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 아이들의 도전 - 이중언어 세대를 위한 언어교육 지침서
바바라 A. 바우어 지음, 박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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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를 필요성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어를 할 경우 얻게 되는 수많은 장점에 대해 말한다. 변했다면 변한 것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필요한 환경이 내 주변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가 짧아도 해외 여행하는데 지장이 없고, 일상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다만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했다면 아마도 나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길이 열렸을 것이다. 지금 내가 영어의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고 인터넷 정보 대부분이 영어인 것을 생각하면 내가 자랄 때보다 그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과연 영어 조기 교육이 좋은가와 언제 영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다. 아마 영어를 포함한 제2언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을 뒀거나 둬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액의 영어 유치원 등을 배척하자는 주의다.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와 모국어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외국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교육에 대한 나의 반감도 어느 정도 합쳐졌다. 그렇다면 실제 그럴까?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했는지 모른다.

 

책은 중요한 기본 전제 조건을 깔고 있다. 2개국 이상을 말하는 아이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자. 연구 과정에 연구자 아이들이 대상인 경우가 많았음을 감안하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그것은 부모가 각각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을 대부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 조건을 말한 후 연령별 효과를 연구하고 분석했는데 결론만 말하면 3세 이하가 가장 좋다고 한다. 아마 조기 교육을 찬성하는 부모라면 이 결과에 박수를 치면서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앞에 나온 전제 조건을 대부분 부모들은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저자는 이것을 인정한다. 이 격차를 조금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두 개의 언어를 집 안팎에서 사용하고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나이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라면 이것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르지만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부부라면 어떨까? 분명 쉽지 않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영어 유치원이지만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한계 나이로 다루고 있는 6세 이하는 나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든다. 우리 나이로 말하면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이나 1학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가면 조기 교육의 실패도 말한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캐나다의 몰입교육이다. 이 몰입교육 방식은 전체 혹은 일부 과목을 외국어로 수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두 대상이 된다. 이 교육 방식이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영어 교육을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것이 예산이나 상황 등의 문제로 쉽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특별히 영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외국에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이다.

 

이제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용어를 넘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기본처럼 변해가고 있다. 물론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주변 환경이 영어 등을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불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모국어가 중요하고 미래의 비즈니스 시장에선 분명 영어 외의 언어와 문화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앞서갈 것이라고. 그리고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키거나 초등학생을 영어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라면 나이가 아니라 환경과 지속성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를 덧붙이자면 우리가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는지 되돌아보면 수많은 연습과 노력과 가족 등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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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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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었다. 초기 번역을 제외하면 한동안 읽지 못했다.(사실 이 소설은 재번역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 많지 않은 것도 하나지만 그녀의 감성이 나와 잘 맞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부분이 있다. 두 모녀를 통해 두 개의 삶을 보여주는데 왠지 엄마 요코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녀가 경험한 사랑이 얼마나 견고하고 아름답고 지속적인지 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 그녀의 사랑 때문에 그녀의 딸 소우코가 겪어야 했던 힘든 삶도 역시.

 

요코가 선택한 삶은 사랑이다. 현재의 사랑이 아닌 과거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위해 그녀는 평온할 수 있는 삶을 벗어던진다.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는 상태였던 그녀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딸을 낳은 것이다. 채무 때문에 그녀를 떠나야했던 남자가 남긴 ‘꼭 돌아올게. 반드시 요코를 찾아낼 거야. 어디에 있든.’이란 한 마디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하게 만들었다. 그와 그녀의 딸 소우코도. 이 때문에 그녀와 딸은 방랑자처럼 떠돌면서 산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길게 1~2년 정도 살다 이사한다. 대단하다.

 

소우코가 말한다. 엄마는 미래를 보면서 산다고. 한 곳에 정착하면서 살지 않고 과거의 인연과 가볍게 이별하는 그녀를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거의 사랑에 그녀는 매여 있다. 이것을 단순한 과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 남자와의 만남을 확신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자신의 삶을 낭비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사랑은 과거의 한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과거라고 말하기 힘들다. 왠지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일상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오히려 소우코 쪽이 더 많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 고등학생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엄마의 의견에 따라 늘 전학한다. 전학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시기는 감수성이 민감할 때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의 의견을 잘 따랐다.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보다는 엄마의 과거 사랑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삶을 산 것은 아직 어렸고 순수했기 때문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새롭게 본다는 것이다. 이 성장은 엄마의 삶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 결말은 어쩌면 시작부터 정해졌는지 모른다.

