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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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7484. 이 두 숫자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먼저 630은 사람 몸무게다. 7484는 약 63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던 날짜다. 일자로 계산하니 쉽게 다가오지 않는데 연수로 계산하니 20년이 넘는다. 20년 이상 침대에 누워있었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몸이 정상인데 말이다. 그리고 약 630킬로의 몸무게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몸무게다. 하지만 이렇게 살이 찌게 되기까지 시간을 생각하면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웰빙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에 비교하면 정말 엄청나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사람과 매스컴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바로 침대에 20년 이상 누워있는 형을 둔 동생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작은 7483일째다. 몸이 비대해지면 당연히 몸에 문제가 생긴다. 온갖 병이 오는 것은 당연하고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형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집 벽을 무너트려야할 정도다. 이런 현실을 먼저 알려준 후 동생인 화자가 자신과 형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동생이 가진 열등감과 존경과 사랑과 허무함이 가득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속에 화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결국 행복에 대한 것이다. 그 행복을 나의 머리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형은 여자에게 인기가 좋다. 그에 비해 나는 비루한 체격에 인기가 없다. 용기도 없다. 그런 그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루다. 그녀는 형을 좋아한다. 형의 연인이다. 형은 어릴 때부터 특이했다. 가장 처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행동을 많이 한다. 윤리과 도덕의 잣대로 본다면 말도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형의 행동 때문에 나와 부모가 고생한다. 평범을 거부한 형의 행동은 평온하고 안락한 가족에게 균열을 가져온다. 이 균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의 일상은 맴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형의 몸무게는 점점 불어난다. 형의 몸무게가 나왔을 때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그가 가장 무거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니다.

 

형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왜 형을 그런 상태로 그대로 둘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그가 살찔 만큼 음식을 만들어주는 엄마가 더 이상해 보인다. 그런 형과 같은 방에 사는 화자도. 여기에 남아공에서 엘러베이트 사고를 경험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고는 그의 평생을 지배한다. 아들과 제대로 대화한 것이 많지 않은 아버지의 진짜 이야기다. 화자의 수많은 이야기보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화자에게 형의 행동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마지막에 이에 대한 형의 답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너무 자기만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간결한 내용과 장의 구분은 가독성을 높였다. 잘 읽힌다. 재미있다. 잠깐 시간에 대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읽는데 지장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생방송 중 형이 사회자 레이 달링에게 가발인지 아닌지 묻는 장면이다. 동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진짜다. 가발 여부를 두고 형제가 내기를 했었다. 엄청난 시간이 흐른 후 첫 언론 인터뷰 첫 말이 가발 여부였으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리고 레이 달링이 보여준 행동은 웃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형의 상황 때문에 무거웠던 이야기가 단숨에 날아간다. 삶은 가장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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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크리처스 - 그린브라이어의 연인,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3-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3
캐미 가르시아.마거릿 스톨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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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물이다. 십대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배경은 미국 남부 작은 마을 개틀린이다. 이 작은 마을은 굉장히 폐쇄적이면서 보수적이다. 가끔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런 마을을 다룬 것을 보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남북 전쟁을 둘러싼 해석이나 그 당시 전쟁을 재현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마을 주민이 총기협회회원인 것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화자이자 남자 주인공인 이선이 마을 사람들을 멍청이와 못 떠난 사람 두 부류로 나눈 것은 어쩌면 가장 정확한 분석일지도 모른다.

 

