단순히 신화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대의 영화나 현실과 연결시켜서 이해를 돕는다. 덕분에 예전에 영화를 볼 때 놓쳤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신화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핵심은 바로 공존이다. 사람과 자연의 공존이다. 자연에 대한 최근의 담론이 너무 철학적이거나 실용적인데 반해 여기서는 가장 낯익은 방식인 신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신화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숨겨진 의미를 찾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원령공주>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 품고 있던 철학이나 비전이 저자의 글을 통해 하나씩 가슴으로 다가왔다. 물론 예전에 알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잊고 있던 것들도 있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자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처음 목차를 보았을 때 ‘4장 신화, 인간의 조건을 말하다’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 조건들이 선량함, 지혜, 나눔, 성실함 등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거나 실천하는 것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묻는다. 한둘 정도는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족의 신이 인간에게 바란 것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이 부분이 오늘의 우리를 보여준다. 기본 조건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탐욕을 말한다. 필요해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 때문에 파괴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우리를. 바로 여기서 공존을 말한다.
개구리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개구리의 조화를 말한다. 공존은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4대강이 나오는데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생기는 문제와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파괴가 그대로 적용된다. 기술과 가치를 놓고 풀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이 피폐해졌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개구리가 우레신의 딸이란 설정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장 마음을 움직인 것은 ‘9장 돌도 옮기면 사흘을 아파한다’란 제목이다. 무심코 길을 가다 발로 차고 가벼운 마음으로 옮겨 놓은 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표석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말에선 더 신중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공존의 가치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신화라고 하지만 어딘가에서 들고 본 것들도 상당하다. 신화가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런 유사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비슷한 신화가 세계 곳곳에 있을까 하고. 조금 비약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문명이 파괴되고 각 지역별로 소수만 살아남게 된다면 어떨까? 그들이 책을 남긴다고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지 않고 기록된 것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현재 문명은 신화로 변하지 않을까? 그럼 지금 우리가 지구 온난화나 자연 파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삶을 과거에서 재현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