 

작가의 감성적인 문체와 사랑은 간결한 문장 속에 잘 녹아 있다. 이 강력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이 오히려 담백한 문장으로 표현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상을 간결하게 묘사하면서 그 속에 강렬했던 사랑을 살짝 집어넣어 그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복되는 단어의 사용은 이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한 장소 익숙해진다는 것이 안주한다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요코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 만날 것이란 기대는 안주로 인한 사랑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두 모녀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리게 만든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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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 / 꾸리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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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처럼 슬라보예 지젝이 서울을 방문한 후 가졌던 인터뷰와 강의와 대화 등을 엮은 책이다. 지젝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십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실제 글로 만난 것은 최근이다. 하지만 진짜 지젝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지젝이라고 했지만 그의 책이 아니라 인터뷰 등을 통해서 만났다. 잘 된 인터뷰의 경우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홍세화의 인터뷰가 그렇다. 이 인터뷰를 통해 그리스 사태와 이집트 민주화의 실상을 좀더 알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그의 철학 한 자락을 배웠다.

 

그리스 선거에 내가 주목한 것은 유럽 경제 위기의 한 축이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 사태는 우리의 정치에서도 그대로 왜곡된 채로 이용되었다. 본질보다는 피상적인 것에 더 집중하면서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이런 호도에 대해 그가 바로잡아준 몇 가지 사실은 놀랍다. 한국의 진보정당 정도의 지지율을 가진 시리자가 정권을 잡을 뻔했다는 것과 시리자의 정책 등을 어떤 왜곡으로 변질시켰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실험장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제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접어들었다고 할 때 고민이 시작된다.

 

이슬람 형제단이 집권한 이집트로 가면 우리의 87년 민주화와 08년 촛불집회를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수백만이 광장에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그것이 핵심이죠. 이 지점에서 좌파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43쪽) 이 문장은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좌파에 실용주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이 땅의 진보가 과연 이런 비전을 보여줬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상술과 양심의 허접한 결합을 말할 때 순간 뜨끔했다. 없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그들에게 마케팅의 수단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예를 들었는데 사실 커피 한 잔 사먹는 돈을 직접 보낸다면 나 한 사람이 스타벅스 구매자 백 명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현재 새누리당이 종북을 외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을 그만두자고 하는 현실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우리 경제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깊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했을 때 그가 겪은 참혹했던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한 단면은 자유와 파시즘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파시즘이 규율의 억압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잘못된 자유의 측면이 있다는 사실”(111쪽)을 직시하면서 놀라운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인에 대한 지젝의 평가는 지금 김지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일정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아니 그가 보여준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고 변명할 수 있지만.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이미 민족주의 혹은 이기주의에 휩싸여 있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국민 사이에 일어난 대학살에는 관심이 없다가 그 나라의 백인 지주 등이 죽었을 때 흥분하고 여론이 들끓어 오르는 현실을 지적할 때 더욱 분명하다. 사람의 목숨이 모두 똑같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가치로 나누는 현실을 말할 때 폭력은 왜곡된 채로 남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유럽과 반대현상이 보이는데 그것은 대기업의 이익을 반영할 때다. 이것은 그가 ‘간디가 히틀러보다 더 폭력적이었다’(153쪽)고 말한 것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선택이 아닌 단순한 기호다. 문제 자체가 다르다. 역설적이란 말처럼 선택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진짜 선택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지젝이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든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여론 조사 과정에 선택을 가장한 여론 조작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단 한 권의 지젝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렵다는 그의 철학책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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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사를 믿지 마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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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펠만 가족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다. 이 시리를 띄엄띄엄 읽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가 출간된 것도 몰랐다. 음! 개인적으로 이 사랑스러운(?) 가족의 대활약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를 통해 이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왜냐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여운(?) 이자벨의 좌충우돌 대활약에 조금은 적응하게 되었다. 덕분에 정신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들에 더 익숙해졌다.

 

스펠만 가족은 탐정 가족이다. 이번 소설에서 이자벨은 세 가지 사건에 봉착한다. 하나는 그들의 사업을 위협하는 경쟁사 릭 하키를 몰아내야 하고, 다음은 제목에 나온 집사 실종사건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 바텐더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하려는 엄마의 협박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들과의 대결이다. 이 시리즈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가족들과의 대결이 얼마나 힘들고 끈질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생 레이의 대활약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킨다. 뭐 이 때문에 그녀에게도 문제가 생기지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례조사 세 달 전, 항소, 기소, 판결 등이다.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아래 세부적인 제목을 보면 더 혼란스럽다.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펼쳐 읽기 시작하면 이 소제목들이 하나씩 이해된다. 번호도 역시. 이런 불편한 제목들에 비해 이야기는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그리고 이 가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찰 헨리는 이번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이 둘의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시작은 열두 번째 전 남자 친구 코너로 문을 연다. 열두 번이라니 능력도 좋다.