이선의 꿈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꿈 속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노래가 들린다. 하지만 항상 끝을 알 수 없는 사건으로 둘은 떨어지게 된다. 이 도입부를 보면서 앞으로 벌어질 몇 가지 사건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예상은 한 소녀가 전학 오면서 맞아떨어진다. 그녀는 리나다. 그녀는 마을에 유령같은 존재인 레이븐우드의 조카다. 아름답지만 그녀의 출신과 행동이 그 학교 주류들과 맞지 않는다. 당연히 왕따가 된다. 누구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그녀에게 이선이 다가온 것은 그녀가 연주한 음악 때문이다. 그 음악은 이선이 꿈속에서 들었던 바로 그것이다.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꿈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꿈에서 시작한 운명적인 만남은 필연적으로 사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둘을 사랑을 예감하는 또 하나의 비전이 보이면서 이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보여준다. 폐쇄적인 조그만 시골 마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마녀로 알고 있던 존재를 주술사라고 부르면서 본격적인 판타지가 펼쳐진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당연히 리나다. 그녀의 등장은 이선이 폐쇄적이라고 불렀던 마을 깊숙이 숨겨져 있던 비밀을 하나씩 드러나게 만든다. 일상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소설은 로맨스를 바탕으로 판타지 속 존재들을 등장시켜 갈등을 고조시킨다. 이선과 리나의 정신적 감응이나 메이컨 삼촌이 보여준 초능력은 판타지 속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리나의 열여섯 생일날 벌어질 선택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감을 불러온다. 이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 둘의 사랑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소재이기도 하다. 일반 사람과 구별되는 주술사 등이 실재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일반인과 주술사 사이에 미래가 펼쳐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애는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오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소재가 된다. 또 리나를 둘러싸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왕따는 이 둘에게 시련이자 강한 유대감을 만들게 한다. 사랑이 더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단순히 판타지만 있는 소설이 아니다. 보수적인 남부 사회를 그려내면서 시대와 단절된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앵무새 죽이기>가 앞부분에 등장한 것은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아주 좋은 설정이다. 이후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은 미국 사회의 이면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듯한 남북의 문제는 단지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가지 장면은 영화 속에서 본 것과 너무 비슷하다. 약간 전형적인 듯한 모습이라 조금은 아쉽다.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할 수 있는 존재들이 보여주는 활약이 사실 조금 약하다. 아마 시리즈 첫 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술사 등이 보여줄 능력과 대결이 중심에 놓여있지 않고 리나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 중반은 조금 흡입력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앞부분과 마지막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나란히 놓고 풀어내는 판타지는 이제 시작이다. 마지막 장면의 노래는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4부작 중 첫 권인 이 소설만 가지고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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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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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책이 집에 있지만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장자에 대한 해석을 단 책이 나왔다. 왕멍이란 이름과 장자란 책이 겹쳐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멋진 문장을 발견하게 한 책이 장자에 대한 책이었으니 그냥 지나가기 힘들었다. 이 선택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조금은 잊고 있던 장자에 대한 열의를 깨닫게 해주고 집에 있는 다른 장자 책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장자하면 무협에서 자주 인용되는 글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형이상학적인 문장과 해석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글들이다. 하지만 왕멍은 이 장자를 모두 다루고 있지 않다. <외편>을 다루는데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보다 새롭게 다가온 글들이 더 많다. 개인적으로 무협에서 본 글을 새롭게 해석한 것을 살짝 기대했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지만 기대한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닌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읽은 장자 해석에 붙는 단어들을 보면 즐거움이나 쾌활함이다. 솔직해 말해 아직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몇 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그것만으로 장자의 매력을 제대로 맛봤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것은 왕멍이 풀어낸 해석과 나의 머리가 충돌하고 장자에 대한 환상이 일정 부분 자리를 차지한 것도 있다. 철학으로써의 장자가 아닌 종교로서의 장자를 머릿속에 담아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문장을 가슴에 담아두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모두 15부를 다룬다. 원문의 일부분을 번역한 후 이에 대한 해석을 달고 그 다음 원문을 번역 분석하는 방식이다. 각 부가 끝나는 마지막에 왕 아무개의 말이란 간단한 주석을 단다. 이 전형적인 번역 해석 방식이 예상한 것보다 어렵게 다가왔다. 그것은 문장 자체가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함축적이면서 시적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부분이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 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많은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해석을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었고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다시 풀어내었다. 이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살짝 고민하게 만들었다.

