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고 장영희 선생의 일 년 열두 달을 테마로 한 영미시 선집이다. 보통 한 달에 두세 편 정도의 시를 실고 각 시마다 간단한 해석 또는 감상을 달아놓았다. 원래는 한 일간지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란 제목으로 1년간 연재했던 칼럼들이다. 이 중에 계절에 관한 시 29편을 추려서 담은 책이다. 그녀 생전에 일간지 칼럼을 읽은 적도 없고, 글을 읽을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글에 대한 좋은 평이 올라오고, 낯설기만 했던 김점선의 그림이 반갑게 다가왔다. 그런 도중에 이 책이 출간되어 읽게 되었다.

 

영미시를 읽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우리 시도 잘 읽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한 카페에 올라오는 시를 가능하면 하루에 한두 편 정도 읽으려고 한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메말라 가는 감성과 굳어져 가는 표현을 조금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읽었다. 많지 않은 분량에 그림까지 같이 실려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읽었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몇 번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에 집중했고, 어딘 가에서는 고 김전선 선생의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영어 원문이 같이 실려 있어 한 번 정도는 소리 내어 영어를 읽어봤다. 뭐 그렇다고 제대로 해석도 이해도 못했지만.

 

처음에는 시인 29명의 시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겹쳐지는 시인들이 많다. 아마 연시를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어 그들의 시가 몇 편 더 실린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장시의 일부만 발췌해서 실은 것이다.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전문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너무 긴 시라면 다른 시로 대체되어야겠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해당월과 시를 연결한 설정은 상당히 좋았다. 시를 읽으면서 계절과 직접 연결해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계절이나 그 시간에만 집중했지.

 

각 해당월과 계절과 인생을 연결해 놓은 설정은 읽으면서 나는 지금 몇 월에 도착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각각 다른 운율과 분위기를 시가 만들어낼 때 그때마다 다양한 시의 세계를 맛본다. 시인에 대한 간단한 주석을 참고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시와 괴리를 느낀다. 상당히 많은 시들이 그랬다. 그리고 4월에 오면 T.S 엘리엇의 <황무지>가 먼저 떠올랐다. 한때 4월이 오면 라디오 등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구를 반복해서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과 생동하는 4월의 시를 들려준다.

 

이 시들의 선택이 저자의 투병중에 있었던 탓인지 모르지만 가을을 지나 겨울로 오면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담아낸다. 물론 <눈덩이>처럼 짧고 동시 같은 시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 못한 길이나 아름답게 늙기를 바라는 심정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랑과 희망과 휴식 등을 노래하는 시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몇 편을 다시 읽었는데 조금 더 깊게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시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 전에 읽은 하진의 <자유로운 삶>의 주인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비록 그는 중국인이면서 영어로 시를 쓰려고 하지만. 저자의 시 번역과 해설과 더불어 고 김전선의 그림도 마음 한 곳에 자유의 바람을 살짝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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