 

또 다른 로맨스가 있다. 그것은 레이다. 그녀의 상대는 너무나도 범생인 프레드다. 가족들이 너무 좋아한다. 레이를 조정하는 또 하나의 장치다. 작고 귀여운(?) 악녀 레이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만으로 그녀가 순진해지고 착해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귀여운 악행은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언니를 변호사 자료실에 밤새 가둬놓는 것이다. 이 불법 구금에 대응하는 가족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처리하지 않고 법정까지 간다. 덕분에 이자벨과 헨리 등은 아주 큰 재미를 누리지만.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큰 사건이 아니다. 살인이나 엄청난 음모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건들이 나온다. 작가는 여기에 살짝 양념을 치고 부풀려서 이야기를 만든다. 뭐 약간이란 표현에 거부감이 든다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엄청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다른 소설에 비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월요일마다 방송하는 ‘안녕하세요’란 프로그램을 보면 이 가족도 평범하게 보일 사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지 않는가. 그들과 엮인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큰 것 한 방은 없지만 자그마한 재미가 가득하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하려고 엄마가 요구한 변호사 등과의 맞선 자리나 사라진 집사를 대신해 잠입한 배우 렌의 집사 활약이나 헨리와의 미묘한 관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유머 가득한 대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펠만 가족의 활약은 계속해서 읽게 만든다. 그리고 언제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이어진다. 사실 이 의문은 해결하는 것은 천재적인 능력이 아니다. 우연과 끈질긴 작업과 노력이 곁들여진 결과다. 이런 과정들이 괴팍한 이 가족들과 우리를 이어준다. 사놓고 읽지 않은 이 시리즈를 빨리 읽고, 역자가 “오렌지냐, 어린쥐냐 그 차이지.”라고 번역한 원문도 시간나면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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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안창근 지음 / 청어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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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한국 스릴러 소설이다. 소품이 아닌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대작이다. 한국, 중국, 북한, 아프리카, 중동, 미국 등을 배경으로 첩보전이 펼쳐진다. 무대가 광활한 만큼 등장하는 인물도 많다. 한국은 기환, 미국 CIA는 톰, 마틴, 존 등이고, 중국은 흑표다. 이들이 각 지역에서 주연을 맡는다면 주변에서 탈북자 출신 CIA요원 NKCELL이나 암살자 등이 등장하여 또 다른 활약을 보여준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할 때 생기는 혼란과 중복이 이 소설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몰입도가 좋다.

 

전 세계를 무대로 첩보전이 벌어지지만 중심이 되는 곳은 한국이다. 2005년 APEC회의가 그 목표다. 아시아 태평양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에 알 카에다의 조직 중 하나가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 이 정보를 먼저 얻은 곳은 CIA다. 하지만 이 첩보를 무작정 신뢰할 수 없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CIA는 터키와 중동을 무대로 이 정보가 진짜인지 확인하고, 동시에 중국의 정보상인 흑표에게 이것을 확인해달라고 한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CTA 직원인 기환이 첩보 하나를 산다. 이 정보는 자투리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첩보전은 속고 속이는 전쟁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CIA가 선택한 인물은 중국의 흑표와 아랍인 오마르다. 오마르가 알 카에다 조직원 중 한 명을 통해 정확한 정보에 다가가려고 하는 반면에 흑표는 한국에 직접 와서 조폭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오마르의 활약은 사실 많지 않다. 실제는 CIA요원 톰이 중심에 있다. 하지만 흑표는 다르다. 그는 한국 조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어도 능통하다. 거기에 각 나라에 정보 라인을 깔아놓고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CIA를 통해 구입한 마약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다.

 

이 세 집단의 활약을 볼 때 가장 무력한 것은 기환이다. 탁월한 첩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정보 조직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고 우연이 겹쳤다고 해야 하나? 그의 정보원이 죽고 그를 통해 새로운 단서를 얻는 과정이 너무 쉽다. 그리고 이 정보를 분석하는 CTA 직원들이 너무 쉽게 암호를 푼다. 물론 기환이 이 와중에 홀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대활약을 펼친다. 로맨스도 살짝 펼쳐진다. 하지만 다른 두 조직에 비해 느슨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개인적인 편견인지 모르지만.

 

CIA의 활약은 사실 기존의 스파이 소설을 그대로 보여준다. 속고 속이고, 전투가 벌어지고, 배신과 복수가 펼쳐진다. 활동 무대는 한 지역에 고착되지 않고 다양하면서 넓게 퍼져 있다. 아랍인 정보원을 통한 작전은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들이다. 중국 정보상 흑표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다. 암흑가에서 첩보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정보의 흐름과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와 CIA가 보여주는 첩보전은 누가 먼저 속이는 것을 들키는가 하는 싸움이다. 먼저 당하는 자가 죽음에 이른다. 개인 대 개인 싸움이 아닌 조직 대 조직 싸움이다.

 

이 다른 세 조직이 중심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인 APEC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힘이 조금 약하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반전의 음모는 앞에 깔아놓은 수많은 설정과 배경에 비해 너무 힘이 약하다. 반전에 이르는 과정도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큼의 설정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각각의 주인공들을 잘 묘사했고 낯선 이국의 풍경과 첩보전을 안정된 문장 속에서 잘 녹여내었다. 큰 한 방은 없지만 충실함이 돋보이는 첩보소설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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