 

장자의 글은 탁월한 분석과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이 없는 글은 분명히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인지 유학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유가가 강조한 불평등사회는 당시 지배계급에게 딱 맞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현재도 유교를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강신주가 장자의 글을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움이라고 한 것도 이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왕멍의 해석 중 중국이 문자에 천착하고 글쓰기에 너무 공들이면서 과학을 천시했다고 지적한 것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학문적으로 높고 깊은 곳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개선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장자의 글 속에서 현대 철학이나 사조의 기원을 본 듯한 묘사를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해석에 기댄 확대 해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현재 기준에서 과거 문장을 해석할 때 이런 종류의 글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해석이 가능하게 된 데는 해석자가 가진 학문의 깊이나 넓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자의 글은 읽을 때마다 번역자에 따라 그 느낌이 바뀐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느낌은 자유로움이다. 조화다. 비워짐이다. 아직 나의 학문이 짧고 인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장자에 대한 해석을 읽을 때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한 줄기 재미를 느끼게 된다. 분명 아직은 장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지만 앞으로 장자는 내 삶 속 한 곳에 조용히 자리잡고 불쑥불쑥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재미와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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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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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GONE GIRL'이다. 요즘 미국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는 책이다. 사실 이 제목을 보았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번역 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인 오프라 윈프리의 평은 시선을 더욱 강하게 끌었다. 거기에 아마존 리뷰가 무려 8,500개나 된다. 이 정도면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팬으로 그냥 지나가기 힘든 작품이다. 원제와 번역 제목 사이의 차이를 머릿속에 담아둔 채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을 3부로 구성되어 있고, 소설 속 두 주인공이 화자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각 부의 제목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남자가 여자를 잃고, 만나고, 되찾는다는 제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제목만 보면 알기 힘들다. 하지만 1부로 모두 읽은 후 2부로 넘어가게 되면 반전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왜 이런 제목이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다. 그때부터 이 책에 대한 호평들의 의미가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펼쳐지는 긴장감과 어떤 식으로 이 모든 사건이 해결될지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에이미가 사라진 그날의 닉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뉴욕에서 작가로 활약하다 잘린 후 고향 미주리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치매고 어머니가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더 이상 뉴욕에서 돈을 벌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 에이미의 신탁에서 뺀 돈으로 고향 마을에 ‘더 바’라는 바를 차려서 쌍둥이 동생 고와 함께 운영한다. 그 사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골 마을의 일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간 그가 아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집에 남겨진 흔적들은 뭔가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내의 실종으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아내의 실종을 다루는 장이 닉이라면 이들의 만남과 과거는 에이미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그들의 만남이 어떠했는지, 그 사랑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그들 사이에 어떤 벽이 놓여 있는지 등이 일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처음 이 일기를 읽으면서 스릴러라기보다 부부 사이에 있는 무관심과 무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닉이 보여주는 부부의 모습과 에이미의 일기가 보여주는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 닉이 보여준 몇 가지 학습되고 습관화된 행동 몇 가지는 이 차이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평온한 설정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닉은 엄청난 미남이다. 에이미도 엄청난 미녀다. 소위 말하는 선남선녀 커플이다. 그런데 이 둘에게는 성장하는 과정에 큰 차이가 있다. 닉은 아버지와 불화가 심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잘생긴 외모가 있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에 에이미는 유명 심리학자의 딸이자 어메이징 에이미 시리즈 실제 모델이다. 이 시리즈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고 그만큼 풍족한 생활을 했다. 거기에 자신도 심리학 학위를 가지고 있고 매체에 간단한 심리테스트를 실을 정도다. 그녀 역시 이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대단한 노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역시 실직했다.

 

실직과 이사. 낯선 동네. 그러다가 갑작스런 실종. 처음부터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제목도 그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작가가 조금씩 보여주는 이야기는 분절된 단어와 간결한 문장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 밋밋한 전개 때문인지 쉽게 몰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리듬을 타지 못한 것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분위기가 바뀌면서 예상한 전개가 펼쳐졌다. 예상한 전개라고 하지만 큰 그림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들이 아주 불안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재미난 점은 닉이 이 모든 사건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부분이다. 바로 여기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변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아내의 살인이나 실종 사건 제1용의자는 남편이다. 어쩔 수 없다. 아내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이 남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 선남선녀 커플의 뒤틀리고 숨겨진 삶을 하나씩 파헤친다. 남편의 외도. 아내의 숨겨진 과거. 결혼 5주년 기념일 선물을 찾기 위한 단서들이 처음과 완전히 바뀐다. 이제 이 부부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립관계로 돌아선다. 닉이 아내에게 욕을 내뱉고 돌아오면 죽이겠다고 말할 때 가장 가깝지만 먼 사이인 부부의 실체가 드러난다. 여기서 발휘하는 흡입력은 상당하다.

