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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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제8권이다. 2009년에 출간되었다. 분량이 무려 781쪽이다. 아마 이 정도 분량이면 볼 때 먼저 질릴 텐데 이 책을 받았을 때 흥분부터 했다. 왜냐고? 전작 <스노우맨>을 읽었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량에 상관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 다음 페이지를 정신없이 넘기게 되는 경험을 하니 말이다. 뭐 사람 따라 이런 소설이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강한 유혹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전작에서 큰 상처를 입은 해리는 오슬로를 떠난다. 그가 간 곳은 홍콩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수많은 홍콩 영화를 통해 너무나도 익숙한 그곳. 이곳에서 그는 반폐인으로 살아간다. 마약과 알코올에 절어서 무력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를 찾아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카야다. 여경찰이다. 그를 찾아온 이유는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자 두 명이 죽었다. 하지만 그의 상관이었던 군나르 하겐은 연쇄살인사건임을 직감한다. 노르웨이에서 이런 사건에 가장 적합한 경찰은 바로 해리다. 이 부분이 특히 강조된 작품이 바로 <스노우맨>이다.

 

해리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움직일 마음이 없다. 단 하나의 방법은 그의 아버지 올리브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함께 돌아온다. 이 귀향으로 모든 사건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 내부의 알력이다. 살인사건을 전담하려는 크리포스와 일선 강력반의 대립이다. 내무부는 크리포스를 앞세운다. 하겐이 해리를 부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해리의 능력을 통해 이런 대립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의도다. 이제 해리는 전심전력을 범인을 쫓는 것 외에 경찰 내부의 권력 싸움도 같이 감당해야 한다.

 

전편에 등장한 반가운 인물이 있는 반면에 낯선 인물도 적지 않다. 해리를 데리러 홍콩까지 온 카야와 해리를 무너트려 크르포스에 권력을 집중하려는 미카엘 벨만 등이 대표적이다. 하겐이 해리에게 조력자라면 벨만은 장애물이다. 벨만은 충분한 인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건의 핵심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직관과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다. 해리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들 때문이다. 사건을 들여다보고 숙고하고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직관은 증거물과 함께 범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이것이 비록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놀라운 것은 범인의 잔혹하고 대담한 살인 방법이다. 고문도구다. 특히 레오폴드의 사과는 놀라운 고문도구이자 살인도구다. 입에 넣기는 어렵지 않으나 빼기는 너무 어려운 무시무시한 살인도구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앞부분에 이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 사과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작용을 했는지 알게 된다. 상상력은 이 끔직한 고문도구가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것인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무너진 해리 홀레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절제를 한다지만 그는 아편을 하고 술을 마신다.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범인을 꼭 잡겠다는 의지 정도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그가 자기 파괴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왜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술을 마실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날씨 탓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행적이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수사 능력은 그를 적으로 돌린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더 많은 분량뿐만 아니라 규모도 더 커졌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콩고까지 지리적 공간이 늘어났다. 단순히 무대만 커진 것이 아니라 이 속에 이 나라가 껴안고 있는 문제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단순한 배경처럼 다가왔던 것이 나중에는 중요한 설정이자 장치로 변하는 구성은 정말 일품이다. 만약 더 깊게 들어갔다면 그 나라의 비극을 잘 보여줄 수 있겠지만 긴장감이 다른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준 몇 가지 상황들은 나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게 만든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사실 이 정도 분량을 소설을 읽을 때면 중간에 범인이 잡혀도 이 놈이 과연 범인일까 의문을 가진다. 남은 분량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여기에 연쇄살인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느 선에서 멈출지 추리하게 된다. 물론 범인도. 이 과정을 작가는 하나씩 보여주면서 진행하는데 나의 머리는 경험 속에서 먼저 범인을 찾는다. 가장 먼저 용의자가 떠오른다. 삭제한다. 다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면서 한두 명으로 줄어든다. 가장 유력한 범인이 보인다. 이것을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노우맨이다. 이 긴 소설 속에서 잠시 등장해 한니발 렉테에 조금 부족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뭐 이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이자 트릭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많은 분량이지만 결코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다. 속도에 빠지면 시간을 잊게 만든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제대로 따라가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곳곳에 드러나는 해리의 성격과 특징은 중간중간 몰랐던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준다. 단순히 하나의 장치로 설정했던 것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할 때 허투루 글을 쓰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의 냉혹하고 이기적이고 거침없는 성격도. 한 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가히 올해 읽은 최고 소설 다섯 권 중 한 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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