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화 위원회 - 유령과 볼셰비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이상한 시도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은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왜 이 속담이 생각났느냐 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맞다면 이때의 불멸은 명성이다. 그럼 이 책에서 다루는 불멸은 무얼까?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명성이 아니라 진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 너무나도 불가능하고 덧없을 것 같은 이것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 불멸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불멸화 위원회는 레닌 사후 레닌의 매장 절차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장례위원회 이름이다. 불멸을 말하면서 왜 레닌이 나오냐고? 그것은 이 책 2장 다루는 건신주의자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하려 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그들 말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엄청난 학살과 숙청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 읽으면서 옛날 학창시절 붉은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학우와 선생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고 혁명을 맹신했는지 말이다. 또 그 시절의 참혹한 비극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새발의 피임을 알게 되었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교차 통신, 2장은 건신주의자, 마지막 3장은 달콤한 필멸이다. 교차 통신은 유령과 나누는 대화를 의미한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사후세계의 실존이다. 쉽게 우리의 개념으로 말하면 저승에서 이승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승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저승에 살아 있다는 의미다. 육체는 소멸했지만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천국을 말하며 불멸을 노래하는 것을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도움은 된다.

 

유령과의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가 풀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은 날카롭다. 유령과의 대화라고 단순히 미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을 것이다.”(33쪽)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과학의 힘을 믿었고 과학적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다윈 이후 진화라는 단어는 진보와 뒤섞여 사용되곤 했는데 이것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가 흔히 진보라고 부르는 것 중 대다수는 우리의 바람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삶의 의미를 불멸에서 찾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과 교차 통신문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가 영화 속에서 재미로 봤던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2장은 러시아로 무대가 옮겨간다. 핵심 인물은 고리키다. 그의 비서였던 모라다. H.G. 웰스다. 이들을 통해 20세 초 러시아의 상황과 불멸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의 기반이 영지주의의 한 분파란 설명에선 고개가 갸웃하지만 그들이 혁명의 달성 혹은 권력 쟁취를 위해 벌였던 어마어마한 숙청과 학살은 고개 숙이게 만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리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무참하게 깨졌다.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볼셰비키가 저지른 학살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과학에 기댄 그들이 레닌의 사체를 보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지 보여줄 때 과학이 또 다른 신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는 인간 경험의 바뀌지 않는 특성들을 다루는 이야기이다.”(263쪽) 이 문장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불멸주의는 인간 소멸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런 소멸 과정보다 더 완전하게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기획이다.”라고 할 때 인간과 불멸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차 통신을 통해 다른 세상에 사는 영혼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과 동일하고, 레닌처럼 보관된 사람이 다시 재생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불멸의 정의로 “죽고 나면 이승에서건 다른 세상에서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데 있다.”(45쪽)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세상을 다룬 판타지 소설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를 참고한다면 과연 이런 불멸이 의미가 있을지 좀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뭐 이때 부활한 자들은 좀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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