 

솔직히 말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2부가 되기 전에는 쉽게 몰입하기 힘들다. 본격적인 반전이 펼쳐지고 사건이 어디로 흐를까 호기심을 가질 때 몰입하기 시작한다. 몇몇 설정은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읽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약간 지루한 앞부분이 지난 후 이 거대한 음모와 계략이 어떤 식으로 풀릴지 기대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미디어와의 관계, 경찰과의 관계, 단서와 증거, 속고 속이는 연출과 연기. 이 모든 것들이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나의 이해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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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포비아
김진우 지음 / 북퀘스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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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대재앙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하지만 이 대재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종말과 다르다. 과학 기술이 그대로 보전되거나 더 발전한 미래다. 이 미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밀양림이다. 이 이름을 읽고 가장 먼저 든 것은 밀양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 의문은 뒤로 하고 이 가공의 인공도시는 작가의 섬세한 설명에 의해 그 윤곽을 하나씩 드러낸다. 이 도시 속 수많은 이야기는 기존에 보았던 SF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흔적 중 대부분이 우리 것으로 체화되어 있지만.

 

주인공은 유울모다. 그가 일하는 기업은 러페트사다. 애완동물을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회사다. 그는 3년 동안 밀양림 외부의 지사들을 감사하고 돌아왔다. 이 시간은 밀양림에서만 생활한 그에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경험은 소설 곳곳에서 문제와 부딪혔을 때 도움을 준다. 그것이 충분하지 못할 때조차도. 그리고 이 바람도 살지 않고 폐쇄적인 인공 도시가 수많은 도시 외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처럼 다가오는지 조용히 알려준다. 환경 파괴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된 외부에 비해 이곳은 너무나도 안락하고 과학적으로 잘 관리된 곳이기 때문이다.

 

울모를 통해 밀양림을 하나씩 알려준다면 그가 한눈에 반한 미아보라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밀양림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서 변하는 울모를 통해 통제된 사회의 이면을 파헤친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에서도 불안과 폭력과 테러가 존재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자체가 통제된 행동일 수도 있다. 안락과 긴 평화는 가끔 사람들에게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또 다른 통제 수단이지만 말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반했을 때 그가 가진 가치관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녀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벽에 부딪히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고 예쁘지도 않고 아니 못생긴 그녀지만 그의 영혼은 그녀에게 매혹되었다. 이 매혹은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월급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고 열정을 바친다. SF 세계 속에서 피어난 사랑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사랑은 실제적이라기보다 환상적이고 주관적이다.

 

많은 판타지나 SF에서 유토피아 도시를 다룬다. 이 소설도 그것과 비슷하다. 과학의 발달로 만들어진 밀양림의 일상은 현재 우리가 생각한 것이나 SF에서 이미 보여준 것들이다. 여기에 울모의 열정적 사랑을 통해 유토피아 도시의 다른 이면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 설정도 기존 SF에서 본 것이라 그렇게 신선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 이 모든 것들의 용어나 단어를 우리식으로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SF가 반체제 인사가 되거나 된 주인공이나 상황을 다루는 것과 달리 도시의 창조자와 연결해 풀어낸 결말은 신선하다. 이것도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 <애드리브>에 대한 극찬 때문에 선택했다. 결론만 말하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엄청난 작품은 아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우리식으로 미래의 풍경을 그려낸 것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모든 이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노골적으로 파헤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 부분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 연작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변함없이 궁금한 것 하나. 밀양림과 밀양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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